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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의 대표 건물은 정전과 영녕전이다. 정전은 보수정비공사 중이다.
▲ 영녕전 정면 모습 종묘의 대표 건물은 정전과 영녕전이다. 정전은 보수정비공사 중이다.
ⓒ 김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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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훈정동, 종묘(宗廟)를 가기 전엔 유교가 종교라는데 선뜻 동의하지 못했다. 종묘를 다녀온 후엔 유교가 종교라는데 격하게 수긍했다. 종묘는 조선시대의 왕과 왕비는 물론 실제로 왕위(王位)에 오르지는 않았으나 죽고 나서 왕의 칭호를 올려받은 왕[추존왕(追尊王)]과 그 비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지냈던 왕실의 사당이다.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 재위 1392∼1398)는 1394년(태조 3) 새 도읍지인 한양으로 천도했다. 유교 이념에 따라 궁궐인 경복궁을 중심으로 왼쪽인 동쪽에 종묘를, 오른쪽인 서쪽에 사직(社稷)을 세웠다.

종묘 중심 건물은 정전(正殿)과 영녕전(永寧殿)이다. 태조 당시는 정전뿐이었다. 영녕전은 정전에 모시지 않은 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시는 별묘(別廟)로, 세종 때 세워졌다.

건립 당시 정전은 7칸이었다. 명종대에 11칸으로 늘어났다. 임진왜란으로 불탄 후 광해군이 재건하였다. 영조 2년(1726)에 4칸, 헌종 2년(1836)에 4칸을 더하여 지금은 19실(室)이다. 영녕전은 6칸으로 시작하였다. 헌종 2년 정전 증축 때 현재의 규모인 16실(室)이 되었다. 상세한 내용은 현장에서 문화재해설사의 생생한 설명을 듣기 권한다.

장엄함, 그리고 엄숙함 
 
영녕전을 담장 밖에서 바라본 전경이다.
▲ 영녕전 전경 영녕전을 담장 밖에서 바라본 전경이다.
ⓒ 김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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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또 종묘를 찾았다. 처음엔 의무감 같은 것이었다. 국보에, 보물에, 사적에, 세계유산에 온갖 타이틀을 거머쥔 종묘를 한 번도 안 가본다면 이 강토의 후손된 도리가 아니지 않은가 하는 뭐 그런 거랄까.

처음 대면한, 정전은 장엄하였다. 동서 107m 길이의 목조 기와집이 주는 위엄은 충격이었다. 그 첫 경험이 강렬하여 자주 찾았다. 해가 뜰 때, 해가 질 때, 정오의 햇살 아래서 느낌은 각기 달랐다. 압권은 눈 덮인 모습이었다.

각기 다른 풍광 속에서도 언제나 변하지 않는 것이 있었는데, 그건 조용함과 엄숙함이었다. 그렇게 조용하고 엄숙한 공간을 만들어 낸 조선 오백 년의 정신이 경이로웠다.

지금은 보수공사 중이다. 대략 내년 말쯤이야 새로 단장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정전과 다르면서도 비슷한 영녕전으로 아쉬움을 달랠 수밖에 없다.
 
정전 보수정비공사 중이다. 내년 말쯤 단장된 모습을 볼 수 있을 듯하다.
▲ 정전 정전 보수정비공사 중이다. 내년 말쯤 단장된 모습을 볼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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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믿음)과 종교는 엄연히 다르다. 믿음은 개인의식의 문제이고 종교는 다수의 문화체계이기 때문이다. 지극 정성으로 제사를 모시는 모습에서 종교를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조상신을 모시는 믿음으로만 여겼다. 유교가 종교라고 할 때, 흥, 콧방귀를 뀌는 무지함도 보였다.

신앙이 종교가 되려면 일반적으로는 세 가지 조건이 갖추어져야 한다. 하나는 구성원이 절대로 믿어야 하는 신이다. 둘은 그 신을 섬기는 규율이다. 셋은 의식을 행하는 장소다. 유교도 이 세 가지 조선을 완벽하게 갖추었다. 신이 된 왕, 국조오례의에 따른 제례 규정, 종묘에서 안방까지 각종 제의 공간까지.

다만 종교로서의 구성요건을 갖추었음에도 인정하기 어려운 건 아마도 내세관 때문일 것이다. 천국이나 극락의 개념은 도덕규범의 강제이다. 유교는 이런 게 없다. 그래서 오해한다. 종교가 아닐 것이라고. 유교는 내세관을 역사와 기록으로 대체했다. 역사의 심판을 무섭게 여기고 두려워했다. 역사 앞에 부끄럽지 않은 당당함 그것이 도덕률이었고 가치판단의 기준이었다. 그것이 천국이고 극락인 셈이다. 역사가 두렵지 않으냐는 일침은 선비의 회초리였다.

왕의 절대 소임 중 하나가 제사였다. 토지신과 곡식신을 받드는 사직과 신이 된 선왕을 제사 지내는 종묘의 보전은 왕의 절대 소임이었다. 왕을 성현을 신으로 받들고 그들의 삶을 모범으로 삼았다. 그렇게 종교 생활을 했다.
  
삼로라고도 한다. 가운데가 약간 높고 양옆이 약간 낮다. 신주와 향 축이 들어가는 신로, 왕이 다니는 어로, 세자가 다니는 세자로로 이루어져 있다. 왕릉 길도 같은 형식이다.
▲ 신로 삼로라고도 한다. 가운데가 약간 높고 양옆이 약간 낮다. 신주와 향 축이 들어가는 신로, 왕이 다니는 어로, 세자가 다니는 세자로로 이루어져 있다. 왕릉 길도 같은 형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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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궁에서 동문으로 가는 이르는 신로이다.
▲ 신로 재궁에서 동문으로 가는 이르는 신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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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 정전 보수 정비공사로 종묘 신주는 창덕궁(昌德宮) 선인전(宣仁殿)에 모셔져 있다. 공사가 끝나고 신주를 다시 모셔 오고 내 후년쯤에야 다시 종묘제례가 열릴 듯하다. 신주가 종묘로 다시 봉안되는 행사가 크게 열릴 것이니 꼭 구경하길 권한다. 조선 영조 이후 처음 있는 행사이기 때문이다.

​종묘제례는 문화 충격이었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유교는 종교가 맞다고. 왕은 목사님, 신부님, 스님과 엇비슷했다. 정치의 수반이면서 제사장이었다. 권력은 제사에서 나왔다. 가문의 종손도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성균관과 향교의 대제, 서원의 제례, 대단한 가문의 불천위 제사, 일반 가정 제사의 절차와 그에 따른 의미도 크게 이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

​경국대전 제사 규정에, 6품 이상은 3대 봉사 7품 이하는 2대 봉사 서민은 부모만 모시면 된다고 하였다. 조선 후기로 넘어오면서 너도 양반 나도 양반이 되었다. 그리고 매년 두 자릿수의 제사를 지내야 양반이라 할 수 있었다. 경쟁은 대상을 키우고 규모를 부풀렸다, 종묘제례에 버금가도록. 공직 냄새도 못 맡으신 제 선친까지도 4대를 받들어 모시기에 이르렀다.

​부인하려 해도 때맞추어 제사를 지내고 가을이면 벌초를 하고 시제를 지내는 한 유교는 지금도 내게 진행형이다. 나의 의식 일부를 장악하고 있고 때로는 행위의 지침이 되기도 한다. 오래된 일은 쉽게 지워지지 않나 보다.

시내 한복판에 이렇게 멋진 숲이라니 

종묘제례를 주관하는 전주이씨 대동회 종약원이나 문화재청이 종묘를 어떻게 여기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종묘를 좋아하고 자주 찾는 건 다른 의미다. 삶의 가치를 형성하는 근원을 음미할 수 있고, 여러 개의 문화유산 중 하나이고, 무엇보다 숲이 멋지다. 원시림이 주는 청량감은 무엇보다 좋다. 서울 시내 한복판에 이처럼 멋진 숲이라니. 창덕궁 후원에 비할손가. 건축과 조경과 자연이 어울려 편안하고 아늑하다.
 
정전 담장 밖 모습이다. 담장 안쪽 건물은 공신전이다.
▲ 정전 담장과 외부 정전 담장 밖 모습이다. 담장 안쪽 건물은 공신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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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장 안쪽 건물은 칠사당이다. 가운데 문이 정전 정문인 남신문이다. 신로는 정전에서 영녕전으로 연결된다.
▲ 정전 담장 밖 모습 담장 안쪽 건물은 칠사당이다. 가운데 문이 정전 정문인 남신문이다. 신로는 정전에서 영녕전으로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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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 정기 휴관일은 매주 화요일이다. 입장료는 천 원이다. 매월 마지막 수요일 문화가 있는 날은 무료 개방한다. 구입일로부터 3개월 사용할 수 있는, 종묘와 4대 궁궐까지 관람할 수 있는 통합관람권(일만 원)을 추천한다.

평일(월, 수, 목, 금)은 시간제 관람이다. 문화재해설사와 함께 지정된 경로로 약 한 시간 돌아볼 수 있다. 첫 입장은 오전 9시 20분이고 마지막 입장은 오후 4시 20분이다. 한 시간 간격이다.

주말과 공휴일과 문화가 있는 날(매월 마지막 수요일)은 일반관람이다. 입장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다. 관람 시한은 오후 6시 30분이다. 시간제한이 없이 종묘 전역을 돌아볼 수 있다. 해설을 들을 수도 있다. 일요일과 문화가 있는 날은 평일과 시간이 같다. 토요일과 공휴일은 오전 10시부터 한 시간 간격으로 오후 3시까지 5차례 있다.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영어와 일본어 그리고 중국어 해설도 있다.
 
종묘 정문을 들어서 50미터쯤 나아가면 우측에 연못이 있다. 연못 중앙에 있는 향나무다.
▲ 향나무 종묘 정문을 들어서 50미터쯤 나아가면 우측에 연못이 있다. 연못 중앙에 있는 향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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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 뒤편 산책로이다. 주말 공휴일 등 일반 관람 때 갈 수 있다.
▲ 종묘 산책로 종묘 뒤편 산책로이다. 주말 공휴일 등 일반 관람 때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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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을 권한다. 지하철 종로3가역 8번 출구를 이용하면 편리하다. 종묘 담장을 따라 난 길을 순라길이라 한다. 종묘에서 나와 좌측으로 따라가면 동순라길이고, 서쪽으로 따라가면 서순라길이다. 덕수궁 돌담길과는 다른 느낌이다. 서순라길을 따라가면 창덕궁이 나온다.

종묘 좌측 바로 옆은 익선동 '다다익선 한옥길'이다. 종로3가역에서 창덕궁 정문으로 이어진다. 1920년대 한옥이 좁은 골목을 가득 채운 익선동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한다. 오밀조밀 한옥들 사이로 카페나 식당 상점들이 올망졸망 모여있다. 고즈넉한 한옥 속에서 맛과 멋을 거닐어도 좋겠다.

여름 초입 이보다 멋진 서울 나들이가 또 있을까 싶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화순저널'에도 실립니다. 네이버 블로그(cumpanis) '쿰파니스 맛담멋담'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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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종묘, #화순저널, #서울나들이, #유네스코세계유산, #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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