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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인 남편과 살면서 참 많이 다르다고 느낀 것 중 하나가 바로 이 '알아서 해주기'이다. 한국 정서로는 사실 남에게 부탁하기 어렵고, 상대가 알아서 해주길 바라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그러다 보니 눈치가 없는 사람은 흔히 '민폐족'이라는 소리를 듣거나 핀잔을 듣기 쉽다.

우리는 남들에게 도와달라는 말을 쉽게 못 한다. 안 되는 것도 그냥 억지로 하고 있으면, 옆에서 누군가가 알아서 도와줘야 한다. 깻잎 사건이 달리 있는 게 아니다. 그래서 같은 식탁에서 밥을 먹고 있었다면, 그 사람과의 친밀도와 관계없이 상대의 깻잎을 떼어주는 것이 인지상정이다(나는 내 남편이 다른 여자의 깻잎을 떼어줘도 화가 나지 않는 부류의 인간이다).

깻잎 장아찌는 원래 착 붙어서 잘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는 한국인은 없고, 그걸 낑낑 매고 혼자 떼도록 두는 것은 인정머리가 없다고 느끼는 것은 넘치는 공감력에서 온 결과라고 생각한다.

'눈치껏' 안 해도 되는 캐나다
 
바짝 붙어서 떼어내기 힘든 깻잎 장아찌
 바짝 붙어서 떼어내기 힘든 깻잎 장아찌
ⓒ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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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우리는 부탁을 하는 것을 어려워하고, 도와준다고 해도 사양을 먼저 해야 하는 것이 미덕이다 보니, 알아서 해주지 않으면 몰인정한 인간이 되기 쉽다. 

이제는 없어진 풍경이지만, 내가 중학교 다니던 시절, 쇳덩이처럼 무겁던 책가방을 들고 버스에 타면, 자리에 앉아있는 사람이 그 가방을 받아주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앉아 있는 사람의 무릎 위에는 여러 겹의 가방이 쉽게 쌓이곤 했었다. 무거울 것 같아서 사양을 해도, 아니라고 달라고 하며 자기 무릎에 척 얹는 사람들의 모습은 정겨웠다. 

동네 할머니가 지나가시면 달려가서 얼른 짐을 받아 들고, 집까지 들어다 드리기도 한다. "아유, 괜찮아!"라고 말씀하신다고 바로 돌려드리면 세상 눈치 없는 사람이 된다. 할머니는 들어달라는 말을 차마 못 하기 때문에 미안해서 인사치레 한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어려서부터 자란 조카가 미국에 있는 한국 회사에서 잠시 일을 했을 때 눈치가 없다고 야단을 많이 맞았다고 했다.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도, 가장 막내인 우리 조카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러야 하는데, 이 아이 입장에서는 누구든지 가까이 있는 사람이 누르면 된다고 생각하고 멀뚱히 있다가 혼이 났단다. 또, 점심시간이 되어서 음식을 주문하거나 해도, 막내가 알아서 먹을 자리를 준비하고, 그런 행동이 느려서 또 눈치가 없다는 소리를 들었어야 했단다. 

우리 한국인들에게는 이 눈치가 필살기로 들어간다. 없으면 죄인이다. 이웃 할머니의 짐을 들어드리는 것은 그래도 알아서 하기 쉬운데, 어떤 것들은 진짜 어느 시점까지 들어가서 도와줘야 하는지 모를 때가 있다. 상대가 정말로 원하는지 아닌지도 알기 어렵고,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는 더 어렵다.

부탁하지 않아도 알아서 해주면 물론 편하기는 한데, 그걸 알기는 쉽지 않다. "그걸 꼭 말로 해야 알아?" 흔한 부부싸움의 멘트로 들어가는 이 말은, 구구절절 구차하게 부탁하지 않아도 좀 알아서 해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나온 말이리라. 그런데 서양에서는 말로 부탁한 것이 아닌 것을 잘못 돕다가는 엉뚱한 오해를 사기 쉽다.

내가 결혼 후 처음으로 남편의 깻잎을 떼어줄 때, 남편은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의 입장에서는, 그가 하는 젓가락질과 반찬 집는 모습이 서툴게 보여서 내가 그런다고 느꼈던 것이다. 내 딴에는 도와주겠다고 그의 깻잎으로 다가갔지만, 그는 어린애 취급을 받는 듯한, 일종의 모욕감을 느끼고 있었다. 도와 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내가 그의 영역에 뛰어든 셈이다.

서양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과 영역에 대해서 존중받고자 하는 마음이 강하다. 그렇다고 해서 남에게서 도움을 받는 것이 싫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도움이 필요한 순간에 도움을 요청하고, 그때 도와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물론 나는 한국의 문화를 설명했고, 이럴 때에는 그냥 알아서 도와주는 것이 우리에게는 너무나 당연하다는 것을 알렸다. 그래서 이제는 내가 깻잎 조림을 먹으려 할 때, 남편이 옆에서 자연스럽게 거들어 주는 단계까지 왔다.

도움이 필요하면 말을 하라

또 이런 상황도 발생한다. 

내가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남편이 옆에 와서 서 있었다. 보아하니 손에 컵을 들고 있는 모습이, 그것을 씻어서 뭘 하려고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이런 경우 한국에서는 당연히 그 컵을 받아서 씻은 후 다시 그의 손에 쥐어주는 게 자연스러운 행동일 것이다. 하지만 남편 입장에서는 자기 손에 든 것을 내가 갑자기 낚아챈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며 황당한 표정을 짓는다.

이럴 때 내가 해줄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먼저 씻으라며 수도꼭지를 그의 쪽으로 돌려주면서 내가 한 발짝 물러서는 것. 그러면 그가 빨리 자기 컵을 씻어서 들고 갈 것이다. 아니면 "내가 씻어줄까?"라고 물어본다. 그가 오케이 하면 내가 받아서 씻어주고, 아니라면 '오래 걸리면 자기가 이따 다시 오겠다'고 하기도 한다. 그 역시 내 영역을 빼앗지 않으려는 의도이다. 

그러면, 한국과 비슷한 상황으로, 어떤 할머니가 무거운 짐을 낑낑 메고 들고 간다면 서양 사람들은 모른 척 하며 돕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 그들은 다가가서 도움이 필요한지를 먼저 묻는다.

"도와드릴까요?"

한국식으로 괜찮다고 사양을 하면 그냥 가기도 하고, 정 힘들어 보이면 한 번 더 물어줄 수도 있다.

"정말 괜찮은 거 맞나요?"

딱 여기까지다. 정말 괜찮다고 하면 그냥 가야 한다. 내 마음대로 판단해서 억지로 도와주겠다고 하면, 상대는 심한 모욕감을 느낄 것이다. 내가 그렇게 늙고 힘이 없어 보이는구나 싶은 것이다. 서양에서는 상대의 기분과 명예를 지켜주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그들의 이런 문화를 알아도, 한국인인 나는 도와달라는 말을 하는 것이 여전히 익숙하지 않을 때가 있다. 손이 닿을 듯 말 듯 한 것을 꺼내려고 발돋움을 하는 나를 보는 한국인 남편이라면 그냥 말없이 옆에서 대신 꺼내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때 훈훈함을 느낄 것이다. 알아서 도와주니까.
 
싱크대의 위에 진열된 책을 꺼내주는 남편
 싱크대의 위에 진열된 책을 꺼내주는 남편
ⓒ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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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인 남편은 이럴 때 이렇게 말한다. "이봐, 나 여기 있다구." 농담처럼 웃으면서 말이다. 자기를 불러서 꺼내달라고 말을 하라고 유도하는 것이다. 내가 직접 하고 싶다면 말리지는 않겠지만, 도움이 필요하다면 기꺼이 돕겠다는 말인 것이다. 나는 이 말이 어쩐지 귀엽다. 

나는 어떤 방식이 꼭 옳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행동을 받아들이는 문화가 다른 것뿐이며, 그것이 상황에 따라서 편리함이 다를 뿐이다. 나는 깻잎을 떼어주는 한국식 정겨움이 좋지만, 내가 만들어 낸 쓰레기조차 자신이 치워도 되느냐고 꼭 먼저 물어봐주는 남편에게 존중받는 기분을 느낀다.

각기 다른 곳에 사는 사람들의 문화가 각기 달라도, 그들이 가진 따뜻함을 최대한 느끼며 살고 싶다. 그렇기 때문에 그 문화를 보다 잘 이해하며 살고 싶다. 모른다면 서로 상처받을 수 있는 일들을 이렇게 알게 되면 두 배로 행복해질 수 있으리라.

덧붙이는 글 | 국적이 다른 부부가 함께 살며 경험하는 문화의 차이를 이야기합니다. 어느 쪽 문화를 두둔하거나 비하하려는 의도가 없음을 양지 부탁드립니다. 기자의 브런치에도 비슷한 내용이 실립니다.


태그:#꺳잎, #돕기, #문화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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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 거주하며, 많이 사랑하고, 때론 많이 무모한 황혼 청춘을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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