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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박수 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누구도 이겼다고 자신할 수 없는 선거였다. 여당이 선전한 건 분명하지만, 수도 서울에서의 패배와 텃밭의 무서운 민심과 마주해야 했다. 야당도 마찬가지다. 통합과 창당으로 거듭 태어나겠다고 했지만, 구 민주당에서 보였던 무기력함은 오히려 증폭됐고 결국 당의 정체성마저 의심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들도 착잡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번 선거는 300여명이 죽거나 실종된 사고의 가해자라는 멍에를 짊어져야 하는 기성세대가 그 책임을 다 했는가 스스로 물을 수밖에 없는 시간이었다.

승리한 쪽에서는 민심의 선택을 받았다 할 것이고, 패배 진영에서는 세월호 대참사 수습은 승자가 맡아야 한다고 강변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6·4 지방선거로 세월호 참사에 대한 심판이 끝난 것도, 그 누구에게 면죄부가 주어진 것도 아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실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는 6·4 지방선거라는 역사적 '마디'에서 다시 틔워야 할 기성세대의 숙명이고 숙제다. '잊지 않겠습니다.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 그 다짐을 망각하지 않았다면 정부와 정치권의 감시자로서 유권자가 해야할 일은 여전히 유효하다.

박수 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6.4지방선거를 하루 앞둔 3일 오후 손수조 새누리당 당협위원장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도와주세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바꾸겠습니다. '부산'을 믿어요! 손수조'가 적힌 피켓을 놓고 절을 하고 있다. 옆에서는 '중·고생 엄마'라고 밝힌 시민이 '오늘 세월호 49재. 세월호 아이들이, 유가족들이 살려달라 울부짖을 때 당신들은 도와주었나요? 도와주세요?? 표 구걸?? 16명의 실종자 찾아주세요'가 적힌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 "도와주세요" 대 "표 구걸??" 6.4지방선거를 하루 앞둔 3일 오후 손수조 새누리당 당협위원장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도와주세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바꾸겠습니다. '부산'을 믿어요! 손수조'가 적힌 피켓을 놓고 절을 하고 있다. 옆에서는 '중·고생 엄마'라고 밝힌 시민이 '오늘 세월호 49재. 세월호 아이들이, 유가족들이 살려달라 울부짖을 때 당신들은 도와주었나요? 도와주세요?? 표 구걸?? 16명의 실종자 찾아주세요'가 적힌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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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여당인 새누리당은 경기도와 인천에서 이겼지만, 정권을 향한 민심의 시선이 곱지 않음을 확인했을 것이다. 이는 선거운동 과정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서울시장 후보로 차기 대권주자급을 내세우고 화력을 집중해 네거티브 선거를 이어갔지만, 그리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특히 부산과 대구에서의 승리 기쁨을 오롯이 누리지 못하는 이유는 이전과는 다른 분위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 결과에는 응원과 경고의 메시지가 동시에 담겨 있다.

세월호 침몰이 대참사로 이어질 당위성이 없듯이, 대참사가 정권의 불신으로 귀결될 필연도 없었다. 언론들의 오보였던 '전원 구조'가 정부의 발 빠른 대응으로 바로 잡혔다면, 세월호 사고는 '정권 불신'으로 이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초기 대응에 실패했고 세월호 침몰 뒤 50여일 동안 무능과 거짓만 보여줬다. 그것도 모자라, 성난 민심을 제대로 다독이지 못했다. 대통령의 눈물을 홍보에 이용하거나, 결격 사유를 지닌 사람을 총리로 임명한 사례만 봐도 그렇다. 

여당인 새누리당도 다르지 않았다. 새누리당은 세월호 대참사 후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보다는 정권의 안전을 지키기에 급급했다. 유가족과 국민의 눈물은 아랑곳없이, 대통령의 눈물을 닦아주자며 거리로 나섰다. 여당 원내대표는 유가족을 국회 마룻바닥에 놔둔 채 국정조사 여야 합의를 거부하고 도망치듯 선거 지원에 나섰다. 몰염치의 절정은 선거운동 막판 벌였던 '도와주세요'란 호소였다.

새누리당은 이번 선거에서 광역단체장 8석을 얻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이건 그들의 착각이다. 대다수 지역이 박빙이었다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앞으로 새누리당을 겨누는 민심의 칼날은 더욱 날카로워질 것으로 보인다. 이는 이번에 17곳 중 13곳을 휩쓴 진보교육감들의 모습에서 예측할 수 있다.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이 일방적으로 추진해 온 교육정책들이 앞으로 고전을 면치 못할 것으로 보인다.

가장 큰 패배자는 유권자인 당신이다

이렇듯 새누리당은 그나마 선전했다란 평가를 받지만, 새정치민주연합은 '완패'했다고 봐도 된다. 비록 서울시장과 충청권, 강원도 등에서 좋은 성적을 냈지만, 이 결과만 가지고 선전했다고 볼 순 없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잘 했다기보다, 후보 개개인이 잘했고 정권 심판론이 조금은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또 전략공천을 받은 광주 윤장현 후보가 당선하면서 새정치민주연합 지도부는 한시름 놓았겠지만, 이는 텃밭인 광주에 새로운 분열의 불씨를 남겼다는 점에서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사실, 새정치연합이 이번 선거에서 보여준 선거 전술에는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다. 한 나라의 제1야당이라면, 세월호 사고처럼 큰 국가적 재난이 닥쳤을 때 유가족과 국민의 편에 서서 정부의 무능과 거짓을 질타하고 진실 규명에 앞장서야 한다. 그러나 새정치연합은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존재감조차 보여주지 못했다. 제대로 된 전술을 보이지 못한 것도 문제지만, 이슈가 터질 때마다 몸을 낮추며 제목소리를 내지 않던 모습은 제1야당의 행보로는 적절하지 않았다. 통합으로 몸집만 키웠지, 여전히 나약했고 오합지졸이었다.

통합진보당과 정의당 등 진보야당의 성적표도 많은 아쉬움을 남긴다. 나약한 제1야당과 비교했을 때 선명성과 헌신성은 높았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특히 통합진보당의 경우 사활이 걸린 여러 난제를 가지고 있어 이번 선거 결과가 더욱 아쉬울 듯하다. 진보정당들은 불신을 극복하고 국민들의 신뢰를 회복하는 게 급선무인 것으로 보인다.

6·4 지방선거는 끝났다. 누구도 승자가 될 수 없었던 선거였지만, 가장 큰 패배자는 유권자 자신이다. 대한민국을 통째로 슬픔에 빠트린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50일 만에 치러진 선거였지만, 최종 투표율은 고작 56.8%에 머물렀다. 그동안 국민들이 흘린 눈물이나 다짐에 비한다면 허망한 투표율이다. 10명 중 4명이 투표를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인데, 이 수치를 보며 대한민국호가 안전을 보장할 만큼의 평형수를 채우고 운행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세월호 침몰, 지역주의, 종북몰이, 네거티브 선거운동의 공통점은 낡았다는 것이다. 낡고 수명이 다한 건 폐기돼야 함에도, 우리 사회는 여전히 낡은 패러다임을 끌어안고 놓아주려 하지 않는다. 이것은 현재 대한민국 사회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이기도 하다.

'황금분할'이라는 언론 분석, 의미 없다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공동대표가 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공동대표가 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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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선거 결과를 두고 일부 언론에서는 '황금분할'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모두가 패배자일 수밖에 없는 선거에서 이런 분석은 의미가 없다. 오히려 경계해야 할 것은 '그나마 선전'이라고 자평하고 안주하는 모습이다.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이 이번 선거로 세월호 참사에 대한 책임을 조금이라도 면했다고 여긴다면, 야당이 세월호 참사는 더 이상 국민의 관심사가 아니라고 외면한다면, 우리 사회는 4년 뒤에도, 8년 뒤에도, 40년 뒤에도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허우적거리고 있을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유일하게 이번 지방선거를 통해 얻은 한 가지 교훈이다.

세월호 참사 국정조사 기간이다. 정치인의 나쁜 습성 중 하나는 선거가 끝나면 주인과 심부름꾼을 바꾸어 생각한다는 것이다. 선거는 끝났지만 세월호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의 끈을 놓지 않아야 하는 이유도 이것 때문이다. 국민은 그들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고 했다.

정치인을 뽑는 것도, 그들이 심부름꾼임을 잊지 않게 하는 것도, 국민들의 몫이다. 앞서 말했듯이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는 6·4지방 선거의 마디에서 새롭게 싹을 틔워야 한다. 6·4 지방선거는 끝났지만 죽어간 아이들에게 기성세대가 한 약속은 여전히 유효하다.


태그:#6.4지방 선거, #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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