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왼쪽)와 김정재 국토위 간사가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특별법 관련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왼쪽)와 김정재 국토위 간사가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특별법 관련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지난 22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 여야 논의에 따른 조정안을 반영한 전세사기 특별법을 의결했다. 전세사기 피해자의 피해는 완료형이 아니라 진행형이라는 점에서, 일단 여야가 합의한 만큼이라도 법안이 국토위 소위를 통과한 것은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관련 기사: 문턱 넘은 전세사기 특별법, 피해자 반발에도 여당은 '자화자찬' https://omn.kr/2414n ).

그런데 여야 논의 과정에서 전세사기 피해자에 대한 제대로 된 조사와 분석이 있었는지 의문이다(실제로 피해자들에 대한 전수조사조차 한 번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피해자의 목소리를 제대로 경청했는지 의문인 여야 합의안, 이대로 정말 괜찮을까? 

관련해 더불어민주당 전세사기 피해 고충 온라인 접수 센터(이하 센터)를 통해 확인되는 전세사기 피해 현실은 눈여겨볼 만하다. 나는 민주당 전세사기 고충접수센터 공동센터장으로 활동 중이다. 센터는 지난 4월 24일부터 5월 8일까지 약 2주간 총 421건의 전세사기 피해 고충을 접수했고, 지난 12일 1차 브리핑자료를 발행했다.

지금까지 센터에 접수된 피해고충 결과에 따르면, 전세사기 피해는 20대부터 60대 이상까지 전 연령대에 걸쳐 발생했다. 하지만 피해자 중 20대가 22%, 30대는 50%로, 전세사기가 특히 젊은 층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적으로 살펴보면 전국 17개 시도 중 14개 시도에서 고충이 접수됐다. 이제까지 인천과 서울 지역 피해를 중심으로 전세사기 보도가 이어지는 와중에 간헐적으로 경기도 구리, 수원의 피해가 알려진 것과 달리, 센터의 고충 접수 현황은 전세사기 문제가 특정 지역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국적 문제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전세사기 피해, 전국적 문제... '정책 실효성 낮다'는 지적 나오는 이유 
 
더불어민주당 전세사기 고충 접수 센터에서 지난 4월 24일 ~ 5월 8일까지 접수받고, 지난 5월 12일 발행한 정례브리핑 1회차 자료 중 4쪽 화면갈무리.
 더불어민주당 전세사기 고충 접수 센터에서 지난 4월 24일 ~ 5월 8일까지 접수받고, 지난 5월 12일 발행한 정례브리핑 1회차 자료 중 4쪽 화면갈무리.
ⓒ 민주당 전세사기 고충접수센터

관련사진보기

 
접수현황에 따르면 고충 접수자 10명 중 8명은 이미 보증금 피해자로 확정된 이들이었으나, 향후 추가피해가 예상되는 상황에 처한 이들도 존재했다. 문제는 전체 접수자 중 전세사기 피해 지원 정부 정책을 이용한 경험이 있는 경우는 절반을 간신히 넘기고 있다는 점이다. 이용해본 정책도 '법률 상담'을 받은 정도에 지나지 않았으며, 실질적인 구제책이라고 할 수 있는 저리대출, 긴급주거지원 이용경험은 매우 일부에 그치고 있는 상황이었다. 

피해자들이 느끼는 정책효과는 어땠을까. 이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실효성이 있는 피해 구제책이었다. 센터는 정책을 이용할 때 겪는 어려움이 무엇인지에 대해 중복응답을 받아봤다. 이에 따르면, '정책 규모나 방식의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86%에 달했다. 이는 정부가 이제까지 발표한 피해 대책이 대부분 신용불량자가 되지 않게 하는 정도 수준에서 그쳤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이에 대한 비판 때문인지 지난 4월 27일 정부가 전세사기 피해자 생계 지원을 위한 추가 대책을 발표했으나, 피해자들 사이에선 이 역시 실효성이 없다는 평가이다. 빚이 수천만 원에 달해 이자마저 겨우 갚고 있는 피해자들을 상대로, 정부는 '월 소득이 156만 원(1인가구 기준) 이하여야만' 생계를 지원하겠다고 한 것이다. 피해자 대부분은 지원받을 수 없는 그림의 떡 같은 대책이다. 

정책 이용 경험이 있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피해자들에게 정책 이용에서 어려운 게 무엇인지도 물어봤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공통적으로 꼽은 문제는 '정책 이용 자격이 까다롭다'는 것이었다.

특히, 대환대출 자격요건이 문제라는 의견이 많았다. 많은 고충 접수자들이 정부가 대출 이용 요건으로 부부합산 소득이 7천만 원 이하일 것을 요구하는 데에 어려움을 호소했다. 서울의 다세대주택에서 거주하는 40대 남성 한 분은 부부합산 소득 요건 때문에 정부정책을 이용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미 신용불량 상태인데 지금으로서는 대출금을 갚을 길이 없다고 했다.

부산의 오피스텔에 거주하는 한 20대 여성도 비슷한 처지에 처해있었는데, 1인 소득 기준이 7천만 원인데 '부부합산 소득'도 똑같이 7천만 원 기준이라는 건 말도 안 된다며 그는 분통을 터뜨렸다. 또한, SGI서울보증으로부터 보증받아 대출받았었던 피해자에 대한 대환대출이 아직도 이뤄지지 않고 있어, 이 또한 함께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근린생활시설서 사기당했는데 대출지원 못 받아... '신용불량자' 전락하는 피해자들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와 전세사기·깡통전세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 농성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법안소위를 통과한 반쪽짜리 특별법안을 규탄하며 오는 25일 본회의 전까지  최우선변제금도 받지 못하는 피해자들에 대한 보증금 회수 방안 마련과 전세사기 피해자 인정범위를 확대하는 수정안을 처리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와 전세사기·깡통전세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 농성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법안소위를 통과한 반쪽짜리 특별법안을 규탄하며 오는 25일 본회의 전까지 최우선변제금도 받지 못하는 피해자들에 대한 보증금 회수 방안 마련과 전세사기 피해자 인정범위를 확대하는 수정안을 처리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게다가 센터에 따르면, 근린생활시설에 거주하고 있어 대환대출을 지원받지 못한다는 목소리가 확인됐다. 센터에 접수된 고충 사례의 약 절반은 빌라를 포함한 다세대주택에 거주하고 있었으나, 근린생활시설에 살고 있는 사례도 3.9%였다. 주택용도가 아닌 공간을 임차했다는 것에서 이미 이들의 경제적 어려움이 드러나는 것일 수도 있는데, 현재의 대책은 이들에 대한 지원은 애초에 배제하고 있는 것이다. 관련해 서울의 근린생활시설에 거주하는 30대 여성 한 분은 마지못해 경매 낙찰까지는 받았지만, 근린생활시설이라 대출이 어려워 자신이 장기연체자로 등록되었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처럼 목돈을 가지고 있지 못했던 전세사기 피해자들 상당수가 대환대출 지원의 실효성 문제로 기존 대출을 갚지 못하고 높은 연체 이자를 지불하고 있었으며, 몇몇은 연체 기간이 길어지며 신용불량자로 전락하고 있었다. 정부 대책의 많은 부분은 대출 지원에 집중하고 있는데, 그조차도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대환대출 기금 총량이 한정되어 있다는 핑계를 대면서 자격요건을 완화하기 어렵다는 말을 반복하는 모습이었다.

전세사기 대책을 정부가 여러 차례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고통은 실질적으로 줄어들지 않았고 그 피해는 계속해 확대되는 양상이다. 주거불안, 신용불량 위험, 생계 불안이 커지는 피해의 시급성을 고려하면 여야가 지금이라도 전세사기 특별법의 합의점을 찾은 것은 다행이다. 그러나, 현재의 여야 합의에 포함되지 못한 피해 부분이 많아 걱정과 우려가 크다. 

전세사기 특별법 논의, 피해자의 다양한 상황들... 여야 합의에선 빠졌다

구체적으로, 먼저 이번 법안에는 최우선 변제금 보장과 선지급 후 구상권 청구 방안이 빠졌다. 통과된 특별법은 전세사기 피해 구제 법안이라기보다는 피해자의 '향후 주거안정'을 도모하는 법안에 가깝다. '최우선 변제금 보장'은 최우선 변제금만큼도 보증금을 회수하지 못하는 피해자를 위한 최소한의 지원 조치이지만, 이조차도 정부의 반대로 이번 특별법에는 반영되지 못했다. 이후 국회 본회의에서 특별법이 통과되더라도 이는 전세사기 피해 조사를 통해 최우선 변제금도 회수하지 못하는 피해자를 파악하여 다시 논의해야 할 사안이다. 

법 통과가 끝이 아니다. 피해자 전수조사 한번 없이 정한 피해자 기준은, 현실에서는 많은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센터 조사에 따르면, 정부가 처음 제시한 피해자 범위에서 억울하게 배제되는 사례가 있었다. 현재 법안이 최종 통과되어도 위와 비슷한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특별법상 전세피해자지원위원회가 유연한 판단을 해야 할 필요가 있으며, 이후 법 개정을 포함한 유연한 조치도 필수적이다.

전세사기 피해 고충 온라인 접수 센터에 들어온 고충을 보면, 정책과 정책이 전달되는 현장의 괴리가 상당하다는 걸 알 수 있다. 피해자들은 하루하루 지연이자를 내며 버티다가 정책이 늦어져 신용불량자가 되는 게 현실이며, 신용불량자가 되지 않기 위해 목돈을 마련하려 다니던 회사까지 그만두는 피해자도 나타나고 있다. 그렇기에 정책이 불필요하게 지연되거나, 피해자(정책 이용자)들이 현장에서 혼란을 겪는 일은 최대한 줄여야 한다. 
 
지난 4월 20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앞에서 전세사기 피해자와 시민대책위 주최로 열린 윤석열 대통령 면담 요청 기자회견에서 안상미 미추홀구전세사기대책위원장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전세사기피해자전국대책위와 시민사회대책위는 ‘정부가 전세사기 대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피해자들의 요구를 선별적으로 수용하거나, 자의적으로 해석해 일방적인 대책을 내놓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며 ‘이런 과정에서 2명이 추가로 안타까운 생명을 잃은만큼 이번만큼은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전세사기, 깡통전세 피해상황과 요구사항을 청취해 대책을 마련해줄 것’을 요청했다.
 지난 4월 20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앞에서 전세사기 피해자와 시민대책위 주최로 열린 윤석열 대통령 면담 요청 기자회견에서 안상미 미추홀구전세사기대책위원장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전세사기피해자전국대책위와 시민사회대책위는 ‘정부가 전세사기 대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피해자들의 요구를 선별적으로 수용하거나, 자의적으로 해석해 일방적인 대책을 내놓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며 ‘이런 과정에서 2명이 추가로 안타까운 생명을 잃은만큼 이번만큼은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전세사기, 깡통전세 피해상황과 요구사항을 청취해 대책을 마련해줄 것’을 요청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특히나 전세사기 피해는 그 사기 유형과 주택 유형, 피해자 개개인이 처한 삶의 처지가 각양각색이다. 의도하지 않은 사각지대를 파악하기 어려운 정부의 고충도 이해되지 않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현실을 인지하고 다양한 피해 상황을 고려해, 정책을 조정하는 정부의 노력이 부족했던 것도 사실이라고 생각한다(관련 기사: [영상] 전세사기 대책위 "반쪽짜리 특별법, 이대로면 수억대 빚더미 앉게 된다" https://omn.kr/241wj ).

이같은 방관자적 태도를 정부가 지속한다면, 도움의 손길이 절실한데도 정책에서 배제되는 피해자가 계속해 속출할 것은 자명한 일이다. 기존의 전세사기 피해 지원 제도와 곧 통과될 특별법으로 만들어진 한 줄기 희망의 빛마저 놓치게 된 사람들. 이들이 느끼는 크나큰 낙담을 정부가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지, 정책입안자들은 이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있는 건지 진심으로 묻고 싶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권지웅씨는 더불어민주당 전 비대위원이자, 현 민주당 전세사기고충접수센터 공동센터장입니다.


태그:#전세사기, #피해자, #전세사기 피해
댓글6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집'이 별 관심꺼리가 아닌 사회를 꿈꿉니다. 지방에 살다가 서울에 올라와서 살고 있는 청년입니다. 11번을 이사하며 12번째 집에 살고있어요. 집문서가 없는게 마치 죄인 것 처럼 느껴질때가 많아 민달팽이유니온과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 활동을 해왔습니다. 집을 가진 사람도, 빌려쓰는 사람도 함께 어울려 잘 사는 사회를 만들고자 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