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특별한 이벤트가 아닌 일상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윽한 꽃 향기가 풍기는 아담한 꽃집 속의 청년은 연신 싱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곳곳을 장식하는 포스터와 음악 그리고 꽃들까지, 고유한 취향으로 가득한 자신만의 공간. 누구나 한번쯤 꿈꾸는 나만의 공간이 있다면 이런 곳이 아닐까.
과거 잠시 이태원에 살았을 때 꽃을 사려다가, 우연히 이곳 'Park flor'(박플로)를 알게 됐다. 남자가 꽃집을 운영한다는 것이 인상깊었다. 기존 꽃집과는 다르게 공간을 채우고 있는 음악과 사진들이 매력적이기도 했다. 지난 8월 29일, 박플로의 대표 박준석(32) 플로리스트를 인터뷰 했다. 꽃을 다듬는 그의 손길에서 자신의 직업과 공간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 느껴졌다.
- 'Park flor'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이름은 어떤 의미인가요?
"이태원 경리단길에 있는 골목 꽃집입니다. 운영한지는 4년 정도 됐어요. 'Park flor'라는 이름은 단순하게 저의 성인 '박'과 플로리스트의 '플로'를 따서 지은 겁니다. 원래 저의 닉네임이기도 하고요. 이름에 저라는 사람과 가게에 대한 모든 것들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죠."
- 매장 인테리어가 무척 독특한데요. 편집 숍 같은 느낌도 들고요.
"특별히 의도한 건 아니에요. 제 취향으로 조금씩 채워가다 보니까 지금의 분위기가 만들어진 것 같네요. 평소 제 기분에 따라서 소품도 배치하고 구조도 자주 바꾸는 편이에요. 특별한 게 있다면 다른 꽃집과는 달리 꽃을 보관하는 냉장고가 없습니다. 꽃들이 냉장고에 있는 것보다는 밖에 나와 있는게 자연스러워서 좋더라고요. 물론 그만큼 관리하기는 힘들지만요."
- 플로리스트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원래는 해군 부사관 출신이에요. 큰 뜻 없이 시작했던 거고 군 전역 때까지는 아무런 계획이 없었어요. 그냥 노는 아이였죠(웃음). 그러다가 군대 말년 쯤 지인이 운영하는 웨딩홀에서 잠깐 일을 도와줬던 적이 있었어요. 그때 우연히 어떤 남자 플로리스트를 보게 됐는데 그분이 무척 인상 깊었어요. 그날 이후로 막연히 플로리스트라는 직업에 관심을 갖게 됐는데 왠지 저랑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처음으로 하고 싶은 일이 생겼던 거죠. 일을 시작해보니까 저랑 잘 맞아서 평생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느꼈어요."
- 다른 분야의 일을 시작하면서 겪었던 어려움은 없었나요?
"어려운 점보다는 아쉬운 점이 더 크죠. 사람들이 꽃을 많이 찾지 않아서요. 꽃을 친숙한 존재로 느끼기 보다는 이벤트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제가 들이는 시간과 노력만큼 보상으로 이어지지 않는 점이 가장 아쉬워요."
- 플로리스트라는 직업은 어떤 매력이 있나요?
"사람들의 반응을 바로 확인할 수 있는 직업이라 좋아요. 헤어 디자이너 같은 경우도 작업을 하면서 손님의 반응을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잖아요. 플로리스트도 바로바로 피드백이 오는 직업이라는 점이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결과물을 보고 사람들이 즐거워하고 행복해할 때 기분이 좋거든요. 꽃 같은 경우도 각자 종류마다 관리하는 방법이 다 다르니까 엄청난 정성이 필요한 일인데 그런 면이 신기하고 재밌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 벌써 6년 차 플로리스트네요. 그동안의 성장과정은 어땠나요?
"군 제대 후에 1년 동안 호주에 있었어요. 뭘 할지 몰라서 잠시 도피했던 거죠. 그리고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웨딩홀에서 만났던 플로리스트에게 연락했어요. 바로 그분 밑에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벤트 위주로 진행하는 큰 회사였는데 1년 동안 일하면서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었어요. 외국 출장도 많이 다녔고요. 그 이후로 호텔에서 일을 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단순한 꽃집에서 일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제 손으로 직접 상품을 만들고 싶었던 거죠. 나만의 것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 이태원에서 꽃집을 시작한 이유가 있나요?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에요. 일단 경리단길 문화가 좋기도 하고 DJ인 친 형이 이곳에서 일을 하고 있어서 자연스럽게 오게 됐어요. 저도 서울 초년생이었기 때문에 다른 곳은 잘 모르기도 했고요.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경리단길이 크게 복잡하지 않아서 더 독특했죠. 눈치를 안 보는 동네니까 좀 더 자유롭고 편안한 분위기에 끌렸던 것 같아요. 지금은 상권이 많이 죽어서 예전 같지 않지만요."
- 운영하면서 느끼는 고충이 있다면요?
"4년 차긴 하지만 첫 사업이다 보니 다음 단계는 어떻게 밟아 나가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지금까지는 생각한 대로 다 됐는데 이후로 확장하는 게 힘든 것 같아요.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지 갈림길에 서 있는 기분입니다. 처음 가게를 차렸을 때 1, 2년 정도는 붕 떠있었거든요. 이 공간을 갖게 된 것 자체가 좋아서 사람들끼리 파티도 자주 했는데 3년 차부터는 현실적인 고민이 들기 시작했어요. 이태원 상권이 죽는 것과 관련한 것도 있고요. 오가는 사람이 많이 없다보니 아무래도 장사하기가 힘든 것 같습니다."
- 이곳만의 스타일이나 콘셉트는 뭔가요?
"제 취향을 반영한 꽃을 판매해요. 화훼시장에 가서 그때마다 저희 가게 분위기에 어울리는 것들을 많이 삽니다. 스타일은 손님들에게 맞추는 편이고요. 예를 들면 그 사람의 취향이나 취미, 평소 생활 패턴을 참고해서 거기에 저만의 스타일을 가미하는 거죠. 사람들에게서 영감을 많이 받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단골손님들은 '박플로 스타일대로 해주세요' 하고 그냥 맡기세요."
- 이 꽃집의 지향점은 뭔가요?
"저라는 사람 자체 그리고 플로리스트로서의 박준석을 좀 더 알릴 수 있는 곳이었으면 해요. 사람들은 독특한 특징이 있는 공간을 오래 기억하잖아요. 그렇게 박플로라는 꽃집도 사람들에게 특색 있는 공간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사실 어디서하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제가 좋아하는 것들과 사랑하는 사람들로 채워나가는 데 신경 쓰고 싶어요. 시음회나 파티도 하고 재밌는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어요.
저만의 아뜰리에를 만들고 싶어요. 지금 이 공간은 다른 것들을 하기에는 많이 좁아서요. 여러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싶은데 현실적으로 쉽지가 않아서 고민 중이에요. 하나의 복합문화공간처럼 만들고 싶거든요. 사람들이 꽃을 많이 찾게 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멋있고 재미있는 공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