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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아쓰기에도 반공교육을 했던 그 시대
▲ 1985년 반공교육 받아쓰기에도 반공교육을 했던 그 시대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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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설거지 이후 둘째와 셋째를 씻기고 나서였다. 씻는 순서 사다리 타기에서 꼴찌를 한 까꿍이를 부르기 위해 욕실을 나섰는데 저만치 서 있는 까꿍이의 표정이 심상치 않아 보였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어라? 내가 까꿍이 5분 안에 운다에 건다."
"5분은 무슨, 30초 안에 터질 걸?"

역시나 아이 보는 눈은 아내가 나보다 더 정확하다. 우리의 대화를 듣던 까꿍이가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울기 시작했다. 바로 아까 전만 하더라도 사다리타기에서 세 번째를 골랐다며 가장 늦게 씻어서 좋다고 생글거리던 녀석이었다.

"왜 그래? 까꿍이 왜 울어?"
"몰라. 어제 사회자 카드라고 만든 종이에 적혀있는 글씨들의 맞춤법이 너무 엉망이라 글자 가르쳐 준다고, 내가 쓰면 그거 한 번 따라 쓰라고 했더니 갑자기 저러네."

그래도 부모는 읽을 수 있다
▲ 까꿍이의 사회자 카드 그래도 부모는 읽을 수 있다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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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야 까꿍이 울음의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삼남매는 자기 전 가끔 엄마, 아빠를 관객으로 모셔놓고 자기들끼리 노래자랑을 하거나 공연을 한다. 어제는 까꿍이가 어디서 봤는지 사회자 카드를 들고 나름 사회자 흉내를 내더니만 그 카드에 적혀있는 글씨들이 삐뚤빼뚤 엉망이었던 것이다. 아내는 그 글씨를 보고 기가 차서 한소리 했던 것이고.

평소 아내는 아이의 학습에 대해 관대한 편이었다. 둘째가 아직 10까지 세지 못해도 설마 평생 세지 못하겠냐며 넘어가고, 첫째가 맞춤법이 다 틀려도 설마 초등학교까지 가서도 모르겠냐고 넘어간다. 그런데 이제 막상 첫째의 초등학교 입학이 눈앞에 닥치니 은근히 걱정될 수밖에. 아마도 까꿍이의 눈물은 이런 엄마의 걱정에 기인한 갑작스런 압박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그 장면을 보며 나는 아빠로서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해야 했다. 아내와 함께 딸을 압박하자니 일곱 살 밖에 안 된 아이가 안쓰럽고, 그렇다고 그냥 있으려니 조금 답답하고. 결국 난 내가 어렸을 적부터 모아왔던 공책들을 보여주기로 했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시작해서 고이 모아 놓았던 필기들을 보며 아빠도 너와 같은 시기가 있었노라고, 그러니 주눅 들지 말고 열심히 하면 잘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로 했다.

'공산군이 괴롭혔읍니다'... 받아쓰기에 나타난 시대상

우와~ 아빠 100점이 뭐야?
▲ 아빠의 자랑 우와~ 아빠 100점이 뭐야?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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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열심히 했었지
▲ 받아쓰기의 흔적들 그래, 열심히 했었지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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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앞으로 오래된 공책들을 가지고 나왔다. 이사를 하며 여러 번 버렸던 터라 많이 남아 있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초등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켜켜이 쌓아놓은 나의 흔적들인 만큼 감회가 새로웠다. 게다가 그걸 나의 자식들에게 보여주다니.

우선 까꿍이에게 초등학교 1학년 국어 공책부터 보여주었다. 글씨를 쓴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삐뚤빼뚤했지만 어쨌든 네모 칸 안에 다 들어간 것이 녀석에게는 그럴 듯해 보이는 수준이었다. 연신 감탄사를 뱉으며 아빠의 어렸을 적 글씨를 쳐다보는 아이들. 얌마, 너희들도 열심히 해서 이 정도 해야지.

다음은 받아쓰기 공책. 장장 30년이 지났건만 아직까지 크게 색이 바라지 않은 애니메이션 '사파이어 왕자'가 그려져 있는 표지를 넘겼다. 공책 줄을 따라 가지런히 쓰여진 글씨들과 빨간 색 동그라미, 그리고 큼지막히 적혀있는 100점 혹은 90점이 눈에 띄었다. 그래, 그때는 저 점수에 무척 뿌듯해 했는데.

30년이 지난 공책
▲ 1985년 받아쓰기 30년이 지난 공책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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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보여주려고 꺼낸 공책은 어느새 내 차지가 되었고, 난 30년 전 기억을 더듬으며 공책을 계속 넘기고 있었다. 그때였다. 이상한 글귀가 눈에 띈 것은.

"북한 공산군이 쳐들어 왔읍니다 마구 총을 쏘았읍니다 그날이 6월 25일입니다 집과 학교가 불탔읍니다 많은 사람이 다쳤읍니다 집을 떠났읍니다 산에 숨은 사람 남쪽으로 떠나기도"

"아이고 배고파 나무 밑에서 잤읍니다 추웠읍니다 대포 소리가 들렸읍니다 무서웠읍니다 공산군이 괴롭혔읍니다 물건을 빼앗아갔읍니다 힘든 일을 시켰읍니다 국군을 기다렸읍니다 집을 떠난 어린이"

"공산군을 물리쳤읍니다 북쪽으로 달아났읍니다 우리 대한민국 만세 뒤쫓았읍니다 태극기를 앞세우고 마을로 돌아왔읍니다 집을 고쳤읍니다 새로 짓기도 하였읍니다 만세를 불렀읍니다 마을에 들어왔읍니다"

그렇다. 그것은 반공교육이었다. 1985년 당시 담임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위와 같은 문장들을 거리낌없이 불러주었을 것이며, 초등학교 1학년생들은 아무 생각 없이 저 말들을 그냥 받아썼을 것이다. 한치의 의심도 없었을 것이며 어떠한 고민도 없었을 것이다. 당시에는 저 문장이 당연한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아득해졌다. 어떻게 8살 초등학교 1학년을 데리고 저런 글들을 받아쓰게 했을까? 아무리 역사적 정당성이 중요하고, 그 모든 게 교과 과정에 들어있다고 하더라도 굳이 아이들에게 저리 끔찍한 장면을 연상시키면서까지 받아쓰기를 시켜야 했을까?

자연스레 나의 시선은 까꿍이에게로 갔다. 이제 5개월이 지나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까꿍이. 과연 넌 어떤 내용으로 받아쓰기를 하게 될까? 반공교육은 30년 전 아빠가 받았던 걸로 끝난 것일까? 하지만 그건 섣부른 판단이다. 지금 우리는 멀쩡한 교과서를 편향된 좌파 교과서라 칭하며 역사 교과서를 국정화 시키겠다는 야만의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내 아이를 위해,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한다

비정상화의 정상화 된 결과인가?
▲ 국정화 시대의 미래? 비정상화의 정상화 된 결과인가?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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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최근까지 난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었다. 여야 정치인들은 무슨 큰일이라도 벌어진 양 호들갑을 떨지만 그것은 2016년 총선을 앞두고 나름의 전선을 긋기 위한 몸짓일 뿐, 실제로 역사 교과서 국정화가 우리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장 우리 세대만 하더라도 국정 교과서 '국사'로 역사를 배웠지만 교과서에 기술된 대로 역사를 인식하는 이들은 드물지 않는가. 대부분의 국사 선생님들은 일제 강점기 이후를 가르치는 둥 마는 둥 했고, 시험문제의 범위 역시 1945년 이전, 혹은 한국전쟁 이전이었다. 현재와 가장 관련이 깊은 근현대사는 항상 이견이 존재하는 미지의 영역으로 남았으며, 그 시기의 역사가 궁금한 학생들은 스스로 알아서 교과서 외에 다른 자료들을 통해 공부해야 했다.

하물며 요즘은 역사 자체가 무시되는 시대이다. 대학에서도 사학 관련 수업은 살아남기 힘들며, 역사학을 전공하면 굶어죽기 딱 좋다는 믿음이 횡행한다. 중고등학교 역사수업 역시 입시를 위해 존재할 뿐이다. 그런데 이런 시대에 역사 교과서 국정화가 실제로 큰 의미를 지닐 수 있을까?

물론 대통령이 아버지에 대한 제사를 지내기 위해 역사에 대한 해석을 독점하려는 작금의 상황은 한편의 블랙 코미디와 같지만, 그 때문에 국영수 중심으로 공부하던 아이들이 역사에 새삼스레 관심을 가질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인다. 어쨌든 오랜 기간 동안 우리는 역사를 공부하지 않아도 잘 먹고 살 수 있다고 배워왔고, 그만큼 역사는 하찮게 치부되어 왔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위기는 자라나는 아이들이 잘못된 역사를 배우는 데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역사의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한 채 역사를 아예 공부하지 않는 데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나의 무관심은 나의 30년 전 초등학교 1학년 받아쓰기를 본 이후 바뀌었다.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가 역사만의 문제로 남지 않을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 때문이었다.

역사 교과서를 정권의 입맛에 맞게 고치다 보면 다른 과목의 교과서 역시 정권 편의대로 손을 볼 것이며, 그럼 30년 전 처럼 반공교육 등을 여러 가지 형태로 아이들에게 주입시킬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그림을 그려도 반공 포스터를 그리고, 작문을 하더라도 한국전쟁을 소재로 하고, 북한에는 돼지와 늑대들이 주민들을 다스린다고 믿는 시대가 다시 오지 않을 것이라 어찌 자신할 수 있겠는가.

어린 아이들은 스펀지와 같은 존재이다. 처음 무엇을 보고 듣고 배우느냐에 따라 그 아이의 심성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나는 내 아이가 어렸을 적 반공사상과 같은 폭력적인 교육을 받지 않길 원한다. 그것은 그 정체조차 애매한 북한의 주체사상과 마찬가지로 권력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그릇된 사상이기 때문이다.

역사학자 E. H. 카는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 부디 정부는 혼자 이야기 하지 말고 과거의 말에도 귀 기울이기 바라며, 그 대화 역시 많은 사람들이 할 수 있음을 깨닫기를 바란다.

○ 편집ㅣ박혜경 기자



태그:#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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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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