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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완종 리스트' 특별수사팀장인 문무일 대전지검장이 13일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검찰은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정치권 금품제공 의혹에 대한 본격 수사에 착수한다.
 '성완종 리스트' 특별수사팀장인 문무일 대전지검장이 13일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검찰은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정치권 금품제공 의혹에 대한 본격 수사에 착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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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을 뽑은 검찰이 호랑이 등에 올라탔다. 수사 대상은 '살아있는 권력'이다.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는 대검 중수부가 2003년 이른바 '차떼기'로 귀결된 대선자금 수사에 나선 지 12년 만이다.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에 이름이 오른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은 '차떼기'로 모금한 검은돈을 배달한 전력이 있다. 그래서 벌써부터 검찰의 칼날에서 '차떼기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이병기, 사돈기업 차떼기돈으로 '매수공작').

검찰은 이미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한 적이 있다. 그때는 대통령이 검찰에 멍석을 깔아줬다. 2003년 검찰 수사는 대통령 측근비리(특별검사)와 여야 대선자금(대검 중수부)의 두 갈래로 진행되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최도술 총무비서관의 구속으로 촉발된 측근비리 특검을 수용하면서 성역 없는 수사를 주문했다. 당시 대검 중수부장은 대통령과 사법시험 동기인 안대희였다.

측근비리 보고받은 노무현 "눈앞이 캄캄했다"

흔히 정치는 생물이라고 하지만 수사도 생물이다. 어디로 튈지는 아무도 모른다. 2003년 측근비리-대선자금 수사도 '기획'된 게 아니었다. 그 단초는 당시 이인규 서울지검 초대 금융조사부장이 맡은 SK그룹의 분식회계 및 부당내부거래 수사였다. 분식회계 장부를 압수해 최태원 SK 회장의 비자금 출구를 추적하다 보니, 대통령 측근(최도술 비서관)과 제1당 대선후보(이회창)의 측근(최돈웅 의원)이 튀어나온 것이다.

여야의 살아있는 권력이 동시에 검찰의 사정권에 들어온 셈이다. 노 대통령은 인도네시아 공식 방문(2003년 10월 7~9일) 길에 검찰이 최도술이 SK 비자금 11억 원을 받은 혐의를 포착했다는 보고를 받았다. 노 대통령은 귀국 후 "눈앞이 캄캄했다"고 그때의 심경을 토로했다. 검찰은 SK가 비자금 100억 원을 최돈웅 의원에게 대선자금으로 건넨 사실도 확인했다. 그런데 과연 불법 정치자금을 SK만 줬을까? 국민은 다른 대기업에 대한 전면수사를 요구했다.

안대희 중수부장은 국민 여론을 등에 업고 대선자금 전반으로 수사를 확대할 것을 선언했다. 1948년 건국 이후 처음으로 검찰이 집권 1년차인 현직 대통령의 대선자금 수사에 칼을 뽑은 것이다. 우선 '재계의 저승사자'로 통한 '금융수사통'인 이인규 부장검사(당시 원주지청장)를 투입해 5대 기업 수사를 맡겼다. 남기춘 중수1과장은 노무현 캠프와 민주당, 유재만 중수2과장은 한나라당에 대한 수사를 담당했다.

2004년 당시 대검 중수부가 발표한 '2002년 불법대선자금' 내역.
 2004년 당시 대검 중수부가 발표한 '2002년 불법대선자금' 내역.
ⓒ 김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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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해서 삼성, 현대차, LG, 롯데의 비자금 조성 및 대선자금 전달 혐의가 회유·압박과 계좌 추적을 통해 드러났다. LG그룹을 시작으로 한나라당의 '차떼기 수법'이 고구마 줄기처럼 불거져 나왔다. 현역의원 23명을 포함해 정치인 40여 명이 검찰의 칼날에 쓰러졌다. 대선자금 수사 대상이 된 정치인들은 대부분 국회의원 출마를 포기하거나 경선에서 탈락했다. 검찰이 의도하진 않았지만, 일부나마 '정치권 물갈이'가 이뤄진 셈이다.

대통령의 '집사' 최도술과 '동업자' 안희정(62억), 그리고 '형님' 정대철까지 구속되었다. 공식적으로 노무현 대선캠프를 책임졌던 ▲ 정대철 공동선대위원장(9억 원)과 ▲ 이상수 총무위원장(17억 원) ▲ 이재정 유세본부장(10억 원) 등이 불법정치자금 수수 및 전달 혐의로 구속되었다.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측에선 ▲ 김영일 사무총장 겸 선대위 총괄본부장(700억 원) ▲ 최돈웅 재정위원장(580억 원) ▲ 서정우 대선후보법률특보(575억 원) 등이 같은 혐의로 구속되었다.

노무현 측근 비리 조사했던 문무일이 이번에는 '성완종 리스트' 수사 맡아

그때도 대통령의 '가이드라인' 제시와 '편파 수사' 시비가 있었다. 검찰 수사가 진행중인 상황에서 노 대통령은 "부끄럽기 짝이 없다. 반성한다"면서 "우리가 쓴 불법자금 규모가 한나라당의 10분의 1을 넘으면 대통령직을 사퇴하고 정계를 은퇴하겠다"고 폭탄선언을 했다. 이 때문에 검찰이 밝혀낸 불법자금 총액의 편차(이회창 캠프 823억 원 vs 노무현 캠프 113억 원으로 1/7) 자체가 '편파수사'라는 지적을 받았다.

대선자금 수사로 '국민검사' 반열에 오른 안대희 중수부장은 대법관을 거쳐 박근혜 정부에서 국무총리로 내정되었으나 전관예우 논란으로 낙마했다. SK 비자금 수사로 대선자금 수사의 물꼬를 텄던 이인규는 이명박 정부에서 대검 중수부장에 기용돼 '박연차 게이트' 수사를 지휘했으나 노 전 대통령의 자살로 검찰을 그만뒀다. 당시 노 대통령 측근비리 특검팀에 파견돼 안희정·이광재·최도술을 조사했던 문무일 대전지검장은 이번에 '성완종 리스트' 특별수사팀장을 맡았다.

이번 특별수사팀은 2003년 대선자금과 측근비리를 수사한 대검 중수부·특검팀과는 출발선이 다르다. 문무일 검사장은 첫날 수사팀의 명칭을 '경남기업 의혹 관련 특별수사팀'으로 표기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대선자금 의혹이 나오면 수사하나'라는 질문에는 "수사 대상과 범위에 대해 한정을 짓고 있지 않다"면서 "일절 좌고우면 하지 않고 수사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수사가 '2012년 대선자금 불법 모금사건'으로 확대될 가능성을 열어 놓은 것이다.

물론 정치자금이든 뇌물이든, 공여자가 사망했기 때문에 수사에는 난관이 예상된다. 그러나 공여자가 액수를 적은 메모와 구체적 정황을 담은 인터뷰(경향신문)에 이어, 만난 사람과 시간·장소를 기록한 비망록(Jtbc 보도)이 나왔다. 이른바 '비선실세 국정개입' 의혹 사건에서 불거진 '찌라시 수준의 문건'과는 차원이 다르다. 검찰은 이미 경남기업 비리 의혹 수사에서 법인자금 32억 원이 현금화된 사실과 이를 입증해줄 증거(USB 기록)를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성 전 회장의 '금고지기'였던 경남기업 재무책임자와 중간 전달자, 그리고 현장에 함께 간 수행 비서의 증언과 공여 대상자에 대한 계좌추적이 이뤄지면 수사의 가닥이 쉽게 풀릴 수 있다.

노무현과는 '결'이 다른 살아있는 권력

문제는 수사 대상이 노무현 정부 때와는 결이 다른, '살아있는 권력'이라는 점이다. 취임 초부터 검찰의 독립성을 주문한 노 대통령은 2003년 당시 '눈앞이 캄캄'하다고 했지만 결국 검찰 수사에 멍석을 깔아줬다. 박근혜 대통령 또한 '성역없는 수사'를 지시했다지만, 국정원 댓글 사건과 관련 검찰총장이 '혼외자 문제'로 내몰리는 것을 검찰과 국민은 두 눈으로 지켜보았다.

더구나 수사 대상은 전·현직 비서실장 3인(허태열, 김기춘, 이병기)과 2012년 대선캠프의 핵심 본부장 3인(홍문종 의원, 유정복 인천시장, 서병수 부산시장) 그리고 국정을 통할하는 현직총리(이완구)이다. 이들 7인은 모두 '친박' 정치인이다. 한 건이라도 불법자금 수수 사실이 확인되면 박근혜 정부 최악의 정치적 부패 스캔들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한나라당 대표 경선 자금을 받은 것으로 지목된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오히려 이번 수사의 '깍두기'(별건) 취급을 받는다.

'성완종메모'에 이름이 거론된 새누리당 홍문종 의원, 서병수 부산시장, 유정복 인천시장의 지난 대선때 역할이 주목받고 있다. 사진은 2012년 10월 18일 새누리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대선 중앙선대위 회의에서 대화를 나누는 서병수 부산시장(왼쪽), 유정복 인천시장(가운데), 홍문종 의원의 모습
 '성완종메모'에 이름이 거론된 새누리당 홍문종 의원, 서병수 부산시장, 유정복 인천시장의 지난 대선때 역할이 주목받고 있다. 사진은 2012년 10월 18일 새누리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대선 중앙선대위 회의에서 대화를 나누는 서병수 부산시장(왼쪽), 유정복 인천시장(가운데), 홍문종 의원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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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은 '필요악'인 정치자금을 극도로 혐오하면서 '깨끗한 정치인'의 언행을 보여왔다. 김기춘 실장이 사퇴 압력으로 궁지에 몰렸을 때도 "보기 드문 사심없는 분"이라고 적극옹호했다. 김 실장은 청와대 직원들에게 "현 정부는 가장 깨끗한 정부"라며 자부심을 당부하고 물러났다. 그런데 성 전 회장은 비웃기라도 한 듯, "우리 김기춘 실장이 대한민국에서 제일 깨끗한 사람으로 돼 있잖아요?"라고 반문하면서 10만 달러(약 1억 원)를 줬다고 폭로했다.

게다가 성 전 회장이 줬다는 대선 경선 자금 7억 원(허태열)과 본선 자금 7억 원(유정복 3억, 홍문종·서병수 2억)은 공소시효가 남아 있다. 유정복은 경선 당시 직능총괄본부장, 홍문종은 대선 당시 조직총괄본부장이었고, 서병수는 회계와 조직을 책임진 사무총장이었다. 직능은 직업·업종별로, 조직은 지역별로 선거를 책임지는 역할이다. 당시 직능별 조직은 수백 개가 넘었고, 조직총괄본부에는 상근직원만 200명에 달했다. 사무총장은 모든 선거비용의 회계 책임을 진다.

대선후보를 대신해 선거 조직·직능·회계를 책임진 선대위 총괄본부장 3인과 대통령에게 무한책임을 지는 전·현직 비서실장 3인이 동시다발로 검찰 수사의 표적이 된 것은 건국 이후 처음이다. 대통령을 보좌해 국정을 통할하는 현직 총리가 검찰 수사의 표적이 된 것 또한 건국 이후 처음이다. 정권을 지탱하는 핵심인사들이 이처럼 한꺼번에 검찰 수사의 표적이 된 것은 전무후무한 기록이 될 것 같다. 이들 가운데 한 명이라도 검은 돈을 회계처리 하지 않았다면 그 책임은 대통령(후보)이 질 수밖에 없다.

이들 가운데 누군가가 희생양이 되어 책임을 떠안더라도 더 큰 의혹이 남아 있다. 과연 불법정치자금을 경남기업만 줬을까 하는 합리적 의문이다. 정치자금의 입·출구 계좌를 추적하다 보면 예기치 않았던 돈뭉치가 불거져 나와 의문이 자연스레 해소될 수도 있다. 그럴 경우 하나의 단서만 나와도 고구마 줄기처럼 줄줄이 드러나게 돼 있다.

그런 점에서 성완종 리스트 수사는 박근혜의 턱밑을 겨냥한 '정권 저승사자'의 비수라고 할 수 있다.

○ 편집|손병관 기자


태그:#성완종?리스트, #박근혜, #이완구, #김기춘, #홍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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