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2.22 21:30최종 업데이트 23.02.22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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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9월 5일 펴낸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기자의 책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오마이북) 308쪽엔 이런 내용이 적혀 있다.
 
덴마크 행복사회는 교실에서부터 시작됐다. 최근 몇 년간 우리나라의 교실에도 조금씩이나마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어 다행이다. (중략) 혁신학교는 본보기 학교다. 공교육 전체에 문제가 많으니 일부 학교라도 혁신적인 본보기를 만들어 보자는 것이다.

덴마크에는 혁신 학교가 따로 없다. 거의 모든 학교가 혁신 학교이기 때문이다. 우리 혁신학교 운동의 목표도 더 이상 혁신학교라는 말이 필요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리라.

단 한 학기도 쉬지 않고 31년 교사의 삶을 이어온 내가 가장 바라는 학교, 교실의 모델을 알려준 책이라 더욱 특별하게 읽었다. 오 대표기자는 행복의 모델을 덴마크에서 발견했고, 우리나라도 거기에 가까울 정도로 변했으면 좋겠다면서 '그래야 우리도 그 안에서 행복한 삶을 찾을 수 있을 것'이란 진단을 내렸다.

이 오연호 기자가 대표로 있는 <오마이뉴스>가 벌써 23살이 됐다. 위 인용한 단락 속 교실 또는 학교 대신 '언론'이나 '뉴스'를 넣어 다시 읽어보면 <오마이뉴스> 23살의 여정이 보인다. 나아가 더 소중한 변화의 바람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왼쪽은 2000년 2월 22일에 창간한 <오마이뉴스> 지면. 오른쪽은 편집국 기자들. ⓒ 오마이뉴스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세상이 더 넓게 열리고 있던 2000년부터 "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문구로 세상을 놀라게 만든 이곳은 나를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을 '시민기자'의 세계로 끌어들였다.

내가 적어 <오마이뉴스>에 보낸 기사를 다시 찾아 읽어보면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가 아니라 쥐구멍이라도 찾아 들어가 숨고 싶은 마음이 생기곤 한다. 그래도 23년이란 세월동안 오래 버텨 스스로 대견하기도 하고, 덕분에 '축구-테니스-핸드볼' 등 일부 스포츠 종목의 기사로 매우 구체적인 역사(?) 자료를 켜켜이 쌓을 수도 있었다.


<오마이뉴스>가 23살이 됐다는 것만으로도 고맙다. 조금 더 정확하게는 시민들의 목소리와 이야기를 믿고, 누구에게나 기댈 언덕이 돼 주면서 함께 살아남아줘서 고맙다. 급변하는 미디어 지형 속에서 바닥에 주저앉아 징징거리지 않고 굳건히 서 있어줘서 고맙기도 하다.

23년간 넓혀놓은 '마당'... 시민과 함께 알차게 다지기

나는 <오마이뉴스>의 특산품이라 불리는 '사는이야기' 말고도 '그룹' '시리즈' '팩트체크' '논쟁' 등 다양한 마당이 열렸음을 최근에 알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다양성은 물론 마당의 '깊이'까지 느낄 수 있는 색다른 꼭지들이 늘어났다는 것만으로도 23살 <오마이뉴스>에게 더 바랄 것이 없다. <오마이뉴스>가 그동안 대안언론으로서 일궈온 덕목이 23년 역사 그 이상의 성과를 냈다는 평가이기 때문이다. 

물론 23살이니 더 잘하라는 채찍질이, 본격적으로 변화의 바람을 선도하라는 충고도 있을 수 있다. 그 또한 고마운 말이다. 하지만 23살 나이를 잊을 정도로 지금까지 펼쳐놨던 자기 마당 바깥 일에 지나친 욕심을 부리지 않으면 좋겠다. '사는이야기' '그룹' '시리즈' '팩트체크' '논쟁' '오마이북' '오마이TV' '오마이스타' 등의 마당에 깔린 흙들을 지금보다 곱고 섬세하고 단단하게 다지길 바란다. 

23년 동안 다져놓은 <오마이뉴스> 마당의 깊이가 얼마나 더해질 수 이는가는 이젠 어쩌면 시민들의 몫이라고 할 수 있다. 누구나 기사를 쓸 수 있고, 재미있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깊은 뜻을 알릴 자료들을 알차게 구성해서 보여줄 수 있는 마당을 열어놨으니, 거기서 더 화려하게 춤을 즐기거나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자발적으로 모아서 오랫동안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지 않을까?

아직 <오마이뉴스>의 마당이 뭔지 잘 몰랐던 시민들을 더 많이 불러모으는 방법은 '조심스러운 질문들' '모두가 놀랄 수 있는 질문들'이 지면 안에서 샘솟는 곳으로 가꾸게 하는 것일 게다. 쉽지 않겠지만 이런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드나들도록 유도하면 좋을 듯하다. 타인의 삶을 함부로 재단하거나 규정하지 말고 잘 모른다고 솔직하게 인정하면서 함께 머리를 맞대고, '질문-답변 글 이어쓰기' '생각나기'가 이뤄지는 마당을 가꾸길 바란다.
 

2023년 2월 17일 오마이뉴스 지면. ⓒ 오마이뉴스 갈무리

 
<오마이뉴스>에서 '관계'를 더 넓힐 수 있길

나처럼 그 마당을 가끔 드나들면서 이곳에서 좋은 사람, 선한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을 더 적극적으로 알려주면 좋겠다.

나는 <오마이뉴스>가 많이 어린 나이였을 때 박상규 기자를 만났다. 지금은 <오마이뉴스>를 떠나 <진실탐사그룹 셜록> 대표기자 겸 발행인으로 고생하고 있다. 나는 <오마이뉴스>를 통해 그를 만나 함께 땀흘리며 축구를 뛰기도 했는데, 박 기자의 '한 번 물면 절대 놓아주지 않는 집념'의 플레이에 놀랐다.

그런데 그 스타일이 축구장에서만 그런 게 아니었다. 그가 기획하고 취재한 <오마이뉴스> 기사들, <지연된 정의>(공저) 등 그의 책들, 탐사보도 전문매체 <셜록>이 집요하게 파고든 기사들을 보고 더 많은 사건과 사람의 이야기를 알게 됐다. 한 매체를 통해 언론을 알고 기자를 알아가면서 나의 세계 역시 넓어졌다. 

사람들은 자신이 아닌 누군가가 어떤 삶을 사는가, 그래서 어떤 영향을 주는가에 대해 관심이 많다. 나쁜 사람들도 더러 있는 세상이지만, 여러 마당을 돌아다니다보면 좋은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나쁜 사람보다는 좋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더 나아가 그 사람을 만나거나 선한 영향력을 받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것이 바로 뉴스 매체가 할 일이 아닐까?

23살 <오마이뉴스>가 꿋꿋하게 버티며 지금껏 펼쳐 놓은 마당에 더 괜찮은 사람들을 북적이게 불러모으길 진심으로 바란다.
 

오마이뉴스 취재수첩. "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 김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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