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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조합이 도대체 뭡니까?"
"음, 그러니까, FC 바르셀로나 아세요? 서울우유, 썬키스트, 제스프리?"
"아, 그게 다 협동조합이에요? 그렇구나. 그래서 협동조합이 뭔데요?"
"네? 그러니까 그게... 그래서 같이 공부해보자고요."

협동조합 연구회를 여는 첫 책이었기에, 여느 때보다 많은 집중과 준비를 해갔다.
▲ 첫 독서 토론 선정도서였던 '마을의 귀환' 협동조합 연구회를 여는 첫 책이었기에, 여느 때보다 많은 집중과 준비를 해갔다.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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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조합이 뭔데요?


협동조합에 눈을 뜨고, 그 매력에 빠져 함께 공부할 사람을 찾아다니던 초창기 때의 모습이다. 대강의 흐름은 알겠는데, 막상 협동조합이 뭐냐는 질문을 받으면,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대답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그걸 몇 마디로 어떻게 설명하냐고!'라는 말이 명치 끝에서 맴돌았지만, 잘못은 그들이 아닌 나에게 있었다. 어설픈 지식 선동가. 협동조합 연구회를 결성하고, 회원들에게 가장 많이 받는 질문 또한 다르지 않다.

"협동조합 공부한다고 하니까 주위에서 협동조합이 뭐냐고 물어보는데, 꼭 집어서 정리하기가 어렵네요."

고민의 수준은 엇비슷했다. 협동조합을 만들어 보겠다고 모인 사람보다 협동조합이 무엇인지 궁금해서 모인 사람이 훨씬 많았으니까. 그들에게 협동조합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협동조합의 뿌리라고 볼 수 있는 공동체의 의미부터 이해시켜야 했다. 더불어 함께 사는 공동체의 단내 나는 사람 향기를 느끼게 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리고 거기에 딱 맞아 떨어지는 책이 바로 <마을의 귀환>이었다.

<마을의 귀환> 표지
 <마을의 귀환> 표지
ⓒ 오마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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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의 귀환>을 처음 접한 것은 1년 전쯤의 일이다. 협동조합에 대해서는 막연한 느낌뿐이었고, 그저 아이들이 더 자라기 전에 시골로 내려가서 자연 속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때였다. 텃밭에서 키운 유기농 야채를 먹으며, 흙을 밟고 뛰어 노는 아이들을 상상하는 것은 자식 가진 부모라면 한번 쯤 해보는 일이다. 하지만, 아이들의 교육이 마음에 걸렸다.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모아 마을 공동체를 꾸려 아이들을 키운다면?

마을이라는 키워드로 책을 검색하던 중 <마을의 귀환>이 눈에 들어왔고, 거짓말처럼 책을 선물 받았다. 책 속에 길이 있다는 옛말은 틀린 게 아니다. 도시 속에 살아 있는 마을 공동체, 그것은 신기루가 아닌 현실 속에 존재하고 있었다. 협동조합 연구회를 준비하며 가장 첫 번째 토론 책으로 <마을의 귀환>을 생각하게 된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마을의 귀환>을 소개한 날과 일주일 후 토론을 위해 다시 모인 날의 회원들의 표정은 확실히 달랐다. '뭐야, 요즘 시대에 마을은 무슨'이라고 쓰여 있던 의심에 찬 얼굴에서 부러움과 기대감이 가득 서린 얼굴로 바뀌어 나타난 것이다. 그 마음들은 토론을 통해서도 숨김없이 드러났다.

"책 속에 담긴 여러 공동체 중에서 가장 부럽거나 자기가 만들고 싶은 공동체는 어느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토론의 물꼬를 텄다. 성대골 마을의 에너지 공동체가 제일 부러웠다는 회원은 당장에라도 가구별로 월별 전기량을 체크해서 그래프로 붙여 보자고 제안했다. 아껴 쓰기의 표본이자 교과서로 꼽히시는 신부님이 매달 1등 하실 거라는 농담도 오갔다. 가정에서 매달 10~12%의 에너지를 아끼면 원전 하나를 줄일 수 있다는 책의 내용이 결코 실현 불가능한 일이 아님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아무래도 회원 대부분이 여성이다 보니, 도봉구 마을 기업 '목화송이'에 관심을 가지는 분들도 많았다. '행복한 일자리,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라는 '목화송이'의 구호를 우리 지역에서도 빨리 구현해보고 싶다는 생각들이었다. '목화송이'도 협동조합형 마을기업으로 전환할 계획이라 하니 앞으로도 관심을 가지면서 많은 것들을 배워 나가야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개인적으로 내가 관심을 가졌던 분야는 미디어 공동체인 도봉구 마을신문 '도봉N'이었다. 종전에 지역 신문 한번 만들어 보겠다고 의지만 가지고 덤벼들었다가, 영광 빠진 상처만 가득 안고 주저앉은 기억이 있기에 더욱 부럽게 다가왔다. 협동조합 연구회라는 마중물이 시간이 흘러 수많은 물줄기를 이룰 때, 그 중 하나로 '마을신문'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그렇게 각자가 인상 깊었거나, 부러웠던 공동체를 이야기하고 나니 다음 주제로 물 흐르듯 넘어갈 수 있었다. 지금 우리 지역에 투영할 수 있는 공동체는 어떤 것이 있을까? 그러다 문득 우리 연구회의 현실적인 문제가 떠올랐다.

현실적인 문제부터 돌아보자

매주 과제가 주어지고, 다음주가 되면 조별 과제를 다른 조원들에게 발표한다.
▲ 협동조합 연구회 조별 발표장면 매주 과제가 주어지고, 다음주가 되면 조별 과제를 다른 조원들에게 발표한다.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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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부터 저학년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많다 보니, 연구회 모임 시간인 저녁 8시에 나오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처음 신청했다가 지레 포기한 교우도 많았다. 그나마, 큰마음 먹고 나오신 분들은 세미나실 옆 작은 방에서 아이들끼리 놀게 하고 참석하는 것이었는데, 나도 한 번인가 아이들을 데려갔다가 계속 신경이 쓰여 포기하고 말았다.

그래서 나온 제안이 성당 내 독서실 혹은 놀이방을 공동체로 운영해 보자는 것이었다. 아이들을 맘 편히 맡겨 두고 개인적 업무를 보거나, 아이들이 조용히 공부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하고 돌아가면서 돌봐주는 형태. 그야말로 열띤 토론이 오갔다. 협동조합 연구회를 안 만들었으면 어떡할 뻔 했냐고 묻고 싶을 정도였다.

공간과 인력의 문제, 비용상의 문제점 등을 정확히 지적하고, 그에 대한 해결 방안을 강구하는 과정에 내가 개입할 여지는 거의 없었다. 아줌마들의 수다를 공허한 외침으로만 폄하했던 나의 뒤통수를 누가 냅다 후려치는 기분이었다. 끝장 토론을 방불케 하는 열기를 간신히 잠재웠다. 다음 주로 결론을 미루지 않았으면, 다음 날 새벽에 마을 도서관 협동조합이 탄생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여러 논의 끝에 마을 놀이방 사업은 현실화되지 못했다. 아직은 준비 역량이 부족하기도 하고, 시험 삼아 해보기에는 위험 요소가 많았다. 하지만 이러한 토론의 과정을 통해서 마을 공동체의 충분한 가능성을 엿본 것은 크나큰 수확이었다.

협동조합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공동체라는 틀을 갖추고 많은 시간에 걸쳐 토론과 논의를 거듭하다 보면, 더불어 사는 다음 버전의 방법으로 찾아가는 과정이 협동조합인 것이다. 그렇게 협동조합의 씨앗은 공동체라는 화분 안에서 발아되고 있었다.


태그:#협동조합, #마을의 귀환, #마을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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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위주로 어줍지 않은 솜씨지만 몇자 적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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