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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봄과 여름을 뜨겁게 달구었던 촛불집회를 계기로 신작 시집 <못난 시들> 펴낸 김지하 시인. 그는 순수했던 '촛불'은 우주적 사건이라고 평가했지만 촛불이 정치적 목적에 따라 변질된 부분에 대해선 아쉬워하며 이 다음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봄과 여름을 뜨겁게 달구었던 촛불집회를 계기로 신작 시집 <못난 시들> 펴낸 김지하 시인. 그는 순수했던 "촛불"은 우주적 사건이라고 평가했지만 촛불이 정치적 목적에 따라 변질된 부분에 대해선 아쉬워하며 이 다음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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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는 문학인생 반세기 동안 다량의 작품을 남겼다.

장르도 다양하고 주제도 하늘과 땅, 단군과 현대인을 넘나든다. 작품뿐만 아니라 활동 영역도 다양했다. 아직 한창 활동하던 시기(2002)에 한 평론가의 글이다.

<황토(黃土)>를 비롯한 7권의 시집을 절규처럼 토해낸 빼어난 서정시인, 담시(譚詩) <오적(五賊)>과 <비어(蜚語)>, <앵적가(櫻賊歌)>, <분씨물어(糞氏物語)>, <대설(大說)>, <남(南)>을 통해 한 시대를 일필휘지(一筆揮之)로 풍자한 저항시인, 희곡 <금관의 예수>, <구리 이순신>, 마당극 <진오퀴굿>으로 마당극의 새 지평을 연 극작가, <풍자냐 자살이냐>, <민족의 노래 민중의 노래>같은 독창적인 평론과 <깊이 잠든 이끼의 샘>같은 시집의 후기(後記)가 바로 그 시대의 가장 첨예한 문학적 쟁점이자 미학의 준거가 된 7, 80년대 민중문학의 도저한 이론가, 독창적이고 심오한 생명사상가이자 '율려운동'으로 전인미답의 민족문화운동을 열어가는 운동가 '시인 김지하'라는 호칭은 일종의 경칭에 불과할 뿐 그의 본질에 어울리는 이름은 결코 아니다. (주석 1)
24일 부안 핵폐기장 문제 해결을 위해 주민투표 실시를 촉구하는 각계인사 기자회견에 참석한 시인 김지하씨(왼쪽)와 고은씨.
 24일 부안 핵폐기장 문제 해결을 위해 주민투표 실시를 촉구하는 각계인사 기자회견에 참석한 시인 김지하씨(왼쪽)와 고은씨.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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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생애는 1971년 담시 <오적> 필화사건으로 투옥ㆍ수배 등의 고난의 시기와, 1991년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는 칼럼의 '필화' 이후 신비성이 강한 글쓰기 활동기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첫 번째 필화는 그를 고난의 길로 몰아부쳐 7년 여의 옥살이를 하고, 두 번째 '필화'는 민족문학작가회의로부터 제명당하는 등 민주진영의 내침을 받고 정신적인 고통을 겪게 되는 변곡점이었다. 이처럼 상반되는 '필화'의 주인공도 흔치않다.

그는 고난과 시련ㆍ은둔 속에서도 많은 작품을 생산하고, 각종 상을 받았다. 로터스 특별상(1975), 국제시인회의 위대한 시인상(1981), 크라이스키 인권상(1981), 이산문학상(1993), 정지용문학상(2002), 만해문학상(2002), 대산문학상(2002), 시와시학상 작품상(2005), 만해대상(2006), 민세상(2011) 등이다. 

그의 생전에 10권짜리 <김지하 전집>이 간행되고, <흰 그늘의 길>이란 회고록 3권을 집필하였다. 십 수권의 시집ㆍ산문집을 내고, 일본 가톨릭정의와 평화협의회가 <김지하는 누구인가>에 이어 일본인 평론가 푸미오 타부치의 <신과 혁명의 통일>이라는 김지하 연구서를 내고 국내에서 번역되었다. 국내 학자ㆍ시인ㆍ평론가들의 연구논문은 일일이 소개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1991년 명지대생 강경대가 전경의 곤봉에 맞아 죽은 뒤 그에 항의해 학생ㆍ청년들의 분신과 투신자살이 이어지자 김지하 시인은 <조선일보>에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라는 장문의 칼럼을 실어 투쟁 열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이 일로 그는 자신의 고향과도 같은 민주화운동 진영과 척을 지게 되었고, 그의 구명 운동이 계기가 되어 결성되었던 민족문학작가회의(현 한국작가회의ㆍ작가회의)에서도 제명되는 곡절을 겪는다. 
 
김지하 시인이 4일 오후  서울시청 앞에서 '박정희 기념관 건립반대' 문인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김지하 시인이 4일 오후 서울시청 앞에서 "박정희 기념관 건립반대" 문인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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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 율려와 후천개벽 같은 민족사상을 설파하는 산문집을 꾸준히 내던 그는 2001년에 박정희기념관 반대 1인 시위에 나서고 작가회의의 후배 문인들과 화해의 자리도 마련하는 등 회복을 위한 노력도 보였으나, 2012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박근혜 지지를 선언하면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그는 선거 결과가 나온 뒤에도 민주화운동권을 싸잡아서 매도하고 문학 및 민주화 투쟁 동료들의 실명을 거론하며 막말에 가까운 비난을 퍼부음으로써 자신의 '변절'을 완성하다시피 하게 된다. (주석 2)

"인간의 위대성은 한 극에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양극에 접함으로써 나타난다."(파스칼)는 말이 있지만, 김지하의 삶과 문학이 왜 그러했는 지, 양극단을 걷게 된 데는 더 연구가 필요할 것 같다. 
 
이필완 목사, 양재성 목사, 수경스님, 도법 스님, 최상석 신부, 홍현두 교무, 최종수 신부 등 4대 종단 성직자 및 환경운동가 20여명으로 구성된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 순례단'이 12일 오전 경기도 김포시 하성면 애기봉전망대를 시작으로 한강-낙동강-영산강-금강 100일 도보순례를 시작했다. 애기봉전망대에서 열린 출발행사에서 김지하 시인, 벌륜 스님, 수경 스님이 인사를 나누고 있다.
 이필완 목사, 양재성 목사, 수경스님, 도법 스님, 최상석 신부, 홍현두 교무, 최종수 신부 등 4대 종단 성직자 및 환경운동가 20여명으로 구성된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 순례단"이 12일 오전 경기도 김포시 하성면 애기봉전망대를 시작으로 한강-낙동강-영산강-금강 100일 도보순례를 시작했다. 애기봉전망대에서 열린 출발행사에서 김지하 시인, 벌륜 스님, 수경 스님이 인사를 나누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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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는 변신 직후인 1991년 10월 10일에 쓴 <타는 목마름에서 생명의 바다로>의 서문에서 "아아. 산다는 것이 왜 이리도 어려운가? 끝끝내 자유천지를 보지 못하고 나 역시 더러운 먹물 시궁창에서 굶주린 개처럼 허덕이다가 죽고 말 것인가? 별 뜨듯 꽃 피듯 살 날은 그 언제인가?" 라는 알 듯 모를 듯 한 심경의 일단을 던졌다.

고 신영복 선생은 "한 사람의 일생을 평가할 때 그 사람의 일생에 들어가 있는 시대의 양(量)을 근거로 해야 한다."고 하였다. '시대의 양'을 헤아리면서 '영욕'이 겹치는 우리 시대의 거인 김지하 시인의 족적을 찾아 먼 길을 떠나고자 한다.


주석
1> 정지창,「김지하, 광대의 상상력과 장광대설」,『문예미학, 민중문학』, 93쪽, 2002, 문예미학사.
2> 최재봉, 앞의 글.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인 김지하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태그:#김지하, #시인김지하평전, #김지하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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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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