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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마시며 글을 쓰다보니 로스터가 되었습니다. 이야기를 섞어 커피를 내립니다. [편집자말]
신발을 구겨 신어야 할 정도로 출근을 서두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하루에 커피를 두 잔 정도밖에 안 마시는 데, 왜 커피 로스터가 된 걸까?'

그렇다. 나는 커피를 적게 마시는 로스터다. 양도 적은데 속도도 느리다.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는데 빠르면 한 시간 늦으면 두 시간도 걸린다. 집에서 커피가 너무 마시고 싶어 열심히 커피를 내려도 반 잔을 못 마시고 남기는 일도 부지기수다. 하루에 한 잔을 빠듯하게 먹는 날도 많다.
  
조금씩 마시는 커피
 조금씩 마시는 커피
ⓒ 이훈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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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로스터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대부분은 일을 너무 한 끝에 건강이 악화되었다고 생각하겠지만 다행히 위도 튼튼하고 카페인에 민감하지도 않다. 시음을 해야 할 일이 있을 때는 거침없이 삼키고 커피로 인해 수면에 방해를 받은 경험도 없다. 그런데 일상적으로는 커피를 아주 적게 마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에는 핸드드립 용품, 캡슐 커피머신, 커피메이커 두 대, 베트남 커피핀 그리고 벌써 태워 버린 모카포트까지 있으니 또 나름대로는 커피에 열심인가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하루에 두 잔은 너무한 것 아닌가? 그러니 그 정신 없는 와중에도 본질적인 의문이 들었으리라.

계단을 내려가며 마스크를 고쳐 쓰는 동안에도 아무래도 두 잔은 좀 적다 싶었다.

누군가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다면 '직업인의 신뢰도에 영향을 끼치려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다른 직장에 다니는 분들도 하루에 커피를 두 잔 이상 마시는 일이 드물지 않은데, "커피 일을 하면서 커피를 안 마신다고요?"라고 하면 할 말이 별로 없는 것이다. 퇴근을 하고 카페에 가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게 쉬면서 마셔도 한 잔을 다 못 마신다. 커피 한 잔은 나에게는 좀 많고 또 버겁다.

"그런데 당신이 커피로스터라고요?" 하고 되묻는다면 나는 또 면목이 없다.

하지만 커피를 아주 많이 마셔야 커피로스터가 되는 것도 아니고 또 커핑(커피를 맛보는 과정)을 할 때처럼 삼키지 않고 맛을 보는 사람도 많으니 "충분히 맛을 보고 있어요. 꿀꺽 삼키는 커피와 뱉는 것이 조금은 다르지만 그래도 그 격차를 줄이려고 많은 생각을 합니다" 정도의 말을 건넬 수는 있겠다.

그래도 왠지 모르게 커피를 적게 먹는데 커피 로스팅을 한다는 게 누군가에게는 의아하다는 생각이 들 수 있을 것 같다. 아마 내가 로스터가 아니고 어느 커피 로스터가 그런 이야기를 한다면 나도 비슷한 질문을 던졌을 것 같기 때문에....

하지만 분명 세계의 어딘가에는 나보다 더 적은 양의 커피를 마시는 로스터도 있지 않을까? 그 사람이 커피를 적게 마시는 이유가 건강 때문이 아니라면 한 번쯤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기도 하다.

"우리는 왜 커피를 적게 마시는 사람일까요?"

그 이야기를 나눌 이를 만나는 일조차 쉽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똑같이 로스터라는 일을 하는 이상 우리는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아마 우리는 면목 없을 정도로 커피를 조금 마시지만 커피를 즐기는 사람들의 마음이 흡족하고 평안했으면 하는 사람이리라.

누가 뭐래도 나는 그런 이유로 커피로스터가 되었다. 몇 년간 커피를 곁에 둔 채로 글도 쓰고 사람도 만나면서 행복했던 기억이 많아서 그 순간에 가능하면 정말 맛있는 한 잔으로 함께 할 수 있기를 기원하며 커피를 볶는다. 각각의 만남 가운데 함께 하는 커피가 너무 맛있어서 서로 눈을 마주칠 정도의 순간을 더할 수 있다면 나는 더없이 행복하지 싶다.
  
로스팅.
 로스팅.
ⓒ 언스플래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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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터실에 들어가 로스터기의 드럼이 착착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동안 커피가 맛있어지기를 기원한다. 내가 아주 적은 양의 커피를 마시기 때문에, 그 한 잔이 아주 즐겁고 맛있다 못해 편하고 고요하기를 바란다.

계량을 하고 로스터기에 생두를 담아 열을 더하고 뜨거워진 커피가 여러 로스팅 포인트 중 도착할 지점을 상상하며 로스팅에 온 힘을 쏟는다. 그리고 비로소 아주 적은 양의 커피를 마시는 사람조차 서운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한 순간! 뜨거운 드럼에서 커피를 꺼내 시원하게 식혀준다.

포장을 거쳐 그라인더를 지나 각자의 공간에서 드리퍼나 머신을 통과한 커피가 입술을 넘어 입 안으로 들어갈 때, 한 잔의 커피가 적당한 따뜻함으로 남아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다면 나는 얼마나 행복할까. 아이스 음료라면 산더미 같은 고민조차 시원하게 씻어버릴 수 있는 그런 깔끔함이 있었으면 좋겠다. 나에게도 그런 영광의 순간들이 있었으니까.

팍팍한 삶의 순간들을 커피로 인해 비로소 삼킬 수 있게 되는 날. 만약 나의 커피가 그곳에 있다면 나는 충분히 행복한 직업인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며 문득 든 의구심을 지운다. 타야 할 버스가 오고 있었다.

태그:#커피, #커피로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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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볶고 내리고 마시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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