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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스젠더 루시엔
 트렌스젠더 루시엔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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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노동자들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소외된 집단 중 하나다. (중략) 성매매 비범죄화는 성 노동자들이 성 노동을 해도 법을 어기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달 11일, 세계적 인권단체 국제앰네스티(아래 앰네스티)는 아일랜드에서 대의원총회를 열고 성매매 관련자를 처벌 대상에서 전면 제외한다는 결정(비범죄화)을 통과시켰다. "일부 성 노동자는 오직 생존 수단으로 성 노동에 종사한다"며 인권 보호를 위해 이들을 범죄자로 보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는 성 매수자와 알선업주(포주)까지도 처벌하지 않겠다는 결정이어서 국내·외에서 큰 논란이 일었다.

한국여성단체연합·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등 한국 내 5개 여성 단체도 이틀 뒤인 13일 논평을 냈다. 이들은 "'성매매 비범죄화'가 여성들의 인권향상에 이바지한다는 앰네스티의 주장은 어디서도 입증되지 않았다, 오히려 여성들의 상황을 더욱 열악하게 만들 뿐"이라며 "불평등과 불의에 기반을 두고 이득을 취하는 이들이 더욱 활개 치게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성매매에 직접 종사하는 사람의 생각은 어떨까. 자신을 "자영업 성 노동자"라 소개하는 루시엔(25세, 별명)씨를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영등포역 근처 카페에서 만났다. 성전환자 여성으로서 약 3년간 성매매에 종사해온 그는, 앰네스티의 이번 결정에 "굉장히 감사하고 고맙다"고 말했다.

루시엔씨가 <오마이뉴스> 기자와 만나 털어놓은 MTF 트랜스젠더(male to female, 여성 정체성을 가진 성전환자)로서의 삶, 성매매(성 노동), 앰네스티 결정에 대한 생각 등을 1, 2부로 나누어 싣는다. 사진 사용과 개인 정보 공개와 관련해 루시엔씨의 동의를 얻었으며, 루시엔씨의 의견이 모든 성매매 종사자의 의견을 대표하는 것은 아님을 미리 밝혀둔다.  

한편, 1991년생으로 스물 다섯살인 루시엔씨는 2012년 겨울 우연한 계기로 성매매를 시작하게 됐다. 현재 업소에 소속되지 않고 독립적으로 영업 중이다. 성매매 종사자로서의 루시엔씨의 삶과 관련한 자세한 이야기는 2부에서 읽을 수 있다.    

"성매매 비범죄화 찬성, 우리도 노동자로서 안전할 권리가 있다"
트렌스젠더 루시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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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매매 종사자로서 이번 앰네스티 결정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저로서는 굉장히 감사하고 고마운 결정이었다. 앞서 많은 단체가 '성매매는 비범죄화돼야 한다'고 말했는데, 그런 얘기를 하는 단체는 주로 UN(국제연합) 등 소속이었다. 국제적 비정부기구(NGO)에서 얘기한 건 이번이 최초다. 정부 소속 인권단체가 아님에도 이런 의견을 낸 것은, 자기 단체를 지지하는 지지자들과 후원금을 포기하면서까지도 이 결정이 옳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거라 생각했다."

- 본인이 성매매 비범죄화를 찬성하는 이유는 뭔가.
"성 노동자도 노동자라고 보기 때문이다. 노동자로서 기본 노동권을 보장받아야 하고, 각종 범죄로부터 안전할 권리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인데 한국은 그렇지 못하다. 한국에서는 성매매가 불법화돼있기 때문에 성 노동자가 갖가지 범죄의 표적이 된다. 그런 범죄와 인신매매를 줄이기 위해서도 비범죄화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저는 성매매 합법화에는 반대한다. 성매매 비범죄화가 기본적으로 관계자들을 처벌하지 않는 것이라면, 합법화는 아예 성매매를 드러내어 규제하는 것을 말한다. 제가 볼 때 합법화는 성 노동자 보호보다는 성 구매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성격이 강하다. 성매매 합법화가 될 경우 또 다른 비합리적 규제가 생길 것으로 보인다.

일례로 합법화되면 특정 지역을 지정해 '여기는 성매매 합법' 이런 식으로 운영할 가능성이 큰데, 그렇게 되면 낙인 효과 등 또 다른 피해가 생길 수 있다. 보통 성매매를 하기 위해서는 몸과 장소, 지식과 광고가 필요한데, 이를 특정 지역으로 한정할 경우 부동산을 지닌 자본가에게 휘둘릴 수밖에 없다. 또 그 지역은 도심이 아닌 외곽에 설정할 가능성이 큰데, 그렇게 되면 거기 산다는 사실 자체가 낙인 효과로 작용할 수 있다. 만약 그 지역에 살며 아이를 낳는다면 아이마저 낙인 찍혀 차별받게 될 거다."

- 일부 여성단체는 성매매 자체를 노동으로 볼 수 없다는 견해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 그런 분들 주장의 논리는 대체로 '성매매는 인격을 파는 것이기도 하다, 장기매매와도 같다'는 식인데, 인격을 파는 감정노동은 전화 상담원이나 서비스직 이런 분들이 더 심하지 않나. 또 '몸을 판다'고 하는데, 그렇게 치면 인체를 상대로 한 시약 실험에 지원하는 사람들의 경우는 뭔가. 그러나 우리가 그 사람들을 범죄자라고 보지는 않는다. 분명 부작용이 있을 가능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건 합법이지 않나.

설령 장기매매라고 한다고 치자. 그러나 우리는 심장과 신장 같이 재생 불가능한 게 아니라, 혈액과 머리카락 같이 재생이 가능한 것을 파는 것이라고 본다. 특히나 안전하게 성매매를 했을 경우에는 상처가 생기거나 원치 않은 임신을 하는 경우도 없다. 여기서 제가 말하는 안전한 섹스는 삽입 시 반드시 콘돔을 착용하고, 노동자들의 신체적 특성에 따라 이완을 위한 윤활 젤을 사용하는 것 등을 말한다."

- 현재 성매매 자체가 불법인 한국에서 비범죄화가 된다면 어떤 것들이 달라질 수 있나.
"여러모로 좋아질 것이다. 일단 노동권 측면에서, 중간에서 알선하는 회사들의 경우 알선비를 굉장히 많이 떼어가는데, 비범죄화가 된다면 관련 노동법이 적용되기 때문에 일정 비율 이상을 떼가지 못할 것이다. 인권적 측면에서도 성매매 종사자가 업주나 손님으로부터 공짜로 성상납하라는 요구를 덜 받을 수 있다. 제가 알기엔 지역에서 오래 살아남은 업소의 경우, 해당 지역 경찰과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면 신입 혹은 업주에게 비협조적인 성매매 여성을 일부러 경찰에 넘기기도 한다. 이런 사례가 줄어들 거다.

지금은 성매매 자체가 불법화됐기 때문에, 하기 싫은 행위가 있더라도 손님이 '업소를 고발해버리겠다, 돈을 안 내겠다'고 하면 대응할 방법이 딱히 없다. 그러나 비범죄화가 된 상황이라면, 돈은 당연히 내야 하는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고, 손님이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하는 협박도 불가능하니 상황이 더 나아질 거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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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매매 불법화로 인해 겪는 피해 사례들이 실제로 많은가.
"일단 제 경우를 말씀드리겠다. 2013년 봄 구매자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 구매자가 고등학교 3학년을 마치고 졸업을 앞둔 상황이었는데, 저를 성매매 종사자라고 경찰에 신고하겠다며 협박했다. 본인은 미성년자 신분이라서 훈방 조치가 될 거라면서, 제게 실제로 위협을 가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런 협박에도 저는 도움을 청할 수가 없었다. 만약 우리나라가 비범죄화된 상황이었다면 애초 그런 협박 자체를 할 수 없었겠지.

그 외에도, 구매자가 성매매 이후 돈을 안 주거나 폭행을 하는 경우가 흔하다. 콘돔을 착용하지 않겠다는 사례도 누구나 한두 번은 겪는다. 제가 아는 미성년 여성 성 노동자의 경우, 손님에게 폭행을 당해 얼굴에 멍이 심하게 든 걸 본 적이 있다. 주변에선 신고하라고 하는데도 당사자는 같이 일하는 업소 사장이 가중처벌 될까 봐 못 하겠다고 하더라.

저 또한 신고하고 싶어도, 그 순간 나부터 범죄자로 취급받게 될 것이고 최소 100만 원 정도의 벌금을 내야 한다는 생각에 망설여진다. (가해자 측의) 범죄 사실을 증명할 증거가 있어야 하는데 거의 그렇게 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돈을 안 내거나 하는 경우에는 달리 대처 방법이 없다. 저 같은 경우도 그냥 참는 경우가 많다." 

- 앰네스티는 '이번 정책이 포주를 보호하려는 게 아니다, 성 노동자를 착취하는 제3자는 여전히 처벌 대상'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동료인 성 노동자 연희씨가 한 인터뷰를 보니 업자와 구매자, 판매자 모두 처벌하지 말자는 견해다. 이게 옳다고 생각하나.
"앰네스티 쪽의 취지는 '성매매 여성들을 보호해야 한다, 그러나 이들을 착취하는 경우에는 처벌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성매매 자체를 처벌하지는 않겠다는 뜻이다(앰네스티는 생계형 성 노동자가 존재한다고 보고 있다-기자주). 그리고 성매매 종사자들에게 있어 구매자는 소중한 수입원이다. 이들이 와야 원했던 목표만큼의 돈을 벌고 그만둘 수 있는 것인데, 경찰 단속이 무서워 찾아오지 않으면 성매매 종사 기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

- 이런 성 노동 비범죄화가 되레 인신매매를 조장한다는 지적도 있다.
"아니다. 물론 비범죄화가 되면, 성매매 관련 신고 건수가 수치상으로는 늘어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사건 자체가 늘어난 게 아니라, 이전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수면 위로 드러난 것뿐이라고 생각한다. 결과적으론 인신매매가 줄어들 것이다. (비범죄화가) 성매매를 촉진할 거란 지적도 있는데, 제가 봤을 때 성매매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고 보기 때문에,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성 노동자가 업주에 의해 감금이나 인신매매를 당했을 경우, 성 노동자가 이를 입증하기란 매우 어렵다. 입증이 어려운 데다 성 노동자 본인도 범법자 신분이기 때문에 이를 신고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주변 사례들을 봐도 막상 인신매매범들은 처벌되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다. 한편 구매자들이, 성매매 여성이 감금돼있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쳐도 현재로선 거의 신고하지 않는다. 본인도 성매매했다고 처벌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범죄화된 상황이라면 이런 신고가 가능해진다. 상황이 나아지지 않겠나."

[어느 성 노동자의 고백 ②] "내가 난잡하다고 옆집 순돌이도 난잡해지나"



태그:#앰네스티 성매매, #트렌스젠더, #성노동자, #성매매 종사자, #성전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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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플러스 에디터. 여성·정치·언론·장애 분야, 목소리 작은 이들에 마음이 기웁니다. 성실히 묻고, 세심히 듣고, 정확히 쓰겠습니다. Mainly interested in stories of women, politics, media, and people with small voice. Let's find ho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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