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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5월 5일이 단오다. 올해는 6월 9일이 단오였고, 몇몇 곳에서 단오 축제도 열렸다. 단오제로 유명한 동네는 강릉, 영광 법성포, 경산 자인, 수도권에서는 안양이 있지만, 그중 유명한 곳은 강릉이다.

강릉단오제는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이기도 하다. 강릉 단오제의 전통이 오래됐다지만 변화를 많이 겪었다. 조선시대에 행해졌다는 분명한 기록이 있는데, 일제시대에 들어서는 관주도의 체육대회로 변질됐고, 해방 뒤에는 시장 상인들에 의해서 맥이 이어져 오다가, 지금은 주민 참여율이 높은 한국 대표 축제로 자리잡았다. 물론 자리잡는 과정에서 공공기관의 지원과 민속학계의 노력이 많이 보태졌다.

강릉단오제는 음력 4월 5일에 하는 신주(神酒) 빚기로부터 시작된다. 음력 4월 15일에 신주를 걸러서 대관령산신께 바치고, 단오제 기간에는 단오주를 나눠 마신다. 그 일이 반복되면서 이제는 협동조합을 만들어 단오주를 상품화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단오제를 앞두고는 일반인들의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서 전통주 선발대회도 개최한다. 올해로 4회 대회를 치렀는데, 올해부터는 대회 참가자들에게 석창포를 나눠주고 창포주 주제로 술을 빚게 했다. 단오에는 창포로 머리를 감고, 창포주를 마셨다는 얘기를 좀 더 구체적으로 구현한 행사 기획이었다. 모두 70여 점이 전국에서 출품돼 서울의 박경아씨가 대상을 받았다.

2년 만에 열린 단오제... 전통주 선발대회도 열렸다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평택 농악으로 단오제 시작을 알리다.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평택 농악으로 단오제 시작을 알리다.
ⓒ 허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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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 서부공설운동장에서 열린 소사벌 단오제의 국민의례.
 평택 서부공설운동장에서 열린 소사벌 단오제의 국민의례.
ⓒ 허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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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단오제에서만 술빚기 행사를 하는 줄 알았더니, 평택 소사벌 단오제에서도 전통주 선발대회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 전통주 대회의 심사차 단오날인 6월 9일에 평택 서부공설운동장을 찾아갔다. 평택 소사벌 단오제는 2년마다 열리는데, 2년 전에는 세월호 참사의 슬픔 때문에 행사를 하지 않았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운동장에서 국가지정 문화재인 평택 농악 소리와 함께 행사가 시작됐다. 마을 22개 읍·면·동 주민들이 마을 깃발을 들고 줄을 지어 운동장에 모였고, 국민의례에 이어 평택군수와 문화원장의 인사말이 이어졌고, 지역구 국회의원은 바빠서 먼저 갔다는 이야기가 거듭 흘러나왔다. 소도시의 지역 운동회를 겸한 단오제 행사로, 줄다리기와 씨름, 창포로 머리감기와 제기차기 등 다양한 체험 행사가 진행됐다. 강릉단오제도 한때 군민체육대회로 굴절됐던 시절이 있었다는데, 그 비슷한 궤적을 보는 것 같았다.

평택 소사벌 단오제 전통주 선발대회에 출품된 술은 모두 16점이었다. 읍·면·동 별로 술을 잘 빚는 한 사람을 추천해 출품하게 했는데, 상품화되고 있는 평택 호랑이배꼽 막걸리도 출품되고, 경기도에서 빚어지는 프리미엄막걸리 천비향을 빚는 일에 참여한다는 이도 출품하고, 익산시 국화축제 기간에 열린 술 선발대회에서 상을 받았던 이도 출품했다.

술 심사는 술을 빚은 이들을 대면 면접하면서, 맛에 대한 점수는 30점, 술을 둘러싼 내력과 제조법과 상품화 가능성은 20점을 배점해 평가했다. 운동장 차일 아래서 심사했으니, 심사 조건은 열악했지만 지역에서 이어지고 있는 술의 특징을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포황주 약술에 취해 잠이나 청하려네"

운동장 마당에서 펼쳐진 전통주 선발대회와 시음회.
 운동장 마당에서 펼쳐진 전통주 선발대회와 시음회.
ⓒ 허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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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품작 16점 중에서 남자가 빚은 것은 3점이었고, 여자가 빚은 술이 13점이었다. 여자들은 대부분 친정어머니로부터 술을 배웠다고 했다. 누룩은 시장에서 사서 쓰는데, 한 명은 양조장에서 쓰는 포자누룩균을 사다가 집에서 직접 만들고 별도로 전통누룩도 넣는다고 했다.

언제 누구로부터 전해들은지는 알 수 없지만 양조장 기술자의 조언이 반영된 술 빚기였다. 누룩을 삼복 더위 때에 직접 만들어 쓴다는 이도 셋이나 됐는데, 다른 이들은 시장에서 사다가 쓴다고 했다. 전통시장의 쌀가게에 가면 누룩을 쉽게 구할 수 있게 된 것도, 그리고 그런 사실을 아는 사람이 많아진 것도 집에서 술 빚기가 불법이 아니게 된 1995년 이후에 벌어진 일이다.

이날 특색있는 술은 바람새 체험마을을 운영하는 백수경씨가 출품한 '포황주'(蒲黃酒)였다. 마을 습지에서 자라는 부들 꽃가루를 6월께 채취해 송화가루와 함께 넣고 빚는다. 찹쌀이나 멥쌀을 원료로 쓰는데, 개량누룩을 사용하는 것으로 보아 이들도 술에 대한 정보 수집이 제법 된 상태였다.

포황주는 중국 당나라 시인 백거이(백낙천, 772~846)가 말을 타고 가다 떨어져 허리를 다쳤을 때 마신 약술이라는데, 피의 운행을 좋게 하고 소변을 잘 보게하는 효능이 있다고 한다. 백거이가 쓴 시 2800여 수가 전해지는데, 그중에서 포황주에 관련된 시도 있다. 두 고을의 수령들이 한밤에 차 마신다는 소식을 듣고 부러움에 써서 보낸 <야문>(夜聞)이란 시다. 

한밤의 차 마신다는 소식 멀리서 들었네
여인들은 소리 고운 종을 몸에 둘렀겠지
찻상 위에 두 고을의 찻잎들을 올려두고
등불 앞에 모여 앉아 서로 맛을 보겠지
여인들은 춤을 추며 미모를 다투고
여럿은 자순차(紫笋茶) 맛보며 새롭다 다투겠지
꽃 피는 집안에서 탄식이나 하면서
포황주 약술에 취해 잠이나 청하려네


최고 평점 받은 약술... 술 빚기는 가까이 있다

진달래 호산춘을 빚어온 평택 서정동의 김인숙씨.
 진달래 호산춘을 빚어온 평택 서정동의 김인숙씨.
ⓒ 허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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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최고의 평점을 받았던 술은 전라도 여산에서 빚어졌던 '호산춘'에 진달래꽃을 넣어 빚는 약술이었다. 빛 바랜 진달래 꽃잎색이 도는데, 맛이 순하고 맑은데도 알코올 도수가 높아 술 속에서 심지가 느껴졌다. 평택시 서정동에 사는 김인숙씨가 빚었는데, 그이는 익산시 농업기술센터에서 술을 배웠고 딸을 따라서 평택으로 옮겨와 살고 있다고 했다.  

평택 소사벌 단오제에서 읍·면·동을 대표해 16점의 술이 출품되고, 강릉 단오제 전통주 대회에서 70여 점이 출품된 것도 술 빚기 교육 기회가 많아지면서 가능한 일이다. 현재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인정하는 우리술교육전문기관이 다섯 곳이 있고, 우리술교육훈련기관이 열세 곳이나 된다. 그리고 지역의 농업기술센터에서 전통술 교육을 하고, 여성센터나 평생학습관에서도 술빚기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도 있다.

천연식초 강좌를 운영하는 곳에서도 식초를 만드는 선행 작업으로 술 빚기 강습을 진행한다. 술은 곡식이나 과일로 만드는 농산물 가공 상품이라서, 직접 농사지은 수확물로 술을 빚는 것은 전통을 회복하는 일이자, 우리 농산물을 활용법을 다채롭게 하는 일이다. 술은 원래 김치나 간장 된장처럼 우리네 부엌에서 빚어지던 발효식품이기 때문이다.

내 몸의 일부가 되는 술을 직접 빚어 마신다면 술을 대하는 시선도 많이 달라질 것이다. 창포주처럼 절기에 맞춰 마시는 술이 있는 줄 안다면, 계절의 풍류도 따라서 알게 될 것이다.


태그:#술, #전통주, #막걸리, #허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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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평론가, 여행작가. 술을 통해서 문화와 역사와 사람을 만나고 있다. 사단법인 한국술문화연구소 소장이며 막걸리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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