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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玄齋) 심사정(沈師正)은 평생을 가난에 시달리며 고독하고 불우한 삶을 보냈다. 영의정을 지낸 양반가의 자제로 태어났으나 할아버지 심익창의 역적 모의로 관직에 나아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부귀와 권세를 탐하는 것은 힘있는 자들이 더욱 극성스럽다.

<숙종실록>에는 뇌물을 주고 과거 시험에 부정 합격한 심익창의 기록이 적나라하게 나와 있다. 그는 뇌물을 써서 시험 답안지를 통째로 바꿔치기 하는 수법으로 과거에 합격하지만 사후 발각돼 10년간의 유배형을 받는다.

50대에 이르러 풀려났지만 권력욕은 그 누구보다 강했기에 지배층의 비위를 맞추고 여러 관직을 전전하면서 철저한 기회주의자로 살았다. 심익창은 권세를 얻고자 당시의 집권층인 소론에 가담해 연잉군(훗날의 영조)을 독살하려는 모의에 동참했다가 발각돼 극형에 처해진다.

'역적의 자손'에게 찾아든 것은 세상의 멸시와 천대, 가난뿐이었다. 옥죄는 삶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운명처럼 남겨진 그림이 전부였다. 몰락한 가문으로 인해 사회성이 부족해진 것인지, 타고난 성품이 그런 것인지 알수는 없지만 심사정은 낮을 심하게 가렸다. 세상살이에 미숙했지만 그림 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베짱이가 이슬을 마신다는 뜻.
▲ 심사정 낙위음로 베짱이가 이슬을 마신다는 뜻.
ⓒ 공유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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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설적이게도 현재 심사정은 정선을 스승으로 모시고 그림을 배웠다. 상류층의 화려한 삶과 몰락한 양반가의 어울림이라니 역사는 때때로 잔인하기 그지없다. 현재는 때마침 조선 집권층에 유행하기 시작한 남종문인화를 즐겨 그렸다. 아마도 그의 한 많은 삶이 실경보다는 이상향을 추구하는 관념산수화를 그리게 만든 것 아닐까 짐작해 본다.

불혹을 넘어 영조의 초상화를 그리는 기회가 왔으나, 역적의 자손이라는 이유로 모든 것이 물거품처럼 사라져버렸다. 심사정은 그림에 천착하면서 50대에 이르러 자신만의 화풍을 완성하며 여러 걸작을 쏟아내어 후대 화풍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현재는 문인화에도 능했을 뿐 아니라 인물을 담은 풍속화에도 뛰어났으며 주변의 동식물을 소재로 해 여러 작품을 남겼다.

"못 그리는 그림이 없지만 화훼와 초충을 가장 잘하였고 그 다음이 영모도 그리고 산수화다." 현재의 몇 안되는 친구인 표암 강세황이 현재화첩(玄齋畵帖)의 발문에 남긴 글이다. 심사정은 초충도를 통해서 자신의 내면을 고독스럽게 표현해내고 있다.

국접을 정한다면 제비나비로다

화청충접(花菁虫蝶)에는 흑단 같은 검은색 몸매에 눈에 띄는 긴꼬리를 가진 제비나비 종류와 범 무늬가 현란한 표범나비가 어울려 하늘을 날고 있다. 그 아래로 긴 뿌리를 드러낸 탐스러운 순무를 탐하는 여치 또는 베짱이가 과장되게 표현돼 있으며 뒷편으로 볼품없이 시들은 모란이 땅바닥에 고개를 떨구고 있다.
 
남성 호르몬을 풍기는 털.
▲ 제비나비 수컷의 냄새비늘. 남성 호르몬을 풍기는 털.
ⓒ 이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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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나비류는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나비 중에서 가장 몸집이 큰 무리다. 날개 편 길이가 120mm를 넘으며 생명력도 강해서 전국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다. 사자나 말의 목덜미에 수북한 갈기가 남성을 상징하듯이 제비나비 수컷의 앞날개에는 눈에 띄는 털(냄새비늘, Androconium)이 빽빽히 돋아나 있다.
 
석주명이 나라를 대표하는 나비로 추천했을만큼 강인하고 아름답다.
▲ 산제비나비. 석주명이 나라를 대표하는 나비로 추천했을만큼 강인하고 아름답다.
ⓒ 이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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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호르몬을 풍기는 기관으로써 암놈이 이 냄새를 맡고 찾아와 짝짓기가 이뤄진다. 특히나 사향제비나비는 수컷의 몸에서 사향 냄새가 나서 붙여진 이름이다. 산제비나비는 석주명 선생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나비로 추천했을 만큼 자태가 아름답다. 품위있는 검은색 몸매에 코발트색 비늘이 햇볕을 반사하여 청동색으로 바뀌면 밤하늘의 미리내를 보는 듯하다.
 
서로를 흉내내어 구분하기가 어렵다.
▲ 흰줄표범나비. 서로를 흉내내어 구분하기가 어렵다.
ⓒ 이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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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표범나비는 체스판을 뜻하는 라틴어 'Fritillus'에서 유래해 영어권에서는 프리들러리(Fritillary)라고 부른다. 감귤색 바탕에 체크 무늬가 아름답게 조성돼 있어 눈에 띄는 종이지만 서로를 의태하고 있어 구분이 어렵다. 애벌레가 제비꽃과 식물을 먹고 자라며 체내에 독성 화합물을 생성해 자신을 방어한다. 이와 더불어 쐐기나방을 흉내내어 온몸에 날카로워 보이는 가시를 두르고 천적의 눈을 속인다.

내면의 고독과 패초한 삶을 그림에 담다

겸현신품첩(謙玄神品帖) 속의 괴석초충도(怪石草蟲圖)에는 배끝에 긴 산란관을 가진 베짱이가 나온다. 낙위음로(絡緯飮露)는 '베짱이가 이슬을 마신다'는 뜻이다. 옛말에서 낙위는 좁은 의미로 베짱이를 지칭하기도 하지만 메뚜기목 여칫과 곤충을 통틀어 말하기도 한다.
 
육식성으로 작은 곤충을 잡아먹고 산다.
▲ 중베짱이 수컷. 육식성으로 작은 곤충을 잡아먹고 산다.
ⓒ 이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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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치의 몸 길이는 50mm 정도이며 베짱이는 이보다 작아 35mm 전후다. 여치 무리는 포식성이 강해서 여타의 곤충은 물론이요 때로는 청개구리나 도마뱀까지 잡아먹는다. 긴날개가 식물의 잎사귀와 비슷하여 풀숲에 앉아 있으면 알아차릴 수 없기에 영어권에서는 덤불귀뚜라미(Bush crickets)라고 부른다.

패초추묘(敗蕉秋猫)는 '찢어진 파초와 가을 고양이'라는 뜻이며 아마도 스승인 정선을 생각하며 그린 것 같다. 추일한묘와 비슷한 구도에 국화가 파초로 바뀌었을 뿐, 등장하는 생물도 고양이와 방아깨비로 동일하다. 당시에는 선비들이 관상용으로 파초를 많이 심었음에도 굳이 '찢어진' 이란 표현을 쓴 것은 자신의 처지가 떠오르기 때문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국우취연합의 월간 우표에도 같이 등록됩니다.


태그:#심사정, #제비나비, #표범나비, #여치, #패초추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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