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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발의 후 15년이 지난 오늘날, 여전히 차별금지법은 제정되지 않았다. 그 사이 차별과 혐오선동을 이용하거나 방치해 온 정치는 한국사회 민주주의를 후퇴시켰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의 국회 앞 평등텐트촌 농성과 미류(인권운동사랑방), 종걸(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두 인권활동가의 단식에도 불구하고, 더불어민주당은 차별금지법을 당론으로 채택하지 않고, 여러 핑계를 앞세워 평등을 미루고 있다.

차별금지법 있는 봄을 맞이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세력의 폭언을 제일 앞에서 맞아야만 하는 성소수자들이 더불어민주당의 책임과 역할을 요구하기 위해 4월 21일부터 5월 3일까지 매일 한 명씩 공개적으로 편지를 적어 보낸다.[기자말]
나영
 나영
ⓒ 차별금지법제정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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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온 국회 법제사법위원장,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 그리고 제가 사는 지역구의 한준호 국회의원님께.
 
안녕하세요. 저는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삼송동에 살고 있는 나영이라고 합니다.
어릴 적 학교에 다닐 때부터 "국군 장병 아저씨께"로 시작하는 위문편지처럼 낯선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는 참 쓰기 싫은 글 중 하나였지만, 오늘은 수신인의 이름에 적은 네 분의 국회의원과 더불어, 국회에 있는 다른 모든 의원 분들도 꼭 읽어보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편지를 씁니다. 이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성소수자들이 의원님들께 보내는, 열두번째 편지이자 이 릴레이의 마지막 편지입니다.

그리고 이 마지막 편지가 전달되는 날은 국회 앞에 있는 미류와 종걸, 두 활동가의 단식 23일차가 되는 날이기도 합니다. '단식 23일차'라는 날은 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바랐음에도 결국 오늘까지도 차별금지법/평등법이 제정되지 못해 이 날을 맞이하게 되었다는 사실에 매우 무겁고, 속상하고, 화가 나는 마음을 솔직히 가눌 길이 없습니다. 아시는지 모르겠으나 이번 주부터는 더 많은 사람들이 같은 마음으로 동조단식에 함께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결국 이렇게 편지를 쓰게 되었으니 우선 제 소개부터 하겠습니다. 저는 올해로 40대 중반이 되었고, 기독교인입니다. 어느새 나이가 많이 들어 인지장애가 시작된 열다섯 살 된 개와 아직 철부지처럼 뛰어다니는 세 살 된 고양이도 저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제법 다양한 취미를 가지고 있고 사람 만나는 일을 좋아합니다. 날마다 오전 11시 반쯤 되면 점심식사로 무엇을 먹을지 생각하고, 오후 네 시경이 되면 저녁식사는 뭘 할지 고민합니다. 이런 이야기들이 제가 일상에서 누군가를 만나면 흔히 나누는 이야기입니다. 정말 평범하지요?
 
그런데 저에 관한 어떤 이야기들은 저를 좀 더 심각한 사람으로 여겨지게 만들기도 합니다. 가령 제가 이혼한 가정에서 아버지 없이 자란 자녀라는 이야기라든지, 페미니스트라는 사실 같은 것 말이지요. 이에 더해, 제가 동성 파트너와 함께 사는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을 이야기하면 그 순간 저의 성적지향은 저의 다른 모든 정체성과 일상을 덮을 정도로 중차대한 문제로 여겨지고는 합니다. 참 이상하죠. 40대 중반의 삼송동 주민인 저와 동성애자인 저는 왜 그렇게 다른 존재가 되어버리는 것일까요?
 
최근에는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는 피켓을 들고 국회 앞에 서 있었더니, 차별금지법이 무슨 동성애자 만드는 법이라도 되는 것처럼 오해하고 계신 분들이 제 앞에 서서 "여자끼리 어떻게 섹스를 해!"라며 소리치고 가시더라고요. 피켓에 여자와 섹스하자는 문구가 있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말하는 순간, 아니 그렇게 간주되기만 해도 저의 삶과 다른 일상은 완전히 삭제되어 버린 채 저란 존재는 이렇게 '섹스'로만 각인되어 버린답니다.

놀랍게도 차별금지법 제정은 지금까지 이런 이유로 15년을 미뤄져 왔습니다. 성소수자의 삶은 곧 섹스로, 이주민의 삶은 피부색이나 출신 국가로, 아픈 사람의 삶은 질병 그 자체로만 규정되고, 그것이 차별금지의 대상에서 삭제해도 되는 이유가 되었으니까요.
 
"너희끼리 알아서"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어떤 분들은 "그래 너희들끼리 좋다는 건 알겠으니 그냥 너희끼리 알아서 살아라"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 사회에서 살아가려면 공부도 하고, 일도 하고, 집도 구해야 하고, 아프면 병원에도 가야 하니까요. 가족, 친구, 동료 등 다른 소중한 사람들과의 관계가 끊어지지 않는 것도 중요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충분히 애도하고 추모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편지에서도 보셨듯이 차별금지법이 없는 세상에서 저와 저의 파트너, 여러 친구들은 어쩌면 평범할 수도 있는 그런 일상을 너무 자주 침해당하고는 합니다.
 
저 역시 이제 16년차인 동갑내기 파트너와 함께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고민이 깊어집니다. 유산이나 연금, 보험 같은 것들은 기대할 것도 없이, 그저 몸이 아플 때 병원에 가는 것만 해도 걱정이 앞섭니다. 혹시라도 중요한 순간에 서로의 보호자로 인정되지 못하거나 의료기관에서 차별적인 대우를 당한다면 어떻게 해야할지 몇 개의 시나리오를 생각해 둡니다. 주거지를 옮길 때면 이사하는 집의 집주인이 혹여 우리 관계를 알고 거부하는 일이 생기지는 않을지 긴장하고는 합니다. 어느 날 예기치 못한 일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을 때 파트너가 배제되거나 소외되는 일이 없기를 바라며 유언장을 써둡니다. 그렇지 않으면 16년을 함께 산 우리의 관계는 일순간에 수많은 제도적인 차별의 장벽 앞에 놓이게 되니까요. 이런 것이 차별의 현실입니다.
 
그 누구도 이 사회와 단절되어 "너희끼리 알아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차별금지법은 그저 누군가를 인정할지 말지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함께 관계 맺으며 살아가는 누군가의 삶과 건강, 생존에 관한 문제입니다. 지금까지 성소수자들이 보낸 열한 통의 편지들 속에도 그 모든 이야기들이 담겨 있습니다. 혹시 아직도 안 읽으셨다면 꼭 읽으시길 바랍니다. 용기와 요구를 담아 꾹꾹 눌러 쓴 그 이야기들을 기억하시고, 차별금지법 제정이 민생을 책임지는 국회의원의 역할임을, 이것이 민생의 문제임을 생각하시길 바랍니다.
 
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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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별금지법제정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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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정말 차별금지법의 차례입니다
 
이렇게 편지를 쓰다 보니 문득 호주제 폐지 운동이 한참 진행될 때, 저의 어머니도 저처럼 이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편지를 쓰셨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당시 호주제로 인해 위자료도, 양육비도 전혀 책임지지 않은 아버지가 호주로 남아 있었고, 정작 파출부, 청소, 도배, 식당일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일하며 힘들게 세 자매를 키우던 어머니는 자녀들의 동거인으로만 등록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호주를 승계할 아들 손주를 원했던 할아버지는 아들 손주에 대한 기대로 제 아버지의 오랜 외도를 묵인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차별의 현실을 온몸으로 겪은 어머니가 얼마나 절절한 심정으로 편지를 쓰셨을까요? 그런데 당시에도 "호주제 폐지 되면 국민 모두 짐승된다"거나 "호주제 폐지되면 나라가 무너진다"는 피켓을 들고 반대하던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결국 호주제는 폐지되었고 나라가 무너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죠. 호주제 폐지가 어머니에게 얼마나 큰 기쁨을 주었을지 저로서는 상상하기도, 표현하기도 어렵습니다.
 
차별금지법은 호주제 폐지보다 더 큰 역할을 할 것입니다. 2007년 법무부가 차별금지의 대상에서 제외하려고 했던 일곱 개의 항목 중에는 '가족형태 및 가족상황'이라는 항목도 포함되어 있었는데요, 호주제 폐지 이후에도 여전히 부계 성본 우선주의는 민법에 그대로 남아 있어 저는 지금 김나영이라는 주민등록상의 이름 대신 일부러 나영이라는 제 이름만을 쓰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당시에 '성적지향'과 '가족형태 및 가족상황', '출신국가'가 차별금지법에 굳이 넣고 싶어하지 않는 대상으로 한 데 묶여 있었다는 점은 참으로 의미심장합니다. 지금도 여성은 혼자 자녀를 키우며 경제활동을 하기가 너무 어렵고, 이주여성은 한국 남성과의 혼인 관계가 아니면 거주지위를 보장받기가 어렵습니다. 저는 여전히 남성 가부장을 중심으로 하는 특정한 형태의 가족 관계만을 중심으로 우리 사회의 수많은 제도와 경제 구조가 그에 맞춰져 있는 것이야말로, 호주제 폐지 이후 변화해야 할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이런 문제들을 또 한 번 변화시킬 중요한 계기가 되지 않겠습니까?
 
의원님들, 그러니 이제 정말 차별금지법의 차례입니다. 지금 국회 앞에 있는 미류와 종걸을 포함하여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애써온 많은 이들은 사실 지난 15년 동안 차별금지법 너머를 생각하고 꾸준히 토론해 왔습니다. 차별금지법은 우리 사회의 제도와 정치, 경제 구조 곳곳에 뿌리깊게 스며 있는 차별을 새롭게 인식하게 만들 새로운 토대입니다. 차별금지법의 제정을 통해 우리는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넘어 모두의 삶을 존엄하게 보장하기 위한 실질적인 조건들을 보다 적극적으로 만들어 나가게 될 것입니다.
 
눈치 보기는 그만. 이제 결정을 하십시오
 
오늘 다시 한번 단호하게 말씀드립니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더 이상 미루지 마십시오.
차별금지법이 계속해서 밀려났던 지난 15년 동안 우리 곁의 많은 이들이 또 학교와 직장에서 쫓겨나고, 전환치료를 강요받고, 병원에서 치료를 거부당했습니다. 차별이 만연한 세상에서 괴롭힘이나 생활고로 일상을 이어가기가 힘들어서, 치료를 제때 받지 못해서 안타깝게 먼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성소수자 뿐만 아니라 이주민, 난민, 비정규직 노동자와 수많은 하청 노동자, 특수고용 노동자들, 장애인, HIV/AIDS 감염인, 빈민과 노숙인 등 수많은 사람들의 고통과 죽음에 차별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저와 제 친구들은 그동안 성소수자 이주노동자, 성소수자 난민, 성소수자 장애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청소년 등 복합차별의 상황을 경험하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도 만났습니다. 저는 이들과 함께 차별금지법 제정을 기다립니다.
 
지금은 차별금지법에 대해 또다시 기약도 없는 토론이나 공청회를 기다리라고 할 때가 아닙니다. 차별금지법/평등법 제정을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되는 시급한 민생 사안으로 보고 결정을 내릴 때입니다. 더불어민주당이 검수완박 법안 처리 과정에서 보인 행보가 그저 정치적인 이해관계를 위한 것이 아니라면, 보다 많은 사람들의 삶과 더 나은 사회를 위한 법인 차별금지법/평등법 제정을 위해서도 지금 당장 의지를 모아낼 수 있다는 걸 보이시길 바랍니다.

나라를 무너뜨린다던 호주제가 결국은 폐지되었듯이, 차별금지법도 결국엔 제정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지금, 차별금지법 제정을 간절히 열망하는 많은 이들의 곁에 서십시오. 이번에도 나라가 무너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은 또 한 번 크게 바뀔 것입니다. 차별 받으며 살아온 많은 이들의 삶 또한 바뀔 것입니다. 지난 15년 동안 그 열망을 모아온 사람들의 힘을 믿고 소중한 역사의 한 장면을 만드십시오. 더 늦기 전에, 지금 23일째 단식 중인 두 명의 활동가가 다시 곡기를 채우는 순간을 만드십시오. 혐오와 차별의 세상에서 먼저 세상을 떠난 이들이 하늘에서라도 웃을 수 있는 날을 만드십시오.

더 이상의 핑계는 듣지 않을 것입니다.

이미 너무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이 용기를 내고 애써왔습니다.
 
이제 의원님들의 용기와 결단만이 남았습니다.
 
2022. 5. 3.
경기도 고양시 삼송동에서
나영 드림.
 
고양이와 함께
 고양이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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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며 성소수자들이 공개 편지를 보냅니다


태그:#차별금지법, #평등법, #성소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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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차별의 예방과 시정에 관한 내용을 담은 법입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다양한 단체들이 모여 행동하는 연대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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