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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하던 신병교육대. 일이 터졌습니다. 바로 조교의 지갑이 없어졌죠. 거기에 문제가 더 생겼습니다. 중대에서 훈련병들을 의심하기 시작한 거죠. 결국, 조교들이 훈련병의 생활관으로 찾아왔습니다. 조교들은 곧장 소대별로 훈련병들을 불러냈습니다.

훈련병끼리 서로의 생활관을 뒤져라?

병사내무반의 모습(자료사진)
 병사내무반의 모습(자료사진)
ⓒ 육군훈련소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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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교 한 명이 나와서 말했습니다. 훈련병의 '인권'을 고려해서, 훈련병끼리 찾으라는 겁니다. 훈련병들은 모두 어리둥절했죠. 어떻게 훈련병끼리 찾으라고? 그러자 그 조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각 소대별로, 지정해준 다른 소대의 생활관을 뒤져라!"

그리고는 소대별로, 담당소대 생활관을 배정해줬습니다. 그런데 이럴 수가! 놀랍게도 사이가 나쁜 소대끼리 배정해둔 겁니다. 특히 제가 속한 2소대와 3소대는 매우 사이가 나빴습니다.

중대장과 교관들뿐만이 아니라 조교들도 공공연히 아는 사실이죠. 그런데 2소대와 3소대를 서로의 담당으로 맡긴 겁니다. 여기에서부터 저희들은 굉장히 불안해졌습니다.

마침 이동을 하면서 3소대와 마주쳤습니다. 저희 2소대는 모두 간절한 눈빛으로 쳐다보며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3소대 훈련병들은 매우 건성건성 대꾸했죠. 여기에서부터 불안과 불신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원래부터 사이가 나빴으니까요. 중대에서는 그걸 알면서도 시켰겠지만. 아니, 오히려 사이가 나쁜 것을 알고 일부러 이용했으리라 생각됩니다.

'핵전쟁'과 같던 훈련병 간의 보복

군 내부의 따돌림 문제를 다룬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
 군 내부의 따돌림 문제를 다룬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
ⓒ 에이앤디 픽쳐스, 청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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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저희는 3소대 생활관에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누구 하나 3소대 훈련병들의 관물대를 뒤지지 못했습니다. 저희 2소대는 모두 고민에 빠졌죠. 아무리 사이가 나쁘더라도, 차마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무엇보다도, 우리가 먼저 그럴 수는 없다는 인식이 강했습니다. 저쪽에서 보복으로 완전히 엎어버릴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죠.

마치 '핵전쟁'과 같았습니다. 먼저 쏘면 '반드시 보복을 받는' 핵전쟁처럼요. 모두 관물대에는 소중한 것들이 있습니다. 가족사진과 편지, 기타 용품 등... 훼손되기 쉬운 것들이 많지요. 그래서 더 주저했습니다. 그런 저희에게 조교가 다가왔죠. 그러더니 이렇게 말합니다.

"야! 3소대는 이미 너희 관물대를 다 엎었어! 너희들만 바보 되고 싶냐?"

이 말이 끝나자, 2소대 훈련병은 얼굴이 굳어졌죠. 몇몇 훈련병들은 눈치를 보며 재빨리 생활관으로 돌아갔습니다. 상황을 보러 가기 위해서죠. 남은 훈련병들은 웅성댔습니다. 다들 초조하고 걱정하는 눈치였지요. 저 역시 너무나도 걱정됐습니다. 그래도 차마 같은 처지 훈련병의 관물대를 엎을 수가 없었죠. '그 말'을 듣기 전까지는요.

얼마 후에 상황을 보러 갔던 훈련병이 돌아왔습니다. 사색이 된 표정입니다. 그리고 그 훈련병이 말했습니다. 저희 2소대는 죄책감을 모두 떨쳐냈습니다. 모두 분노하며 앞장서서 3소대 관물대를 뒤엎고 뒤적거렸습니다. '그 말'은 이랬습니다.

"3소대 놈들이 벌써 우리 관물대 엎었어! 아예 복도바닥에 집어 던지는 놈들도 있어!"

이미 목적이 바뀌었습니다. '조교의 잃어버린 지갑'을 찾는 것이 아닌, 오로지 '보복'을 위해서 관물대를 엎었습니다. 지갑의 유무는 중요하지가 않습니다. 오로지 3소대 훈련병들의 관물대를 엎어버리고 난장판을 만드는 것에 초점이 맞혀진 겁니다. 주객전도가 아닐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상황에서 조교는 무엇을 했을까요. 옆에서 웃어대며 훈련병들을 더욱 부추겼죠. 참 어처구니없습니다.

돌아오니 온통 아수라장... 바닥에 나뒹구는 물건들

핵전쟁 후에 남는 것은 폐허뿐입니다. 서로가 핵무기를 날려대기 때문이죠. 마찬가지입니다. 훈련병들의 관물대도 그 상황이었지요. 돌아오니 온통 아수라장입니다. 제 물건들이 온통 바닥에 흩어져있습니다. 그나마 저는 다행인 편이죠. 물건만 주우면 되니까요.

다른 훈련병들은 더 심각했습니다. 복도에 떨어진 것은 물론이고, 아예 물건이 사라졌다고 하는 훈련병들도 속출했습니다. 훈련병들은 신경질을 내며 씩씩거렸습니다.

여기저기에서 3소대를 욕하는 말이 튀어나왔죠. 개중에는 정말 안타까운 훈련병도 보였습니다. 그 훈련병은 마음이 유독 착한 사람입니다. 자신이 맡은 3소대 관물대도 검사만 할 뿐, 어지럽히지는 않았지요.

그런데 돌아오니 그 훈련병의 관물대는 엄청나게 어지럽혀있었죠. 옷가지들은 복도 바닥에 떨어져 있었습니다. 이 훈련병도 배신감을 느끼며 짜증과 분노를 표출했습니다. 그 광경을 보면서 착한 사람만 손해를 본다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한참 2소대 훈련병들이 분개했습니다. 거친 욕설과 3소대에 대한 분노가 하늘을 찔렀습니다. 이때 조교가 다가왔습니다. 관물대를 뒤지라고 독려했던 그 조교입니다. 조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그 한마디가, 참 비열하다고 느꼈습니다.

"뭘 욕을 해대! 니들 전부 3소대랑 똑같아!"

훈련병들을 이간질한 사람이, 저런 말을 내뱉어도 되는가 싶었습니다. 참 비열한 모습입니다. 물론 근본 문제는 부대에 있습니다. 일개 병사인 조교가 저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지휘관인 중대장의 허락이 있어야만 합니다.

결국, 조교의 지갑은 찾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생긴 것은 있죠. 훈련병 간의 '불신과 반목'만큼은 확실하게 생겼습니다.

겉으로는 인권적이라고 떠들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합니다. 사회에서는 엄두도 내지 못할 일들이, 군대라는 '닫힌 사회'에서는 태연하게 자행되고 있죠. 그게 바로 군 인권의 현실입니다.

이런 참담한 일은 여기서 끝났으면 했습니다. 그러나 자대에서도 또 이런 황당한 일이 발생했죠. 그런 일을 누차 겪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들 사병들에 대한 대우는 교도소의 재소자만도 못하구나.'


태그:#고충열, #입영부터전역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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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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