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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돌문화공원 내 '오백장군갤러리' 입구, 여기서 '백남준과 제주, 굿판에서 만나다' 전시가 열린다
 제주돌문화공원 내 '오백장군갤러리' 입구, 여기서 '백남준과 제주, 굿판에서 만나다' 전시가 열린다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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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通) 백남준과 제주, 굿판에서 만나다' 기획전이 제주돌문화공원(오백장군갤러리)에서 8월 31일까지 열린다. 이 공원에 있는 누보갤러리 송정희 관장이 기획을 맡았다. 이 전시는 백남준아트센터, 전남도립미술관, 백남준문화재단(이경은 외), 이정성 백남준 전자기술자, 최재영 사진가의 협조로 100여 작품이 소개된다.

전시는 '붓시왕맞이굿'(유튜브 영상 참조)으로 개막됐다. 백남준 전에 굿 개막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이 의례는 저승 염라대왕과 대명왕 차사를 청해 망자의 혼을 저승으로 편히 모셔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굿이다. 14살 때부터 무당인 어머니를 따라 무속에 입문한 '서순실' 심방이 주재했다. 백남준(1932~2006)이 편하게 저승에 거하기를 비는 일종의 '오구굿'이다.

한국문화의 뿌리는 '굿'이라고 흔히들 말한다. 근거가 뭔가? <토지> 작가 '박경리'는 "우리 문화예술의 원류는 샤머니즘에 있다"고 봤다. 또 "그 뿌리에는 원초적 생명력에 있으며, 신기(神氣)라 하면 단순한 생명 활동을 넘어 생명 안에서 나타나는 '신령함'이다"라고 말했다.

프랑스 인류학 사전의 저자 '기예르모(A. Guillermoz)'도 한국인의 정신적 바탕은 바로 '샤머니즘'이라고 규정했다. 한국은 1443년 '한글' 창제와 함께 '무속 신앙'이 삶의 바탕을 이른다고 기록했다. 한국은 불교, 성리학 등 모든 종교의 집합소라고도 그는 덧붙였다.

백남준과 굿
 
제주돌문화공원 입구로 더 들어서면 '하늘정원' 근처에 현무암 거석들이 길게 서 있다.
 제주돌문화공원 입구로 더 들어서면 '하늘정원' 근처에 현무암 거석들이 길게 서 있다.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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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백남준과 제주가 만나는 지점이 생긴다. 바로 '굿'이다. 설문대할망과 1만8천 신화를 품은 제주주민의 근간은 '굿'이다. 세계적 비디오작가 백남준 예술의 본질도 '굿'에서 왔다. 주최 측은 이런 요소를 결합해 소통과 공감의 기운이 넘치는 전시가 되길 기대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제주돌문화공원(오백장군갤러리)'에서 열린다. 이 공원면적이 대략 130만 평 축구장 600개 정도 규모로, 그 크기에만도 압도당한다. 마치 선사시대로 돌아간 듯싶다. 이곳은 제주 설문대할망과 그녀가 낳았다는 오백장군의 신화가 전해지는 성지다. 2003년 3월에 문을 열었고, 총 22년간 공원이 조성됐다. 1~3코스까지 소요시간 2시간 50분이 걸린다.
 
백남준 I '보이스 위한 진혼굿(늑대 걸음으로)' 장소: 갤러리현대 1990년. 보이스 중절모에 구멍이 난 건, 백남준 첫 전시에서 요셉 보이스가 백남준을 대신해 전시장 피아노를 부순 퍼포먼스에 대한 오마주다.
 백남준 I '보이스 위한 진혼굿(늑대 걸음으로)' 장소: 갤러리현대 1990년. 보이스 중절모에 구멍이 난 건, 백남준 첫 전시에서 요셉 보이스가 백남준을 대신해 전시장 피아노를 부순 퍼포먼스에 대한 오마주다.
ⓒ 최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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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는 5섹션으로 나뉜다. 1전시실은 '최재영' 전 중앙일보 사진국장의 백남준 굿 사진, 2전시실 백남준 비디오, 3전시실은 백남준 오방색과 제주 '기메'가 결합한 작품, 4전시실은 음악 주제로 피아노도 있다. 5전시실은 백남준 기사와 영상 등 아카이브이다.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1990년 '갤러리현대'에서 백남준이 펼친 독일 동료작가 '보이스 추모를 위한 진혼굿' 사진이다. 보이스는 1986년 작고했다. 이걸 최재영 작가가 시공간을 초월한 우정의 가상 만남을 카메라에 담았다. 요셉 보이스의 펠트 모자와 백남준의 삿갓(黑笠) 또한 대조를 잘 이룬다. 이번에 밀착한 백남준 굿 사진 원본 전부도 공개했다.

백남준과 최재영 이 두 사람의 우연한, 그러나 결정적인 만남이 '세계문화유산'급 사진을 탄생시켰다. 백남준이 연출한 천연덕스러운 몸짓은 초인적으로 보인다. 당시 현장에 군중이 구름처럼 몰려 작업에 어려움이 컸단다. 인파 중에는 별신굿의 대가인 '김금화'도 있었다, '김중만' 사진가도 현장에 있었지만, 위치가 안 좋아 작품을 남기지 못했다고 한다.
  
제3전시실 백남준 오방색 작품이 '김영철' 심방이 제작한 '기메' 작품과 함께 전시되고 있다
 제3전시실 백남준 오방색 작품이 '김영철' 심방이 제작한 '기메' 작품과 함께 전시되고 있다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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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3전시실 방식이 창의적이다. 제주에서 쓰는 종이 매체와 백남준의 18번인 오방색과 전자 미디어가 만나니 마치 백남준 2000년 뉴욕 회고전 '레이저 아트'를 연상시킨다.

제주 굿판에서 쓰이는 '기메'는 종이로 만든 종이 예술로, 잎이 푸른 대에 백지를 묶어 맨 것이 기본이다. 온갖 모양으로 오려내 신의 강림을 기다리는 기물이다. 기메가 백남준 오방색과 겹쳐 신령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가위로 다양한 문양을 만든다. 4전시실에서는 백남준이 작곡한 곡과 그의 스승 격인 '쇤베르크'의 곡을 '김미나' 피아니스트가 연주했다.

'모든 전시가 굿'이다?

백남준은 1963년 독일 '부퍼탈'에서 열린 첫 전시부터 모든 전시가 '굿'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우선 전시장 입구에 피가 떨어지는 소머리를 걸었단다. 왜일까? 부제목이 '추방(EXPEL)'이고, 독일 관객을 전시장에 들어올 때 겁에 질리게 한 사건을 보면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교란자로서 그는 이를 통해 세계판도를 독점하는 서양 미술을 뒤엎고, 그런 위계를 굿판으로 전복시키려 했다. 20대 80 정도였던 동서 미술판을 '50대 50' 정도로 잡으려 한 것이다.
 
백남준 1963년 독일 '부퍼탈' 첫 전시 때 전시장 입구에 걸어 놓은 도살된 소머리, 화제가 되자 지역 신문도 '공포의 동굴'이라는 제목으로 보도하다. 서양 미술의 목을 보라는 듯이 쳤다는 인상을 준다. 백남준아트센터 아카이브
 백남준 1963년 독일 '부퍼탈' 첫 전시 때 전시장 입구에 걸어 놓은 도살된 소머리, 화제가 되자 지역 신문도 '공포의 동굴'이라는 제목으로 보도하다. 서양 미술의 목을 보라는 듯이 쳤다는 인상을 준다. 백남준아트센터 아카이브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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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은 첫 전시만이 아니라 지난 1993년 베니스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을 때도 미모의 이탈리아 여성을 북방 몽골족 일파인 '타타르' 로봇에게 제물로 바치는 퍼포먼스를 했는데, 이 또한 굿에서 온 것이라 한다. 그의 전자기술자 이정성 대표가 이를 영상으로 찍었는데 이번에 일부 소개된다.

그는 "현대예술은 예술을 하지 않는 게 예술이다"라고 말했는데 이는 '서구식 방식이 한계가 있다'라는 메시지다. 그는 세계미술의 룰에 대해서도 "우리가 세계사의 게임에서 이길 수 없다면 서구인이 독점한 룰을 바꿔라"라고 단호히 말했다.

이번에 전시된 백남준 작품 '자화상(1989)' 속에도 '혁명'이라는 단어가 보인다. 데스마스크에 전자 안경을 쓴 사람이 지구본으로 보는 세상은 다르다. 주역, 불상, 비디오, 진공관을 통해 세상을 다르게 보라고 한다. 자신을 기존의 사상, 철학을 전복시키는 혁명가로 묘사했다.

'굿'에 대한 자부심
 
1986년 10월 14일, 백남준이 뉴욕 '마마극장(La Mama Theatre)'에서 '바이 바이 키플링'에 맞춰 굿 공연을 하다
 1986년 10월 14일, 백남준이 뉴욕 '마마극장(La Mama Theatre)'에서 '바이 바이 키플링'에 맞춰 굿 공연을 하다
ⓒ 임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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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의 굿에 대한 자부심은 평생 대단했다. 그는 1961년 10월 26일 독일 '쾰른'에서 초연한 '괴짜' 공연에서도 기절초풍할 몸짓으로 독일 관객이 배꼽을 잡게 했다. 이건 서양인이 난생처음 보는 기상천외한, 한국 굿판에서만 볼 수 있는 것으로 그들에게는 상상을 초월하는 모습이었다.

80년대 백남준은 3개 '위성아트'를 발표했는데 1986년 작품으로 '바이 바이 키프링'이 있다. 영국 시인 '키프링'이 시에서 동서는 영원히 만날 수 없다고 노래하자, '인터페이스'론을 펼치며 이를 거부했다. 그리고 같은 시간대 뉴욕에서 백남준이 초대한 한국무당과 함께 멋진 굿판을 벌였다. 뉴욕 관객에게 동서 교류의 필요성을 알린 것이다.
 
백남준 I '고속도로로 가는 열쇠(로제타스톤)' 동판화 86×71cm 1995. 여기 백남준 '미디어론'을 5개국어로 요약하다
 백남준 I '고속도로로 가는 열쇠(로제타스톤)' 동판화 86×71cm 1995. 여기 백남준 '미디어론'을 5개국어로 요약하다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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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백남준은 30년간 펼친 그의 예술론을 로제타석에 새겼다. 그걸 한마디로 줄이면 미디어로서의 '굿'론이다. 이를 인류학적 관점에서 명쾌하게 정리했다. 이걸 신과 인간을 매개시키는 중세개념인 '영매(靈媒)'에서 왔다고 봤다. 이는 생사마저도 '회통'시키는 것인가. 초대 교회 다른 언어를 쓰는 교인끼리 말이 통하는 사건이 성서에도 전해온다.

이런 걸 '신통(神通)'이라 하는가? '만사형통'이라는 말도 있다. 이번 전시의 키워드인 '신통(神통·身통·信통·伸통·新통)'은 여기서 왔다. 소통이 신통의 경지로 올라가야 모두가 자유롭게 토론하는 공론장이 형성되고 모두가 주인이 되고 진정한 축제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백남준도 굿을 우리의 '얼(精神)', '얼음(氷, 각성)', '어른(長子)', '미디어'라고 요약했다.

굿, 'GOOD', 좋은 세상 만들기
 
백남준 I 'TV부처' 청동 불상, TV 모니터, 폐쇄 회로 카메라 70×140×105cm 1974/1989. 전남도립미술관 소장품
 백남준 I 'TV부처' 청동 불상, TV 모니터, 폐쇄 회로 카메라 70×140×105cm 1974/1989. 전남도립미술관 소장품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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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다시 묻는다. '굿'이란 뭔가? 발음나는 대로 영어로 쓰면 'GOOD'이다. 좋은 세상(해원상생) 만들기다. 굿은 사회주의나 자본주의보다 더 나은 태평성대를 구가하자는 것이다. 이런 세상을 오려면 사전작업이 필요하다. 공동체를 파괴하는 공공의 적인 '귀신(시대우상)'을 '추방(EXPEL)'시켜야 한다. 지난 4년 인류를 괴롭힌 '코로나'가 그거였다. '치병굿'이 있는 이유다.

굿에는 비관주의도, 권위주의도, 국가주의도 없다. 인류공동체적이다. 그래서 굿은 삶을 긍정한다. 그렇다면 백남준이 생각하는 좋은 세상은 뭔가? 이는 백남준이 1974년에 발표한 그의 대표작 'TV부처'와 'TV정원'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 이야기를 좀 풀어보자.

'TV부처'에서 'TV'는 서양의 물질을, '부처'는 동양의 정신을 상징한다. 여기서 백남준은 동서가 공존하는 이상향을 이루려면 서양 50%, 동양 50%를 섞어야 한다고 봤다. 'TV정원'도 같다. 그의 글에서도 밝혔지만 'TV'라는 문명 50%에 '정원'이라는 자연 50%가 조화를 이루면 '환경정의'가 구현된다는 것이다. 첫 전시에서 강조한 동서문화의 균형감과 다르지 않다.

"난 예술가나 예술계보다는 세계를 걱정해왔다"라고 백남준은 말했다. 그는 평생 지구촌이 화합하는 '이상향(텔레토피아)'을 추구해왔다. 또 실크로드에서 영감을 얻은 뒤 이를 전자화·고속화하는 '전자초고속도로(Electronic Superhighway)' 개념을 발명했다(관련 기사: 유튜브 혁명, 사실은 백남준 덕분이다 https://omn.kr/22ghu ).

이제 인류는 '챗GPT와 메타버스, NFT' 등을 마주하는 상황, 이러할 때 백남준과 제주의 정신이 만나 지구촌을 살리는 '신 문명 전자굿'을 펼치는 건 어떨까.

태그:#백남준, #최재영, #제주돌문화공원(오백장군갤러리), #송정희, #이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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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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