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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우영우는 서울대 로스쿨을 수석졸업하고, 법조문을 통째로 외우며, 변호사 시험 최고점을 맞을 정도의 실력자다. 그러나 그를 받아주는 로펌은 없다. 우영우가 자폐 스펙트럼을 가졌기 때문이다. 어찌저찌 법무법인 한바다에 들어갔지만 동료들은 우영우와 함께 일하길 꺼려하거나, 그의 자폐를 고깝게 바라보기만 할 뿐이다.

세계적인 발달정신병리학자인 사이먼 배런코언의 <패턴시커; 자폐는 어떻게 인류의 진보를 이끌었나>는 알과 조나, 두 사람의 일화를 소개하며 시작한다. 두 사람은 마주치는 모든 것에 의문을 가지고, 실험하고 분류하며 패턴과 시스템을 분석하고 이해한다. 사회적 통념이 아닌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기에 가족들과 이웃들에게 불편을 끼치기도 하지만, 그들이 관심을 가지고 몰두하는 분야에서 얻는 성취는 놀랍다.

저자는 알과 조나 두 사람을 '고도로 체계화 하는 사람'이라 말한다. 두 사람의 행동은 하나의 렌즈로 보면 극도의 강박증세를 가진 사람이고, 자폐라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지만, 다른 시각에서 보면 위대한 뭔가를 발명해낼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이다. 실제로 호기심 충만했던 알은 전구를 발명한 토마스 에디슨이다.

고도로 체계화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은 발명가가 되거나 과학이나 수학, 법학, 그리고 예술 분야에서 놀라운 성과를 낼 수도 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우영우는 저자의 관점에선 법학의 영역에서 고도로 체계화하는 능력이 발휘된 사람이다.

저자에 따르면 인류에게는 '만일(if)-그리고(and)-그렇다면(then)'의 체계화 메커니즘과 '남과 자신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인 공감 회로가 있다. 체계화 메커니즘은 인류가 도구를 발명하고 사용하며 문명을 발전시키는데 기여했고, 공감 회로는 소통의 도구로써 공동체 형성에 기여했다.

오늘날 평균의 범주에 속하는 사람들(자폐 진단을 받지 않았고, 자폐적 특성이 없는 사람)은 체계화 능력과 공감 회로가 각각 적당히 발휘되어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감에 있어 큰 불편이 없다. 그러나 고도로 체계화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자폐 진단을 받았거나, 자폐적 특성을 보이는)은 공감 회로가 상대적으로 약하게 작동하거나 아예 작동하지 않는다.

시야가 좁고, 타인에 대한 고려가 없다. 따라서 사회적 상호작용에 어려움을 느낀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우영우가 아무에게나 자기가 좋아하는 고래 얘기를 꺼내 상대방을 당황시키는 것이 아마도 이에 해당하겠다. 자폐인은 자신만의 고유한 패턴으로 체계화시킨 세상에서 타인의 생각과 저마다 가진 의사소통 행위의 다양성을 수용하는데 어려움을 가진다.

사이먼 배런코엔은 자폐 진단을 받은 사람(그 중 지적장애가 없는)이나 진단을 받지 않더라도 자폐적 특성(고도로 체계화하는 능력)을 보이는 사람들에 대한 기존의 편견을 버리고, 좀더 넓은 시야를 통해 이들을 바라볼 것을 요구한다. 체계화 메커니즘(만일-그리고-그렇다면)이 기계 장치의 발명 뿐 아니라, 도덕률과 정의의 기준을 정한 법체계 등 모든 시스템의 발명을 통해 인류사회의 발전에 기여했기에, 이들이 각 분야에서 발휘하는 '고도로 체계화하는 능력'은 전혀 예상치 못한 영역에서 인류의 역사에 남을 성과를 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를 실리콘 밸리의 연구원을 대상으로 실험한 내용으로 뒷받침한다. 실리콘 밸리는 고도로 체계화하는 능력을 가진 연구원들이 많았고, 이들이 서로 결혼해 낳은 자녀들 또한 대다수 부모와 같은 성향을 보였다. 그리고 이들이 실리콘 밸리에서 만든 성과는 놀라운 것이었다. (대표적인 사례로 빌 게이츠, 일론 머스크, 그리고 스티브 잡스 등이 있다.)

서두에 제시했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자폐를 가진 변호사가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고, 여러 도전을 겪으며 성장하는 과정을 재미나게 그려냈다. 하지만 현실 속 다수의 자폐인에겐 우영우와 같은 특출한 능력이 없기에, 드라마가 현실을 왜곡시킨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실제로 우리가 삶에서 마주하고 경험하는 자폐인의 대다수는 우영우와 같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저자가 제시하는 새로운 시각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비자폐인의 시각에선 자폐인의 독특한 행동의 원인에 대해서 판단하기가 쉽지 않고,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따라서 자폐를 가진 자들은 단순히 치료의 대상이자, 격리의 대상으로만 여길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그들의 행동이 만물에 잠재된 패턴을 찾고, 세상을 체계화하는 과정에서 비롯된 것임을 인지하고 그것을 극대화할 수 있게 도와준다면 우리는 자폐인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는 동시에 그들이 스스로를 사회구성원이라 인식하는 소속감을 제공할 수 있다.

고도로 체계화하는 사람들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끌어내기 위해서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그들의 특성이 적절한 자원과 보살핌 등에서 잘 육성될 수 있게끔 돕는 것이다. 이것을 위해선 그들의 특성에 적합한 맞춤교육과 강점을 살릴 수 있는 '좁고 깊은' 교육이 필요하다. 전문가적인 정신(혹은 가능성)을 가지고 태어난 존재가 그 전문성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사회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다수의 비자폐인을 중심으로 설계된 우리의 문화와 사회가 먼저 크게 변화되어야만 한다.

우리 모두의 마음 일부는 자폐 성향에 걸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따라서 우리는 자폐와 무관하지 않다. 자폐를 자세히 들여다본다면 우리는 그 속에서 나의 뇌, 나의 마음, 그리고 인류 정신에 대해 통찰할 수 있다.

우리의 뇌는 끊임없이 많은 것을 체계화하고, 패턴을 찾으며, 분류한다. 그리고 그것을 공동체를 통해 나누며 진보한다. 자폐를 가진 이들은 체계화하는 능력이 고도로 발달한 탓에 공감회로가 상대적으로 힘을 쓰지 못하는 것이다. 키가 작은 사람이 높은 곳에 위치한 물건을 꺼낼 수 없다고 해서 그가 그릇된 것이 아니듯이, 모든 자폐인은 틀리지 않다. 그저 다를 뿐이다. 각자의 다름을 가지며 살고 있다.

다행히도 인간이 가진 체계화 능력은 서로 다른 사람들끼리도 조화롭게 살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각자의 다름을 인정하는 것을 넘어 그 다름을 다양하게 발휘할 수 있는 사회가 만들어진다면 우리는 새로운 혁신을 마주할 수 있다. 즉 자폐인과 비자폐인이 조화를 이루며 사는 것이 인류역사의 진보에 한 걸음을 남기는 것이라는 사실, 이것이 내가 <패턴 시커>를 통해 도출해 낸 결론이다. 

덧붙이는 글 | 기자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


패턴 시커 - 자폐는 어떻게 인류의 진보를 이끌었나

사이먼 배런코언 (지은이), 강병철 (옮긴이), 디플롯(2024)


태그:#사이먼배런코언, #자폐, #패턴시커, #북리뷰,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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