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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에 피가 묻은 채 두려움에 떨고 있다.
▲ 발견 당시 코제트 코에 피가 묻은 채 두려움에 떨고 있다.
ⓒ 박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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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이 "좋은 입양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로 끝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기 고양이의 울음소리는 엄청나다. 골목 멀리에서도 우렁차게 들린다. 반려견 가을이와의 산책길에 아기 우는 소리를 들었다. 순간 반가우면서도 피하고 싶은 마음이 스친다. 한 아저씨가 장갑을 낀 손에 뭔가를 들고 쓰레기 더미에 버리려던 찰나였다.

'이것'이 너무 시끄러워 여간 곤란한 게 아니었다고 하신다. 나와 당돌하게 눈을 맞추는 모습이 "생후 한 달은 됐음!" 하는 것 같다. 집에 데려와 닭고기 캔을 코앞에 들이 밀어봤다. 울기만 하고 고개를 돌린다. 고양이 집사(애묘인)들에게 의견을 구하니 근처에 어미가 있을지 모른다고 한다. 상자에 담요를 깔고 사료에 물을 말아 한켠에 놓았다. 코제트(장발장을 만나라는 뜻으로 명명)를 수건으로 싸서 골목에 다시 갖다놓았다. 날은 이미 어두워있었다.

산책길에 만난 아기 고양이... "추가 비용 부담하실 건가요?"

이른 아침 눈이 떠졌다. 서둘러 코제트에게 가봤다. 웬일인지 상자에서 나와 찬 바닥에 웅크린 채 울고 있다. 밥은 그대로다. 어미를 못 만난 것 같다. 이렇게 어린 녀석은 체온이 떨어지면 목숨이 위태롭다기에 24시간 병원을 찾았다.

의사 선생님은 힘없이 늘어진 코제트를 진찰대에 세웠다. 코제트가 기우뚱한다. 입을 벌려봤다. 구더기가 있다. 한동안 먹질 못하고 오염에 노출되면 파리가 알을 까고 항문이나 입처럼 촉촉한 곳에 구더기가 파고든단다. 그래서 통 먹지를 못했나 보다.

코에 묻은 지저분한 흔적은 과산화수소에 반응하는 거로 보아 피다. 외상이 있었을지 몰라 엑스레이를 찍었는데 다행히 큰 이상은 없었다. 지금은 '고양이별'에 있을 조르바(관련 기사 : "방금 떠났습니다, 아침부터 우유를 잘 못 먹더니...")를 구조했을 땐 병원에서 일정 기간 동안 돌봐주었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의사 선생님은 말한다.

"지금까지 비용이 5만 원 정도 됩니다. 계속 부담하시겠습니까?"

올해 9월부터 정책이 바뀌어 길고양이는 야생동물로 여겨 병원의 보호책임이 사라졌다고 한다. 복잡한 생각을 하기 전에, 우선 삼킨 게 없는 어린 것에게 뭐라도 좀 먹여 달라 부탁했다.

"새 분유를 뜯고 먹이는 비용을 감당하시겠습니까? 3만 원입니다. 습식 통조림이라면 3천 원이고요."

밥을 먹지 않으려는 코제트의 입에 억지로 간고기를 밀어 넣고 총 7만 3700원을 냈다. 전염병 키트 검사는 추가 5만 원이 든다기에 다음으로 미뤘다. 기운이 쭉 빠진 코제트를 안고 길에 서 있다. 어떡하면 좋을까. 지독하게 경계하는 가을이, 너무나 바빠 본인 건강도 못 챙기는 친구들, 5~6마리씩 유기묘를 키우고 있는 지인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절대 해선 안 되는 생각이 비집고 들어온다. 이미 400여 마리를 보듬고 있는 보호소 소장님. 인터넷을 뒤져 보니 유기동물 보호소는 몇 군데 있지만 일요일이라 전화를 받지 않았고, 받았다 한들 코제트를 옆에 끼고 보살펴줄 수 있는 상황인지 알 수 없었다. 무거운 마음으로 소장님께 전화를 걸었다.

"......데려와 봐......"

그 한 마디가 어찌나 위로가 됐는지 울컥 눈물이 치솟았다.

"항생제, 소염제도 처방을 못받고 나온 거야?"

병원이 야박하다고 해야 할까, 내가 무능하다고 해야 할까. 어쨌든, 새끼손가락에 물을 묻혀 입에 대니 코제트가 천천히 넘긴다. 초소형 주사기에 분유를 타 먹여 보았다. 역시 꿀떡꿀떡 잘 삼킨다. 엉덩이 쪽을 살폈는데 하얗게 슬어놓은 알이 보인다. 이발기를 급히 충전하여 털을 밀었다. 코제트는 싫다고 버둥거린다.

"이 녀석 고집있네. 이렇게만 살아라."

봉사자들이 모여 회의를 한 결과 코제트는 하루 종일 품어줘야 건강을 찾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그럼 이곳 보호소는 최선의 결정이 아니다. 길냥이를 많이 키워본 한 봉사자가 임보(임시 보호)를 해주겠다고 한다.

"대신 책임지고 입양은 알아보셔야 해요!"

강아지 품에서 놀고 잠들던 고양이... "이제 그만 보내주죠"

처음 느껴보는 따스한 품이었을까. 강아지를 많이 따랐다.
▲ 코제트와 강아지 처음 느껴보는 따스한 품이었을까. 강아지를 많이 따랐다.
ⓒ 정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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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제트는 그곳에서 즐겁게 생활했다. 성묘들에겐 따돌림을 받았지만 성격이 수더분한 강아지의 보살핌으로 두 발로 장난치다 포근하게 잠들었다. 구충약을 먹고 꿈틀대는 회충을 토한 후엔 밥도 찾고 물도 스스로 할짝댔다. 안아올리면 내버려두라고 버둥대는 모습이 얼마나 기특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이놈의 애옹애옹 소리! 그 당찬 말대답은 얼마나 고마웠는지.

6일째 되던 날, 코제트가 토했다. 밥을 안 먹고 누워만 있다. 변도 좋지가 않았다. 병원에서 검사를 다시 했다. 며칠 전과 달리 선명한 양성이다. '고양이 범백'이라고 하는 파보 바이러스의 특성이라고 한다.

잠복기가 길고, 갑작스럽고, 치사율이 높고. 코제트 같은 어린 고양이는 더욱 힘들다고 했다. 코제트가 치료 받는 동안 집에 가서 소독약으로 대청소를 해야 한다고 했다. 다른 고양이들에게 옮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수액을 다 맞고 백혈구 수치 검사를 해서 기준치 이하로 얼마나 떨어졌는지 확인 후 통원 치료 여부를 검토할 수 있다고 했다.

얼마나 예뻤나 몰라..
▲ 이렇게 어엿한 코제트 얼마나 예뻤나 몰라..
ⓒ 박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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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고양이의 장기가 그려진 백과사전을 펼쳐 코제트의 병에 대해 공부했다. 퇴원 후에 어떻게 처치해야 하는지 기록했다. 완치 6개월 후에도 재발할 수 있다는 점, 다른 동물과의 전염을 피하는 법도 공부했다. 배가 고파 밥도 먹었다. 우리가 살아야 어린 것들도 산다고 양껏 먹었다.

면회 신청을 했고, 의사 선생님이 코제트를 꺼내자마자 쇼크가 왔다. 동공이 팽창한 코제트는 맑은 액을 하염없이 토해냈다. 코에서도 물이 나왔다.

주사를 세 번 맞고 심장을 강하게 자극해도 계속 토했다. 제발 가지 말라고 외치고 불러도 소용이 없었다. 작은 코가 하얗게 변하더니 발바닥이 차가워졌다. 선생님은 그만 보내주자고 했다. 코제트와 만난 지 8일째 된 날이었다.

코제트는 지금 볕이 잘 드는 어린 나무 아래에서 놀고 있다. 600g. 태어난 지 약 한 달. 그 예쁜 아이를 두고 병원비를 아까워 한, 누군가에게 맡길 생각에만 몰두한 나를 용서하기 힘들다.

산 것은 살아야 한다고 명백히 생각해 왔는데, 그게 옳은 판단인지도 자신이 없어진다. 만약 또 어디선가 약한 것의 울음소리를 들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난 이제 잘 모르겠다. 코제트가 다시는 고양이로 태어나지 않으면 좋겠다.


태그:#코제트, #가을이, #길냥이, #고양이야미안해, #파보바이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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