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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9일 토요일. 이태원에 다녀온다며 집을 나선 자녀, 연인, 친구들이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습니다. 애도할 새도 없이 진실을 밝히기 위한 싸움을 시작한 지 150일. 하룻밤 새 사랑하는 이를 잃은 유가족들이 다시는 이런 죽음이 없길 바라는 마음으로 진상규명의 과제를 알리기 위해 버스를 타고 전국순회에 나섰습니다. 그 현장을 기록합니다.[기자말]
10.29 진실버스가 출발한 지 다섯 번째 날이 시작됐습니다. 3월 31일은 경상남도 창원입니다.

전주와 광주에서 얻은 치유와 용기, 위안, 격려 그리고 채찍을 양분 삼아 아침 일찍 눈을 뜨고 하루를 시작합니다.

오전 7시 30분. 창원 지역 시민단체들과 함께 경남도청 앞에서 출근길 피케팅을 시작합니다. 청명하게 파란 하늘이 눈에 들어옵니다. 피켓에 담긴 우리 바람이 먼 곳에서도 보이겠다는 생각에 더욱 힘차게 피켓을 들어 올립니다.

"아직 진실이 밝혀지지 않았다"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들이 경남도청앞에서 특별법 제정을 호소하고 있다.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들이 경남도청앞에서 특별법 제정을 호소하고 있다. ⓒ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경남도청앞에서 10.29 이태원참사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피케팅이 진행되었다.
경남도청앞에서 10.29 이태원참사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피케팅이 진행되었다. ⓒ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이후엔 한국지엠 창원공장과 현대로템 공장에 방문했습니다.

공장 곳곳을 다니며 1000여 명의 현장 노동자들에게 '독립적 조사기구를 설치하는 특별법'이 필요한 이유를 알렸습니다.

유가족들은 "아직 진실이 밝혀지지 않았다" "책임 있는 사람은 사과 한 마디 하지 않았다"라며 "그러려면 독립적이고 강력한 조사기구가 마련돼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유가족협의회 송진영 부대표는 금속노조 한국지엠 경남지부 창원지회장의 옷에 '10.29 기억과 연대의 별' 배지를 달아주며, 국회 입법 청원을 위해 5만 명의 동의가 필요한 상황을 설명하고 노조원들의 적극적인 참여 독려를 부탁했습니다.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들이 특별법 재정을 호소하며 현장노동자들을 만나고 있다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들이 특별법 재정을 호소하며 현장노동자들을 만나고 있다 ⓒ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들이 특별법 제정을 호소하며 현장노동자들을 만나고 있다.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들이 특별법 제정을 호소하며 현장노동자들을 만나고 있다. ⓒ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다른 사람의 아픔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교육'을 바란다

이날 오후엔 박종훈 경상남도 교육감을 만났습니다.

고 노류영씨의 어머니 정미진씨는 "막말 의원도 있고, 모든 사람들이 '내가 아니면 된다'는 생각을 너무 많이 갖고 있는 것 같아서 그게 정말 안타깝다"라고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정미진씨는 "피켓을 주면 받아 가는 사람도 있지만, 무시하고 가는 젊은이들도 있다. 우리 엄마·아빠 또래는 가슴 아픈 이야기에 함께해주는데, 정작 우리 아이들 또래는 안 그렇더라"면서 "우리 아이들이 가슴 따뜻하게 클 수 있게, 다른 사람의 아픔을 할께 나눌 수 있게 자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습니다. 

고 김산하씨의 어머니 신지현씨는 사람들이 '항상 참사가 발생하면 꼬리 자르기를 해 왔다'고 말한다면서 "앞으로의 참사에도 꼬리짜르기로 대응할 거냐"고 분노했습니다. "제대로 된 책임자 처벌 없이 꼬리 자르기로 마무리한다면 시민들의 억울함과 분노는 더욱 커질 것"이라고, "억울한 시민을 다 '반정부 세력'으로 만들고 있다"면서 피해자의 손을 잡지 않는 정부를 지적했습니다.

고 최유진씨 아버지 최정주씨는 아이들에게 "어릴 때부터 피해자 권리에 대해 교육하자"는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최정주씨의 말입니다. 

"국가가 재난을 수습하고, 국민을 위로하고, 피해 당사자들의 원인을 밝히고, 재발을 방지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어릴 때부터 교육을 통해서,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그런 인식들이 쌓이면 지금 당장은 아니라도 10년 정도 지나고 나면 달라지지 않겠습니까. 이태원에서 일어난 이 참사가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마지막 참사가 되도록 아이들 교육에 힘써 주시기를 바랍니다."

박종훈 경남교육감은 유가족들이 진실을 밝히기 위해 하는 노력이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 공익적 활동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유가족들을 지지했습니다. 또 박 교육감은 오늘 출근할 때 경남도청 앞에서 진실버스를 봤다면서 "앞으로 언제까지일지 모르겠지만 저희처럼 지켜보고 옆에서 힘이 돼 주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꼭 기억해주기를 바란다"라고 응원을 보냈습니다. 
 
 경상남도 박종훈 교육감이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들과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을 외치고 있다.
경상남도 박종훈 교육감이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들과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을 외치고 있다. ⓒ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덜덜 떨리던 손이 단단해지다

어느새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떨어지고 있습니다. 창원병원 사거리에서 진행한 퇴근길 피케팅을 끝으로 열흘 간의 진실버스 일정의 절반이 지났습니다.

지난 닷새간 유가족들은 매일 조금 더 단단해지고 있습니다. 며칠 전만 해도 사람들 앞에서 마이크를 잡고 이야기하는 손을 덜덜 떨었는데 점점 투사가 돼 가고 있습니다. 고 박가영씨의 어머니 최선미씨는 이렇게 말합니다.

"유가족들이 희생자의 영정을 무기 삼는 것이 아니라 희생자들이 유가족을 도구 삼아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저희더러 대신 싸워달라고, 진실을 밝혀달라고 하는데 어떻게 부모가 되어서 물러설 수 있겠습니까."

10.29 진실버스는 4월 1일은 부산민주화공원을 방문할 예정입니다. 멀리서 보라색 진실버스를 보시거든 힘내라고, 잘하고 있다고 응원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관련 기사]
"이태원 참사 특별법 서명, 5만명 안 되면 서울 못 간다" https://omn.kr/23bvp
"잘 먹어야 합니다" 오월어머니들이 이태원 참사 유족에게 전한 당부 https://omn.kr/23bg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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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찾아 12시간을 헤맸어요"... 엄마가 말 잇지 못한 사연 https://omn.kr/23a2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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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과 경북지역 대책회의 관계자들이 독립적 조사기구 설치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과 경북지역 대책회의 관계자들이 독립적 조사기구 설치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덧붙이는 글 | 10.29 진실버스는 10.29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가 함께합니다. 4월 1일 부산, 4월 2일 경남 진주 및 제주, 4월 3일 대구, 4월 4일 대전, 5일 경기 수원, 서울광장 분향소로 돌아오는 일정이다.


#1029 이태원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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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연재 이태원 압사 참사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참여연대는 정부, 특정 정치세력, 기업에 정치적 재정적으로 종속되지 않고 독립적으로 활동합니다. 2004년부터 유엔경제사회이사회(ECOSOC) 특별협의지위를 부여받아 유엔의 공식적인 시민사회 파트너로 활동하는 비영리민간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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