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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같은 경찰, 친구 같은 주민."

얼마 전 언론에서 본 '인권과 경찰'을 주제로 한 경찰의 기고 글(대구일보, <국민들의 인권과 경찰의 인권 >)에 있는 문장이다. 나는 경찰이 '친구' 같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건 소방관도 그렇고 동사무소 직원도 마찬가지고 검찰도 그렇다. 그리고 내가 경찰에게 '친구' 같은 주민이 될 생각도 없다.

다만 우리는 서로 마주한 인간으로서 존중하고 권리를 지키기 위해 애쓰며 직무에 대해 신뢰할 수 있는 관계면 된다고 생각한다. '친구 같은'이란 표현은 아마 시민에게 좀 더 다가간다는 친근함에 대한 표현인 것 같은데 과연 인권이 친근함이나 친절함으로 나타나는 것일까?

'인권경찰'이라는 공허한 구호

이철성 경찰청장이 지난 6일 오전 경기도 의정부시 금오동 경기북부지방경찰청에서 열린 경기북부 경찰특공대 창설식에서 축사하고 있다.
 이철성 경찰청장이 지난 6일 오전 경기도 의정부시 금오동 경기북부지방경찰청에서 열린 경기북부 경찰특공대 창설식에서 축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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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동안 종종 경찰에게 '친구 같은' 주민은커녕 일반 시민도 아니었다. 집회에서 만나는 경찰은 늘 나를 가로막으면서 "당신은 일반 시민이 아니니까 더 이상 갈 수 없다"는 말을 했다. 나의 집회·시위의 권리는 언제나 범죄자 취급을 당하는 이유가 되었고 끊임없이 경찰서에 가야만 했다. 2008년부터 지금까지 두 번 연행됐고 6건의 사건으로 재판을 했고 지금 기소가 될락 말락한 사건이 하나 대기 중이다. 경찰서는 아무리 자주 가도 늘 긴장되고 익숙해지지 않는다. 경찰은 언제든지 맘만 먹으면 나의 모든 것을 뒤지고 범죄자로 만들 수 있다는 불안이 쉽게 가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반 시민도 되지 못하는 나는 '친구 같은'이라는 표현에 꽂혀서 경찰이 '인권'을 말하면서 왜 이런 표현을 하는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인권 경찰'이라는 키워드로 검색을 해보았다. 엄청나게 많은 기사가 나왔다. 경찰이 최근 언론기고를 비롯해 각종 인권교육과 행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몇 개의 기고 글을 살펴봤다. 대부분, 인권은 중요한 가치이고, '인권경찰'은 시대 요구이니 변화해야 하고, 지금까지도 노력했지만 앞으로 더욱 노력하겠다는 다짐(?) 같은 내용이다. 다 좋은 말 같지만 공허하기도 하고 경찰들이 생각하는 '인권경찰'이 뭘까 의문스러워진다.

"국민은 경찰이 제공하는 공공의 서비스를 받는 고객이다. 어떤 경찰관에게 도움을 청하더라도 친절하고 믿을 수 있는 결과가 나타날 때 국민의 경찰에 대한 신뢰는 향상될 것이다." (전북도민일보, <인권을 최우선으로>

"치안현장의 법집행 과정에서 예견되는 인권침해 사례가 없도록 철저한 준비로 국민들에게 고품격의 치안서비스를 제공하여 신뢰받는 경찰상을 정립하여야 할 것이다."
(중도일보, <[경찰의 눈]인권침해 방지를 위해 최선을 다하자!>

"범인을 얼마나 잘 잡는 것에 국한되지 않고 국민들에게 얼마나 친절하고 관심을 가지는지, 정성을 다하는지가 경찰 업무수행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대구신문, <새로운 시대, 국민들의 새로운 요구 '인권경찰'>)

경찰은 '인권 경찰'의 길을 선량한 시민을 위한 친절한 서비스 제공으로 인식하는 것 같다. 그러나 '선량한 시민'이 되지 못하는 나는 다른 것에 대해 더 말해주길 원한다. 집회에서 경찰이 길을 막으면서 왜 막는지 단 한 명도 설명해주지 않는지, 노란 리본을 달면 왜 길을 막는지, 경찰의 소속과 이름을 왜 말해주지 않는지, 채증카메라에 찍힌 수많은 사람 중에 날 어떻게 찾았는지, 청와대 부근에서는 투쟁구호가 적힌 조끼를 입으면 왜 기자회견도 할 수 없는지, 광화문 근처는 왜 집회금지 통보를 하고 차벽으로 꽁꽁 싸매는지. 선량한 시민에 대한 친절만이 아니라 정부의 반대자가 되어 시민의 권리를 행사해도 내가 범죄자가 되지 않을 수 있는지 알고 싶다.

인권 교육, '허울' 뿐인 걸까?

'인권경찰'은 수사권 조정을 앞둔 경찰의 새 옷이 된 것 같다. 새 옷을 입고 선보이느라 여념이 없어 언론사에 기고도 하고, 교육도 하고, 워크숍과 간담회도 한다. 인권영화제나 인권 배지, 인권다짐카드를 만드는 행사도 하느라 요즘 경찰이 무척 바빠 보인다. 특히 경찰청은 지난 6월 22일부터 오는 31일까지 40일 동안 17개 지방경찰청과 252개 경찰서에서 '전국 경찰관서 인권 감수성 향상을 위한 특별 인권교육'을 진행 중이라고 한다.

일선 경찰관들의 인권 의식 제고를 위해 1시간 이상 수강해야 하고 교육과정이 모두 끝나면 지방청별로 인권 보호를 위한 개선 방안 등을 담은 보고서를 제출한다고 한다. 지침이 내려갔으니 시행하기 바쁜 것 같다. 전국 경찰서마다 인권교육을 하고 있다는 기사가 쏟아지고 있다. 경찰은 이미 자체적으로 인권교육을 해오고 있었는데 '특별 인권교육'은 뭔가 좀 다른 것인지 궁금해 알아보았다.

수원의 한 경찰서에 인권교육을 다녀온 인권교육 활동가에게 물었다.

: "경찰서에서 인권교육 요청이 왔어?"
활동가: "인권교육에 대한 지침이 내려왔는지 수원에 있는 경찰서 두 곳에서 요청이 왔고 그중에 한 곳에서 교육을 진행했어."
: "어떤 교육을 해달래?"
활동가: "나도 어떤 내용의 교육을 원하느냐고 물었더니 1시간밖에 안 되니 특별히 주제를 갖고 하기보다는 기본인권 감수성에 대해서 해달라고 했어."
: "그전에도 교육요청이 있었어?"
활동가: "응. 그런데 예산이 없다고 하더라고."
: "예산이 없다고?"
활동가: "응. 이번에도 예산은 없대. 근데 일단 교육을 하겠다고 하면 얘기해서 예산을 받도록 하겠다고 했어. 그래서 교육비가 책정돼서 할 수 있었지."
: "교육은 잘 진행됐어? 교육받는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어?"
활동가: "음... 인권교육을 한 달 만에 또 하는 거였더라구. 한 달 전에 자체교육을 했었고, 150여 명을 한꺼번에 모아서 1시간만 하다 보니 관심이 적은 것 같아."

어느 경찰서가 인권교육에 성의가 없어 생긴 문제는 아닐 것이다. 갑자기 지침이 내려와 진행되는 교육은 계획이 없으니 앞선 교육과의 연관이 있기도 어렵고 고민도 적을 수밖에 없다. 심지어 예산도 없다. 교육 한 번으로 '인권경찰'이 되는 것도 아닌데 기존의 인권교육에 대한 전반적인 검토와 평가는 있었을까? 일선 경찰들이 원하는 인권교육에 대해 수요조사는 했을까? 150명을 한꺼번에 하는 것이 아니라 직급별로, 업무별로 특성을 나눠 진행하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했을까? 대규모 특강이 아니라 소규모로 서로 토론하고 참여하는 방식으로 꾸준하게 하는 프로그램에 대한 계획은 세웠을까? 무엇보다 이런 교육으로 인권 보호를 위한 개선 방안을 만들어 내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적법절차를 준수할 수 있도록 교육한다고 하는데 법을 준수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법 자체가 문제인 경우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대표적으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은 언제든지 경찰이 불법 집회로 만들 수 있는 문제가 지적되어 왔다. 경찰은 이번 기회에 집시법을 바꿀 생각은 있는지 묻고 싶다.

야간집회 금지조항이 사라진 지 몇 년이 됐는데도 끊임없이 야간집회 금지 조항을 넣는 개정안을 국회로 밀어 넣는 시도는 이제 그만하고 집회시위를 보호하는 입법으로 바꾸고, 살수차도 사용하지 않는 법으로 개정하는 것이 '인권경찰'의 새 옷을 자랑하는 데 더 효과적일 것이다. 이런 문제들은 인권교육을 한다고 해서 개선되지 않을 것 같다.

경찰 조직 문화 바뀌어야... 간부들부터 반성하라

2015년 11월14일 광화문광장으로 향하는 민중총궐기 대회 참가자들을 경찰이 이중차벽으로 막고 나서자, 대회 참가자들이 차벽에 밧줄을 묶어 끌어내고 있다. 경찰이 살수차를 동원해 이들에게 물대포를 퍼붓고 있다.
▲ 경찰차벽 끌어내자 '물대포' 퍼부어 2015년 11월14일 광화문광장으로 향하는 민중총궐기 대회 참가자들을 경찰이 이중차벽으로 막고 나서자, 대회 참가자들이 차벽에 밧줄을 묶어 끌어내고 있다. 경찰이 살수차를 동원해 이들에게 물대포를 퍼붓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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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관리를 친 인권 집회관리로 변모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불법 집회에 대해서는 단호하고, 엄정한 법집행을 하되, 국민의 인권이 최대한 보장되도록 엄중한 법집행이 이뤄져야 하고, 이에 따라 시민들의 집회 문화에 한발짝 더 다가가는 시민의 경찰."
(경기일보, <[열린광장]인권 중심적 집회시위 문화를 위해>)

헌법과 국제인권규약은 '평화적인 집회'를 보호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전히 집회를 합법과 불법으로 나누고 합법 집회만 보장하겠다고 한다. 인권의 원칙은 법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 언제든지 인권을 침해할 수 있는 법이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인권경찰'의 인권 원칙은 대체 뭘까?

새 정부가 들어서고 마치 경찰이 집회의 자유를 더 보장해주겠다는 식으로 말하는데 기본권인 집회의 자유는 경찰이 주고 말고 할 성격의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동안 경찰이 집회를 금지하고 통제해서 기본권을 침해한 것에 대한 반성이 먼저 있어야 한다. '집회 문화에 한발짝 다가가기'에 앞서 집회를 보장하는 인권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할지 고민하길 바란다.

이렇게 형식적으로 진행되는 교육은 '인권경찰'이라는 새 옷을 자랑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기 쉽다. 특히 최근 수사권 조정을 앞에 두고 인권침해의 문제를 강조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경찰의 수사는 인권침해의 가능성이 높은 업무다. 검거와 연행과정에서의 문제, 강압적인 조사 또는 조작된 조사 등 경찰의 역사 속에서 많은 문제를 보았다. 당연히 이런 문제들은 사라져야 한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따로 있는데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것인지, 몰라서 헛다리를 짚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다.

인권교육, 당연히 해야 한다. 물론 내용과 방식에 대한 전면적인 검토와 평가가 우선되어야 할 테다. 그런데 인권교육만으로 해결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인권의식이 부족한 경찰 개인에 의해서 인권침해 사건이 일어날 수도 있겠지만 경찰 조직 자체가 인권보다는 다른 것을 더 중요시하거나 인권을 외면하기 때문일 수 있다. 경찰이 말하는 '인권경찰'이 되려면 사실 이 문제가 더 근본적이다.

실적이 우선시되는 조직문화는 실적이 되는 활동이 중심이 되고 성과에 급급하게 된다. 권력을 수호하는 것이 목적인 경찰은 시민의 권리는 뒷전이고 출세를 보장받는 길을 선택한다. 시민을 통제하고 감시하려는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법과 제도를 바꾸는 시도를 한다. 이런 일들은 경찰의 수뇌부들이 결정하고 명령한다. 일선 경찰들이 인권교육을 아무리 열심히 한들 이런 조직문화와 명령들을 거부할 수 있을까? 유엔과 인권위 권고를 수용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집회를 불온시하고 진압을 우선하는 명령을 내리고, 인권침해에 대해 책임을 지기는커녕 승진하는 책임자를 보는 조직 속에서 인권교육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인권경찰'을 표방하면서 '인권 친화적'이라는 표현을 하는데 공권력 행사는 인권 '친화적(friendly: 우호적이거나 친숙한)'인 것이 아니라 '인권에 기반을 둔' 것이어야 한다. 즉 마땅히 준수해야 한다는 규범으로서의 인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경찰 직무의 근간으로서 인권의 원칙이 지켜지고 있는지, 경찰력 행사와 관련한 법 규정부터 내부 지침까지 인권의 원칙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규범으로서의 인권이 준수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이었는지 검토부터 해야 제대로 된 교육도 할 수 있다.

그러고 보니 이런 문제의 핵심에 자리 잡고 있는 간부들이 인권교육을 받았는지 궁금해진다. 이철성 청장을 비롯해 보상체계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조직 문화를 쥐락펴락하는 사람들부터 인권교육을 받아야 하는 것 아닐까? 그들이 만들어 놓은 조직의 생리와 명령들이 얼마나 인권침해를 해왔는지 스스로 반성을 할 수 있는 교육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일선 경찰에게 인권침해 하지 말라고 다그치기만 할 것이 아니라 상관의 명령이 부당하고 시민의 인권을 침해한다면 당당하게 거부하라고 북돋아 주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랑희님은 인권운동공간 ‘활’의 활동가이자 공권력감시대응팀(공감대)의 멤버입니다.



태그:#경찰개혁, #인권경찰, #인권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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