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2.22 06:04최종 업데이트 23.02.22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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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는 내 오랜 꿈이었다. ⓒ unsplash

 
4년 전, 나는 일흔여섯 살이었다. 적지 않은 나이, 글쓰기라는 '도전'은 망설임 끝에 내린 용기였다. 하던 일도 멈추고 집안에서 조용히 안주할 나이련만, 가슴에 품고 있던 열정이 식지 않고 남아 있었다. 한 번뿐인 삶인데, 좋아하는 일을 시도해 보지도 않고 멈춘다면 훗날 후회를 어찌 감당할까? 그 생각에 마음이 흔들렸다. 

나는 나에게 최면을 걸었다. 배움이 나이와 무슨 상관이 있으랴!


4년 전, 2월이라고는 하지만 몸속으로 파고드는 밤바람이 매서웠던 그날 밤. 글쓰기 수업을 한다는 소문을 듣고 군산 동네 서점 한길문고로 찾아가 한 작가님을 만났다. 그는 머뭇거리는 나를 격려하며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라는 책을 권해줬다. 그 말에 나는 용기를 얻었고, 그렇게 글쓰기 도전은 시작됐다. 인생의 커다란 전환점이었다. 

오랫동안 다도를 하면서 익숙함에 길들여졌던 나는 한순간 초보의 자리로 내려앉았다. 눈에 보이는 사람마다 낯설었다. 그러나 이내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면 마음을 비워 내야 한다는 걸 알았다. 인내의 시간이 필요했다. 글쓰기 회원들은 거의 딸과 같은 나이였다. 더듬더듬 글쓰기를 시작했다. 다도를 하며 늘 곁에 책을 두긴 했지만 사는 게 바빠 책 한 권 마음 놓고 읽은 적이 없었는데, 지금 생각해도 참 용감했다. 

삶이 글이 됐다

늦은 나이에 시작한 글쓰기 도전은 사는 일을 즐겁게 만들어줬다. 해야 할 공부가 많아 마음이 매일 설렜다.  

글을 쓰기 시작하고 선생님의 권유로 곧바로 <오마이뉴스>에 회원 가입을 하고 글을 송고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무엇을 주제로 글을 써야 할지, 컴퓨터 앞에만 앉으면 머릿속이 텅 빈 듯 막막했다. 천천히 마음을 가다듬고 살아온 이야기를 글로 썼다. 그동안 살아왔던 날들을 되짚을 때마다 '그냥 보낸 날이 아니었구나'라고 생각했다. 

수없이 많은 날들이 내 안에 저장돼 있어 글이 돼 줬다.

맨 먼저 송고한 기사는 '결혼한 지 51년 된 부부의 일상 궁금하세요?'였다. 글이 정식 기사로 채택됐을 때, 너무 기쁘고 좋아서 마치 풍선을 타고 하늘을 오르는 기분이었다. 마음이 울컥했다. 글쓰기가 뭐라고 나를 이토록 흥분시킬까. 딸들이 있는 카톡방에 자랑하고 가족들의 응원을 받았다. 내 글이 처음 언론에 나온 그 순간은 지금도 잊지 못할 감동으로 남아 있다.

내 이름을 잊고 살았던 날들, 이제는 그 이름 앞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라는 호칭이 생겼다. 

<오마이뉴스>에 글을 송고하기 시작한 뒤부터 내 삶에도 활력이 생겼다. 나는 누가 뭐라 해도 언론에 내 글이 나오는 '시민기자'라는 자부심이 마음 안에 자리했다. 많은 사람들이 내 글을 읽어 주고, 때때로 지인들에게 연락이 오기도 했다. 언론의 힘은 대단했다. 겉으로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기분이 좋았다. 

내가 <오마이뉴스>에 주로 보내는 글은 '사는이야기'다. 글은 시의성과 흥미, 재미가 있어야 한다는 말을 기자 교육 때 들었다. 기사화가 될만한 글을 쓴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틈나는 대로 다른 매체의 글을 관심 있게 읽었다. 이 습관은 세상 사는 일에 대해 그냥 지나치지 않고, 깊게 생각하는 통찰력을 키워줬다. 

중국에 살고 있는 셋째딸의 손자들은 방학이면 한국을 방문하곤 했다. 그러나 코로나19가 한창 심하던 2020년, 딸네 가족은 한국에 온 뒤 발이 묶여 돌아가지 못 하고 우리 집에서 살게 됐다(관련 기사 : 20년 살림인데... 중국에서 사위가 보낸 사진 한장). 가족의 삶의 터전 그리고 안식처인 집까지 놔두고 몸만 나오게 된 것이다. 설 명절에 한국을 방문한 뒤 가족과 같이 다시 중국에 돌아가려던 사위도 발이 묶였다. 이산가족이 되지 않은 것은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딸네 가족에게 위기가 왔다. 사람이 살다 보면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오래가지 않는다. 삶에서 영원한 건 없다. 다시 좋은 날이 오기를 기다리며 사는 거다. 그 어려웠던 순간에 대해 열심히 글을 써 <오마이뉴스>에 보냈다. 딸들 가족과 살면서 느끼는 이야기와 코로나19라는 글감이 많았다. 오름(톱 기사)에 오르는 기사가 많았고, 원고료도 쌓여 갔다.

<오마이뉴스>에 글이 채택되면 가족들은 환호와 응원을 보냈다. 그게 나를 나답게 만들어줬다. 이 덕분에 자신감을 가지고 살 수 있었다. '시민기자'라는 호칭이 나를 더 당당하게 살게 했다. 내 인생이 이토록 달라질 수 있다니 상상도 못 한 일이다. 글을 써서 <오마이뉴스>에 보내는 일이 커다란 낙이 됐다. 

열심히 글을 쓴 덕에 2020년 3월 이달의 뉴스게릴라상도 받았다. 적지 않은 상금을 받았다. 또 담당 팀(라이프 플러스)에서는 좋아하는 책을 선물로 보내줬다. 어떻게 알고 내 취향과 꼭 맞는 책을 보내줬는지 무척 고맙고 기쁘고 행복했다. 
 

선물 받은 책들. ⓒ 이숙자

 
코로나19로 불안에 떨어야 했던 날들이었지만, 글을 쓰면서 극복할 수 있었다. 어려움도 담담히 참아냈다. 힘은 들지만 견딜만 했다. 그 덕에 손자는 우리 집에 온 다음 해에 자기가 원하던 대학에 합격하는 기쁨을 얻게 됐다. 어려움 뒤에 반드시 즐거운 일이 돌아올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나는 쓸 것이다, 계속 

글을 쓰며 사색하는 시간도 늘었다. 글을 쓰면서 마음 또한 유연해졌다. 남편에게 섭섭하고 힘들었던 마음도, 다른 사람들의 삶도 이해하기 시작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졌다. 살아가면서 일상 생활에서 사유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자연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예전과 달라졌다. 세상을 더 많이 느끼고, 생각하면서 사는 기분이 든다. 

<오마이뉴스>에 글을 보내고 원고료가 쌓여, 갖고 싶던 노트북도 샀다(관련 기사 :
오마이뉴스 덕분에, 인생 최고의 노트북이 생겼습니다, 일흔 넘어 처음으로 카페에서 글을 썼습니다). 

나도 젊은 사람들처럼 아무 곳에서나 노트북을 켜고 글을 쓰고 싶었다. 80살이란 나이에 얼마나 근사한가? 글을 써서 <오마이뉴스>에 보내고, 내가 번 돈으로 노트북을 살 수 있다니 너무 기뻤다. 마치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정말 내 인생에 이런 날이 오다니 놀랍고, 우울감을 느낄 시간이 전혀 없었다. 

내 나이 올해로 80세. 적지 않은 나이다. 팔십이란 나이 앞에, 삶의 무늬를 그리며 글을 쓴다. 뒤늦은 나이에 글을 쓰며 살 수 있다는 것이 내게는 축복이다. 더는 바랄 것이 없다. 나이와는 무관하게 내 인지 능력이 남아 있는 동안은 내가 느끼고 살아가는 이야기를 글로 써서 <오마이뉴스>에 보낼 것이다. 내가 쓴 글이 다른 사람들에게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람은 다 자기 생각대로 산다. 인생이란 정답이 없다. 나이를 의식하지 않고 나만의 방법으로 세상을 살아내려 한다. 글을 쓰고, 기자가 되고... <오마이뉴스>는 내 삶을 바꿨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기자의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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