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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 코, 발바닥이 하얗게 핏기가 없는 심각하게 마른 상태였다.
▲ 구조 당시 스밀라 귀, 코, 발바닥이 하얗게 핏기가 없는 심각하게 마른 상태였다.
ⓒ 박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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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가 생겼다. 반려견 가을의 성격상 둘째는 '없는 게 옳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떤 애가 우리에게 왔다. 보통 둘째들은 계획에 없이 오기도 한다지만...

어느 무더운 여름날 밤, 자전거로 한강을 신나게 돌고 귀가하던 중, 골목에 쭈그리고 앉아 상자를 들여다보고 있는 아주머니가 눈에 들어왔다. 몸을 숙여 무언가에 눈을 맞추는 모습은? 그렇다. 작은 생명을 대하는 인간의 자세다. 그런 장면에서 귀신에 홀린 듯 발을 멈추는 나란 인간을 보면, 둘째가 오는 건 예견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아기예요?"
"응, 근데 가여워서 어째."

이후의 대화는 사실 뻔하다. 버림받아 울고 있는 아이를 구조는 했으나 집에 들일 순 없고, 밥과 물을 줬으나 입에 대지 않고, 길동무들은 차갑게 외면하는 상황.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다 주위를 보니 어느새 성인남녀 5명이 모여 있었다. 우리는 모두 이 애를 살리고는 싶지만 뾰족한 방법을 찾지 못해 발만 구르고 있는 상황이었다. 헌데 나는 거기서 왜 이렇게 말했을까.

"우선 저희 집에 데리고 가볼게요."

동물 오타쿠이자 히스테리성 오지라퍼임을 자청하는 순간이었다. 하얀 바탕에 귀, 등, 꼬리에만 갈색 무늬, '반고등어'라고도 하는 고양이. 왠지 당찬 여자아이일 것 같아 '스밀라'로 이름을 지었다.

날이 밝자마자 병원에 데려가 범백혈구감소증 검사를 해야 하지 않을까 상담했다. 코제트(유기견 입양기19 참고)처럼 될까봐 겁이 났기 때문이다. 의사선생님은 증상이 없으면 잠복기여도 키트에 나타나지 않는다 하였다. 그래서 심장사상충 예방약을 바르고 진드기 검사만 하고 돌아왔다.

그런데 이날 밤, 스밀라가 고통스럽게 울더니 왈칵, 토했다. 소름이 끼쳤다. 밥과 물을 억지로 먹이려 해도 도리질을 치며 몸을 웅크리고 숨기만 했다. 다시 날이 밝기만을 기다렸다.

수액을 맞는 앞발을 보호하려 칼라를 씌웠다. 불편하다고 목이 쉬도록 울어댔다.
▲ 입원한 스밀라 수액을 맞는 앞발을 보호하려 칼라를 씌웠다. 불편하다고 목이 쉬도록 울어댔다.
ⓒ 박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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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백 키트에 스밀라의 피를 떨어트리자마자 선명한 붉은 줄이 나타났다. 범백 확진이었다. 의사선생님은 역시, 생후 2~3개월의 경우 치사율이 70%에 달하며, 완치 약은 없이 아이의 살고자하는 의지가 회복의 관건이 될 것이며, 만만치 않은 비용이 청구될 것이라 찬찬히 설명해주었다. 담대하게 받아들이려 마음먹고 왔지만 손이 떨리고 머리가 아파왔다.

선택은 몇 가지가 있었다. 단순한 '구조자'로서 치료를 책임지지 않겠다고 하는 방법, 구청에 병든 길고양이가 있다고 신고하는 방법, 애초에 길에서 우는 어떤 것에도 신경을 쓰지 않는 방법. 하지만 매사에 비관적인 나에게 이 세 가지의 선택은 다른 말로 '죽어버려라'였다. 나는 '입양자'로서 스밀라의 생명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의사선생님에게 말했다.

코제트, 스밀라를 데려가지 마

스밀라의 최초 백혈구 수치는 1.7이었다. 정상 범위는 5.5부터이다. 필요한 주사와 수액을 놔주고 상태를 지켜보는 게 해줄 수 있는 다라고 하였다. 몸무게가 800g밖에 나가지 않아 피 2mm를 뽑는 것도 큰 부담이어서 24~36시간 경과 후 재검사를 해야 했다.

다음 날은 1.9였다. 하지만 오차 범위안의 수치였기에 올랐다고 좋아할 수 없었다. 그저 하루에 두 번씩 격리실 유리창 너머로 스밀라를 응원하는 수밖에. 식욕도 기력도 없는 스밀라를 본지 4일째 날,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받기가 무서웠다.

"스밀라가 그루밍을 해요!"

아픈 고양이가 몸단장을 하는 것은 삶의 강한 희망을 뜻한다고 한다. 백혈구 수치는 3.9였다. 정상 수치는 아니지만 상승세였다. 그게 중요했다. 바닥을 치고 올라오는 중인 거다. 적혈구니 칼륨이니 하는 수십 가지의 지표들이 아직 미약했지만 우리는 스밀라를 믿기로 했다. 목이 쉬도록 울고, 붕대를 갑갑해하고, 철창을 탈출하려는 시도들도 긍정의 신호로 읽었다.

개체는 다르다. 그런데 닮았다!
▲ 가을과 스밀라 개체는 다르다. 그런데 닮았다!
ⓒ 박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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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째 밤, 스밀라는 조심스럽게 퇴원 허락을 받았다. 회복식을 조금이나마 할짝이는 자세, 자다가도 사람이 다가가면 갸르릉거리는 자세, 기운이 날 때마다 꾹꾹이를 하려고 발을 꼬물대는 자세가 모두 합격점이었다. 한 번의 검사마다 감당하기 힘든 비용이 추가되어 '완벽한 안정권'을 확인할 수는 없었다.

겨우 할부로 병원비를 지불한 무능력 엄마는 스밀라의 과제를 열심히 숙지했다. 매일 밥과 약을 아주 잘 먹을 것, 빠른 시일 안에 설사를 멈출 것, 꼬마다운 활력을 차릴 것. 주사바늘 때문에 너덜거리는 양쪽 발을 안고 스밀라는 집으로 향했다. 겁 많은 언니야 가을이가 아무 영문도 모르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을이와 스밀라의 동거 이야기, 다음 호에 계속'


태그:#유기묘, #입양하세요, #범백, #고양이 입원, #스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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