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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면 누구나 자신의 명예를 소중히 여긴다. 사람의 사회적 가치나 명예를 떨어뜨리는 행위를 하면 명예훼손이나 모욕죄로 처벌을 받는다. 명예를 먹고 사는 국회의원은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문제는 정당한 비판과 비난을 구분하기란 쉽지 않다는 점이다. 공인인 국회의원은 명예에 있어서도 남에겐 관대하고 자신에겐 엄격해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지는 의문이다.   

판결 대 판결 13번째 이야기는 국회의원 모욕 사건 2건을 살펴본다. 첫 번째 국회의원이 피고인이 된 사건과 두 번째, 피해자가 된 사건으로 강용석의 여자 아나운서 모욕사건 vs. '누구신지호' 사건이다. - 기자말

[판결 1] 강용석의 여자 아나운서 모욕사건

"다 줄 생각을 해야 하는데 그래도 아나운서 할래?"

2010년 7월 20일 <중앙일보>에는 이 같은 선정적인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중앙>이 이 발언의 진원지로 지목한 이는 당시 한나라당 강용석 의원. 대학생들과의 술자리에서 이런 '성희롱·성차별적 발언'을 했다는 것이다. 어떤 일이 있었길래.  

보도 나흘 전인 16일 강 의원은 한 모임에 참석했다. 이 모임은 국회의장배 전국 대학생 토론 대회에서 입상하지 못한 학생들을 위로하는 술자리였다. 기사에 따르면 강 의원은 학생들 틈에 끼어서 "심사위원들은 (토론) 내용을 안 듣는다. 참가자들의 얼굴을 본다"거나 토론 패널을 구성할 때는 "못생긴 애 둘, 예쁜 애 하나로 이뤄진 구성이 최고다. 그래야 시선이 집중된다"는 발언을 했다.

강 의원은 청와대 방문 경험이 있는 여학생에게 "그때 대통령이 너만 쳐다보더라"며 "옆에 사모님(김윤옥 여사)만 없었으면 네 (휴대전화) 번호도 따갔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기사는 전했다.

그런데 압권(?)은 따로 있었다. 아나운서 지망 여학생에게 "다 줄 생각을 해야 하는데 그래도 아나운서 할 수 있겠느냐", "○○여대 이상은 자존심 때문에 그렇게 못하더라"고 발언했다는 부분이었다. 

파문은 뜻밖에 컸다. 보궐 선거를 앞두고 표를 의식한 한나라당은 강 의원을 제명 조치했다. 한국아나운서연합회 소속 여성 아나운서 154명은 강 의원을 모욕죄로 고소했다.

법원 "술자리 발언은 사실"...형사 책임은?

여성 아나운서를 비하하는 내용의 성희롱 발언을 한 혐의로 기소된 강용석 전 새누리당 의원이 지난해 8월 29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파기환송심에서 1500만원 벌금형을 선고 받고 법정을 나오고 있다.
▲ '아나운서 비하' 강용석 전 의원, 1500만원 벌금형 여성 아나운서를 비하하는 내용의 성희롱 발언을 한 혐의로 기소된 강용석 전 새누리당 의원이 지난해 8월 29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파기환송심에서 1500만원 벌금형을 선고 받고 법정을 나오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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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의원도 그냥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기사처럼 성적 비하 발언을 한 적이 없다면서 정치생명을 걸고 진실을 밝히겠다고 공언했다. 그리고 그 해 7월 21일과 8월 24일 두 차례, 기사 작성자 심아무개 기자를 허위 사실 명예훼손, 공직선거법상 후보자 비방 혐의로 고소했다. <중앙> 측도 맞고소로 대응했다. 이전투구 속에 검찰은 그 해 9월 8일 심 기자가 아닌 강 의원만을 법정에 세운다. 모욕, 무고 등의 죄명으로 기소한 것이다.

재판 결과 술자리 발언은 모두 사실로 밝혀졌다. 1심(서울서부지법 제갈창 판사)은 강 의원이 심 기자를 형사 고소한 행위에 책임을 물었다. 허위 기사가 아닌데도 "형사 처벌을 받게 할 목적으로 심 기자를 고소하였다"며 무고죄를 인정했다. 

술자리 발언의 형사 처벌은 어떻게 될까. 발언 수위가 높다고 해서, 혹은 부도덕한 표현이라고 해서 모두 처벌 대상은 아니다. 법적인 문제가 되는 발언은 "다 줄 생각을 해야 하는데"로 상징되는 여성 아나운서 모욕 부분이었다.

강 의원은 그런 말을 한 사실도 없고, 설사 했더라도 "직업군 일반에 대한 것으로서 막연하고 포괄적이며 일반적인 평균 판단에 지나지 않는 데다, 아나운서 개개인에 대한 모욕을 구성한다고 볼 수 없다"고 항변했다.

집단도 명예훼손이나 모욕의 대상 될까

집단에 대한 비난, 즉 '집단 명예훼손', '집단 모욕'은 법조계에서도 논쟁거리다. 판례를 보면, 원칙은 집단 명예훼손이나 모욕은 성립하지 않는다. 비난의 내용이 특정 개개인에 대한 것이라고 받아들여지지 않고, 개인에게는 비난의 정도가 희석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서울 시민'이나 '정치인'들에 대한 비난은 누구를 지칭하는지 알 수 없고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이 작기 때문에 문제 삼기 어렵다.    

다만 예외적으로 "비난의 내용이 해당 집단에 속한 특정 개개인에게까지 미쳐 그 개개인에 대한 사회적인 평가에 영향을 미칠 정도에까지 이른 경우라면" 명예 훼손이나 모욕이 인정된다. 예를 들어 '○○지구대 경찰들은 썩었다'고 말했다면 그 범위가 좁기 때문에 구성원들이 피해자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여자 아나운서'들에 대한 비난은 어떨까. 1심은 모욕이 성립한다는 쪽이었다. 법원은 ▲현직 국회의원으로서 발언이 가지는 무게, 발언을 접하는 일반인들에 대한 영향이 남다를 수밖에 없는 점  ▲발언 내용이 마치 여자가 아나운서로서 일정한 지위에 올라가는 과정에 으레 그러한 일을 겪게 된다는 취지가 담겨 있는 점 ▲아나운서 집단의 규모가 작다고 할 수 없지만, 고소한 여성 아나운서 154명은 일반인들이 그 발언을 떠올리고 연상하게 될 소지가 충분한 점 등을 감안할 때 사회적 평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쌍방 항소로 사건을 맡게 된 2심(서울서부지법 제1형사부 재판장 이인규)도 결론은 같았다. 강 의원의 발언이 "여성 아나운서들이 일정한 지위에 올라가는 과정에서 성적 접대를 하거나, 이를 요구받게 된다"는 취지로 해석될 수 있다며 개인의 사회적 평가도 저하할 위험성이 있다고 판시했다. 1심과 2심은 무고와 모욕죄를 모두 인정,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형을 선고했다. 

대법원 "발언 저속하나 개인의 사회적 평가 저하할 정도는 아니다"

 사건 개요
ⓒ 김용국

하지만 대법원은 집단 모욕에 대해 1, 2심과 다른 판단을 했다. 발언 내용이 여성아나운서 개개인의 사회적 평가에 영향을 미칠 정도까지는 아니라는 말이다.

대법원은 ▲여성아나운서 집단은 다양해서 집단 자체의 경계가 불분명한 점 ▲강 의원의 발언이 한국아나운서연합회만을 지칭한 것도 아닌 점 ▲발언 내용이 저속하긴 하나 기존의 사회적 평가를 근본적으로 변동시킬 정도는 아닌 점  ▲모욕죄 성립 범위를 지나치게 확대할 우려가 있는 점을 고려했다. 사건은 파기환송돼 2심(서울서부지법)으로 돌아왔다.

2심은 무고는 유죄, 모욕은 무죄로 판결한다. 한국아나운서연합회, 중앙일보사 측과 합의한 점도 강 의원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법원은 "사람을 가두어 자유를 박탈하는 곳이 감옥이라면 피고인은 이미 사회적 감옥에 수감되었다"고 일침을 놓은 뒤 "법에서 판단한 감옥에 가는 징역형을 선고하는 것은 다소 과하다"며 벌금형(1500만 원)을 선고한다.

법원은, 강 의원에게 "저질스럽고 정제되지 않는 말을 하지 않는 '말'의 다이어트가, '신체와 외모'의 성형이 아니라 '마음과 말'의 성형이 필요하다"는 의미 심장한 충고도 잊지 않았다. 어쨌거나 대법원이 집단에 대한 모욕을 엄격하게 해석하는 바람에, 여자 아나운서를 "다 줄 생각을 해야"하는 사람으로 묘사한 '19금 발언'에도 법이 개입할 여지는 없었다. 강 의원이 받은 불이익은 결국 벌금 1500만 원과  최근 변협이 내린 과태료 1000만 원 처분이 전부다. 저지른 행위에 비하면 약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판결 2] '누구신지호' 모욕사건

지난 2008년 신지호 의원의 이른바 '누구신지호' 사건은 국회의원이 '피해자' 자격으로 시민을 고소한 사례다. 신 의원은 그 해 9월 고교 역사교과서 수정 논란을 다룬 MBC 100분 토론에 출연했다. 신 의원은 토론에서 특정 교과서를 '좌편향'이라고 지적하고선 도입부에 실린 신동엽 시인의 <껍데기는 가라>는 시를 문제 삼기도 했다. 이날 신 의원의 언행은 많은 누리꾼 사이에 논란을 불렀다.

이 토론회를 지켜본 한 교사는 신 의원의 홈페이지에 항의 글을 올렸다. 그는 '신지호 의원! 껍데기는 누구? 신지*? 억울하세요?', '뇌와 귀 없이 입만 가지고 토론에 임하는 신지호!' 등의 제목으로 신 의원이 토론에서 보여준 언행에 대해 비판했다. 그는 8차례에 걸쳐 글을 올렸고 신 의원은 이 글들이 자신을 모욕했다고 판단해 그를 고소했다.

이 사건은 대법원까지 갔는데 무죄가 확정되는 바람에 신 의원은 체면을 구겼다. 특히 이 사건의 항소심인 서울북부지법은 판결을 통해 의미심장한 지적을 했다. 요약하면 이렇다.

'국회의원은 헌법상 부여된 지위에 비추어 국가적 사회적 영향력이 막중하므로 언행, 능력, 도덕성 등 자질에 대한 비판의 자유가 보장될 필요가 있다... 정치인이나 정치적 활동에 대한 비판의 경우 효과를 높이기 위하여 다소 풍자적, 희화적인 표현이 흔히 사용되므로 그런 속성을 어느 정도 감안해 받아들여야 한다.'

판결 내용을 떠나 나랏일에 바쁜 국회의원이 수사 기관에 권리 구제를 호소하는 일이 모양 빠진다. 시민 개인의 발언에 대해 고소장을 접수하고, 법정에서 유·무죄를 따지는 현실이 왠지 달갑지는 않다. 뭐, 그것도 국회의원으로서 권리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공인에 대한 표현의 자유는 널리 허용돼야"

'박근혜 정권 규탄 범국민대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지난 2월 28일 오후 서울 강남구 이명박 전 대통령 사저 인근을 행진하며 국정원 대선개입 유죄 판결 관련해 이 전 대통령의 구속 수사를 촉구하는 전단을 붙여놨다.
▲ '부정선거 주범을 수배합니다' '박근혜 정권 규탄 범국민대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지난 2월 28일 오후 서울 강남구 이명박 전 대통령 사저 인근을 행진하며 국정원 대선개입 유죄 판결 관련해 이 전 대통령의 구속 수사를 촉구하는 전단을 붙여놨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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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법에서 모욕이란 '추상적 판단이나 욕설 등 경멸적 표현으로 사람의 사회적 평가를 떨어뜨리는 일'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구체적인 사실 적시를 수단으로 하는 명예훼손과는 구별된다). 사람을 모욕했다고 해서 전부 처벌받는 것은 아니다. 모욕적인 표현을 사용했더라도 그것이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지 않고 '건전한 사회 통념에 비추어 사회 상규에 위배되지 않을 때'는 위법성이 조각된다는 것이 판례의 입장이다.

공인에 대한 비판, 공적인 관심사에 대한 비판은 폭넓게 인정되는 추세인 것을 보면, 모욕이나 명예훼손의 적용도 더 엄격할 필요가 있다. 대법원도 공적인 관심 사항에 관한 비판 행위는 널리 허용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모욕죄는 친고죄다. 즉 피해자가 문제 삼지 않는다면 수사를 하거나 재판을 할 수 없다는 말이다. 국회의원들이 일반인들의 말과 글을 상대로 한 고소를 자제하는 아량을 베풀었으면 좋겠다. 공인이란 '대신 욕 먹어주는 존재'라 하지 않는가.

최근에는 정부 비판 전단이 살포되고 있다. 좋은 징조는 아니다. 과거 유신 시대, 독재 시대나 보이던 의사 표현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언로가 막혔다는 방증일지 모른다. 정부가 이에 대해 형사 처벌 운운하며 강경 대응한다면 오히려 역풍을 맞을지도 모른다. 공인에 대한 표현의 자유는 널리 보장되면 될수록 민주적인 사회다.   


태그:#강용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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