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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 16일 오후 서울 중구 국토발전전시관에서 연합뉴스 취재진과 인터뷰하고 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 16일 오후 서울 중구 국토발전전시관에서 연합뉴스 취재진과 인터뷰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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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원희룡 국토교통부장관은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전세사기의 원인 제공자는 더불어민주당 정권"이라고 썼다. 이는 같은 날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전세사기 참사에 대해 정부가 일부나마 책임을 부담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며 "공공에 의한 피해직접구제 조치로 채권매입, 사후정산 제도가 꼭 필요하다"고 말한 것에 대한 반박이었다.

기대가 과했던 것일까. 현직 장관으로서 전세사기 참사에 대해 책임지는 모습은 눈을 씻고 보아도 찾아보기 어렵다. 수천 명의 세입자가 보증금을 잃고 삶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5명이나 되는 시민이 목숨을 잃었다. 이런 참사에 대해 현직 장관에게 책임지는 자세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인가? 

전세사기 참사는 진영 논리로 서로의 책임을 따질 문제가 아니다. 보수·진보를 떠나 지난 정부들에서 전세사기 참사와 관련해 잘잘못을 따져보자면 수도 없다.

전세대출을 본격화한 것은 2008년 이명박 정부 시절이었다. 2007년 부동산 경기가 떨어질 기미가 보이자 부동산 경기 부양을 목적으로 전세자금대출을 본격화했다. '목돈 안드는 전세 대출' '전세금 100% 보증금반환보증'을 만든 것은 박근혜 정부였다. 빚 내서 세 살라는 정책은 박근혜 정부 때 완성됐다. 문재인 정부도 책임이 없지 않다. 문재인 정부 5년간 전세자금 대출 총액은 2017년 66조 원에서 2022년 188조 원으로 5년간 전세자금 대출 총액이 100조 원 이상 증가했다. 전세대출과 전세보증보험은 전세사기 참사의 주 원인으로 지목된다.

문재인 정부의 책임을 어느 정도 인정하더라도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추진한 정책이 없었다면 지금과 같은 전세사기 참사는 없지 않았을까?


오랫동안 문제는 축적돼 왔다
 
2008년 8월 21일 한국주택금융공사 홍보자료. 전세자금대출 보증한도를 1억에서 2억으로 확대 추진함을 알림. 이 때를 기점으로 전세대출의 규모가 본격적으로 커졌다.
 2008년 8월 21일 한국주택금융공사 홍보자료. 전세자금대출 보증한도를 1억에서 2억으로 확대 추진함을 알림. 이 때를 기점으로 전세대출의 규모가 본격적으로 커졌다.
ⓒ 한국주택금융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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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8월 12일자 국토교통부 정책뉴스. 대출한도를 확대하는 ‘목돈 안드는 전세 대출’ 시행을 알리는 홍보자료.
 2013년 8월 12일자 국토교통부 정책뉴스. 대출한도를 확대하는 ‘목돈 안드는 전세 대출’ 시행을 알리는 홍보자료.
ⓒ 권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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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교통부의 2017년 1월 12일 보도자료 표지. 전세금보증보험의 보증한도를 주택가격의 100%로 확대(기존 90%->변경 100%)하겠다고 밝혔다.
 국토교통부의 2017년 1월 12일 보도자료 표지. 전세금보증보험의 보증한도를 주택가격의 100%로 확대(기존 90%->변경 100%)하겠다고 밝혔다.
ⓒ 국토교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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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임대차시장의 불공정 문제를 진작에 해결했으면 올해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규모의 비극은 없었을 것이라 본다.

임차인 권리의 법제화 등을 막은 이들은 국민의힘 전신인 새누리당, 한나라당 등이었다. 사실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 논의는 거의 매해 진행됐다. 2013년 '임대인의 세금 체납 정보'와 '다가구 등 선순위 임차권 정보'를 임차인이 알 수 있게 하는 임차인 알 권리 보장 법안 등이 민주당 의원들에 의해 국회에 제출됐지만 당시 새누리당 권성동 의원이 위원장이던 법제사법위원회 소위원회에선 제대로 논의되지 못 하고 폐기됐다.

수많은 이야기가 오갔지만, 한 장면을 사례로 들어본다. 2013년 국회 법사위 제1소위원회에서 새누리당 김학용 의원은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과 관련해 "(법 개정을) 세입자 위주로 하게 되면 임대를 할 사람들이 임대를 기피해서 오히려 서민들에게 부작용 오지 않냐"라는 발언을 했다.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이 이슈가 되면 '임대인에게 의무를 부여하면 임대시장이 축소된다'는 논리가 자주 등장했다. 2013년 현오석 기재부장관의 "전월세 가격 제한은 임차인을 보호하는 측면은 있지만 공급이 줄어 오히려 임차인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말이 대표적이다. 


전세사기 참사가 임대차 3법 때문이라고 거짓 주장을 하는 지금과 다르지 않았다. 원희룡 장관은 이런 이야기를 더 하고 싶은가? 언제든지 환영한다. 하지만 나는 이런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을 해결하려면 국가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현재와 앞으로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재명 대표가 지난 4월 28일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모든 사기는 평등하다"며 전세사기 참사의 국가 책임을 축소하려는 원희룡 국토부장관의 발언을 지적한 것은 매우 타당하다. 정부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전세사기 피해 구제에 상당히 소극적인 태도다. 앞서 언급한 국토위 전체회의에서 원희룡 장관이 "채권채무를 둘러싼 권리관계에서 피해자가 속아 사기를 당한 경우, 그 피해 금액을 국가가 먼저 대납해주고 다른 곳에서 찾아다가 그 비용을 충당하는 제도는 있지도 않고 선례를 남겨서도 안 된다"라고 말한 것이 대표적이다. 

민간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국가가 책임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전세사기는 분명하게 국가가 개입해야 할 국가의 책임 범위 안에 있다.

국가가 공인한 중개사가 집을 중개하며 발생한 사건이며 전세대출은 국가의 보증이 있기에 집행된다. 무엇보다 임대차시장의 불공정 해결과 모든 시민의 주거권을 보장하는 것이 국가의 역할임을 고려하면,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한 국가가 전세사기 피해를 먼저 보상한 뒤 전세사기 가해자에게 구상권을 청구하는 책임이라도 보여야 한다.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와 전세사기·깡통전세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 농성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법안소위를 통과한 반쪽짜리 특별법안을 규탄하며 오는 25일 본회의 전까지  최우선변제금도 받지 못하는 피해자들에 대한 보증금 회수 방안 마련과 전세사기 피해자 인정범위를 확대하는 수정안을 처리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와 전세사기·깡통전세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 농성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법안소위를 통과한 반쪽짜리 특별법안을 규탄하며 오는 25일 본회의 전까지 최우선변제금도 받지 못하는 피해자들에 대한 보증금 회수 방안 마련과 전세사기 피해자 인정범위를 확대하는 수정안을 처리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 영상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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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이전부터 전세사기 피해는 있었고, 이번 참사에 대해서도 1년이 넘도록 피해자들이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그럼에도 5명의 피해자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야 원희룡 장관과 윤석열 정부는 마지 못해 전세사기 특별법을 만들었다.

민주당·정의당 의원들이 입법 과정에 피해구제 내용을 더 포함하려 노력했으나 정부와 국민의힘의 반대로 피해 구제가 아닌 피해자 주거안정에 그치는 법이 만들어졌다.

이 법은 피해구제법이 아니라 피해자 주거지원법이다. 이 법이라도 만들어진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나, 국가의 책임을 다했다고 하기엔 부족하다. 이러한 주장에 힘이 실리는 이유는 부동산 경기 하락을 막기 위해, 기간산업을 살리기 위해 국고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 경기 하락과 임대차 시장 불공정이 낳은 전세사기

이미 금융위원회는 지난 3월 6일 "부동산 PF(프로젝트파이낸싱) 리스크가 건설사·부동산신탁사로 파급되지 않도록 건설사 등에 대해 정책금융 공급규모를 28.4조 원(22년말 잔액 대비 +5조 원)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표했다. 그도 모자랐는지 자산관리공사(캠코)는 부동산 PF 부실을 막기 위해 1조 원 규모의 민관합동펀드로 수도권 지역과 대형 금융사를 지원키로 했는데, 공사가 투자하는 금액은 5000억 원 이내다. 

국고가 쓰이는 건 이뿐만이 아니었다. 코로나 시기 위기에 놓였던 아시아나항공은 HDC현대산업개발로 매각이 추진되는 중에 산업은행 등 채권단에게 구조조정 운영자금 2조4000억원, 영구채 인수 등 총 3조3000억원의 공적 자금을 지원받았다. 매각이 무산된 뒤엔 3000억 원가량을 추가로 지원받았다. 


이제까지 각종 시장과 산업 살리기에 국고를 쓰고 있는 것처럼 정부는 전세사기 피해를 구제하기 위해 국고를 쓸 수 있으며, 써야 한다.

마지막으로 원희룡 국토교통부장관께 부탁한다. 국가를 믿고 전세제도에 기대어 전셋집을 계약했던 피해자들과 임대차 시장에서 보증금 미반환 불안에 떨고 있는 세입자들을 생각한다면 이제라도 '전 정부 탓', '피해자 탓' 그만하시라. 또 억울한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모욕을 준 데 대한 사과부터 하길 바란다. 

전세사기는 개인의 잘못이나 민간에서 우연하게 일어난 불행이 아니다. 부동산 경기 하락과 임대차 시장의 불공정이 혼합돼 만들어진 사회적 참사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권지웅씨는 더불어민주당 전세사기고충접수센터 공동센터장입니다.


태그:#전세사기, #전세사기참사, #원희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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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별 관심꺼리가 아닌 사회를 꿈꿉니다. 지방에 살다가 서울에 올라와서 살고 있는 청년입니다. 11번을 이사하며 12번째 집에 살고있어요. 집문서가 없는게 마치 죄인 것 처럼 느껴질때가 많아 민달팽이유니온과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 활동을 해왔습니다. 집을 가진 사람도, 빌려쓰는 사람도 함께 어울려 잘 사는 사회를 만들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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