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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4월 3일. 하루에 꼬박 두 갑씩 피워대던, '골초'였던 나는 담배를 끊었다.
 2004년 4월 3일. 하루에 꼬박 두 갑씩 피워대던, "골초"였던 나는 담배를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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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4월 3일. 절대 잊을 수 없는, 내겐 아주 특별한 날이다. 그 힘들다는 담배를 끊은 날이다. 그날 이후 15년이 지난 지금껏 단 한 번도 담배를 입에 댄 적이 없으니, 내 인생을 통틀어 기념비적인 날임이 틀림없다.

당시 내 금연은 주변 지인들에게도 연일 화젯거리였다. 하루에 꼬박 두 갑씩 피워대던, 말 그대로 '골초'였기 때문이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담배를 찾았고, 직전에 담배를 피우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았다. 당시 4살이었던 아이는 아빠의 체취를 담배 냄새로 기억할 정도다.

작심삼일로 끝날 거라며 내기를 거는 이도 많았고, 갑자기 하지 않던 일을 하면 죽음이 임박한 것이라며 조롱하는 이도 있었다. 스스로 호주머니에 담배가 들어 있지 않으면 불안해 안절부절 못할 정도였으니 그럴 만했다. 하지만 내기에서 보란 듯 이겼다.

담배를 끊은 사람과는 상종하지 말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만큼 금연이 힘들 거라 했지만, 의외로 쉽게 끊었다. 이후 흡연 욕구를 거의 느끼지 못했을 정도로 강렬한 동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외부로부터의 자극이었지만, 이내 자발적인 결심으로 이어졌다.

'골초'인 나는 그날 담배를 끊었다

"담배를 즐겨 피우시는 선생님들이 저희에게 금연 교육을 한다니 좀 황당해요."

당시 한 아이가 비웃듯 내뱉은 말이다. 순간 망치로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생활지도를 한답시고 아이들을 앞에 앉혀놓고 입에서 담배 냄새 풍겨가며 나무라는 교사의 모습에 일침을 가한 것이다. 그때 난 쭈뼛거리며 그를 차마 혼내지 못했다.

'바닷게의 우화'가 떠올라 오히려 그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질 못했다. 그를 교실로 돌려보낸 뒤 그의 질문 아닌 질문에 대한 답변을 종일 고민했다. 명색이 교사로서, 그것은 논리적이면서도 교육적인 '모범 정답'이어야만 했다. 그가 수긍할 수 없다면, 그건 교육이 아니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적당한 답변이 떠오르지 않았다. 여태껏 아이들로부터 그런 질문을 받아본 적이 없었던 터라, 애면글면 고민하는 자신의 모습조차 낯설었다. 동료 교사들에게 도움을 청하기도 했지만, 그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그 아이를 나무라기 바빴다.

예나 지금이나, 그에게 건넬 수 있는 답변은 다음의 둘 중 하나다. 하나는, 법적으로 만 19세까지는 담배를 피워서도 안 되고, 구매할 수도 없다는 것. 또한, 학교마다 교칙에 학생의 흡연 행위는 적발 시 처벌하도록 규정되어 있다는 것. 말하자면, 이는 법을 지키라는 강제다.

다른 하나는, 담배는 폐암을 비롯한 여러 질병을 유발하는 원인으로, 특히 청소년의 건강에 해롭다는 걸 강조하는 것이다. 대개 어려서 흡연할 경우 끊기가 더욱 어려워 애초 피우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설명도 덧붙인다. 이는 건강의 측면을 부각하는 설득이다.

과연 이런 '모범 정답'이 아이들에게 먹힐까. 규정에 관한 것이든, 건강에 대한 염려든, 이를 모르는 아이는 없다. 교사 앞에서 듣는 시늉은 하겠지만, 이내 감화되어 담배를 끊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교사 역시 그런 지도와 처벌이 금연으로 이어질 거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극소수 되바라진 아이들은 교사에게 대들 듯 이렇게 되묻기도 한다. 기준연령을 만 19세로 정한 까닭이 무엇인지, 또, 흡연이 청소년의 건강에만 해롭고 성인들에겐 괜찮다는 건지를. 흡연이 누구에게나 백해무익하다는데 왜 청소년의 흡연만 문제 삼느냐고 따지기도 한다.

그를 도저히 납득시킬 수 없어 난 그날 대번에 담배를 끊었다. 과민 반응인지 모르지만, 아이의 조롱을 듣는 순간 교사를 그만두든가 담배를 끊든가 양자택일하라는 엄포처럼 느껴졌다. 담배를 끊지 않으면 더는 교사로서 실질적인 금연 교육이 불가능할 것이라 여겼다.

적어도 내게 담배를 끊는 건 교사로서 자존감을 지탱하는 일이었다. 무릇 교사란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보여주는' 사람이라는 걸 지론으로 삼아온 터다. 아이들에게 독서를 권하려면, 교사 먼저 책을 읽어야 하는 법이다. 담배를 끊는 것이라고 다를까 싶었다.

교사는 '보여주는' 사람

갑자기 15년 전의 일이 주마등처럼 스친 이유가 있다. 이번 주 교직원 회의 시간, 느닷없이 교사의 흡연 문제가 도마 위에 올라 교사들끼리 언쟁이 벌어졌다. 학교 울타리 주변에 설치된 흡연 장소를 폐쇄해야 한다는 주장과 교사의 흡연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이 맞부딪혔다.

겉보기에는 혐연권과 흡연권의 충돌이었지만, 익숙한 관행을 문제 삼는 것에 대한 반작용이기도 했다. 20여 년 전 초임 시절만 해도, 원체 흡연 교사의 수도 많았을 뿐더러 원로 교사의 경우 교무실과 복도에서 대놓고 담배를 피우기도 했다. 지금이라면 상상조차 못 할 일이다.

당시 서랍에 재떨이를 넣어둔 모습에 혀를 내둘렀지만,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교실에서 담배를 피웠다면서 '무용담'을 늘어놓곤 했다. 이후 교실에서 복도로, 교무실에서 야외 운동장으로 시나브로 흡연 공간은 축소되었고, 이젠 울타리 밖 외진 곳으로 밀려났다. 지금의 흡연 장소는 동료 교사들끼리 '납골당'으로 별명 지어 부를 만큼 추레해졌다.

법적으로 학교 주변에 흡연 장소를 두는 건 잘못이다. 국민건강증진법 제9조 4항은 학교와 병원 등 모든 공공시설을 절대 금연구역이라고 못 박고 있다. 아울러, 지방정부마다 조례를 제정해 학교 울타리 밖 일정 거리까지도 금연구역으로 지정해 흡연 행위를 일절 금하고 있다.

금연 문화의 확산을 유도하고 간접흡연의 위험을 경고하기 위한 취지다. 국민 다수의 호응을 얻고 있어 공공시설 외에도 금연구역이 시나브로 확대되는 추세다. 위반 시 과태료도 인상하고 단속도 강화하겠다는 방침이 잇따르고 있어 흡연자의 설 자리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그런데도 많은 학교에서 담배를 피우는 교사들을 위해 별도의 흡연 장소를 마련해두고 있는 게 현실이다. 아이들의 눈에 띄지 않는 울타리 근처에 컨테이너 박스 등을 설치해 그곳에서만 담배를 피우도록 나름 제한한 것이다. 담배 피우는 교사들을 위한 최소한의 배려다.

지금껏 묵인해 왔던 흡연 장소를 폐쇄하면, 교사들은 담배를 피우려면 교문 밖을 한참 걸어 나가야만 한다. 비교적 여유로운 점심시간이면 모를까, 수업 사이 10분 동안의 쉬는 시간을 이용해 다녀올 순 없는 일이다. 일과 중 흡연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다.

법대로라면 흡연권을 주장하는 교사들의 요구는 받아들여질 리 만무하다. 법원의 판례에서 보듯, 법적으로 아무런 하자가 없고 논리가 팽팽히 대립하는 상황에서도 흡연권은 늘 혐연권의 벽을 넘지 못했다. 하물며 절대 금연구역으로 지정된 학교에서라면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결국, 폐쇄하되 잠시 유예하는 것으로 타협하는 모양새가 됐다. 유예 기간이 일주일이냐 한 달이냐를 두고 설왕설래가 이어졌지만, 묵인 속에 존치돼온 흡연 장소는 조만간 사라지게 될 듯하다. 다만, 흡연 교사들의 불만이 팽배해 여전히 갈등의 불씨는 남아 있다.

몇몇은 학교 주변에서 아예 담배를 못 피우게 할 거면, 교사 임용 과정에서 흡연자를 뽑지 말라며 발끈했다. 그런가 하면, 담배 피우는 교사를 몰아세울 게 아니라 담뱃값을 올리는 등 아이들이 쉽게 담배를 구매할 수 없도록 하는 게 근본 대책이라며 성토하는 이들도 있다.

'풍선 효과'를 걱정하는 교사도 있다. 단속과 규제 일변도로 가게 되면, 음성화되고 편법이 난무할 거라는 우려다. 수시로 금연 교육을 하고 교내 흡연에 대한 처벌이 날로 강화됐지만, 흡연 학생 수가 줄기는커녕 도리어 늘어났다면서, 흡연 장소의 폐쇄가 능사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찬성이든 반대든 모두 일리 있는 이야기다. 하지만, 법과 현실을 내세우기 전에, 아이들 앞에 귀감이 되어야 하는 교사의 직분을 먼저 떠올렸으면 좋겠다. 담배를 피우는 교사가 금연 교육을 하는 것은 아이들에게 '담배는 나중에 졸업한 뒤 피워라'는 말밖에 안 된다.

이걸 금연 교육이라고 할 순 없다. 가정에서 자녀에게 담배를 권하거나 방치하는 부모는 없다. 학교에서 담배 피우는 아이들을 나 몰라라 한다면 교사의 책무를 방기한 것이다. 비흡연자 부모의 자녀가 흡연율이 낮다는 건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다.

교사의 금연이야말로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금연 교육이라는 이야기다. 금연 교육뿐만 아니라, 학교 교육이 아이들에게 실질적 교육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법과 규정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 며칠 전 수업 시간에 한 아이가 건넨 일갈이 정곡을 찔렀다.

"교육 효과로 치면, 선생님들의 솔선수범이 교칙에 우선한다고 생각해요."

태그:#금연구역, #국민건강증진법, #금연교육, #흡연권, #혐연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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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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