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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 세계여행을 나섰습니다. 여행지에서의 한 끼 식사를 기록해 보려고 합니다. 음식 한 접시는 현지인의 환경과 삶의 압축판이요 정체성이라 여기기 때문입니다. 매일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음식을 먹는 즐거움을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습니다.[편집자말]
이유식을 처음 하는 아기는 맛으로 세상을 느낀다고 한다. 반평생 넘게 한국 땅에서 나고 자라 한국 음식만 먹어온 내가 해외에서 처음 대하는 음식들은 이유기의 아기가 처음 대하는 세상과 다를 바 없었다.

해외여행 중 가급적 현지 음식을 먹어보려고 했다. 음식이야말로 사람살이의 기본이요 문화의 결정체니 여행지 음식 한 그릇은 그 나라의 자연과 문화와 전통을 오감으로 느끼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정한 원칙이 하나 있는데, '3불(不)'이었다. 세계 어느 도시에나 있는 '스타벅스, 맥도널드, 서브웨이 안 가기'였다. 이는 곧 다국적 프랜차이즈를 피해 골목 가게를 이용하게 되므로 현지인의 삶에 도움이 되는 공정 여행에 다가가는 방법이기도 했다.

유럽 여행 중에는 이 원칙이 잘 지켜졌다. 스타벅스가 아니라도 동네 카페는 어딜 가나 있었고 현지음식을 내는 식당도 쉽게 접할 수 있어 관광지에서 곧잘 마주치는 맥도널드와 서브웨이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그런데 미국에 오니 동네 식당과 동네 카페가 귀했다. 자동차 여행 중에 들르게 된 작은 도시일수록 맥도널드와 서브웨이는 물론 버거킹, 파이브 가이즈(Five Guys), 잭인 더 박스(Jack in the Box), 웬디(Wendy's) 등 프랜차이즈 패스트푸드식당뿐이라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패스트푸드의 천국에서 패스트푸드를 비껴가기란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기였다. 미국인이 1년에 소비하는 햄버거가 500억 개이고, 1인당 하루에 2.4개의 햄버거를 먹는 꼴이라고 하니 미국에서 햄버거 몇 개는 먹어야 미국 음식 문화를 체험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평소 정크푸드 취급하며 한국에서는 입에도 대지 않던 햄버거를 '음식'으로 대접하기로, 나아가 미국의 대표 음식의 하나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햄버거(Hamburger)는 이름처럼 독일 함부르크(Hamburg)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몽골의 다진 생고기를 뭉쳐 먹던 방식이 유럽으로 전해져 타르타르 스테이크가 되고 함부르크 사람들이 익혀먹으면서 햄버거 스테이크가 되었다. 이걸 빵에 끼운 햄버거는 독일계 이민자들로 인해 미국에 퍼졌다고 한다. 햄버거는 빠르고 편리한 것을 추구하는 미국 정서와 맞아 떨어져 미국은 이제 햄버거의 종주국이 되었다.

서부 여행 중에 자주 보이는 버거집은 '인앤아웃(In-N-Out)'이었다. 로스앤젤레스를 기점으로 미국 서부를 한 달 넘게 돌아다니다 보니 인앤아웃 안 가기가 어려울 만큼 서부 일대에 점포 수가 많았다.
  
로스앤젤레스의 인앤아웃버거 매장
 로스앤젤레스의 인앤아웃버거 매장
ⓒ 김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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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앤아웃버거는 패티 1장 버거, 패티 2장 버거, 치즈버거 달랑 세 가지 메뉴만 취급하므로 선택 고민을 줄여준다. 3.25달러(약 4천 원)의 저렴한 가격에 놀라고 기본에 충실한 맛에 한 번 더 놀라게 된다. 나처럼 매운 맛을 즐기는 사람 취향에 딱 맞게 할라피뇨 피클도 무제한 제공한다.
 
매장 내의 할라피뇨 피클 바(bar)
 매장 내의 할라피뇨 피클 바(bar)
ⓒ 김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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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뉴욕에 처음 갔을 때 그랜드 센트럴역에서 먹은 숯불향 나는 버거, 쉐이크쉑(Shake Shack)버거도 이번 여행 중에 다시 찾았다. 이제는 서울에서도 맛볼 수 있지만 원조의 맛이 그리웠다. 반갑게도 같은 자리에서 영업하고 있었다. 그러나 맛에 대한 기억도 확대 재구성되는지 예전의 그 맛이 아니었다. 햄버거의 고급 버전답게 가격 또한 싸지 않아 실망스러웠다.
 
약 9달러 짜리 프리미엄 햄버거, 쉐이크쉑의 스모크버거
 약 9달러 짜리 프리미엄 햄버거, 쉐이크쉑의 스모크버거
ⓒ 김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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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니 쉐이크쉑버거는 미국 동부를 대표하는 버거요, 인앤아웃은 서부에서만 먹을 수 있는 버거라고 한다. 인앤아웃은 냉동이 아닌 신선한 패티와 생감자로 즉석에서 만들어내는 감자튀김으로 '건강한 맛'이라는 신뢰를 얻었다고 한다. '빠르고 간편하고 싸다'라는 패스트푸드의 덕목에 '영양적으로 충실한 맛'을 얹은 점이 인앤아웃의 성장 비결이 아닐까 싶다.
 
미국 서부의 맛, 인앤아웃버거로 미국 서부 여행을 마무리한다.
 미국 서부의 맛, 인앤아웃버거로 미국 서부 여행을 마무리한다.
ⓒ 김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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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한 달 반 미국 여행을 마치는 날이다. 마지막날의 점심은 뭘로 할까 하다가 나만의 앙코르 메뉴로 인앤아웃버거를 찾았다. 현지인들 틈바구니에서 두툼한 더블더블버거를 한 입 가득 베어 물며 미국의 맛과 정서를 같이 먹는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태그:#미국햄버거, #인앤아웃버거, #쉐이크쉑버거, #쉑쉑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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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여행자입니다. 여행이 일상이고 생활이 여행인 날들을 살고 있습니다. 흘러가는 시간과 기억을 '쌓기 위해'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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