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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발의 후 15년이 지난 오늘날, 여전히 차별금지법은 제정되지 않았다. 그 사이 차별과 혐오선동을 이용하거나 방치해 온 정치는 한국사회 민주주의를 후퇴시켰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의 국회 앞 평등텐트촌 농성과 미류(인권운동사랑방), 종걸(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두 인권활동가의 단식에도 불구하고, 더불어민주당은 차별금지법을 당론으로 채택하지 않고, 여러 핑계를 앞세워 평등을 미루고 있다.

차별금지법의 4월 제정을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세력의 폭언을 제일 앞에서 맞아야만 하는 성소수자들이 더불어민주당의 책임과 역할을 요구하기 위해 4월 21일부터 30일까지 매일 한명씩 공개적으로 편지를 적어 보낸다.[기자말]
이심지
 이심지
ⓒ 차별금지법제정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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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여러분께,

'특히' 박광온 법제사법위원장,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윤호중 공동비상대책위원장님께,

안녕하십니까. 저는 관악구에 사는 이심지라고 합니다. 다짜고짜 친구가 되자고 해서 놀라셨나요? 별로 안 궁금하시겠지만… 일단 제 얘기부터 해보겠습니다. 저는 제가 레즈비언인지 바이섹슈얼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서른 살 먹고도 아직 탐색중입니다. 대충 여자를 좋아하는 여성 성소수자라고 해두죠.

저는 요즘 관악구에 있는 집과 서대문에 있는 사무실, 여의도에 있는 국회를 왔다 갔다 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국회는 무슨 일로 오가냐고요? 여러분이 '검수완박'에 몰두하고 있는 동안,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를 위해 두 활동가가 단식 농성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중에는 국회 앞에 차려진 텐트촌과 단식 농성장을 방문해보신 분도 계실 것이고, 그냥 지나쳐보기만 하신 분도 계실 겁니다. 농성 소식조차 접해보지 못한 정치인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아직도 안 와보신 분은 단식 농성 중인 종걸, 미류 활동가도 만나시고 저와 제 동료들도 만납시다. 얼굴을 맞대고 앉아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어떤 생각들을 하며 출퇴근을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국회 앞을 오가며, '동성애 합법화' 반대 피켓들 역시 보셨을 겁니다. 저는 성소수자 당사자로서 그 수많은 피켓들 사이에서, 그 피켓을 든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큰 모욕감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경찰은 그 피켓들을 든 사람들과도 '서로를 존중'하며 시위하라는 말만을 반복했습니다. 저는 그 피켓들 사이에서 어떤 '존중'을 받을 수 있습니까? 저는 그 '존중'이라는 경찰의 말이 한없이 가볍게 느껴졌습니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더불어민주당 여러분 역시 무거운 책임을 느끼셔야 합니다. 대선 토론회에 나와서 동성애에 대한 '불호'를 밝힌 문재인 대통령부터 "성소수자 문제 등 소모적인 논쟁을 일으킬 당과는 연합이 어렵다" 말씀하신 윤호중 의원에 이르기까지, 여러분이 그 '성소수자 차별'의 산 증인이십니다.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핑계로 대면서, 성소수자에게 심히 모욕적인 풍경으로 채워진 '차별금지법 찬반 토론회'를 열었던 더불어민주당 여러분, 부끄러운 줄 아십시오.

장담합니다. 여러분의 가까이에도 성소수자가 있을 것입니다. 성소수자는 상상 속의 동물이 아니라, 당신의 지근 거리에 있는 아주 구체적인 사람들입니다. 어쩌면 당신의 동료 정치인 중에, 당신의 보좌진 중에 성소수자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잘 모르시겠다면, 성소수자들이 보내는 이 편지들을, 그 편지를 쓴 아주 구체적인 얼굴들을, 떠올려보십시오. 동료 시민으로서의 성소수자의 눈치를 보십시오. 유권자로서의 성소수자를 무서워 하십시오.
 
국회 앞 평등텐트촌에서
 국회 앞 평등텐트촌에서
ⓒ 차별금지법제정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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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꿈을 가지셨는지를요. 어떤 정치를 하고 싶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지금처럼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만이 여러분의 목표는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어릴 때에도 한 반에 꼭 한 명씩은 대통령이 되고 싶다고 하는 친구가 있었던 것 같은데요. 혹시 대통령이 꿈이십니까? 

그렇다면 레즈비언 친구를 한 번 사귀어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나는 다이크 대통령을 원한다>라는 유명한 선언문을 접해보셨을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레즈비언 대통령까지는 바라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레즈비언 친구를 둔 대통령은 만나보고 싶습니다. 레즈비언 친구가 있다면 적어도 '동성애 좋아하지 않는다'고 공개 석상에서 발언하지는 않으시겠지요. 지금 이 릴레이 편지를 쓰는 아주 구체적인 얼굴들을 떠올리며, 포괄적 차별금지법 조속히 제정하십시오. 그러면 저부터 여러분의 친구가 되겠습니다.

더불어 제 꿈도 이야기해드리겠습니다. 성소수자 당사자로서, 제 꿈은 '좋은 어른'이 되는 것입니다. 저는 가끔 상상합니다. 제가 어릴 때 '게이/레즈'라는 말은 누구를 놀릴 때 쓰는 말이 아니라고, 너는 누구라도 될 수 있고 누구라도 좋아할 수 있다고, 제대로 이야기해주는 단 한 명의 어른이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아쉬워합니다. 이제 제가 그 '어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그 '어른'이 되셔야 합니다. 그러면 저부터 여러분의 친구가 되겠습니다.  

2022. 04. 22. 이심지 드림.

태그:#차별금지법, #평등법, #성소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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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차별의 예방과 시정에 관한 내용을 담은 법입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다양한 단체들이 모여 행동하는 연대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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