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9일 토요일. 이태원에 다녀온다며 집을 나선 자녀, 연인, 친구들이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습니다. 애도할 새도 없이 진실을 밝히기 위한 싸움을 시작한 지 150일. 하룻밤 새 사랑하는 이를 잃은 유가족들이 다시는 이런 죽음이 없길 바라는 마음으로 진상규명의 과제를 알리기 위해 버스를 타고 전국순회에 나섰습니다. 그 현장을 기록합니다.[편집자말] |
3월 28일 아침 7시 20분. 전날의 피로가 채 가시기도 전에 숙소 짐을 정리하고 '10.29 진실버스'에 오릅니다. 이날은 청주 봉평사거리에서 출근하는 시민들에게 10.29 이태원참사 특별법 재정을 호소하는 피케팅이 예정돼 있습니다.
아침 8시. 파란 신호가 켜지는 짧은 시간 동안 최대한 많은 시민이 볼 수 있도록 피켓을 높이 들어 올립니다. 출근하는 운전자가 우리의 호소를 볼 수 있도록 사거리 구석구석 피켓과 현수막을 들고 한참을 서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잘 전해지길 바랐습니다.
"여러분과 같은 나이였습니다"
오전 11시 30분. 하늘로 떠난 우리 아이들 또래의 대학생들이 있는 충북대학교 중문 앞에서 피켓팅을 진행하고 서명을 받았습니다.
"여러분과 같은 21살이었습니다. 아이를 찾아 12시간 동안 서울시내 병원을 헤맸습니다. 나체로 검안검신을 부모의 허락도 없이 진행했고, 시신이 함부로 다뤄진 채 12시간 만에 돌아왔습니다. "
희생자 고 박가영씨의 어머니 최선미씨가 마이크를 잡고 대학생들에게 "아직 10월 29일 그날의 진실이 밝혀지지 않았다"며 "함께 분노해달라"고 호소합니다. 그러다 갑자기 "이제 못 하겠다"며 마이크를 내려 놓고 한참을 울었습니다.
패션디자인과에서 공부했던 가영씨가 지난해에 사달라고 졸랐던, 물빠진 청치마를 입은 친구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딸 생각이 나서 눈물이 왈칵 났다고 했습니다.
유가족들은 "길을 가다가 죽는 일이 없도록,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 죽는 일은 없도록, 희생자의 마지막을 알 수 있도록 함께 힘을 모아달라"고 목놓아 호소했습니다.
"지금까지 '봐주기식 수사'가 이뤄졌다고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28일 오후 2시. 충북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이 진행됐습니다. 전날 나온 KBS 단독보도 때문이었습니다.
27일 KBS는 참사 당일 '압사 가능성과 장소를 구체적으로 언급한 첫 신고가 두 차례나 수정된 것으로 취재 결과 확인됐다'고 보도했습니다. 구체적으로 KBS는 '참사 이틀 뒤인 10월 31일 첫 신고에 대한 출동 기록과 인원이 수정됐고, 그다음날은 11월 1일 한 차례 더 수정됐다'면서 '검찰·경찰은 이중 11건의 신고 기록이 허위 기재된 사실을 확인했다'고 전했습니다. 검찰은 해당 의혹을 확인하기 위해 서울경찰청 112상황실을 압수수색을 했습니다(관련 기사 :
이태원 참사 첫 신고 처리 조작 정황…서울청 압수수색).
"참사 150일이 지나서야 이런 사실이 확인된 것이 말이 됩니까. 경찰은 11건의 신고기록만이 수정됐다고 보고 있는데, 정말 11건이 전부일까요? 나머지 신고기록은 정말 사실일까요? 유가족 입장에서는 결국 지금까지 봐주기식 수사가 이뤄졌다고밖에 느껴지지 않습니다."
희생자 고 오지민씨의 아버지 오일석씨는 "경찰이 국정조사에서 거짓말을 하고 거짓 자료를 제출했다"며 "독립적 진상규명 기구의 필요성"을 호소했습니다.
"18시 34분 첫 압사 위험 신고를 받고 경찰이 출동했다면, 마약 수사가 아니라 시민들이 생명과 안전을 생각했다면... 아니, 그 이후에도 경찰이 몇 명이라도 출동했다면, 경찰이든 공무원이든 누구든 그곳에 있었다면, 그랬다면 저는 지금 이곳이 아니라 우리 딸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을 것입니다."
유가족 중에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 둘, 막을 수 있었던 참사라는 '진실'이 드러날수록 유가족들의 마음이 찢어집니다.
오후 4시 30분. 청주 도심 한가운데인 성안길에서 청주시민들을 만났습니다.
교복 입은 학생, 과잠을 입은 대학생, 퇴근하는 직장인들에게 천천히 왜 진상규명이 필요한지 설명합니다. "경찰의 기록이 조작됐다"고, "국정감사에서도 거짓말한 것이 150일 만에 드러났다"는 현장의 이야기를 들은 시민들은 '그런 상황인 줄 몰랐다'고 입을 모읍니다. 하루빨리 진실이 규명되기를 바란다는 인사와 함께 특별법 제정 서명에도 적극적으로 함께해주셨습니다.
10.29 진실버스는 온종일 청주시 곳곳에서 시민들을 만났습니다. 유가족들은 하루하루가 새로운 경험이고 새롭게 겪는 어려움입니다. 기대보다 냉담한 태도에 상심하기도 하고 예상치 못한 응원에 위로받기도 합니다.
29일은 전주와 정읍으로 향합니다. 두 지역 모두 참사 발생 49일 즈음부터 희생자를 추모하는 분향소가 운영되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지나다가 보라색 버스와 조끼를 입은 진실버스 탑승자들을 만나시거든 잠시만 걸음을 멈추고 이야기를 들어주시면 좋겠습니다. 진실이 밝혀지고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함께 힘을 모아주시길 호소드립니다.
[관련 기사]
세월호 유족이 이태원 유족에 건넨 말 "'열심히'가 아니라..." https://omn.kr/239e8
이태원서 딸 잃고 '진실버스' 오른 엄마 "여러분의 아이들을 지킬 것" https://omn.kr/2390n
덧붙이는 글 | 10.29 진실버스는 10.29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가 함께합니다. 특별법 제정 국민동의청원은 온라인(bit.ly/ItaewonDisasterAct)으로도 함께 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