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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박근혜 대통령은 후보 시절 "100% 대한민국"을 외쳤다. 지금도 꾸준히 "국민통합"을 강조하고 있다.

박 대통령이 말한 100%와 통합은 어떤 의미일까. 박 대통령의 임기 내내, 국민은 현 정부, 혹은 그의 생각대로 통합되길 강요당하고 있다. 단적인 예로, 박 대통령은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해, "지금과 같은 교과서로 배우면 정통성이 오히려 북한에 있는 게 되기 때문에"라고 말했다. 대한민국에서 생각이 다른 사람을 찍어누를 때 가장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그 마법과도 같은 '종북' 딱지를 대통령은 서슴지 않고 사용했다.

제36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도 "국민통합"이 강조됐다. 박 대통령이 참석하지 않은 채, 정부 대표로 기념식에 참석한 황교안 국무총리는 "우리 사회의 신뢰를 훼손하고 국민통합에 장애가 되는 비정상적인 관행과 적폐, 부정과 비리를 근절해 나가겠습니다"라는 내용의 기념사를 낭독했다.

이병구 광주지방보훈청장이 낭독한 5.18 경과보고에도 "국민통합"이 등장했다. 이 청장은 "(5.18 영령의) 고귀한 정신을 밑거름으로 국민통합을 이룩하고 하나의 대한민국, 희망의 새 시대를 만들겠다고 다짐한다"라고 발표했다.

국론 안 듣고, 군경 말만 듣는 국가보훈처

18일 오전 광주광역시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6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황교안 국무총리가 기념사를 하는 동안 노회찬 정의당 당선인이 '임을 위한 행진곡 기념곡 지정하라'는 손 피켓을 들고 있다.
▲ '임을 위한 행진곡' 기념곡 지정 촉구하는 노회찬 18일 오전 광주광역시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6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황교안 국무총리가 기념사를 하는 동안 노회찬 정의당 당선인이 '임을 위한 행진곡 기념곡 지정하라'는 손 피켓을 들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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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론분열의 장본인들이 국민통합을 강조하는 꼴이다. 국가보훈처는 5.18 기념식 이틀 전인 16일 식순을 발표하며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이 아닌 '기념공연 합창'으로 결정했다.

이로부터 불과 3일 전, 박근혜 대통령과 여야 3당 대표는 청와대 회동을 진행했고, 이 문제와 관련해 상당히 진전된 결과물을 내놓을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국가보훈처의 결정은 청와대가 내세우던 협치를 망가뜨렸을 뿐만 아니라, 여론에 배치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국가보훈처의 발표 직후, 야당은 물론, 여당까지 국가보훈처에 재고를 요구했다. 2013년 국회는 여야 국회의원 158명이 찬성한 가운데 '임을 위한 행진곡'의 5.18 기념곡 지정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통과시키기도 했다. 지난 12일 발표된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선 응답자의 53.5%가 기념곡 지정에 찬성해 반대 의견(29.4%)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은 비율을 보였다. 기념식 제창과 관련해서도 제창 찬성이 55.2%, 반대 26.2%를 기록했다.

그럼에도 국가보훈처는 '현행 고수'를 고집했고, 청와대는 지금껏 침묵하고 있다. 이러한 결정과 관련해 국가보훈처는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이) 국민통합을 저해"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국민통합의 저해"를 주장하는 이유로 "보훈안보단체의 반대"를 내세우고 있다.

국가보훈처가 앞세운 보훈안보단체인 '중앙보훈단체안보협의회(아래 협의회)'는 지난 4일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반대하는 성명을 냈다. 지난 2월 조직돼 김덕남 상이군경회장이 초대회장을 맡고 있는 협의회는 대부분 군경 관련단체로 조직돼 있다. 군경이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했더라도, 5.18에 있어서 그들은 가해자 입장에 서 있는 집단이다. 국가보훈처는 5.18을 위로하고 그 상흔을 씻기 위한 노래를 가해 집단과 긴밀한 단체들의 의견을 내세워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최근 <오마이뉴스>의 취재 결과, 협의회에 들어가 있는 광복회는 "(성명이 담긴) 기사를 본 후 우리도 놀랐다. 그런 뜻도 전달한 적이 없는데"라며 당황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관련기사 : 광복회 "'임 행진곡' 반대에 도매금으로 넘어가"). 이러한 졸속 성명을 국가보훈처는 국론의 증거로 내민 것이다.

보수정부, 매년 '임을 위한 행진곡' 소환

황교안 국무총리와 박승춘 국가보훈처장 등이 18일 오전 광주광역시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열리는 '제36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임을 위한 행진곡' 기념곡 지정 및 제창 거부에 항의하는 유가족들의 항의를 받은 박 보훈처장은 기념식장에 앉기도 전에 쫓겨 났다.
▲ 5.18기념식장으로 향하는 황교안-박승춘 황교안 국무총리와 박승춘 국가보훈처장 등이 18일 오전 광주광역시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열리는 '제36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임을 위한 행진곡' 기념곡 지정 및 제창 거부에 항의하는 유가족들의 항의를 받은 박 보훈처장은 기념식장에 앉기도 전에 쫓겨 났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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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의회가 내세운 논리도 저급하다. 그들은 '임을 위한 행진곡'을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노래", "가사의 '임'과 '새날'이 김일성과 사회주의혁명을 뜻함"이라고 주장한다. 이 주장의 바탕은 "'임을 위한 행진곡'이 북한이 제작한 영화 '임을 위한 교향시'의 배경음악"이란 건데, '임을 위한 행진곡'은 1982년 4월 윤상원(5.18 당시 시민군 대변인)과 박기순의 영혼결혼식의 추모곡으로 만들어진 노래고, <임을 위한 교향시>는 1991년 제작된 영화다.

국가보훈처가 말하는 국론이 이런 것인가. 새누리당 소속의 하태경 의원조차 "'임을 위한 행진곡'의 역사를 살펴보면 '임'이 김일성이 아니라는 사실이 금방 나온다"라며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북한에서 부르면 그 통일은 적화통일인데, 그렇다고 우리가 그 노래를 부르면 안 되는 건가"라고 비판했다.

북한 김일성대학 출신의 주성하 <동아일보> 기자도 "이 노래를 허락없이 부르면 북한에서도 잡혀가 정치범이 된다"라며 "'임을 위한 행진곡'은 오히려 김정은의 압제에 신음하는 북한 인민이 따라배워야 할 정신이다. 이 노래를 북한과 연결시키는 찌질한 짓거리는 그만하라"라고 일침을 가했다(관련기사 : "북한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부르면 잡혀가").

보수정부는 수년 째 5월 18일이 다가오면 '임을 위한 행진곡' 문제를 꺼내든다. 그것도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특정 집단의 의견을 내세우면서.

때문에 5월 18일을 즈음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두고 치고받다가 지나가 버리는 게 벌써 몇 년째다. 지난 17일 전야제에서 5.18 유족 김길자(77, 사망 당시 광주상고 1학년이었던 고 문재학군 어머니)씨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발포 명령한 사람들 데려다가 처벌도 하고 진상규명도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관련기사 : '폭도' 아들, 이제 '열사'됐지만 "5.18, 안 끝났습니다! 같이 싸워주세요!"). 이렇듯 아직 5.18과 관련해서 해야 할 이야기가 많은데 말이다.

그 사이, 전두환은 한 언론을 불러다가 불쑥 "어느 누가 국민에게 총을 쏘라고 하겠어,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말라고 그래"라며 자신의 책임을 부인했다. 그 사이, 기념식에서 발표되는 경과보고에는 '신군부'와 집단발포' 등 5.18을 이야기할 때 꼭 거론돼야 할 것들이 사라지고 있다(관련기사 : '신군부' '집단발포' 빠진 보수정권의 5.18 경과보고).

다시 5.18 기념식에서 황교안 총리의 입에서 나온 "국민통합"과 박 대통령이 강조하는 "100% 대한민국"을 생각해본다. 국민통합은 "나를 따르라"의 결과물이 아니다. 대한민국 국민 100%가 한 가지 의견에 동조하는 것이 아닌, 대한민국 국민 100%가 제 의견을 낼 수 있는 게 민주주의고 5.18이 남긴 유산이다.


태그:#5.18, #박근혜, #황교안, #국민통합, #임을 위한 행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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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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