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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인 남편과 살면서, 각기 다른 음식 예절에 관해 연재로 글을 쓰는 중이다. 지난번에 비빔밥을 비비지 않는 문화에 대해 썼더니, 당연히 비빔밥은 비벼야 제맛이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었지만, 사실은 자신도 비벼 먹는 거 싫고 따로 먹는 게 좋다는 고백도 함께 들어왔다. 그래서 오늘은 따로 먹는 것의 진수가 무엇인지 이야기 하려고 한다.

이 사연의 시작은 십여 년 전으로 돌아간다. 미국에서 살고 있는 남동생은 한국과 무역을 하는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자기 자신도 한국 출장이 잦았지만, 그곳에서 일하는 미국인 직원들도 가끔 한국 출장을 다녀오곤 했다. 

하루는 한 직원이 한국에 처음 다녀와서는 한국 음식에 대해서 불평을 토로했다고 한다. 한국 음식은 맛이 없다는 것이었다. 동생이 의아해서 물어보니, 한국 음식은 언제나 밥이랑 반찬이 나오는데, 밥은 아무 맛이 없고, 반찬들은 전부 짜고 맵다는 것이었다. 동생은 단번에 문제점이 뭔지 알아차렸다. 그들은 진정 따로 먹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건 그렇게 먹는 게 아니야. 밥을 한 숟가락 입에 넣은 후에, 반찬을 그거랑 같이 먹어. 동시에 입 안에서 섞어서 먹는 거야."

이 무슨, 아기도 아니고, 이런 것을 진짜 가르쳐줘야 아는 걸까 싶지만, 실제로 그 동료는 다음번 한국 출장을 다녀온 후에 양손 엄지를 치켜들며, 음식들이 전부 맛있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했다.

한 입에 두 가지를 넣지 않는 사람들
 
한꺼번에 다 얹어서 먹는 것은 괜찮다
 한꺼번에 다 얹어서 먹는 것은 괜찮다
ⓒ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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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문제는 내가 캐나다인 남편과 결혼한 후 발생했다. 남편은 절대로 밥과 반찬을 동시에 먹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맨밥에 간장을 뿌려 먹기도 하는데 하긴 그것도 식탁 예절에 어긋나는 것이 아닌지 미리 물어본다. 나는 어디 가서는 그러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말해줬다.

사실 남편은 간장을 정말 좋아한다. 게다가 달래장처럼 뭔가 향이 들어가면 정말 마시려고 든다. 오죽하면, 우리가 사는 이야기를 책으로 쓴다면 제목은 "간장을 마시지 마세요"라고 달아야 한다고 할 정도이다. 

아무리 그래도, 우리끼리 먹을 때는 괜찮지만, 어디 한국 가정에 초대받아 가서, 반찬들은 두고 밥에 간장을 뿌려 먹으면 정말 곤란하다. 그건 마치 그 집 반찬이 맛이 없어서 맨 밥을 먹겠다는 시위로 보일 수도 있지 않겠는가!

사실 서양 사람들은 밥과 반찬만 함께 먹지 않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음식을 따로 먹는 편이다. 아무리 밥과 국을 나란히 줘도, 그들은 국을 먼저 다 먹고 난 후에 다른 것을 먹기 시작한다. 국을 더 주려나고 하면 아니라고 딱 잘라 말한다. 그들은 서양식 수프의 개념처럼, 한 코스 끝내고 다음 코스 넘어가는 개념으로 국을 먹는 것이다. 즉, 국이 맛이 있어도, 국만으로 배를 채울 수는 없지 않겠는가!

코스로 먹는 그들과 달리, 우리는 한 상에 모든 음식을 한꺼번에 차리고, 모든 음식을 동시에 먹어 나간다. 밥 먹으면서 국으로 입안을 적시기도 하고, 고기 반찬을 먹으며 김치를 함께 입에 넣기도 한다.
 
이 밥과 반찬들을 다 따로 먹는다면 무슨 맛일까?
 이 밥과 반찬들을 다 따로 먹는다면 무슨 맛일까?
ⓒ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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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들은 입에 이미 음식이 있는데 추가로 음식을 넣는 것을 아주 당황스럽다고 생각한다. 어려서부터 절대 그러면 안 된다고 배웠기 때문이다. 결정적 이유는, 입안에 음식이 있는데 추가로 더 먹으려고 입을 벌리다보면 입안의 음식이 타인에게 보일 수도 있어서다.

그것은 상대방의 식욕을 떨어뜨릴 수 있다. 또한 이미 입 안에 먹을 것이 있는데도 욕심내며 많이 먹으려는 듯한 인상을 줄 수 있다. 음식을 이것저것 마구 입에 넣는다는 느낌이 드는가 보다.

따라서 서양식 식사는 언제나 다 따로이다. 그러다 보니 양식에서 먹는 밥은 늘 간이 되어 있다. 밥을 지을 때 아예 육수를 넣어서 짓고, 접시에 담고 나서는 위에 버터를 얹기도 하고, 파프리카 가루를 뿌리기도 한다. 그리고 먹을 때에는 밥은 밥대로, 고기는 고기대로 따로 먹는다.
 
폭찹 메뉴. 밥 위에 얹은 버터를 얹고 맵지 않은 고춧가루도 뿌렸다.
 폭찹 메뉴. 밥 위에 얹은 버터를 얹고 맵지 않은 고춧가루도 뿌렸다.
ⓒ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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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지 음식을 동시에 맛보고 싶다면 방법은 있다. 예를 들면, 스테이크 위에 버섯을 먼저 얹어준 후 한꺼번에 입에 넣는 방법이다. 한식을 그렇게 먹으려면, 밥 위에 김치를 미리 얹어서 먹는 방식으로 할 수 있다.

남편은 그렇게 먹어도 되냐고 물었다. 안 되는 것은 아닌데, 보통은 아기들 먹일 때 그렇게 준다고 했더니 껄껄 웃는다. 상당히 일리가 있다는 표정이 된 남편의 머릿속에서 상상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존중하며 먹으려고 노력한다

여러 번 알려줘서 알고 있지만, 여전히 남편은 이것저것을 한꺼번에 입에 넣는 것이 어렵다. 자꾸 잊어버리기도 한다. 그러다가 다시 말한다.

"아차! 이렇게 같이 입에 넣는 것이라고 했지?"

그러고는 밥을 입에 넣고, 다시 반찬을 집어서 입에 넣는다. 그렇게 먹는 것이 확실히 맛이 다르다는 것을 그도 알고 있다. 하지만 익숙하지 않을 뿐이다. 어쩐지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하는 것처럼 어색할 것이다. 그래도 이제 많이 익숙해졌고, 무엇보다도, 한식을 먹을 때에는 한식의 예절을 지켜주려고 늘 노력하는 그가 고맙다. 

그리고 나 역시, 양식은 서양예절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여전히 가끔, 입 안에 스테이크를 넣은 채로, 다시 아스파라거스를 입에 넣고는 아차 싶을 때도 있지만 말이다.

덧붙이는 글 | 국적이 다른 부부가 함께 살며 경험하는 문화의 차이를 이야기합니다. 어느 쪽 문화를 두둔하거나 비하하려는 의도가 없음을 양지 부탁드립니다. 기자의 브런치에도 비슷한 내용이 실립니다.


태그:#문화 차이, #식탁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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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 거주하며, 많이 사랑하고, 때론 많이 무모한 황혼 청춘을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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