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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연쇄 인터뷰①] 정춘숙 국회의원 당선자가 본 강남역 살인 사건

여성에 대한 멸시와 차별, 그리고 폭력의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여성혐오를 혐오한다>의 저자 우에노 치즈코는 여성혐오가 가부장제 사회의 기반이며, 성차별적 문화와 제도를 구성하는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여성혐오는 너무나 익숙해 오히려 인지하기 어렵다.

지난 5월 발생한,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에 대한 반응도 마찬가지였다. 여성들은 "여성이라 죽였다"는 말을 아무렇게 할 수 있는 사회에 불안감을 느끼며 "나는 우연히 살아남았다"고 말했다. 이 사건의 기저에 있는 여성혐오적 맥락을 읽은 것이다. 이에 누군가는 "정신질환자의 단순한 묻지마 살인이다, 여성혐오는 본질이 아니"라고 답했다. "나는 잠재적 가해자가 아니"라는 항변도 나왔다. 이런 인식의 간극, 왜 생겨난 걸까.

지난 7일, 김수아 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 교수를 마주했다. 김 교수는 "그만큼 여성혐오에 대해 몰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국 사회는 여성혐오가 일상화되어 있어 문제를 인식하는 것이 쉽지 않은 구조라는 것이다. 김 교수는 더 많은 목소리, 더 다양한 페미니즘'들'이 필요하며, 남성성·여성성에 대해 새로운 상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김 교수와 인터뷰를 정리한 것이다.

"이 사건을 페미사이드로 명명하는 순간 문제 지형 달라져"

 지난 5월 26일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열린 '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 긴급 집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는 김수아 교수.
지난 5월 26일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열린 '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 긴급 집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는 김수아 교수. ⓒ 유지영

- 초기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을 여성혐오 범죄로 볼 수 있느냐를 두고 논란이 일었다. 여성혐오 범죄라고 분명히 말하는 이들이 있는 반면, 경찰이나 일부 언론은 이를 부인했다.
"일단 우리나라에서 혐오범죄라는 말을 써본 적이 없다. 혐오범죄가 범주화되어 있지도 않고, 법에도 없기 때문에 이 말을 굳이 채택한다는 건 어떤 담론을 만들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 사회의 법 제도나 경찰 조직은 보수적인 편이다. 이것을 담론화하고 의미화할 집단이 아닌 것이다.

언론의 경우, 여러 가지 추론이 가능하다. 보통 이런 범죄보도의 경우, 범죄자를 빨리 병리화하려고 노력한다. '비정상적'인 부분, 병난 부분만 도려내면 나머지는 안전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관습화된 보도양식을 그대로, 별 고민 없이 따랐을 확률이 높다.

이 사건에 '페미사이드'나 여성혐오 범죄라는 이름 붙이는 순간 일부의 문제가 아닌 것이 된다. 문제의 지형 자체가 달라진다. 이것을 별로 원하지 않았을 수 있다. 또 이 사건의 여성혐오적 맥락을 읽으려면 성차별적인 상황에 대한 인지, 감수성이 있어야 한다. 그게 없었다고 볼 수도 있다."

- 최근 '여성혐오'가 자주 회자되고 있긴 하지만 '혐오'라는 단어가 불러오는 느낌 때문인지 뜻을 오해하는 사람도 있다. 어떤 말, 행동에 대해 지적하면 "이런 게 왜 여성혐오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만큼 여성혐오에 대해 몰랐다는 것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지금 20·30대만 놓고 이야기하자면 이 세대는 성차별이라는 걸 막연하게 느꼈을 뿐 노골적으로 경험하지 않았다. 물론 일부 계층의 경험은 가려져 있기 때문에 차이가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성차별에 기반한 정서인 여성혐오를 생각해볼 기회가 과거에 비해 적다고 본다. 이런 젊은 사람들은 취업 시장에 나가거나 사회에 진출해서야 성차별을 느낀다.

또 여성혐오는 문화적 차원에서 일반화되어 퍼져 있기 때문에, 어디서든 자연스러운 정서로 읽힌다. 그래서 이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면, '이게 왜 여성혐오냐'고 반문하는 것이다. 코미디 프로그램 같은 게 대표적이다.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개그우먼의 외모를 비하할 때, 아무도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이 없었다."

- SNS에선 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을 다룬 기사나 게시물 밑에 "오빠가 지켜줄게", "너도 조심히 다녀"라는 식의 내용을 담은 댓글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사람이 죽었는데도 이해를 못하는 사회다. 그런 사회가 이런 댓글이 문제라고 인식할 수 있을까? 가부장제 담론을 그대로 답습한 것이다. 가부장제에선 여성의 안전을 남성이 책임지고, 여성이 위험에 처했을 때 남성이 수치심을 느낀다. 이것은 여성의 생활 세계를 굉장히 좁힌다. 그런 가부장제 문화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댓글들이다."

"성별이원제의 젠더 질서 속에서 성장하는 이들 가운데 여성 혐오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중력처럼 시스템 전체 구석구석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너무나도 자명하게 존재하고 있는 탓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의식조차 할 수 없을 정도다." - <여성혐오를 혐오한다>


- 반면, 해당 사건을 바라보는 여성의 반응은 대체로 '나는 우연히 살아남았다'는 것으로 모아졌다.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개인적 경험에 기반한 발화가 많이 터져 나왔다는 것도 주목할 만한 점인 것 같은데.
"개인 경험은 사실 이전에도 온라인 세계에서 굉장히 다양하게 공유됐다. 발화 자체가 더 많아졌다기보다 전시되는 발화가 많아졌다고 본다. 대부분 여성 커뮤니티에서 익명으로 개인의 경험을 공유하는 건 흔한 일이었다. 그런데 전시되는 건 다른 차원이다. 작년의 경험이 굉장히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생각한다.

'메르스 갤러리'의 등장이나 그 이전인 'IS 김군' 논란 때부터 (여성혐오 문제에 대해) 말하기 시작한 거다. 예전에는 자신들끼리 조용히 말하던 것이, SNS를 통해 퍼지면서 전국을 다 흔들었으니까. 말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전시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게 됐다. 여성들만의 온라인 공간, 안전한 공간, 상처받지 않는 범위, 세이프 스페이스 벗어나게 됐다. 이런 문화적 맥락이 하나 있다. 

두 번째는 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의 경우 타자화가 어려웠다. 다른 범죄는 '나는 여전히 안전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의 경우에는 보통의 젊은 여성이 타깃이었고, 번화한 곳에서 사건이 일어났다. 우리가 (범죄의 피해자가) 아니라고 밀어낼 수 없는 것이다. 2014년, 2015년에 여성 낙태나 데이트 폭력 문제가 계속 나왔다. 확실히 여성은 생존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인식과 담론이 생겼다. 성차별 없이 잘 지내온 것 같은데, 사실 생존 기반이나 삶의 요소가 이미 결정이 되어 있는 것이다."

별 탈 없이 살아온 것 같던 여성들, 문제를 인식하고 말하다

 페미당당 '5월 26일 강남역 행동' 준비위원회 회원과 참가자들이 26일 오후 서울 강남의 한 노래방 앞에서 검은 옷과 근조 표시가 붙은 거울을 들고 강남역 10번 출구 앞으로 침묵 행진하고 있다.
 회원들은 스스로와 주변 시민을 거울 앞에 둠으로써 이 사회를 사는 여성은 모두 혐오범죄에서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비춘다며 취지를 설명했다.
페미당당 '5월 26일 강남역 행동' 준비위원회 회원과 참가자들이 26일 오후 서울 강남의 한 노래방 앞에서 검은 옷과 근조 표시가 붙은 거울을 들고 강남역 10번 출구 앞으로 침묵 행진하고 있다. 회원들은 스스로와 주변 시민을 거울 앞에 둠으로써 이 사회를 사는 여성은 모두 혐오범죄에서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비춘다며 취지를 설명했다. ⓒ 연합뉴스

- 최근 여성혐오와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듯하다. 어떤 이유 때문일까. 사실 여성 차별, 멸시 등 혐오의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 않나.
"다른 분들이 많이 언급하는 것처럼 우연한 계기인 것 같다. 정말 우연한 계기. 일베가 본격적으로 문제시된 게 2014년이다. 그때 일베식 정서의 핵심인 여성혐오 논란이 굉장히 커졌고 이전부터 존재했던 여성혐오의 대표적 표상, '김치녀'가 대중적으로 알려졌다.

김치녀라는 말을 듣는 사람들은 질문하게 된다. '왜 나는 김치녀라는 이야기를 듣는 걸까, 왜 나는 김치녀가 아니기 위해 노력하는 걸까, 나에게 문제가 있는 걸까, 여기서 문제는 뭘까'. 그러면 이것에 대응하는 말을 찾게 되고, 이것이 여성주의 이론이나 활동의 관심으로 이어진 게 아닌가 생각한다."

"모두 천편일률적인 페미니즘을 믿어야 할 필요도 없다. 페미니즘은 복수 명사로 그 안에 다양한 페미니즘이 공존할 수 있다." - <나쁜 페미니스트>


- 인터넷 커뮤니티가 여성혐오의 장이면서 한편으론 여성들의 연대를 구축해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같다. '메갈리아' 등 여성혐오를 지적하는 커뮤니티의 활동은 어떻게 보나.
"페미니즘은 복수로 존재한다. 페미니즘'들'이다. 모두 성평등 사회를 만들겠다는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 본다. 더 좋은 사회를 만들려는 전략 중 하나가 '되받아치기'다. 사실 (미러링 같은 것은) 이번에 처음 나온 게 아니다. 흑인 문학 다시 쓰기 같은 것이 있지 않나. '너희들이 보기엔 그렇니? 우리 입장에선 이런 거야'라고 되돌려 말하는 거다. 피지배자들이 전략적인 운동방식으로 채택한 것이다. 이런 방식에 대해 사회적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 지금 판단할 수 있는 일이 아닐 뿐더러, 전략과 전술은 유효성을 당장 판단하는 것은 무리다.

오히려 효과를 낸 것도 있지 않나. '소라넷' 폐지가 그렇다. 소라넷을 폐지하기 위해 성폭력상담소 등 여성단체가 굉장히 오랫동안 노력해왔다. 이런 '우아한' 노력은 먹히지 않았다. 그런데 작년에 해당 문제가 공론화됐고, 더 효과적으로 성취한 게 있다. 전략이 유효하지 않다기보다 그냥 다른 거다. 다양한 효과를 내는 거다. 지켜봐야 한다. 페미니즘이냐, 아니냐 그런 문제가 아니다. 원래 서구에서도 흑인은 흑인대로, 아시안은 아시안대로 저마다의 페미니즘을 말했다."

- 이런 움직임에 대한 반발도 거센데. 페미니스트를 비하하는 용어로 '꼴페미'를 넘어 '페미충', '페미나치'까지 등장했다.
"페미나치는 1980년대 서구에서 나온 말이다. 그냥 네이밍이다. 나치즘은 여성주의 기본 이념에 반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양립할 수 없다. 그냥 페미니스트를 비난하고 병리화시키기 위해 주장하는 것이다. 페미니즘 운동은 다양하고, 각자의 힘이 있다. 외부에서 이들을 공격할 때, 메시지를 칠 수 없기 때문에 메신저를 치는 것이다. 메갈리아의 말하기 방식을 공격하거나 페미니스트 몇몇을 공격하는 것을 귀담아들을 필요는 없다."

- 메갈리아 같은 커뮤니티가 분화되고, 이전보다 활동이 줄어들었는데.
"처음 등장했을 때에 비해 메갈리아 같은 커뮤니티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줄어들거나, 게시물 조횟수가 낮아진 건 사실이다. 그런데 이런 건 별로 문제가 안 되는 게, 사실 온라인 문화는 순전히 재밌어서 참여하는 게 크다. 재미로 메갈리아에서 놀았든, 어쨌든 간에 그런 경험에 대한 충격이 컸을 것이다. 여성에 대한 혐오의 언어가 얼마나 비논리적이고 저열한지 느꼈을 것이다.

그런 커뮤니티를 떠나 자신의 우아한 페이스북으로 다시 돌아간 사람에게도 변화는 분명 있을 것이다. 커뮤니티가 분화되고 이런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이런 문제를 인식하기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게 됐다는 것이 중요하다. 피지배자가 지배의 꼼수를 알게 됐을 때, 동의라는 이름의 강제를 인식했을 때 그 순간 변화가 생긴다."

"어떤 여자들은 한번에 조금씩 삭제되고, 어떤 여자들은 단번에 몽땅 삭제된다. 어떤 여자들은 도로 나타난다.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모든 여자들은 지금도 그들을 사라지게 하려는 세력들과 싸우고 있는 셈이다. (중략) 자신의 이야기를 단어로든 이미지로든 스스로 말할 수 있는 능력은 그 자체로 이미 승리다. 그 자체로 이미 반란이다." -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문제를 한번 인식하면, 그 이전으로 되돌아가기 어렵다"

 1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앞에서 '언론의 여성혐오 조장 보도실태'를 규탄하는 20대 여성들이 모여 '우리는 기자회견女다' 라는 주제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1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앞에서 '언론의 여성혐오 조장 보도실태'를 규탄하는 20대 여성들이 모여 '우리는 기자회견女다' 라는 주제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 최윤석

- 주변인, 언론 등에 여성혐오 문제를 지적해도 쉽게 바뀌진 않는다. 이 과정이 좀 지치기도 하는데. 이런 운동을 어떻게 이어가야 할까.
"운동의 전략에 대해선 입장이 다들 다르다. 누구를 설득하고 누구를 참여시킬 것이냐, 다 다르다. 어쨌든 법, 제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들에게 문제를 인식시키면 해결은 좀 더 쉬워진다. 그렇다고 이게 궁극적 목표는 아니다. (문제를 이해하지 못하는) 누군가를 버리고 가는 것은 훨씬 쉬운 방법이긴 하다. 하지만 이해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을 그냥 버리고, 비난하기보다 계속 비판하되 그들의 승인을 구하지 않으면 된다. '못 알아들으면 네 탓이지만, 난 계속 얘기를 하겠어'. 어느 쪽이든 계속 말하는 게 중요하다."

- 여성혐오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 어떤 것이 있을까.
"계속 말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게 문제라는 걸 알리는 데 필요하다. 문제라고 지적할 땐 답을 줘야 한다. 답을 주는 게 근본적인 건데, 이것에 대해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고민하는 것 같다. 사람마다 다른 입장이지만, 저는 남성성·여성성의 개념에 대한 새로운 상상, 새로운 교육 모델이 필요하다고 본다.

현재의 남성성 교육은 변화하는 사회를 따라잡지 못하고 군사주의적이고 권위주의적이다. 텔레비전에서는 권위에 기반해 소리를 지르는 사람들이 성공한 남성 모델로 등장한다. 그렇지 않은 롤모델을 본적도 없고, 혹시 보인다 하더라도 그건 남성이라고 인정하지 않는다. 이 또한 다른 남성성일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남성성 모델도 결국 남성성'들'이다. 이와 함께 여성성에 대한 상상도 달라져야 한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개그우먼 김숙도 바람직한 이상향이 아니라 하나의 모델이다. 다양한 모델이 존재해야 하며, 그 모델들 각각의 문제에 대해 우리가 더 생각해야 한다. 성평등 사회에서 어떤 식으로 더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이야기해야 한다. 지금 상태론 그런 상호담론을 만드는 것이 어렵다."

"나는 미래에는 더 이상 페미니즘이라고 불리지 않을지도 모르는 이 논의가 앞으로 남성에 대한 더 깊은 탐구를 포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나 지금이나 페미니즘은 인간 세상 전체를 바꾸려는 노력이다. 벌써 많은 남자들이 사업에 가담했으나, 이 사업이 어떻게 남자들에게 도움이 되고 현재의 상태가 어떻게 남자들에게도 피해를 입히는지에 대해서는 훨씬 더 많은 고민이 가능하다." -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여성혐오#강남역#강남역 살인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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