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안철수 의원의 탈당으로 새정치민주연합(아래 새정치)의 위기가 구체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시간 차를 조금씩 두고 있지만, 후속 탈당도 계속 이어지는 모양새다. 탈당한 안 의원에 대한 호남의 지지율, 호남 지역 및 비주류 의원의 동반 탈당 규모가 세간의 주요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또한 문재인 대표의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언론 보도 상으로는, 문재인 대표가 일견 최대의 정치적 위기상황에 처해 있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내면을 들여다 보면 또 먹구름만 잔뜩 끼어 있는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다. 일희일비 할 일은 아니지만 온라인으로 7만 명이 넘는 당원이 새로 가입을 했고, 혁신을 바라는 지지자의 결집 또한 가시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도 적지 않은 응원이기도 하나, 정작 승부는 지역민이 후보를 선택하는 상향식 공천을 포함해, 혁신적인 정당개혁을 통해 누가 인재를 더 많이 영입할 수 있을 것이냐에서 갈릴 것으로 전망된다.

탈당이나 분당으로 야권 세력의 분열을 초래했다는 비난이 문재인 대표를 괴롭힐 것이다. 그러나, 긴 호흡으로 승부를 바라보면, 여야는 결국 일대일 구도로 총선에서 맞붙을 가능성이 크다. 안철수 신당이 생각만큼 위력을 떨치기 어렵다는 것인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지난 2014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주당과 통합한 안철수 의원에게 기초의회 무공천을 포함한, 개혁안에서 물러서지 말 것을 주문하는 기사를 쓴 적이 있다(관련 기사 : 노무현은 주고 유시민은 못 준 것... 안철수는?)

이 기사에는 악성 댓글이 많이 달리기도 했는데, 나를 비난하는 댓글이 아무리 많아도 실체적 진실은 언제나 자기 길을 가는 법이다. 안 의원이 민주당에서 그의 꿈을 실현하지 못했다는 그 결과까지 바꿀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럼 안철수는 개혁을 실현할 충분한 힘을 이제는 길렀을까. 이 질문에 자신 있게 그렇다라고 답할 수 없는 것은, 그때 안철수의 개혁안을 좌절시킨 세력이나, 지금 안철수와 함께 하겠다고 발 벗고 나서고 있는 세력이 동일하기 때문이다.

작은 정치는 모르겠지만, 원칙을 어기며 큰 정치는 할 수 없다. 창당 선언을 하면서 밝힌 안철수의 원칙은 곧바로 딜레마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안철수 신당은 문재인의 새정치를 제외하고는 누구와도 연대할 수 있는 길이 열려있다고 엄중한 선언을 했다. 하지만 안철수의 윤리 기준에 부합하는 인물을 만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새정치에서 탈당해 신당 합류를 선언한 임내현 의원은, 당장 안철수 의원이 그토록 싫어하는 '막말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호남의 맹주라고 일컬어지는 박지원 의원은 또 어찌할 것인가. 2014년 7월 재보궐 선거에서, 안 의원 스스로 구시대 인물로 낙인 찍어 경선참여까지 막음으로써 결국 탈당까지 하게 만들었던 천정배 의원은 뚜렷한 이유도 없이 갑자기 혁신을 함께할 수 있는 인물이 돼 돌아오고 있다. 이들과 함께하면서, 안철수 의원이 스스로 세운 혁신의 원칙을 어떻게 지켜나간다는 것인지 자못 궁금하다.

정작 앞으로 안철수 신당이 직면하게 될 더 큰 위기는 따로 있을지 모른다. 세 불리기를 위해서 새정치의 탈당파와 함께 승선한 배가 '오월동주'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이라는 파도 앞에서는 일사불란했지만, 배에서 내려서 새로운 울타리에서 까지도 지금처럼 일사불란할 수 있을 것인가.

국회의원 정원 축소나 기초의회 무공천 등 안철수 전 대표 시절의 개혁안에 대해 쏟아냈던 당내의 비난이, 지금도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원색적이던 것을 감안한다면 한 배에 탄 사람들의 정치 철학적 공통분모가 많지는 않아 보인다.

문재인이 특별히 잘못해서 지금 비주류의 집중포화를 얻어 맞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대표 시절 안철수가 맞았던 것과 똑같은 것을 맞고 있을 뿐이다. 단지, 안철수는 무릎을 꿇었고 문재인은 버티고 있는 게 다를 뿐이다. 비주류와 함께하는 안철수의 탈당이 회의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 관계로, 문재인 대표의 승부에서 안철수 신당은 변수가 아니다. 동반 탈당 규모나 호남에서의 지지율 등은 정치공학적인, 단기적인 의미를 지닐 뿐이다. 문재인이 야당의 명백한 대표로 설 수 있느냐의 여부는 확고한 정당개혁을 통해 승리하는 정당의 길을 찾아 낼 수 있을 것인가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총선 승리를 위해서는 뭉쳐야 한다는 비주류의 주장이 틀린 말은 아니겠지만, 습관적으로 사용 되고 있다는 느낌 또한 지우기 어렵다. 김한길 대표가 삼고 초려해 안철수를 공동대표로 영입할 때도 같은 주장을 했고, 지금도 문재인이 사퇴하면 뭉쳐서 총선을 승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만 되풀이 하고 있지만, 단정적으로 그것은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현재의 야당이 총선에서 승리한 역사는 거의 없다. 양김 시대와 대통령 탄핵이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 간혹 한 번씩 이뤄냈을 뿐이다. 이제는 좀 솔직해 질 필요가 있다. 지금 문재인 대표가 사퇴하고 안철수 의원이 뭉쳐있어도 총선 승리는 쉬운 게 아니다. 최선의 결과가 나왔을 때는 어중간한 패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 어중간한 패배가 직업인으로서의 국회의원들에게는 의미가 있겠지만, 지쳐 있는 국민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어중간한 패배의 길을 버리고, 개혁과 혁신을 통해서 새로운 활로를 찾아야 한다. 혁신은 말로써 하는 게 아니라 시스템을 만들고 그것을 실천함으로써 이뤄진다. 김상곤 혁신위의 안이 충분히 지켜져야 하고, 대표의 제왕적 공천권이 배제돼야 한다. 민주주의 원칙에 입각해 아래에서 형성된 국민의 뜻이 상부를 향해 올라가는 정당 구조를 만들어냈을 때 다가오는 총선은 야권에 강력한 무기를 제공하게 될 것임에 틀림 없다. 설령 선거에서 패배한다 하더라도 야권은 무너지지 않을 것이며, 문재인도 건재할 것이다. 원칙을 포기하지 않은 패배는 반드시 뒷날을 기약할 수 있는 법이다.


태그:#문재인, #개혁, #새정연, #안철수, #탈당
댓글13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아름다운 대한민국, 서로를 감싸주는 대한민국을 꿈꿉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