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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성에서 문산 방향으로 37번 국도를 달리다가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자장리 부근 대로변에 낯선 간판이 서 있어 호기심에 차를 세웠다. 간판을 보니 '북한군/ 중국군 묘지안내도' 라는 간판과 함께 제1묘역, 제2묘역으로 표시된 입간판이 함께 서 있었다. 나중에 이곳이 '적군묘지', '북한군묘' 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곳은 통행을 저지하는 군인이 지키는 것도 아니고 이곳에서 고성방가를 하지 말라고 하는 정도의 경고문구만 있었을 뿐 출입이 자유로웠다. 전체적으로 잘 단장된 공원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 안으로 들어가니 간이 화장실이 있었고 이 묘역을 설치하는 안내판이 서 있었다. 안내판의 제목은 '북한군/ 중국군 묘지' 였다. 

"이곳은 6.25전쟁(1950.6.25.-1953.7.27.)에서 전사한 북한군과 중국군 유해, 6.25전쟁 이후 수습된 북한군 유해를 안장한 묘지입니다. 대한민국은 제네바 협약과 인도주의 정신에 따라 1996년 6월 묘역을 구성하였으며, 묘역은 6,099㎡로 1묘역과 2묘역으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묘역은 왼편이 1묘역으로 북한군 유해만 안치되어 있고, 오른편이 2묘역으로 북한군과 중공군의 유해가 함께 안장되어 있었다. 여름 한낮의 열기가 내려 쬐는 묘역의 잡초 속에서는 아름다운 원추리 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이곳은 6.25때 임진강을 넘어온 북한군과 중공군의 유해와 6.25이후 1.21사태처럼 북한의 공비침투 등으로 사망한 북한군 유해도 함께 안장되어 있다. 

정부는 2014년3월 28일 중국군 유해 437구를 직접 중국으로 소환했다. 이들 유해는 중국 내 6·25전쟁 전사자 안장시설인 '항미원조열사능원'에 안치되었는데 기존의 전사자 묘역과 구분해 별도 시설에 안치했다고 한다. 우리 정부는 지난 1997년까지 43구의 중국군 유해를 판문점 군사정전위원회를 통해 중국 측에 인도한 바 있다. 그 이후에는 북한 측의 인수 거부로 송환이 중단된 가운데 내려진 조치였다. 

예전의 자료들을 보면 1996년 묘역 조성 당시에는 봉분의 형태로 묘를 만들고 그 앞에 일련번호를 매긴 나무 팻말을 세웠으나 지금은 평장을 하고 육안으로 보면 가로 30㎝, 세로 25㎝ 이내의 평비석 형태로 조성되어 있다. 묘비명이 '무명인'으로 되어 있는 비석도 많은데 이는 한국전쟁의 치열함을 대변해 준다. 누군가는 왜 적군의 묘역을 만들었는가 하고 불만을 가질 수 있다. 이는 전쟁과 포로에 관한 인도주의 원칙인 제너바 협약에 따른 조치다. 하지만 실제로 이런 묘역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다고 한다.

사람의 죽음은 이데올로기를 초월하는 용서와 화해의 힘이 있다. 꼭 전쟁을 이야기 하지 않더라도 원수들 사이이거나 서로 다투던 형제들 사이에도 상대가 죽거나, 부모가 죽으면 다 돌아와 함께 장사를 지내며 화합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이 유한한 시간을 살다 가는 인간의 숙명이다. 그래서 어떤 죽음이든 헛된 죽음은 없으며, 죽음의 순간만은 모두 숙연한 가운데 모든 것을 용서하고 놓아주기도 한다.

적군묘지가 6.25의 치열한 전장이었던 이곳 파주 적성에 있다는 사실이 별스럽지 않다. 하지만 아직도 갈 수 없는 북녁 땅을 바라보면 전쟁의 상처가 아물지 못한 우리 시대의 아픔과 치열한 전장과 같은 삶을 살아야 하는 우리 자신들의 처지도 생각하게 된다.
             
수년 전 이곳에 온 시인 구상(具常, 1919-2004)은 '적군 묘지 앞에서' 라는 시를 남겼다. 이 시에서 그는 적군병사의 죽음을 애도하고, 죽음은 미움과 사랑을 초월하는 힘이 있음을 설파하였다. 그리고 지금도 계속되는 분단의 아픔과 진정한 화해와 통일을 바라는 애타는 마음을 노래했다. 어서 통일이 와서 우리의 남은 반쪽과 합쳐서 하나 된 대한민국의 신명 나는 역사를 써야겠다.    


오호, 여기 줄지어 누워 있는 넋들은
눈도 감지 못하였겠구나.

어제까지 너희의 목숨을 겨눠
방아쇠를 당기던 우리의 그 손으로
썩어 문들어진 살덩이와 뼈를 추려
그래도 양지바른 두메를 골라
고이 파묻어 떼마저 입혔거니,

죽음은 이렇듯 미움보다도, 사랑보다도
더 너그러운 것이로다.

이곳서 나와 너희의 넋들이
돌아가야 할 고향 땅은 삼십 리면
가로막히고, 무주공산(無主空山)의 적막만이
천만 근 나의 가슴을 억누르는데,

살아서는 너희가 나와
미움으로 맺혔건만,
이제는 오히려 너희의
풀지 못한 원한이
나의 바램 속에 깃들여 있도다.

손에 닿을 듯한 봄 하늘에
구름은 무심히도
북(北)으로 흘러가고,

어디서 울려오는 포성(砲聲) 몇 발,
나는 그만 이 은원(恩怨)의 무덤 앞에
목 놓아 버린다.(구상, '적군묘지 앞에서', 전편)


북한군/ 중국군묘지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자장리 37번 국도상 소재



태그:#한국전쟁, #적군묘지, #북한군, #중공군, #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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