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사건, 같은 역사라 할지라도 누가 어떤 입장에서 기록하느냐에 따라 기록으로 남는 역사는 달라질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었던 조선 역사와 관련한 대부분의 기록물은 역사의 한 편에 서 있던 당사자와 직·간접적으로나마 연관 될 수밖에 없는 후손들, 우리나라 역사학자들에 의해 기록된 결과물이었습니다.
게다가 우리가 대하는 조선 역사 기록물은 조선 역사에만 한정되거나 집중된 것도 사실입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그 어떤 것도 역사에서 독불장군일 수는 없습니다. 어떤 형태로든 주변 국가의 정치에 영향을 받고, 주변 국가의 문화가 그림자처럼 반영돼 있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기록된 양이 많아지고 방대해지기는 하겠지만, 조선의 주변 국가였던 명·청과 일본의 역사까지 아우른다는 것은 조선 역사를 좀 더 폭넓고 깊게 이해할 수 있는 입체적 바탕이 될 것입니다.
한 나라 역사를 넘어선 동아시아 읽기
책 <현재를 보는 역사 조선과 명청>은 두 명의 일본인 학자가 조선 역사는 물론 주변국의 역사까지 함께 아우를 수 있을 만큼 넓은 관점에서 조망했습니다.
고도가 낮은 비행선을 타면 서울 시내도 한정된 부분만 보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보다 고도가 높은 비행기를 타면 서울 전체는 물론 주변의 도시들까지 한눈에 보일 것입니다.
이에 멈추지 않고 고도가 훨씬 더 높은 우주선을 타면 한국이라는 국경을 넘어 주변국까지 살피며 지형과 국경, 국토의 넓이와 위·경도상 위치 등을 좀 더 입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책에서는 조선의 역사뿐 아니라 조선 시대로 이어지는 전 역사, 동시대의 동반자인 양 조선의 역사와 동행합니다. 흥망성쇠를 거듭하던 이웃 국가, 명과 청의 역사는 물론 일본의 문화까지 아우르고 있어 조선역사를 좀 더 입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예를 들면, 이 사회는 그 정점이 황제의 손안에 집중돼 있는 무수한 사다리와 같다고 할 수 있다. 한인·만주인·이적을 불문하고 누구나(물론 남자이지만) 그 사다리 끝에서 출발해 경쟁하며 오를 수 있다. 황제는 위에서 그것을 내려다보면서 능력이 기대되는 자를 발탁해준다. 그 외 사다리의 존재는 있을 수 없다. 사다리 위에 있는 자와 아래에 있는 자 사이에는 엄연한 상하의 구별이 있다. -<현재를 보는 역사 조선과 명청> 381쪽위 글은 청 황제였던 옹정제가 펼쳤던 인사정책 중 일부를 소개한 내용입니다. 무한 경쟁을 요구하고 있긴 하지만, 능력도 되지 않는 특정 인사에게 특혜를 주기 위한 제도는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인사 제도는 작금의 우리나라에서 낙하산으로 회자하고 있는 인사 즉, 능력과 도덕성 등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내려 앉히는 것처럼 보이는 낙하산 인사와는 거리가 먼 인사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조선인의 후손이 아닌 이방인, 일본인 학자가 지은 조선 역사라고 해서 역사적 사실이 크게 달라질 것은 없을 것입니다. 다만 어떤 관점에서 무엇을 어떻게 보며 판단해 기록하였느냐의 차이는 있을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서자도 족보에 이름 올렸다개인적으로 조선 역사에서 가장 비민주적이고 비도덕적인 제도 중 하나는 서자에 대한 차별이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서자로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단지 서자라는 이유만으로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리지 못할 만큼 차별했다는 건 무책임을 넘어선 원초적 행패이자 죄악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서자들은 또한 족보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이름을 짓는 방법도 16세기에는 적자와 항렬자를 함께 쓰는 경우가 흔히 보이지만, 17세기 이후에는 이러한 현상도 찾아보기 힘들다. 재산 상속에서도 마찬가지다.『경국대전』규정에서는 '양첩자녀良妾子女' 즉 양인 신분의 첩에서 낳은 아이는 적자의 7분의 1, 천첩자녀賤妾子女'는 적자의 10분의 1의 재산을 상속받는 권리를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17세기 이후 상속제가 변화하는 과정에서 서자들의 재산 상속분은 더 줄어들었다. -<현재를 보는 역사 조선과 명청> 391쪽삼자의 입장에서도 서자에 대한 차별은 눈여겨 볼 만한 차별적 제도였나 봅니다. 역사적으로나 혈연으로나, 걸릴 게 없는 입장에서 보다 객관적으로 살필 수도 있었겠지만 내용 중에는 사실과 맞지 않는 부분도 있습니다.
책에서는 "서자들은 또한 족보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진에서 확인 할 수 있는 바와 같이 비록 서자라는 걸 표시하고는 있지만 족보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것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위 사진은 1766년(영조 42)에 발행된 어느 가문의 족보 중 일부입니다. 사진에서 제일 위쪽 칸을 보면 자영(自榮)과 호영(好榮) 두 사람 이름 앞에 첨자처럼 서(庶)자가 들어가 있는 데, 이게 바로 서자(庶子)임을 밝히는 기록입니다. 참고로 세 번째 칸 석좌(碩佐) 앞에는 양자임을 나타내는 계자(繼子)가 기록돼 있는 것으로 봐서 조선 시대의 족보는 생각하는 것 보다 많은 정보를 사실대로 기록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라노 : 그것은 일본에서도 같습니다. 히데요시의 조선침략 때 사야기 김충선이라는 일본인 무장이 부하들을 이끌고 조선 측에 투항하고 토지를 받아 정착해버린 일이 있습니다. 이는 일본 역사에서 말살되고 말았습니다만, 실은 에도시대에도 조선인이 된 일본인이 있었습니다. -<현재를 보는 역사 조선과 명청> 510쪽위 내용은 두 저자(기시모토 미오, 미야지마 히로시)와 일본인 역사학자 아라노 야스노리가 가진 대담 중 일부로 '에도시대에 조선인이 된 일본인이 있다'는 내용입니다. 한국인 역사학자라면 쉬이 기록하지 않았을 내용입니다.
책은 일본인 역사학자가 조선의 역사만을 집중 조망할 수 있는 고도를 벗어난 높이에서 살핀 동아시아 역사입니다. 살핀 범위가 넓어져 조선 역사가 조금은 덜 선명하게 그려졌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조선 역사와 맞닿아 있는 그 시대 이웃 나라의 역사까지도 함께 아우르며 살피고 있어 조선 역사를 보다 입체적으로 실감하며 새길 수 있는 역사 전망대가 되리라 기대됩니다.
덧붙이는 글 | <현재를 보는 역사 조선과 명청>(지은이 기시모토 미오, 미야지마 히로시 / 옮긴이 김현영, 문순실 / 펴낸곳 너머북스 / 2014년 9월 15일 / 값 2만 7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