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날이 밝았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9일 오후 처리될 예정이다. 헌정 사상 두 번째 현직 대통령 탄핵안 처리다.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정의당 등 야3당과 무소속 의원 171명이 발의한 탄핵안은 지난 8일 오후 2시 45분 국회 본회의에 보고됐다. 국회법 130조에 따라, 본회의 보고 24시간 이후 72시간 이내 표결해야 하는 만큼 국회는 이날 오후 3시 본회의를 열어 탄핵안 표결에 돌입할 예정이다.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때는 열린우리당의 본회의장 점거농성, 찬반 의원 간의 격렬한 몸싸움 등이 이어지면서 본회의 보고부터 표결까지 약 57시간이 소요됐다.
그러나 국회선진화법 시행으로 이 같은 상황이 재연될 가능성은 극히 낮다. 인사에 관한 안건은 표결 전 토론을 하지 않는 국회 관례에 따라 대통령의 거취 문제인 탄핵안에 대한 찬반 토론도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대표발의자의 제안 서명 후 곧바로 표결이 진행된다. 표결 전 가능한 의사진행발언이나 표결 처리로 이어질 수 있는 5분 자유발언도 현재로서는 없는 상태다.
국회의장실은 지난 8일 오후 "현재는 본회의 5분 자유발언과 의사진행발언 신청이 없다. 국회법상 5분 자유발언은 본회의 4시간 전에 신청해야 하고, 의사진행발언은 본회의 중 신청 가능하기에 내일 현장을 지켜봐야 한다"고도 알렸다.
마지막까지 반대 설득 나섰던 친박, 그 결과는?
야3당은 본회의 전 의원총회 등을 통해 마지막까지 탄핵 가결을 위한 의지를 다질 예정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오후 2시 비상 의원총회를 진행한 후 본회의장에 입장한다. 전날 자정부터 국회 정문 앞에서 '탄핵성사 밤샘농성 결의대회'를 진행한 정의당은 오후 1시 같은 장소에서 '박근혜 탄핵과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한 시민 한마당' 행사를 진행한다. 국회 본청 안에서 철야농성을 한 국민의당도 의원총회 등을 통해 본회의 전략 등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새누리당은 오전 10시 의원총회를 연 뒤, 본회의 직후 탄핵안 표결 결과에 따른 대책을 논의할 의원총회를 다시 연다. 그러나 야3당과 달리 탄핵 찬반을 둘러싼 주류(친박근혜)와 비주류(비박근혜) 간 신경전이 노골적으로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탄핵 찬성 입장을 밝힌 비주류 주도의 '당내당(黨內黨)' 격 모임인 비상시국회의는 오전 8시부터 모여 탄핵 표결 전략 등을 논의 중이기도 하다.
주류와 비주류는 전날(8일) 의원총회에서도 '최순실 국정조사 청문회' 당시 대통령 뇌물죄 의혹 제기를 놓고 얼굴을 붉혔다. 친박 조원진·이장우 최고위원이 7일 청문회 당시 '최순실의 대통령 옷·가방 비용 대납은 곧 뇌물죄에 해당된다'는 의혹을 제기한 비박 황영철 의원을 향해 "추론만으로 전 국민이 보는 생방송에서 뇌물죄를 얘기한 것은 잘못됐다"고 비난했고, 이 과정에서 주류·비주류 측이 서로 목소리를 높여가며 충돌한 것이다. 특히 양측 사이에서는 "그런 주장을 하려면 당을 깨고 나가", "안 나간다, 나갈 거면 너희가 나가라"는 말까지 공개적으로 오간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친박 지도부와 중진 의원들은 초·재선 의원들을 대상으로 직접 전화를 걸어 탄핵 표결 시 반대표를 던지라는 물밑 설득작업을 펼치기도 했다. 이정현 당대표가 지난 8일 기자들과 만나, "탄핵 찬성 의원들은 자신들의 의지와 무관하게 결과적으로 문재인 전 대표의 대선 가도에 불을 밝혀주는 것"이라고 주장한 게 대표적인 논리다.
탄핵 찬성표 숫자에 따라 새누리당 운명도 결정
이러한 친박 측의 설득작업이 탄핵 표결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도 주목된다. 탄핵 가결정족수는 '재적의원의 3분의 2 이상'이다. 즉, 국회의원 300명 중 200명 이상이 찬성표를 던져야 하는 것이다. 현재 야3당과 무소속 의원 수는 총 172명. 가결을 위해서는 새누리당 소속 28명의 합류가 필요하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 비주류 측은 충분히 가결정족수를 채울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다. 장제원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 8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 "(탄핵 찬성표가) 200표보다 상당히 초과될 수 있다. 220표에서 230표 정도라고 말했고, 비주류 비상시국회의 대변인 역할을 하고 있는 황영철 의원도 같은 날 탄핵 찬성표를 220표 정도로 예상했다.
야권에서는 '250표까지도 가능하다'는 전망도 내놓고 있다. 여당 비주류만 아니라 범(凡)친박계에서도 찬성표가 나올 수 있다는 얘기다. 이처럼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압도적으로 가결될 경우, 친박은 사실상 '폐족(廢族)'으로 전락하고 비박 중심으로 제기됐던 '해체 후 재창당' 주장에 큰 힘이 실릴 것으로 보인다.
반면, 앞서 우려했던 대로 200표를 간신히 넘는 숫자로 탄핵안이 가결될 가능성도 있다. 이때는 비주류 측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나면서 '분당(分黨)' 국면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 아예 친박 측은 190~195표로 부결될 가능성도 주장하는 형편이다.
한편, 국회 본회의에서 탄핵안이 가결되면 국회법 134조에 따라 소추의결서 정본이 소추위원인 권성동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에게 전달될 예정이다. 또 그 등본을 헌법재판소 및 '피소추자' 청와대와 그 소속기관의 장에게 지체 없이 송달되도록 돼 있다.
박 대통령은 소추의결서 등본을 송달받은 후부터 대통령으로서의 권한을 행사할 수 없게 된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당시에는 청와대 총무비서관이 당일 소추의결서 등본을 전달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헌법재판소가 소추의결서 등본을 접수받은 때로부터 180일 이내에 탄핵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점을 감안하면, 박 대통령의 직무정지 기간은 최장 6개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