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다산인권센터는 올해 30년을 맞이하여, 달려온 시간을 되돌아보는 작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기록작업입니다. 다산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되어 있는 전·현직 활동가, 다산의 활동과 만났던 시민들이 필진으로 참여하여 다산인권센터와의 인연, 활동의 의미에 대해 기록할 예정입니다. 이 기록을 오마이뉴스를 통해 다양한 시민들과 나누고 싶습니다.[편집자말]
다산인권센터는 코로나19 상황에서 인권의 목소리를 확산하기 위한 활동을 진행했다.
 다산인권센터는 코로나19 상황에서 인권의 목소리를 확산하기 위한 활동을 진행했다.
ⓒ 다산인권센터

관련사진보기

 
더 많은 인권의 목소리가 필요한 시대

카카오의 주요 서비스가 먹통이 됐다. 타인과의 소통을 책임지던 채팅, 돈을 보내고, 물건을 사고, 이동하고, 여가를 즐기던 모든 일이 순식간에 멈춰 버렸다. 정부는 재난문자 등을 통해 주요 서비스 복구 상황을 알렸다.

디지털 재난이라고 해야 할까. 자주 쓰던 온라인 서비스의 중단 사태와 그로 인한 피해를 지켜보면서 우리가 얼마나 온라인 서비스에 기대어 살았는지 생각해보게 됐다. 기업은 편리와 편의를 추구하며 문어발식으로 확장했다. 어플 하나, 동일한 아이디 하나면 일상의 모든 것이 손쉽게 움직였다.

그 편리함은 우리 삶 깊숙한 곳으로 스며들었다. 기업이 멈추면 일상이 멈추는, 거대한 기업에 삶의 일부분을 의탁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편리함과 편의는 더 쉽고, 더 빠르고, 더 값싸게 더 많은 것을 요구했다. 적은 돈을 들여 더 많은 이윤을 창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되었다.

우리의 일상뿐만 아니라 기업의 경영과 운영에서도 그것은 너무 쉽게 받아들여졌다. 적은 비용으로 노동자를 고용하고, 고효율을 내기 위해 위험은 노동자가 감당해야 할 몫이 됐다. 최근 혼자 작업장에서 일하다 숨진 SPL 노동자 사망사고가 그렇고, 몇해 전 저비용의 자재를 사용해 큰 피해를 만들었던 물류창고 화재 참사가 그러했다.

노동자가 사망한 현장에서 또 다른 노동자는 작업을 위해 기계를 돌리는 비현실적인 세상이 바로 우리 사회의 모습이 돼 버렸다. 편리와 이윤을 추구하는 시대에 사람의 생명은 너무도 쉽게 잊혔다. 안전과 생명, 권리가 보장받지 못하는 시대, 사람에 대한 존중과 인간의 존엄성을 이야기하는 인권의 가치가 중요한 시점이다.

다산인권센터는 지난 30년 동안 인간의 존엄, 생명과 인권의 중요성을 이야기해왔다. 다산인권센터가 처음 만들어지던 1992년부터 시국사건, 국가보안법, 해고 노동자, 경찰의 가혹행위와 국가 폭력 등 우리가 만났던 사건들을 인권으로 설명해 내기 위해 노력했다.

그저 어려운 시대 속에서 누군가 겪었던 어쩔 수 없던 불운이 아니라 사회구조적인 문제이며 인권의 문제라는 것을 이야기했다. 모두의 인권이 보장되는 세상을 꿈꿨다. 거리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인권교육을 하고, 인권침해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세상에 전했다.

30년이 지난 지금, 인권은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 사회에 확산됐다. 모두가 인권을 이야기하는 시대가 됐지만 오히려 우리 사회 인권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막막하기만 하다. 나의 권리를 앞세워 타인의 권리를 배제하고. 세대·젠더·사회적 신분 등을 나누고 갈라치는 정치가 힘을 얻고 있다. 폭염, 폭우 등 재난으로 많은 사람의 목숨이 위태롭고, 힘없고 가난한 이들에게 더 큰 위험으로 다가오는 불평등의 시대를 경유하고 있다.

하루 평균 5명이 넘는 노동자가 일터의 산업재해로 퇴근하지 못하고, 경쟁과 이윤 앞에 모든 권리가 무너지는 시대. 어쩌면, 30년 전보다 인권을 힘주어 말하는 활동이 필요 때가 아닌가 한다. 다산인권센터가 인권운동을 멈출 수 없는 이유이다.

멈출 수 없는 우리는 세상과 불화하며 나아간다
 
다산인권센터의 기후위기의 문제를 인권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다양한 대응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다산인권센터의 기후위기의 문제를 인권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다양한 대응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 다산인권센터

관련사진보기

 
멈출 수 없기에 다산인권센터는 세상과 불화하며 나아가려는 작은 포부를 갖고 있다. 오랫동안 쌓아온 인권활동을 바탕으로 변화하는 시대에 섬세하고 따뜻하게, 그리고 배짱 있게 인권의 목소리를 건네려 한다. 우리가 직면한 기후 위기 그로 인한 재난의 대응, 다산이 위치한 지역사회에서 시민들과 호흡하며 차별과 혐오에 맞서 평등을 일구는 등 세상을 변화시킬 인권의 목소리를 준비 중이다.

코로나19, 올여름 겪었던 기후 위기로 인한 재난. 앞으로 우리 삶에 더 많은 위기와 재난이 다가올 것이라 예상된다. 다산인권센터는 기후위기와 예상되는 사회적 재난에 대응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모색하고 있다. 생명과 안전은 바로 인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급격하게 다가왔던 코로나19와 기후위기 재난 상황에서 인권이 너무도 쉽게 무너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또다시 이런 문제가 반복되지 않도록 재난 상황에서 권리가 보장되고 평등하게 재난을 넘어설 수 있도록 하는 준비가 필요하다. 그 일환으로 다산인권센터는 재난 시기 인권보장을 위한 '재난인권보장조례'를 만들기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또한 직면한 기후위기의 문제를 알리고 삶과 현재 체제를 변화하기 위한 활동도 지속해 나갈 예정이다.

인권이 보편적인 이야기가 됐다. 지자체마다 인권조례가 만들어지고 인권행정기구도 생겨났다. 인권교육, 영향평가 등이 이뤄지고, 인권침해 문제가 생겼을 때 구제받을 곳도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지자체장이 바뀔 때마다, 혹은 일부 세력에 의해 인권조례를 공격하거나 폐지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제도적인 확산과 시민들의 인식 사이에 차이도 존재한다. 제도로만 움직이는 인권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지역사회에 스며드는 정책과 과정이 필요하다. 다산인권센터는 지역사회에 인권이 확산될 수 있도록 활동 해나갈 예정이다. 좀 더 인권친화적인 정책을 펼칠 수 있도록 행정기구를 감시하고, 정책을 제안하는 등 우리가 생활하고 있는 지역사회를 변화시킬 고민을 하고 있다. 인권은 제도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 우리 생활과 일상으로 스며들어야 하는 소중한 가치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산인권센터가 사라지길 꿈꾼다
 
다산인권센터는 차별금지법 제정과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다산인권센터는 차별금지법 제정과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 다산인권센터

관련사진보기

 
다산인권센터의 이후 활동 고민이 어찌보면 거창하고, 어찌보면 너무 소박하다고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무엇이 됐든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우리는 늘 그 자리, 인권이 있는 곳에, 사람이 있는 곳에 있겠다는 것. 빠르게 질주하는 시대, 인권이라는 말에 멈춰 속도를 줄이는 과속방지턱이 되고 싶은 그 마음 하나다.

'인권이라는 말이 아직도 유효한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이 짐스럽기만 합니다. 인권상담소가 더 이상 필요치 않은 사회를 만들어가는 일이 앞으로의 과제 아닐까요.'

1993년 다산인권상담소(다산인권센터의 전신) 소장으로 취임했던 노정희 소장 취임사 중 일부이다. 30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인권이라는 말이 유효한, 아니 없어서는 안 되는 시대가 됐다.

우리의 활동이 앞으로도 멈출 수 없는 이유다. 다산인권센터가 더 이상 필요치 않은 사회를 만드는 일, 30년 전부터 지속돼 온 우리의 과제다. 우리는 그 목표를 이루기 오늘도 세상과 불화하며 나아가고 있다. 부디 우리의 활동이 결실 맺을 수 있기를. 마침내 다산인권센터가 사라지는 날이 오길 바라본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랄라는 다산인권센터에서 상임활동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태그:#다산인권센터, #인권 , #창립30년, #기후위기, #인권제도화
댓글

인권에는 양보가 없다는 마음으로 인권활동을 하는 단체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