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9일 토요일. 이태원에 다녀온다며 집을 나선 자녀, 연인, 친구들이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습니다. 애도할 새도 없이 진실을 밝히기 위한 싸움을 시작한 지 150일. 하룻밤 새 사랑하는 이를 잃은 유가족들이 다시는 이런 죽음이 없길 바라는 마음으로 진상규명의 과제를 알리기 위해 버스를 타고 전국순회에 나섰습니다. 그 현장을 기록합니다.[기자말] |
지난 28일 청주 일정은 자녀들의 또래의 대학생들을 만나며 다시는 못 만나는 아들, 딸이 더욱 생각나는 시간이었습니다.
"어제 충북대에서 삼삼오오 친구들과 밝게 웃으면서 다니는 유진이 또래의 대학생들을 보며 너무 예뻐서 눈물이 났습니다. 그리고 이 친구들이 국민동의 입법 동의 청원을 외면해서 눈물이 났고, 입법청원을 해주면 고마워서 눈물이 났습니다."
희생자 고 최유진씨의 아버지 최정주씨의 말에 마음이 아립니다.
"필요한 것은 독립적이고 강제권을 가진 독립된 조사기구"
진실버스는 29일 전주와 정읍을 달렸습니다.
어제보다 이른 시간에 버스에 오릅니다. 첫 일정은 전주종합경기장 사거리. 이날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의 호소가 닿길 바라며 힘차게 피켓을 들어 올립니다.
"1029 그날의 진실을 찾기 위해, 그날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서 전주에 왔습니다."
고 송채림씨의 아버지 송진영씨가 마이크를 잡고 출근길 시민들에게 이야기합니다.
"국민의 관심만이 세월호 참사, 대구지하철 참사, 이태원 참사, 이런 사회적 참사를 막을 수 있습니다. 이미 몇 번의 참사를 겪고도 아직 강제권을 가진 독립적 조사기구가 마련되지 않았습니다."
철저한 원인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재발 방지의 시작이라며 특별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호소했습니다.
반복되는 사회적 참사... "우리가 막을 것"
전북 지역 희생자는 지금까지 확인된 것으로는 10명입니다. 지난해 12월 29일 서울 이태원에 분향소가 차려지고 얼마 안 돼 전주에도 분향소가 마련됐고, 현재까지 운영 중입니다.
한 명, 두 명, 유가족들이 분향소를 찾았습니다. 그렇게 유가족들이 만나서 함께 울고, 함께 그리워하고, 함께 행동하며 서로에게 힘이 되며 버텨왔다고 합니다. 함께 있어야 밥 한술이라도 먹을 수 있고, 같은 마음인 이들과 손 꼭 잡고 울다 웃다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오늘은 10.29진실버스와 함께 서울에서, 광주에서 유가족들이 찾아와서 전주 합동분향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했습니다.
유가족들은 하루빨리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외칩니다. 어느 누가 겨울에 찬바람 속에 분향소에 있고 햇볕 뜨거울 때 거리에 있고 싶느냐고 소리칩니다. 그리고 그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한 조건으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주장합니다.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 전주지부장 고 문효균씨의 아버지 문상철씨의 말입니다.
"그 진실은 온전한 특별법을 통해서 제대로 된 진상규명과 그 결과를 통해 처벌이 이뤄질 때만이 (밝힐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바로 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 유가족들은 먼저 간 자식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고 싶습니다. 그들이 강할까요, 우리가 강할까요. 저는 우리 유가족들과 끝까지 갈 겁니다."
누군가는 다 잊고 이제 새 출발 해야 하는 거 아니냐, 시간이 지나면 아픔이 다 사라질 거라 말합니다.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과 시민대책위는 사회적 참사가 그렇게 반복돼 왔다며 더 이상 이런 일이 반복돼선 안 된다고 강조합니다.
시민들이 지키고 유지하는 정읍 합동분향소
전주에 분향소가 세워질 무렵 정읍에서도 분향소가 마련됐습니다. 정읍에는 희생자가 없지만 온전히 시민들의 힘으로 분향소를 차리고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유가족들이 진실버스를 타고 꼭 방문하고 싶다고 한 곳입니다.
정읍 분향소 벽면을 채운 우리를 기억해달라는 현수막 문구와 희생자 사진에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정읍 시민단체 분들과 유가족들은 함께 분향소 인근 시장 곳곳을 다니며 특별법 제정을 호소했습니다. 빵집, 떡집, 생선가게 사장님들과 버스를 기다리는 어르신들, 길을 지나는 행인들까지 모두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서명에 함께해주셨습니다.
정읍의 한 식당에서 귀한 점심도 대접받았습니다. 식당 사장님은 이번 참사로 가장 친한 친구를 잃은 조카가 많이 힘들어한다면서 '가족들은 오죽하겠냐'고 함께 눈물을 흘리며 유가족들을 위로했습니다. 애정이 가득 담긴 영양돌솥밥과 함께 서비스로 다양한 음식과 음료수도 챙겨주셨습니다. 사장님의 마음을 알기에 정말 오랜만에 반찬 하나 남기지 않고 밥 한 그릇을 다 먹을 수 있었습니다.
"이태원은 이곳 한옥마을처럼 누구든지 갈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축제의 현장이었습니다"
오후 시간, 전주의 유명 관광지인 한옥마을 내 경기전 부근에서도 특별법 제정 동참을 호소하는 서명운동을 진행했습니다. 평일 낮의 거리는 한산했습니다.
희생자 고 최민석씨의 어머니 김희정씨는 "지금 한복을 입고 이곳저곳에 다니는 분들이 부럽기까지 해서 너무 슬퍼집니다"라고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이태원은 가서는 안 되는 곳이 아니라 이곳 한옥마을처럼 누구든지 갈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축제의 현장이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어처구니없이 떠난 이 일은 누구든지 당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귀찮다고 생각 마시고 언젠가 내 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잠깐의 시간 내셔서 서명 좀 도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또다시 이런 아픈 참사가 일어나지 않을 거로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5분도 걸리지 않거든요. 잠시 멈추셔서 서명을 좀 도와주시기를 바랍니다."
김희정씨는 "이미 아파본, 고통을 알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그 고통을 느끼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시작했다"며 "내 일이라고 생각하시고 서명운동에 동참해 줄 것"을 떨리는 목소리로 호소했습니다.
"특별법 제정 되면 흘린 눈물이 하나도 서럽지도, 아깝지도 않을 것 같습니다"
저녁에는 전주 분향소 앞에서 시민 문화제가 진행됐습니다.
서울 경찰청 앞에서 '112 신고 조작 규탄 기자회견'을 마치고 서둘러 전주로 내려온 유가협 부대표 고 이주영씨 아버지 이정민씨는 "오늘 전주에 내려와서 모두 피케팅을 하고 열심히 캠페인을 하는 것을 보면서 또 저희와 연대해서 열심히 뛰어주고 피켓을 들어주는 여러분들을 보면서 너무 마음이 뭉클했습니다"라며 "이렇게, 이렇게 해주시면 정말 우리가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겠다고 하는 희망을 보았습니다"라고 함께해준 시민들에게 감사를 표했습니다.
고 최유진씨 아버지 최정주씨도 "여기 전주 분향소에서는 유진이가 또 있어서 반갑고 고마워서 눈물이 났고요. 아침에 종합경기장에서 경기전에서 하루 종일 가족들과 함께 특별법 청원 입법을 위해 활동하면서 가슴 뛰는 성원에 지지를 온몸으로 느끼면서 다시 눈물이 났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은 전주와 정읍 시민들을 만나서 많은 위로와 힘을 받았습니다. 따뜻하게 맞아주시고, 힘내라 말씀해주시고, 안아주셔서 오늘만큼은 잠시지만 웃을 수 있었습니다.
30일은 광주입니다. 5.18민주광장과 오월어머니집에서 5.18 유가족을 만나고 광주 시내 곳곳에서 시민들에게 특별법 제정 서명 동참을 요청합니다. 지나시다가 보라색 팻말을 보거든 반겨주시기 바랍니다.
진상규명과 독립적 조사기구를 위한 특별법 청원이 완료되고 특별법이 제정되면 지금까지 흘린 눈물이 하나도 서럽지도 아깝지도 않을 것 같다는 유가족들의 말처럼 어서 현실이 되도록 국민동의 청원에 함께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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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10.29 진실버스는 10.29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가 함께합니다. 27일 서울, 인천, 28일 충북 청주, 29일 전북 전주, 정읍, 30일 광주, 31일 경남 창원, 4월 1일 부산, 4월 2일 경남 진주 및 제주, 4월 3일 대구, 4월 4일 대전, 5일 경기 수원, 서울광장 분향소로 돌아오는 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