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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도 그리던 순간. 이등병 수료식이 내일입니다. 이제 훈련병들은 이등병 계급장을 받습니다. '작대기'가 없던 그 서러움, 하루만 지나면 끝납니다. 무엇보다도 보고 싶던 가족들과도 보게 됩니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일이 있습니다.

부모님이 권하시더라도 술·담배는 절대 안 된다

수료식을 하루 앞두고, 훈련병들은 부쩍 말이 많아졌습니다. 각자 신나게 수다를 떨었죠. 주제는 '면회 때 무엇을 할 것이냐'입니다. 이번에 면회 때 무엇을 먹을 것이다, 보고 싶던 가족들과 보고 싶다, 훈련병들은 생활관에서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이때 소대장은 간단한 교육을 실시했죠. 3보행을 금지한다는 겁니다. 3보행이란 다음과 같습니다. 베레모를 벗고 건물 밖을 걷지 마라(탈모보행),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걷지 마라(입수보행), 음식물을 먹으면서 걷지 마라(취식보행). 이외에는 하사 이상의 간부를 밖에서 본다면 경례를 하라. 복귀시간은 19시까지라는 등…. 매우 기본적인 것들이었습니다.

훈련병들은 '별 것이 아니다'는 반응이었죠. 하지만 문제는 다음입니다. 소대장은 훈련병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훈련병들은 표정이 굳었지요.

"부모님이 권하셔도 절대로 술·담배를 하지 마라."

마치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순식간에 분위기가 싸늘해졌습니다. 훈련병들이 기대하던 것은 음식과 가족뿐만이 아니었습니다. 휴식을 취하면서 개인의 기호에 따라 술과 담배도 원했던 것이죠.

이때 한 훈련병이 손을 들고 질문했습니다. 먼 시골에 사시는 부모님이 겨우겨우 올라오셨는데도 안 되느냐고요. 그러자 돌아오는 답변은 참으로 칼 같았습니다. "먼 시골이 아니라 외국이라도 안 된다!" 어기면 징계라는 부연은 덤이었습니다.

부모님 배려하지 않는 야박한 신병교육대

지난 2014년 12월 26일 오전 경기도 의정부시 306보충대에서 입영장정들이 공개전산부대분류 과정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지난 2014년 12월 26일 오전 경기도 의정부시 306보충대에서 입영장정들이 공개전산부대분류 과정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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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다음 날, 이등병 수료식이 시작됐습니다. 도착한 훈련병의 가족들은 훈련병에게 다가가 이등병 계급장을 달아줍니다. 어떤 훈련병은 사단장이 직접 계급장을 달아주기도 했습니다. 부모님이 제시간에 오기 힘든 훈련병이었지요.

다행스럽게도, 저희 부모님은 일찍 도착하셨습니다. 곧장 저는 부모님과 펜션으로 갔지요. 도착한 다음부터는 딱 두 가지만 했습니다. 군대 이야기와 식사죠.

부모님은 정말 많은 것들을 바리바리 싸오셨죠. 제가 좋아하는 고기와 닭발, 초콜릿, 각종음료가 쌓여있습니다. 특히 어머니께서는 직접 만드신 한과까지 가져오셨습니다. 그동안 '짬밥'만 먹던 저는 '싸제(사제) 음식'을 원 없이 실컷 먹었죠. 식사를 하면서 부모님과 많은 대화를 나눴습니다. 웃음이 연신 터져 나왔죠. 그러나 시간은 너무나도 짧았습니다.

어느덧 복귀 시각이 다가옵니다. 저는 부모님에게 이제 돌아가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아직 괜찮지 않느냐고 반문합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혹시라도 늦게 복귀하면 징계를 받게 된다고. 그러자 부모님은 지체 없이 돌아갈 준비합니다.

차에 타는 와중에 마음은 무거웠습니다. 부모님도 얼굴이 굳었죠. 저는 최대한 부모님에게 말을 붙였습니다. 군대에서 보고들은 우스갯소리를 하며 부모님을 즐겁게 해드리려고요. 그러나 근본적인 슬픔은 변화시킬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 곧 자식과 떨어진다는 부모의 슬픔을.

창밖을 보니 어느새 어두운 밤입니다. 차는 어느새 부대에 도착했죠. 현장에서는 교관과 조교가 차량 통제를 하고 있습니다. 저는 차에서 내립니다. 이때 아버지도 안전벨트를 풀고 차에서 내리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제게 인사를 하시려는 것 같습니다. 그때 교관과 조교가 달려옵니다. 차에서 내리시려는 아버지를 제지하며 이렇게 소리 질렀습니다.

"가족은 하차하지 마시고, 그대로 차를 돌려서 얼른 나가세요!"

이것이 부모님을 배려하는 태도인가, 저는 제 귀를 의심했습니다.

결국 나는 '아버지의 마지막 말씀'을 듣지 못했다

교관과 조교의 제지로 아버지는 결국 차에 타셨습니다. 저는 그 광경을 보면서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마치 내가 군인이 아닌, 재소자가 된 느낌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저런 수모를 겪어야 했나 싶습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자식을 사실상 '볼모'로 보낸 입장이죠.

그때였습니다. 저를 부르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충열아!"

저는 몸을 돌려서 아버지를 바라봤습니다. 아버지는 마지막 인사라도 건네고 싶던 것일까요? 안타깝게도 듣지 못했습니다. 조교가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아버지 쪽 창문을 가로막았습니다. 결국 부모님은 그렇게 쫓겨나셨습니다. 저는 끝내 '아버지의 마지막 말씀'을 듣지 못했습니다.

어두운 밤길을 터벅터벅 걸어가며 복귀했습니다. 추운 겨울바람은 매섭게 몰아쳤습니다. 저는 쓸쓸하게, 무거운 발걸음으로 뚜벅뚜벅 걸어갔습니다. 저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주변에는 저와 똑같은 훈련병들도 무거운 발걸음으로 걸어가고 있었지요.

나중에 부모님에게 여쭤봤습니다. 어떻게 가셨느냐고. 부모님은 간결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며 돌아갔다고. 이게 말이 되는 행동입니까? 입대 장병의 부모님은 자식을 국가에 보낸 애국자들입니다. 그런 애국자들에게, 애국자의 대우를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가슴에 대못을 박으며, 입대 장병을 '인질'인 것처럼 갑질을 하고 있다고 느껴졌습니다. 이건 아닙니다. 그 악랄한 나치 독일과 일본 제국도 입대 장병의 부모님에게는 깍듯했습니다. 군과 국방부는 입대 장병의 부모님에게 늘 '걱정하지 마시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제가 본 군의 태도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래서야 안심하고 믿을 수가 있을까요? 입대 장병은 물론, 그 장병의 부모님에 대한 예우가 필요합니다. 더 이상, 이래서는 안 됩니다!


태그:#고충열, #입영부터전역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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