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대밭은 강의 하구와 바다가 만나는 곳에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자연의 결과물이다. 과거 이곳은 생태계의 보고였으며 사람들에게는 최고의 교역지였다. 그리고 백제를 치러 들어온 당나라군이 들어온 공간이다.
대전을 비롯하여 충청북도를 먹여 살리는 젓줄 금강은 이곳에 와서 그 여정을 마무리한다. 소금을 품지 않았던 금강이 이곳에 와서 엄청난 물이 담겨 있는 바다로 나간다. 금강하구둑은 민물과 바닷물의 경계에 그렇게 자리했다.
염생식물인 갈대는 소금기가 없으면 크게 자라지 못한다. 전라도의 순천만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국민들에게는 확실한 이미지를 심어놓은 신성리 갈대밭은 영화 촬영지로도 알려지면서 유명해진 곳이다.
만든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 신성리 갈대밭의 표식이 눈에 띄인다. 무려 1500여 년 전에 웅진시대를 맞이 하며 백제는 이곳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이곳을 기점으로 무역을 했고 이곳을 통해 왜나라와 통했다. 백제의 중요한 지리적 요충지였으며 다른 국가와 통할 수 있는 길이었다.
그러나 중요한 요충지는 적에게도 유용하게 활용이 된다. 당나라는 바로 이곳을 통해 백제의 수도로 향하게 된다. 금강변에 있는 갈대밭은 당나라 육군에게 요긴하게 활용된다. 계백장군의 군사가 그렇게 일찍 패하지 않았다면 당나라 군대는 썰물에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을 것이다.
이곳 저곳 방향없이 뻗은 것 같은 이곳의 갈대는 자유를 상징한다. 아침 산책도 좋지만 오후의 산책이 더 어울리는 신성리 갈대밭은 과거 강경으로 물길을 이어주는 그 입구에 자리하고 있다. 충청남도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던 강경은 이곳 신성리가 중요한 역할을 했던 곳이다. 사람도 이 물길때문에 먹고 살았고 다른 생물들도 이곳 때문에 생존해왔다.
우리 전통문화 중 하나인 솟대도 이곳 갈대밭에 자리하고 있다. 솟대의 기원은 먼 샤먼 신앙까지 올라간다. 시베리아의 샤먼 역시 그들의 신앙에는 솟대가 있다. 위대한 신수 앞에 긴 소나무 장대가 있고 그곳에서는 물오리 아홉 마리가 비상한다. 신성리 갈대밭에서도 비상하는 철새와 함께 볼 수 있는 것이 이 솟대들이다. 단군신화에서도 신단과 신수가 결합된 신단수의 천상과 지상을 연결하는 통로에 세워진 나무가 있다.
드라마는 보지 못했지만 <미안하다 사랑한다>도 이곳에서 찍은 모양이다. 죽음도 두렵지 않은 지독한 사랑의 흔적이라는 문구가 눈에 띄인다. 이곳은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갈대밭으로 직접 들어가는 것을 막고 있다.
갈대 사이로 이렇게 흐르는 물은 민물도 바닷물도 아니다. 염분을 함유했으나 바닷물보다는 적으며 민물이라고 보기에는 염분이 많다. 예전부터 민물과 강물이 만나는 곳에는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곤 했다. 이곳에서 살 수 있는 생물들은 민물에서도 적응할 수 있고 바닷물에서도 적응할 수 있다.
강 옆으로 걷기 좋게 바닥이 다져져 있다. 어느 곳에서 찍어도 그림이 되는 신성리 갈대밭이다. 여름의 초록색은 생명을 상징하지만 가을의 황금빛은 성숙되는 삶을 상징한다. 겨울이면 가창오리, 고니, 마도요, 검은머리물떼새, 청둥오리들이 이곳을 찾아 철새들의 군락지로 그 역할을 해낸다.
강을 옆에 끼고 걷다보면 갈대가 옆에서 옆으로 전해주는 이야기가 들리는 것 같다. 가을바람에 실려 날려오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와 생물들의 이야기가 추억을 만들고 고독도 즐거운 경험으로 만들어준다. 강물 위로 하늘이 비추어져서 강과 하늘이 하나로 된 듯한 착각마저 들게 만든다. 금강은 끊임없이 바다 쪽으로 흘러가고 새로운 물이 저 먼 수원지에서 다시 여정을 시작한다.
백제의 부활을 꿈꾸는 사람들이 이곳 근처에서 모였었다. 백제부흥군과 왜에서 넘어온 사람들이 이곳에서 대기하면서 백제의 부활을 꿈꾸며 일어섰지만 결국에는 그 꿈은 이루지 못하고 백제는 역사의 이면으로 사라져갔다.
갈대밭을 돌아다니면서 이곳 저곳을 감상하다 보니 벌서 해가 달과 교대하려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해는 점점 짧아지고 있다. 갈대 사이를 이리저리 비집고 돌아다니는 바람은 우는 듯한 소리를 듣게 하고 멀리 보이는 생명의 젓줄 금강은 풍요로움을 느끼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