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다산인권센터는 올해 30년을 맞이하여, 달려온 시간을 되돌아보는 작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기록작업입니다. 다산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되어 있는 전·현직 활동가, 다산의 활동과 만났던 시민들이 필진으로 참여하여 다산인권센터와의 인연, 활동의 의미에 대해 기록할 예정입니다. 이 기록을 오마이뉴스를 통해 다양한 시민들과 나누고 싶습니다.[편집자말]
다산인권센터는 격주 수요일 마다 수원지역의 활동가들과 기후위기 행동을 진행하고 있다.
 다산인권센터는 격주 수요일 마다 수원지역의 활동가들과 기후위기 행동을 진행하고 있다.
ⓒ 다산인권센터

관련사진보기

   다산을 알게 된 지도 벌써 7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30주년을 맞이한 다산 앞에선 7년이 시간이 너무나도 작게 느껴지지만, 초등학생이던 나는 그 시간을 통과하며 어느덧 스무 살이 되었다. '스무 살은 잘 놀아야 해'라는 그 말마저 내게는 버겁기만 한데 다산은 어떻게 굳건히 30년 동안 자리를 지켜왔는지 그 앞에선 한없이 겸허해지기만 한다.

다산인권센터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건 2015년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수원 거리 행진을 한 어느 겨울날이었다. 그날 나는 당시 다산에서 활동하던 박진 활동가를 처음 보곤 마음속 깊은 어딘가 묵직하게 울리는 것을 느꼈다. 그 감정은 이전에 느껴보지 못한 어떤 감정이었는데 그건 마치 내가 오래도록 찾아 헤매던 무언가를 마주한 기분이었다. 그렇게 그날 이후 다산을 통해 처음으로 인권 활동가를 꿈꾸기 시작했다.

막연히 그런 꿈을 품은 채 다산의 소식을 챙겨보기만 했던 내게 다산과 깊은 인연이 시작된 건 2019년 늦가을이었다. 그해 여름 나는 공교육의 입시 위주 교육을 반대하며 고등학교를 나와 일명 학교 밖 청소년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한국 사회에서 학교 밖 청소년으로 산다는 것은 너무나도 많은 설명을 요하는 동시에 돌아오는 답은 없이 그것보다 배로 많은 시스템의 공백을 그저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이었는데 그 속에서 어떤 무력감을 경험하며 방황하고 있을 무렵 인권을 주제로 강의를 하는 인권 공부방 '문득, 인권'을 만났다.

나이도, 직업도, 살아온 삶도, 그 모든 것이 다른 다양한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인권이란 공통된 주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던 그 시간들은, 전혀 가보지 않은 세계를 마주하는 것과 같았다.

그리고 인권공부방이 끝난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자원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내가 다산에서 무얼 했나 이것저것 찾아보니 내 기억보다 꽤나 많은 일들을 다산과 함께했던 것을 알고 조금은 놀랐다. 내가 한 일들은 사무실 내 작은 업무부터 현장에 나가기까지 정말 다양했는데 모든 일들이 다 각별하고 기억에 남지만 그중에서도 제일 기억에 남는 일은 아무래도 세월호 관련 활동이었다. 아주 추운 겨울날 청와대 앞에서 활동가들과 함께 피켓을 들었고, 2020년 여름부턴 수원 세월호 기록집을 제작 및 발간하였다. 비록 내가 한 일은 다른 활동가분들이 하신 것에 비하면 아주 작은 일들이었기에 이렇게 '했다'고 말하는 것이 조금은 부끄럽기도 하다.
 
다산인권센터는 인권의 목소리가 세상 곳곳에 울려퍼지도록 활동하고 있다. 
전쟁을 반대하며 화성행궁앞에서 진행한 반전 퍼포먼스
 다산인권센터는 인권의 목소리가 세상 곳곳에 울려퍼지도록 활동하고 있다. 전쟁을 반대하며 화성행궁앞에서 진행한 반전 퍼포먼스
ⓒ 다산인권센터

관련사진보기



한국 사회에서 많은 이들이 세월호 참사 이후 어떤 무력감을 경험했다는 생각이 든다. 나 역시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거듭되는 학생의 자리에서 그러한 감정의 소용돌이를 계속해서 겪었다. 그 감정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되려 더 짙어져만 갔고 그때마다 내가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을지 또 무엇을 해야만 하는지 오래도록 갈피를 잡지 못했었다. 그러다 마침내 다산에서의 시간을 통해서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세월호 참사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그 갈피를 어느 정도 잡을 수 있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니 다산은 목소리를 내고 행동하고 싶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던 내게 방법을 제시해 준 최초의 공간이었다.

자원활동을 한 1년 남짓 한 시간 동안 활동가들과 함께 옹기종기 둘러앉아 우리가 지금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무수한 이야기를 나누고 때가 되면 분주히 제 할 일을 하고 필요한 곳에선 피켓을 들고 거리에 나섰다. 다산에서 매 순간 순간은 내게 너무나도 소중하고 귀한 시간이었다. 그렇지만 모든 날이 다 좋았다고 하면 그것은 거짓말일 테다. 때로는 버겁게 느껴지도 날도 있었다. 인권이란 무엇인가 끊임없이 생각하고 알아갈수록 앞으로 도대체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되려 더 어려워지는 듯했다. 가끔은 현실을 비관하기도 하고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지, 이게 맞는 건지 끊임없이 나 자신을 의심하기도 했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은 전염병, 기후 위기, 전쟁, 폭력, 빈곤, 증오, 차별 그 모든 것이 한데 뒤섞여 들끓고 있다. 그 어떤 때보다 일촉즉발이라는 말에 가장 잘 들어맞는 그런 시대가 아닐까 생각이 된다. 수업 시간에 말로만 듣던 반전운동이 전 세계 곳곳에서 전개되고 기후 위기 시대에서 나의 미래가 굳건할지, 길을 걷다 내가 죽임을 당하진 않을지 늘 불안감이 앞선다. 이와 같이 우리는 살아가는 것 그 자체만으로 거듭되는 공포를 겪고 쉬이 절망에 빠지곤 한다. 그렇지만 희망을 향해 나아가려면 절망과 함께해야 한다는 것, 이게 바로 내가 다산에서 배운 가장 크고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다산에서 얻은 것은 그 희망을 향해 함께 나아갈 사람들과 힘이다. 내게 그 배움과 사람들과 힘은 여전히 유효하다.

다산은 지난날이 그러했듯 묵묵히 30년 이상의 시간을 향해 또 나아가려 한다. 많은 것이 퇴색되어가는 오늘날 잊어선 안 되는 것이 있다고, 그냥 지나쳐선 안 되는 것이 있다고 지난날이 그러했듯 앞으로도 우리를 계속 두드려 줄 것이다. 그리고 더 큰 시간으로 나아가기 앞서 다산은 지금 공간 이전비와 활동비 모금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주로 자원활동을 겨울에 했었던 나는 겨울날의 사무실이 얼마나 추운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에 더 빨리, 더 춥게 다가오는 것 같은 겨울에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다산이 앞으로 나아갈 시간들은 더 따뜻하고 쾌적한, 모든 이들이 편히 찾아갈 수 있는 그런 곳에서 맞이할 수 있음 정말 좋겠다. 그러니 부디 앞으로의 펼쳐질 시간 앞에서 더 많은 분들이 다산의 손을 함께 잡아주신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 같다.

나는 여느 때와 같이 다산이 두드려주는 문을 활짝 열고 환대할 것이다. 방황하던 내 손을 꽉 잡아준 다산과 계속해서 함께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김별은 다산인권센터 자원활동가이자 벗바리이다.
창립 30년을 맞이한 다산인권센터에서 공간이전과 활동비 마련을 위한 후원 모금을 진행한다. (https://dasan30th.modoo.at/)


태그:#다산인권센터 30주년, #인권, #자원활동가, #세월호, #국정화교과서
댓글

인권에는 양보가 없다는 마음으로 인권활동을 하는 단체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