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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체육대회를 1박 2일에 걸쳐 진행했다. 당시 평균 이하의 실력을 갖췄지만, 평균 이상의 열정을 가져 반 대표 농구 선수로 뛰게 된 나는 부전승이란 행운에 힘입어 어느새 결승전을 치르게 됐다. 상대팀은 농구 동아리 부원들로 구성된 가히 우승 후보였다. 그 앞에 선 우리 반은 초라했다. 그저 부전승에 힘입어 올라온 최약체 팀. 모두가 상대팀의 승리를 확신한 채 하나 마나 한 경기가 시작됐다.

그런데 웬일인가,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고, 서로 한 쿼터씩 내주며 게임은 흥미진진하게 진행됐다. 마지막 쿼터를 앞두고 우리 팀이 3점 정도를 앞섰으니, 부전승 팀의 우승도 더 이상 희망만이 아닌 일이 됐었다. 한참 전의 일임에도 짜릿한 기분이 남아있는데, 당시에는 얼마나 신났겠는가.

산통을 깨는 것은 선생님의 한 마디였다. "적당히 끝내고 들어가자. 너희가 이긴 걸로 하고." 한창 게임이 재밌어지려고 하는 와중에 이 무슨 말인가. 곧바로 "왜요?"라는 말이 나왔다. 문자로는 드러나지 않는 감정이지만, "경기를 끝내는 합당한 이유가 있지 않으면, 큰일 날 줄 알아. 아니 합당한 이유가 있어도 안 돼" 정도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체육대회, 지루한 입시생활을 보내는 고등학생들에게 몇일 안되는 해방구 아니던가. 그런데 그런 체육대회에서, 우승 트로피를 가져올 수 있는 순간을 방해하다니! 어떤 이유도 용납되지 않았다. 알고 보니 총동문회 행사 '준비'가 체육대회를 중도에 마쳐야 하는 이유였다. 학교의 오랜 역사를 함께한 선배들이 행사를 해야 하니 후배들은 행사 준비를 좀 하라는 의미였다.

애초에 반골 기질이 강한 나로서는 납득할 수 없는 이유였다. 당연히 항의했지만, 철저히 외면됐다. 그 이후 학년별 교무실을 차례로 드나들며 선배님이자 선생님인 학교의 고귀한 역사와 자랑을 곁들인 훈계를 들어야 했다.

졸업 후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학교 동문회를 위해 체육대회를 중단해야 하는 이유는 납득이 되지 않는다. 동문회의 중요성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학생들의 권리이자, 힘든 학교생활의 탈출구인 체육대회의 취지를 묵살할 만큼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동문회와 체육대회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를 물을 때, 다양한 답변이 나오겠지만, 그 질문은 학교의 주인은 누구이며, 학교의 일은 누구를 중심으로 돌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답이기도 하다.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변함없는 생각은 '현재 학생인 아이들'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학교의 주인은 학생들이며, 학생들을 중심으로 학교 일정은 진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코로나 시대를 겪으며 다시금 느끼는 것은 학교 현장은 언제나 '학생'들이 중심이 되지 못하는 곳이라는 것이다. 이른 아침 등굣길에 나서는 것이 아닌 컴퓨터 앞에 앉아 줌 수업에 접속해야 하는 아이들, 아무도 없는 집에 홀로 우두커니 있어야 하는 아이들을 생각해보면 더욱 그렇다.

코로나로 인해 '정상 등교'라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신조어가 생겼다. 등교면 등교인 것이지 정상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코로나가 파괴한 교육 현장을 여실히 드러내는 단어인 것 같다. 정상적이지 않은 모습에 정상이라는 단어를 붙여야 하는 비정상적인 모습, 그 가운데서 가장 많은 것을 피해 보는 것은 '현재 학생'들이다.

2020년 3월 중학교에 입학해 올해 2학년이 된 친구가 언젠가 이런 말을 했다. "공부는 집에서 하는데요, 시험은 학교 가서 봐요. 시험 보러 학교 가요." 처음엔 웃어넘겼지만, 친구의 말을 곱씹을수록 자조가 섞여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학교는 '공부하는 곳'이 아닌 '시험 보러 가는 곳'이 되어버린 것. 

이렇게 학교는 무너졌고, 아이들은 학교를 제대로 경험해보지 못한 채 학교에 다니고 있다. 그런데 교육 당국의 관계자, 높은 사람들은 연일 TV나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와서 코로나 시대 학교 현장엔 빈틈이 없으며, 비대면 상황 가운데서도 교육 당국은 잘 대응했음을 밝히며 자화자찬에 빠져있다. 어느 도교육청의 모 교육감은 필자에게 "코로나 시대 교육 현장에서 가장 성공적인 성과를 이뤄낸 곳은 우리 교육청밖에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일부 교사들은 줌 수업을 제대로 진행하지 못해, 유튜브에 올라온 영상을 아이들에게 공유해 수업을 대체하고, 그 수업을 다 들었는지를 체크하며 출석을 확인한다. OO학교 O학년 O반이라는 단톡방에는 '"OO아, 국어‧영어 수업 안 들었네. 수업 들어"라는 교사의 메시지와 '네'라고 답하는 학생들의 무의식적인 답변만 가득하다. 이것이 정말 학교 수업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교육 현장의 모두가 총동문회와 같은 행사에만 몰두하는 것 같다. 교육의 본질을 알지 못한 채, 아이들에게 필요한 진정한 교육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코로나가 망가뜨린 교육의 가치를 파악하지 못한 채, 여러 행사에만 집중하며 비정상적인 성과, 업적을 강조하며 자축하고 있다.

이해관계가 얽힌 몇몇 인물에게는 좋은 일이 될 수도 있겠으나, 교육에 있어 가장 큰 이해관계를 가진 학생들의 삶이 무너지고 있다. 이렇게 조금씩 무너지는 아이들의 삶은 나중엔 감당하지 못할 위기로 되돌아올 것이다. 무엇이 중요한가를 다시 생각해 볼 때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학생들' 이다.

태그:#코로나시대의교육, #팬데믹과교육, #학생, #학교,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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