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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에 일본에서 풀판된 김지하의 옥중 투쟁의 기록이다. 국가와 민족 그리고 민중을 위한 그의 고뇌가 담겨 있다. 이 책에서 노년 변절할 그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발견되지 않는다. 아쉽다.
▲ <김지하는 누구인가> 1979년에 일본에서 풀판된 김지하의 옥중 투쟁의 기록이다. 국가와 민족 그리고 민중을 위한 그의 고뇌가 담겨 있다. 이 책에서 노년 변절할 그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발견되지 않는다. 아쉽다.
ⓒ 이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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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선언>은 "1. 내가 공산주의자인가?"에서 박 정권의 조작임을 절절이 폭로한다. 

정보부에 끌려가서 나는 처음부터 '가톨릭에 침투한 공산주의자임을 시인하라'는 강요를 받았다. 5~6일간 나는 그 '틀'에 끼어들어 압착된 적색 오징어포가 되기를 거부하며 버티었다. 나는 정보부에 가기 전부터 극도로 쇠약, 빈혈로 졸도하거나 지독한 불면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5~6일간을 버티는 동안 극도로 정신적 시련과 육체적 피로를 겪어야 했고 내 체력은 한계에 도달, 의식마저 혼란상태에 빠졌다.

나는 박 정권이 나를 공산주의자로 몰아 처단하려는 기본방침을 굳히고 있는 한 정보부에서 진실을 밝히려고 노력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가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뿐더러 나를 어떤 일이 있더라도 공산주의자로 '만들어 내라'는 상전의 절대적인 명령을 받고 며칠 밤을 밤샘하며 양심에 위배되는 짓을 하고 있는 불쌍한 말단 수사관들과 피차의 신경만 소모하여 다툴 필요가 없다고 느껴졌기 때문에 6일째에는 그들이 미리 작성해 가지고 온 소위 '자필 진술서' 내용을 그들이 부르는 대로 낙서처럼 받아 써가지고 내던져 버렸던 것이다. 문제의 자필 진술서라는 것이 만들어진 경위는 실로 이러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 진술서의 내용은 당연히 허구와 자기모순으로 가득 찬 것이 되었다. '빈곤과 질병으로 인한 열등감과 좌절감 때문에 공산주의자가 되었다'는 대사는 그들이 즐겨 사용하는 상투문구로서 내가 지극히 혐오하는 부분이다. 그들은 〈오적〉사건에서도 〈비아〉사건에서도 그리고 민청학련 사건에서도 똑같은 소리를 공소장이나 그 밖의 문건에서 되풀이 쓰곤 했었다. 

가난한 자, 병든 자는 모두 다 '공산주의 우범'이란 말인가?
여러분은 자존심 있는 한 인간이 과연 그와 같은 비굴한 진술을 '임의'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들이 나에게 쓰도록 강요한) 진술서에 의하면 나의 모든 행위, 심지어는 〈오적〉과 〈비어〉를 집필한 것까지도 공산주의 사상에 의한 것이라고 되어 있다. 그렇다면 전세계가 나에게 속았단 말인가?

세계의 모든 평론가들은 〈오적〉, 〈비어〉를 잘못 평가한 죄로 문책받아야 할 것인가?

문학작품이란 스스로 그 자신의 주제와 사상을 말하는 것이다. 〈오적〉이 공산주의 문학이라면 어째서 그에 관한 재판은 4년 이상이나 지연되었는가?

〈비어〉는 어찌하여 기소조차 되지 않았는가?

또한 진술서는 내가 공산주의자인 동시에 가톨릭 신자라고 한다. '가톨릭을 믿는 공산주의자'란 '뜨거운 얼음'이란 말과 마찬가지로 형용모순의 표현이다. 공산주의자들이 종교, 특히 가톨릭을 백해무익한 이른바 '인민의 아편'으로 보고 있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양심선언>의 마지막 부문과 <추신>이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싸워왔는가. 인간을 위해서이다. 자유롭고 해방된 인간, 신이 창조한 본래의 모습으로 회복하기 위해서이다. 우리는 이 과제는 그 무엇보다도 우선하는 것이며, 잠시도 늦출 수 없는 것이다.

부패와 특권, 독재야말로 적화에의 황금고이다. 독재와 억압을 유지시키는 것은 안보가 아니다. 독재와 억압을 물리치고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는 일이 참다운 안보임을 직시하자. 자유와 민주주의를 잃고 나면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지킬 것인가?

저 지루한 기아와 질병, 암흑과 모멸의 끝없는 굴레를 지키기 위하여 우리는 목숨을 걸어야 할 것인가. '아니다' 라고 우리는 다같이 말하자. 

자유와 평등을 사랑하는 전세계의 양심있는 이웃들은 우리의 외롭고 고난에 찬 투쟁에 아낌없는 지원을 보낼 것이다.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것은 진실, 그리고 그것을 사랑하기 때문에 당해야 하는 수난에 대한 정열이다. 

인간의 자유와 해방을 위하여 온 민중이 애타게 기다리는 민주주의 승리를 위하여 우리의 모든 것을 던지자고 말하고 싶다. 

우리 모두의 건투를 위하여 나는 오늘도 기도하고 있다.

                                                                         1975년 5월

 추신

나는 내가 체포될 때에 내가 살고 있던 시골집과 내 아들이 살고 있던 집이 같은 시간에 수색당하고 그 결과 나의 내밀한 사적 기록인 메모첩 4,5권이 압수되었는 바, 그들이 나를 체포하고 집을 수색한 목적이 당초에 어디 있었던가에 의문을 갖고 있다. 그들은 처음 '김대중 씨 납치 사건의 진상을 시로 써달라는 부탁을 받지 않았는가', '원고는 어디에 있는가?'를 매우 신랄히 추궁했었으니까.

나는 지금 접견도 통신도, 집필도 금지되고 운동과 기타 모든 권리가 제약되는 채 심지어 서적까지, 성경까지도 금지된 상태에서 1ㆍ27평의 어둠 속에 밀폐되어 있다. 이 어둠 속에서 나는 또한 끈질긴 추억의 유혹과 싸워야 하며, 부단히 저 불길하고 잿빛뿐인 미래와 눈을 부릅뜨고 맞서고 있다.

이 고통만이 나를 적 앞에서 각성케 하고 잠들게 하지 않는다. 지금 내 마음은 물처럼 맑다. 다만 이 글이 나가 발표될 때에 연관된 선의의 사람들에게 가해질 그 쓰라린 피해만이 걱정이다. 벗들이여, 부디 그들의 고통에 관심을 기울여 달라.

나를 슬픈 눈빛으로 보지 말아다오.
우리는 곧 만나게 될 것이다.

                                                                        1975년 5월
                                                                             김지하 (주석 9)


주석
9> 이상, <아! 김지하>, 277~296쪽.(발췌)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인 김지하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태그:#김지하, #시인김지하평전, #김지하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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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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