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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웃 농민들과 꽹과리 치고 막걸리 마시며 농사지은 백남기 농민의 만년 모습
이웃 농민들과 꽹과리 치고 막걸리 마시며 농사지은 백남기 농민의 만년 모습 ⓒ 백남기 투쟁본부

317일 만이었습니다. 지난 9월 25일 살인물대포와 수술, 연명시술의 수난을 받으시며 우리에게 일깨움을 주시던 백남기 성자 농부의 몸은 마침내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백남기 농부의 영혼은 우리 가슴 속에서 불꽃으로 타오르고 있습니다.

임마누엘. 백남기 농부의 세례명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는 뜻입니다. 많은 이들이 백남기 임마누엘의 칠십 평생 삶을 돌아보고 백남기 농부의 삶이 곧 임마누엘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우리에게 찾아오신 하느님이 바로 백남기 임마누엘이었던 것입니다.

그동안 서울대병원 후문 옆에 차려진 백남기 농성장 어울림터에서 많은 이들이 백남기 농민과 함께했습니다. 가톨릭농민회, 전국농민회총연맹,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농민들께서 거리 천막생활을 했습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열린 오후 4시 미사에 신부, 수녀, 신자들이 함께 해 주셨습니다. 매주 목요일 저녁 7시 촛불문화제에서 농민, 노동자, 빈민, 청년, 학생, 시민들이 촛불을 밝혔습니다. 그렇게 많은 이들의 쾌유 염원에도 불구하고 백남기 임마누엘은 하느님의 부름을 받고 선종하셨습니다.

그런데 경찰의 부검시도로 인해 장례식이 무기한 연기되어 농성장 어울림터는 잠시 문을 닫았습니다. 수많은 백남기들은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무려 또 한 달을 경찰의 시신탈취 시도를 막아냈습니다. 백남기 임마누엘께서 참 신앙인으로서, 조화로운 한 인간으로서 살아왔다는 것을 백남기 지킴이들은 깊이 깨달았습니다. 지킴이들은 "내가 백남기다", "우리가 백남기다"는 마음으로 밤을 지새웠습니다.

마침내 선종 41일째를 마지막으로 백남기 임마누엘 형제의 장례를 치르게 됩니다. 선종 42일째인 11월 5일 명동성당에서 장례미사를 치르고, 살인물대포에 피격되었던 종로구청 앞을 지나, 고향인 보성으로 돌아갑니다. 선종 43일째에는 청소년 시절을 보낸 광주에서 노제를 지내고, 광주 망월동 5.18 묘역에서 영면을 합니다.

 백남기 농민의 삶을 등대로 삼아 그 길을 따르기로 젊은 농부가 백남기 농민 농성장에서 결의하다
백남기 농민의 삶을 등대로 삼아 그 길을 따르기로 젊은 농부가 백남기 농민 농성장에서 결의하다 ⓒ 유문철

우리는 백남기 임마누엘로부터 지난 1년 무엇을 배웠길래 이토록 많은 이들이 "우리가 백남기다"라고 외치는 것일까요? 백남기 임마누엘께서는 지난해 11월 14일 3만 5천명의 늙고 주름진 농민들과 서울 아스팔트 위에서 "밥쌀 수입 중단", "쌀값 21만원 대선공약 이행" 외치다 경찰에게 희생되었습니다. 오늘까지 그 날 모인 농민 중 집에 돌아 가지 못한 유일한 농민입니다.

쌀이 뭐길래, 밥이 뭐길래 늙은 농민들은 거리로 나와 상여를 메고 절규하고, 박근혜 정권은 경찰을 앞세워 물대포를 쏘아대며 목숨을 빼앗기까지 한 걸까요? 천대받는 쌀인데 농사 안 지으면 그만, 안 먹으면 그만 아닌가요? 쌀보다 수입밀이 좋고, 값이 싸기만 하면 국산쌀보다 수입쌀을 먹으면 되는 거 아닌가요?

그게 아니라고, 쌀이 나라의 뿌리이고, 밥이 목숨이고, 우리나라 쌀이 무너지면 우리 밥상이 무너지고 우리 민족이 공멸한다고 백남기 임마누엘께서 외친 겁니다. 그 외침에 대해 차벽을 막고 물대포를 쏘아대는 불의한 경찰과 정권에 맞서 맨 앞으로 나서신 겁니다.

마치 예수께서 2천 년 전에 그러셨던 것처럼, 백남기 임마누엘께서도 그러했습니다. 불의와 악한 권력에 맞섰습니다. 낮은 곳에 스스로 내려와 농민들과 어울려 농사짓고, 노래 부르고, 춤추며 살았습니다. 마지막 순간에도 불의한 권력에 저항하는 밧줄을 쥐었습니다. 죽은 자가 산자를 이김을 지난 1년 동안 온 몸으로 보여 주었습니다.

 젊은 농부의 아들 한결이는 백남기 할아버지를 이어 이 땅에서 농사를 이어간다
젊은 농부의 아들 한결이는 백남기 할아버지를 이어 이 땅에서 농사를 이어간다 ⓒ 유문철

저는 성자 농부 백남기 임마누엘께서 선종한 후 주님의 곁으로 가시는 길에 올해 풍작을 이룬 유기농쌀 2톤 중 1톤을 꽃처럼 깔아 드렸습니다(관련 기사: "일년 농사로 번 500만원, 백남기 농부 위해 씁니다"). 이번이 아니면 못할 일이라 선뜻 내어놓았습니다. 1톤은 1만명이 밥 한그릇을 먹을 수 있는 양입니다.

백남기 임마누엘의 삶이 우리 남은 이들의 마음에 불꽃으로 활활 타오르고 있습니다. 백남기 임마누엘의 삶과 뜻을 기려 나눈 1만 그릇의 밥이 남녘 5천만, 북녘 3천만, 더 나아가 이 세상 65억 사람들과 뭇생명들에게 생명과 평화의 기운, 그리고 사랑으로 퍼져나가기를 기도합니다. 그것이 바로 백남기 임마누엘께서 온 삶을 바쳐 꿈꾸던 세상입니다.

지난 1년 고마웠습니다. 존경합니다. 사랑합니다. 평생 앞서가신 길을 따르겠습니다. 하늘나라에서 지켜보아 주세요.

제 삶의 스승이신 백남기 임마누엘 영전에 이 글을 올립니다.

 백남기 농민 영정 사진
백남기 농민 영정 사진 ⓒ 백남기 투쟁본부

덧붙이는 글 | 유문철 시민기자는 지난해 겨울 천막 농성부터 부검영장 사태 백남기 시민 지킴이까지 지난 1년 백남기 농민 국가폭력사건 투쟁을 했습니다. 충북 단양에서 9년째 유기농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단양군농민회 회장으로 단양군 백남기 농민 추모 위원장으로서 분향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추도사는 11월 3일 단양군 백남기 농민 추모식 추도사입니다.



#백남기#백남기_농민_국가폭력사건#경찰#폭력#백남기_지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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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단양에서 유기농 농사를 짓고 있는 단양한결농원 농민이자 한결이를 키우고 있는 아이 아빠입니다. 농사와 아이 키우기를 늘 한결같이 하고 있어요. 시골 작은학교와 시골마을 살리기, 생명농업, 생태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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