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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제자가 올해 43살인 나 같은 중년의 교사에게 요즘 아이들은 차라리 '외계인'이다.
 첫 제자가 올해 43살인 나 같은 중년의 교사에게 요즘 아이들은 차라리 '외계인'이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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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갓 부임한 동료 교사로부터 엉뚱한 질문 하나를 받았다. 요즘 아이들과 세대 차이가 난다고 느낄 때가 언제냐는 것. 한날한시에 태어난 쌍둥이조차 세대 차이를 느낀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만큼 급변하는 세상이라 그들과 함께하는 일상 자체가 '격세지감'의 연속이라고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첫 제자가 올해 43살인 나 같은 중년의 교사에게 요즘 아이들은 차라리 '외계인'이다. 같은 주제로 대화를 나눌 때도 도중 말이 끊기기 일쑤다. 관심사도 다르고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도 천양지차다. 심지어 말할 때 사용하는 어휘가 달라 의사소통에 애를 먹을 때도 있다.

스마트폰을 자기 몸의 일부로 여기는 세대라는 건 이젠 낡은 기준이다. 활자로 된 텍스트보다 이미지와 영상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세대라는 구분도 마찬가지다. 메모장이라고 하면, 남녀노소 누구나 스마트폰이나 태블릿피시 속 애플리케이션을 먼저 떠올리는 시대다. 종이로 된 메모장과 필기구를 들고 다니는 사람을 본 게 언제인지 가물가물하다.

이기적이고 버릇이 없는 세대라는 구분도 낡았다. 불의는 참아도 불이익은 못 참는다는 비판 또한 그들에게만 화살을 돌릴 수도 없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향해 손가락질하기 전에 기성세대 스스로 성찰해볼 일이다. 무릇 '아이는 어른의 거울'이다.

'중국이 싫다'를 넘어 '극혐'한다는 아이들

좀 뜬금없지만, 요즘 아이들과의 세대 차이를 가장 두드러지게 느끼는 대목이 하나 있다. 그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도 황당하고, 근거랍시고 제시하는 것도 새로울 게 하나 없는 것들이다. 혹여 반론이라도 할라치면, 되레 역정을 내며 죄인이라도 되는 양 몰아세우기도 한다.

난 중국에 대한 인식 차이에서 요즘 아이들과 뚜렷한 세대 차이를 느낀다. 그들이 떠올리는 중국의 이미지는 '더럽고', '폭력적이고', '안하무인'이라는 말로 압축된다. 중국인을 두고 '돈 자랑', '힘 자랑'을 하며 전 세계에 민폐를 끼치는 사람들이라고 이구동성 말한다.

중국이 싫다는 정도를 넘어 '극혐'한다는 아이들이 태반이다. 대화 중에 '짱X'라는 멸칭을 스스럼없이 사용하고, 심지어 표준어를 사용해야 할 서술형 답안지에 중국 대신 '짱X'라고 써넣은 사례도 있다. 최근 아이들 사이의 중국 혐오는 이래도 되나 싶을 만큼 심각한 상황이다.
 
북경 고궁(자금성).
 북경 고궁(자금성).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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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세대에게도 중국이 그다지 선호하는 나라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혐오한다는 이들도 많지 않았다. 70여 년 전 6.25 전쟁의 참화를 겪은 세대라면 몰라도, 우리 국민 대다수는 상호 경제적 이해관계에 의해 활발하게 교류하는 이웃 나라 정도로 여겨왔다. 당장 중국 없이는 우리네 밥상조차 차릴 수 없는 형편이다.

농산물만의 문제도 아닐 뿐더러 우리나라에 한정된 문제도 아니다. 여전히 중국은 자타공인 '세계의 공장'으로서, 전 세계를 지탱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미국을 중심으로 보호무역주의가 확산되고 코로나 이후 나라마다 리쇼어링(국외로 생산기지를 옮겼던 기업이 다시 본국으로 돌아오는 현상)이 추진되면서 예전만 못하다고는 하지만 중국의 '힘'은 무시할 수 없다.

곧, 기성세대의 중국에 대한 인식은 '좋든 싫든 굳이 중국과 척질 것까진 없다'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중국 앞에서 주눅들 필요도 없지만, 그들의 치부를 후벼파서 긁어 부스럼 낼 일도 아니라는 게 많은 국민의 보편적인 정서다. 더욱이 남북이 분단된 현실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 그들의 협조는 필수적인 요소다.

그런데도 요즘 아이들의 정서는 사뭇 딴판이다. 대놓고 중국을 혐오한다는 아이가 세 명 중 두 명꼴이다. 반마다 별반 차이도 없다.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일본과 북한이 맨 앞자리고, 중국은 러시아, 미국과 비슷한 수준이었는데, 양상이 180도 달라졌다. 미국이 싫다는 아이는 거의 찾아볼 수 없고, 북한도 몇 안 된다.

이태 전 우크라이나를 침략해 수많은 전쟁 난민을 양산하고 전 세계에 식량난과 에너지 위기를 초래한 러시아도 비호감도에 있어선 중국의 적수는 못 된다. 나아가 러시아와 중국은 같은 편이라면서, 중국을 이내 호전적인 국가라고 규정한다. 한 아이는 중국을 '전 지구적 빌런'이라고 표현했다.

정작 놀라운 건 따로 있다. 일본에 대해선 예상외로 호의적이라는 점이다. 수업 시간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사와 친일파의 만행을 나름 상세히 배우지만, 일제의 식민 지배에 분노하는 아이는 그다지 많지 않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지만, 수험용으로 전락한 지식은 성찰의 힘을 잃었다.

일본은 위안부와 강제적 징용 등 가혹했던 식민 지배를 여전히 반성하지 않고 있지만, 아이들은 크게 괘념치 않는 분위기다. 일제강점기 역사를 오늘날 자신들과 직접적 관련이 없는 과거사로 이해한다. 드물게는 일본 제국주의의 잘못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지만, 이미 오래전 일로 지금의 일본인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것도 온당치 않다고 말하는 아이도 있다.

친일 잔재 청산 문제에 대한 아이들의 인식 역시 비슷하다. 일제강점기 친일파의 행적에 대해선 밑줄 그어가며 공부하지만, 해방 후에도 여전히 친일파가 득세하고 그들의 후손이 이 땅의 정치 경제 권력을 손에 쥐고 있다는 데까지는 좀체 나아가질 못한다. 심지어 대체 언제까지 친일 청산을 외쳐대야 하느냐며 반문하는 경우마저 있다.

외려 친일 잔재 청산보다 최근의 방사능 오염수 방류 문제를 아이들은 훨씬 더 심각하게 여긴다. 요즘 중국보다 일본이 더 싫다는 아이에게 이유를 부러 물어보면, 과거 식민 지배를 언급하는 경우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오염수 방류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안 됐다면, 아이들의 비호감 국가에서 일본이 아예 빠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냉전시대로 퇴행하고 있는 인식... 부추기는 정부 

아이들이 중국이 싫다며 꺼내놓은 근거인즉슨 이렇다. 민주주의를 억압하는 중국 정부의 행태를 첫손에 꼽았다. 홍콩을 반환받으며 내건 '일국양제'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시위를 무자비한 폭력으로 진압하는 모습에 치를 떨었다고 했다. 정치적 반대 목소리를 일절 허용하지 않는 일당 독재 사회라는 거다.

언론은 물론, 인터넷 포털까지 통제되는 전체주의 국가라는 비난도 이어졌다. 굴지의 IT 기업으로 성장한 알리바바의 창업자 마윈을 예로 들며, 사기업조차 정부의 하수인처럼 운영되는 모습에서 독재 권력의 민낯을 봤다고 꼬집었다. 

무엇보다 중국 특유의 '문화적 오만'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컸다. 우리나라의 고유 음식인 김치도, 우리 문화의 정수인 한글도, 심지어 유구한 반만 년 역사까지도 버젓이 중국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주장하는 모습이 보기 싫다고 입을 모았다. 고구려와 발해가 그들에게 예속된 지방 정권이었다는 '동북공정'은 아이들의 분노를 더욱 키웠다.

지난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 때 우리 고유의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오성홍기를 흔드는 조선족의 모습을 지적하는 아이도 많았다. '중화민족의 부흥'을 주제로 한 식전 행사에서 중국 내 여러 소수민족이 자신들의 전통 복식을 입고 등장했다. 사실 조선족도 중국의 소수민족 중 하나이니 딱히 몽니 부릴 일은 아니었지만, 아이들의 중국 혐오를 더욱 부추긴 꼴이 됐다.
 
 
안타까운 건, 아이들의 중국에 대한 편견이 나날이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기실 그들이 언급한 근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닐뿐더러 새삼스러울 것 하나 없는 내용이다. 원인은 중국 혐오를 부추기는 유튜브와 포털 뉴스에 있었다. 몇몇 아이들은 중국의 혐한 정서와 중국인들의 추태를 소재로 한 영상과 뉴스를 검색해 보여주기도 했다.

몰상식한 중국에는 '이에는 이, 눈에는 눈'으로 맞서야 한다고 강조하는 아이도 있다. 숫제 공산주의 국가와는 친하게 지내서는 안 된다는 말까지 거침없이 튀어나온다. 급기야 민주주의 국가인 미국과 일본은 우리 편이고, 공산주의 국가인 중국은 북한, 러시아와 같은 편이라고 인식한다. 아이들의 머릿속은 시나브로 수십 년 전 냉전 시대로 퇴행하고 있다.

사족 하나. 이러한 아이들의 퇴행적 인식을 바루어야 할 현 정부는 되레 이를 활용해 국정 지지율 회복의 동력으로 삼으려는 듯하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반중 정서'를 더욱 부추기는 모양새다. 그들에게 평화로운 세상을 물려주지는 못할망정 전쟁의 위협 속에 살아가도록 방치하는 건, 미래세대에게 죄를 짓는 일이다. 중국을 악마화해서는 게도 구럭도 다 잃게 될 것이다.

태그:#중국 혐오, #친일 잔재 청산, #방사능 오염수 방류, #혐한 정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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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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