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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신경이 가 있는 곳
▲ 선사마을 입구 아내의 신경이 가 있는 곳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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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하기 두 달 전. 모든 것이 순조로워 보였다. 극심한 서울 강동구의 전세난 속에서 남들은 전세 물량 자체가 없다고 야단인데, 우리는 다행히, 그것도 아내가 그토록 원하던 마당있는 주택을 얻었으니 엄청난 행운임에는 분명했다.

아내는 계약을 하고 온 뒤 내내 이사 갈 집 이야기뿐이었다. 개를 키우는 건 어떠냐는 걸로 끝난 나와 달리, 아내는 마당은 어떻게 정리하고 무엇을 심어야 할지, 각각의 방은 누구에게 배당하고 또 어떤 용도로 써야 할지, 가구 배치는 어떻게 해야 할지, 그리고 입주청소와 페인트칠은 누가 하는지 등등 그 모든 것들에 대해 내 생각을 물어왔다.

아내의 계속되는 고민과 질문들. 내가 느끼기에는 아직 이른 고민들로서 계속 듣고 있자니 잔소리에 가까웠지만 그냥 그러려니 지켜볼 뿐이었다. 아내가 말은 안 했지만 그동안 이사 때문에 얼마나 애를 태웠는지, 그리고 새로운 보금자리를 기획한다는 것이 그녀에게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짐작하기 때문이었다.

우리 집 이사를 막는 '예상치 못한 복병'

그러나 이런 아내의 행복한 고민은 전혀 예상치 못한 복병을 만나 끝나고 말았다. 이삿날이 두 달 앞으로 껑충 다가왔는데도 불구하고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가 나갈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이사를 가기 위해서는 아파트 집주인에게 전세금을 받아야 하는데, 이러다가 설마 전세금을 제때 못 받아 이사 갈 집을 날리는 건 아니겠지?

어처구니없는 상황이었다. 강동구 전체적으로는 전세물량 자체가 없어서 난리인데 유독 우리 집을 보러 오는 세입자만 없다니. 주말에도 많아봤자 2, 3팀이 전부였다. 도대체 왜?

이유는 당연히 가격 때문이었다. 집주인은 강동구 전세난에 맞춰 아파트 전셋값을 2년 전 보다 1억3천만 원을 올려서 부동산에 내놓았는데, 우리 집이 15층 탑층인 걸 감안한다면 이는 분명 비싼 가격이었다. 집주인은 강남의 의사였는데 이 집을 투기 목적으로 구매한 이상 전셋값을 내릴 생각이 없는 듯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예봉산과 검단산
▲ 탑층의 전망 창밖으로 보이는 예봉산과 검단산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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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층은 하늘과 가깝다
▲ 탑층의 위엄 탑층은 하늘과 가깝다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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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더 큰 문제는 결로였다. 우리 집은 15층 아파트 탑층에 3면이 외벽이고 옥상에는 화단이 있었는데, 그 결과 우리는 2년 내내 최악의 결로를 안고 살아야 했다. 전문가들은 이 아파트가 MB시절 때 날림으로 지어진 SH공사 아파트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는데 어쨌든 결로는 상상 이상이었다.

우리는 겨울에도 보일러를 제대로 틀지 못한 채 17~18도에 옷을 껴입고 자야 했으며, 철마다 곰팡이로 옷들을 버려야 했다. 베란다 수납장에는 그 어떤 물품도 집어넣지 못했고, 천장은 조금씩 휘어지는지 계속해서 페인트칠이 벗겨졌다. 둘째의 잦은 기관지염 역시 결로 때문에 생긴 곰팡이가 그 원인이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그러니 아내가 단독주택이 춥다는 말에도 상관없다고 할 수밖에. 우리는 아파트에 살면서도 이미 충분히 춥게 살았었다.

또한 결로는 미관상으로도 최악이었는데, 집을 보러 온 세입자들은 베란다 흰 벽에 까맣게 핀 곰팡이를 보고 기겁했다. 2년 전 우리는 이 집을 보러 왔을 때 그 전 세입자가 벽지로 가려 놓아 그 심각성을 잘 몰랐다가, 이사한 뒤 정리를 하면서 그 심각함을 알게 된 경우였다, 집주인은 계약 당시 결로를 해결해주겠다고 했지만 수성 페인트를 칠해준 게 다였고, 그해 겨울 곰팡이는 다시 올라왔다.

결로는 시간이 갈수록 심해졌지만, 어차피 나가야 하는 세입자의 입장에서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기는 불가능했다. 집주인 역시 건설사에다가 소송을 건다 어쩐다 이야기했지만 계란으로 바위치기일 뿐이었다. 결국 우리는 돈 때문만이 아니더라도 결로 때문에 이 집에서 더 이상 살 수 없었다.

결로 수리 해달라니 감감무소식인 집주인

결로는 상상 그 이상이다
▲ 탑층의 비애 결로는 상상 그 이상이다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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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지는 천장과 시커먼 곰팡이
▲ 심각한 결로 갈라지는 천장과 시커먼 곰팡이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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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각한 결로에도 불구하고 비싼 전셋값. 그러나 집주인은 감감무소식이었다. 결로가 심해 집을 보러 온 사람들이 혀를 차고 나가는데도 집주인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부동산이 전셋값을 낮추거나 결로를 해결하라 해도 요지부동이었다. 도대체 새로운 세입자를 받을 생각이 있기나 한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설마 돈도 많은 집주인이 전세금을 떼어 먹겠냐만은, 돈을 제때 주지 않아 겨우 구한 선사마을 집에 들어가는 데 지장이 있는 건 아닌지 걱정되었다.

이사갈 집을 구해 여유를 보이던 아내도 조급해졌는지 나를 붙잡고 닦달했다. 빨리 집주인에게 전화를 걸어 이삿날까지 대출이라도 해서 전세금을 주겠다는 약속을 받아내자고 했다. 나는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집주인에게 전화를 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빤했다. 그때까지 집이 나가도록 최선은 다하겠지만 그래도 안 된다면 어쩔 수 없다는 것이었다. 시쳇말로 집주인은 배를 쨌다.

아내는 격분했다. 우리가 들어올 때 제대로 결로 공사 안 해준 것도 계약 위반인데, 나갈 때도 이렇게 속을 썩이느냐고 흥분했다. 평소 그 어떤 문제보다도 자신이 무시 당하면 참지 못하는 아내였는데, 집주인의 그 안하무인식의 대응이 아내의 화를 키웠다.

그러나 나는 그런 아내를 달래야만 했다. 어쨌든 우리가 을이니까 참을 수밖에 없다며, 억울하지만 집을 사지 않는 이상, 이와 같은 일은 언제든지 벌어질 수 있다며 아내를 진정시켰다. 오히려 이때 우리가 집주인의 심기를 건드리면 손해 볼 가능성만 높아진다고 했다. 집주인이야 전세금 환급이 좀 늦어졌다고 사과하면 끝나겠지만, 제때 돈을 못 받아 아쉬운 건 결국 세입자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집주인은 그 뒤 자신도 불안했는지 결로 공사를 발주했다. 처음에는 우리가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일반 수성 페인트를 칠하려 했지만, 시공업자들이 그러면 결로에는 아무 의미가 없다며 공사를 거부하자 그제야 비로서 2~3배 돈을 더 들여 특수페인트를 칠하기로 결정했다. 주인에게 독한 페인트 냄새를 맡아가며 며칠 동안 생활해야 하는, 세탁기를 나흘 동안 거실에 방치해야 하는 우리는 안중에도 없어 보였다. 이 모든 과정이 전세 잘 나갈 수 있도록 하는 과정이니 이해해 달라고 할 뿐이었다.

드디어 공사 중
▲ 결로 공사 중 드디어 공사 중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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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한 페인트 냄새 때문에 싱크대 밑에서 자고 있는 복댕이
▲ 결로 공사 중 독한 페인트 냄새 때문에 싱크대 밑에서 자고 있는 복댕이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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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겁하고 씁쓸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틀에 걸친 페인트 공사가 끝나고 나니 집은 언제 그랬냐는 듯 깨끗해져 있었다. 예전에는 안방과 거실, 부엌의 베란다까지 검은 곰팡이가 덮여져 있어서 보는 사람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는데, 그 모든 것이 특수 페인트로 덮였다. 베란다 끝에 위치한 수납장의 일그러진 선반만이 이 집의 심각한 결로를 이야기할 뿐이었다.

어쨌든 결로가 이렇게 덮이고 나자 부동산에서는 세입자들에게 적극적으로 우리 집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주말에도 2팀이 오는 둥 마는 둥 하더니 이제는 주중에도 사람들이 와서 집을 보고 갔다. 세입자들 옆에서 탑층이어서 전망도 좋고, 우리가 아이가 셋임에도 불구하고 집을 깨끗이 썼다며 추임새를 넣는 부동산 주인들.

마음 같아서는 그들에게 이 집이 얼마나 추운지, 결로가 얼마나 심한지 이야기해주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었다. 우리가 전세금을 돌려받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집주인과 전세 계약을 해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이 집의 하자에 대해서 아무 말 하지 말아야 했다. 특히 이삿날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집주인의 계약에 대해 초를 칠 수는 더더욱 없는 노릇이었다.

이사 날짜를 2주 정도 남겨둔 날, 집주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드디어 집이 나갔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전세가 아니라 거기에 4천만 원을 더 붙여 아예 집을 매매했다고 했다. 문제는 이사 날짜였는데 새로운 집주인은 우리가 나가고 난 뒤 한 달 뒤에 들어오기로 했고, 우리 이사 날짜에 맞춰 중도금을 주고 나머지는 집주인이 어떻게든 마련해서 우리의 전세금은 이사 당일에 주기로 했다.

어마어마한 결로
▲ 겨울 아침 풍경 어마어마한 결로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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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로 공사 후 달라진 집
▲ 멀쩡해 보이는 집 결로 공사 후 달라진 집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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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다행이었지만 그 소식을 들은 아내는 영 찜찜해 했다. 아무래도 이 집을 산 사람이 지난 주말에 다녀간, 갓 돌을 넘긴 아이가 있던 신혼부부 같다는 것이었다. 집을 구경 와서는 2년 전 우리와 같이 집을 꼼꼼히 챙겨보지 않고 대충 훑어 보더니 시원하게 펼쳐진 창문 밖 풍경을 보면서 좋아했다고 했다. 영유아에게는 곰팡이가 필 수밖에 없는 결로 심한 집이 나쁠 텐데 하며 걱정하는 아내.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비겁하고 씁쓸한 일이었지만 그 이상을 걱정하기에는 당장 우리 앞가림하기도 급급했다. 어쨌든 우리도 그 전세금을 받아야지만 선사마을로 가서 새로운 일상을 준비하지 않겠는가. 우리 때와 달리 새롭게 칠해진 특수페인트가 그 심각한 결로를 막기를 바랄 뿐이었다.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마친 이사 준비. 이렇게 우리의 마지막 강일동 살이는 끝나가고 있었다.

○ 편집ㅣ박혜경 기자



태그:#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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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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