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우유니로 가는 길의 숨은 비경- 바위의 계곡

도대체 볼리비아에는 '구름' 이라는 단어가 존재하긴 하는 걸까. 차를 타고 달린 지 10분도 채 되지 않아 우리는 운전기사인 리카르도에게 양해를 구하고 차를 세웠다. 여전히 푸르기만 하늘에는 희끗희끗한 여운이 보이긴 하지만 이를 들어 '구름' 이라고 설명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이들에게는 세상이 온통 선명하고 뚜렷한 색감으로만 보일 것이다. 새빨갛게 불타는 저녁노을과, 새파랗게 대지를 비추는 눈부신 푸르름.   

볼리비아의 대평원 위의 풍경은 언제나 한 폭의 수채화와도 같다.
 볼리비아의 대평원 위의 풍경은 언제나 한 폭의 수채화와도 같다.
ⓒ 김동주

관련사진보기


우유니로 가는 여정의 백미는 해발 4천미터 이상에서 펼쳐지는 기이한 자연풍경들이지만 거기에 생명의 기운이 더해지면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절정이 된다. 다가오는 사람은 의식도 않은 채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야생 야마들을 보고 있노라면 좀처럼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겨우 발길을 거두고 뿌옇게 먼지가 내려앉은 창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리카르도가 말없이 손가락으로 멀리 창밖을 가리킨다. 아마도 그쪽으로 가겠다는 뜻이리라. 누런 모래먼지 사이로 보이는 풍경은 지진이라도 난 것인지, 수평선을 따라 끝없이 늘어선 거대하고 높은 바위 성채. 지프는 곧 큰 길을 벗어나 험하기 짝이 없는 샛길로 들어섰다.

끝없이 이어진 바위의 성채. 이 많은 돌이 어디서 갑자기 생겨났는지는 알길이 없다.
 끝없이 이어진 바위의 성채. 이 많은 돌이 어디서 갑자기 생겨났는지는 알길이 없다.
ⓒ 김동주

관련사진보기


실감이 나지 않던 그 실체는 수십미터 높이의 크고 작은 암벽들이 늘어서 형성된 기묘한 장벽이었다. 인적 하나 없는 황무지와 코 끝을 간지럽히는 모래 냄새, 행여나 와르르 무너져 내릴까 몸을 잔뜩 움직인 채 걸음을 바삐하던 나.

대체 어떤 원인으로 생겨난 것일까. 처음에는 띄엄띄엄 이어지던 바위들은 어느새 기다란 기차처럼 꼬리를 물고 이어져 거대한 장벽을 이룬다. 하늘에서 보는 모습이 궁금해지던 찰나, 복잡한 설명 대신 먼저 바위를 기어오르는 리카르도를 따라 암벽을 탔다.

많은 기억을 떠올리게 했던 바위의 성채 위에서 내려다 본 풍경
 많은 기억을 떠올리게 했던 바위의 성채 위에서 내려다 본 풍경
ⓒ 김동주

관련사진보기


가슴에 쿵하고 돌 하나가 떨어져 울리는 느낌. 아찔한 높이보다도 더 아름답고 치명적인 그 풍경에 나는 정신을 잃을 듯 벅찬 느낌을 받았다. 실개천처럼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는 그 좁은 길을 따라가면 이제껏 내가 지나온 길을 모두 만날 것만 같다. 기가 막히게 자리잡은 바위들은 어떤가.

시야를 가리지도, 휑하지도 않게 비켜선 그 바위들 틈에서 나는 긴 회상에 빠졌다. 큼직한 일 년, 둥글고 말랑말랑한 한 달, 보드랍고 매끄러운 일 분, 지금 이 순간. 어느덧 하늘에는 그리운 이의 얼굴이 가득하다. 내가 곁에 있었으면. 지금 이순간, 당신의 곁에 내가 있었으면. 내 얼굴 하나야 손바닥으로 가린다지만 그리운 마음 이 넓은 대지만 하니 그저 눈을 감을 수밖에.

그 날 이후로 나는 그 바위 성채 위에 올랐을 때의 기분을 잊지 않기 위해 무던히도 애썼다. 지금까지 내가 걸어온 길들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천천히 전해져 오는 기분, 그리고 전하고 싶은 마음. 이상하리 만큼 마음에 오래 남았던 그 장면을 되새기며 사진을 들여다 보는 것이, 한동안 잠들기 전에 마지막으로 하는 일이 되었다. 그저 바위 이상의 것, 나는 언제나 무거워 지는 눈커풀을 감고서야 그 풍경이 내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깨달았다.

세상에서 가장 믿기 어려운 광경– 우유니 소금 사막

우유니 사막이야 모든 여행자들의 로망이자 여행의 목적이겠지만 사막 위에 건설된 마을 '우유니'(Uyuni) 는 수백 킬로미터 사막을 횡단해 도착한 여행자의 마음을 녹이기에는 역부족이다. 오히려 관광객이 주민의 일상을 비틀어 놓은, 좋지 않은 예의 대표격이라고 할까.

걸어서 15분이면 온 마을을 다 둘러볼 정도로 작은 우유니의 거리엔 볼리비아는 없고 온통 피자와 햄버거뿐이다. 그나마 위안이라면 거리를 따라 줄지은 장터에서 파는 맛 좋은 망고가 한 개에 400원 정도라는 것 정도.

우유니 소금사막의 시작을 알리는 기차의 무덤.
 우유니 소금사막의 시작을 알리는 기차의 무덤.
ⓒ 김동주

관련사진보기


다음날, 드디어 시작된 우유니 소금사막의 시작은 '기차의 무덤(Cementero de Trenes)'이라고 불리는 곳이었다. 여행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이 기차의 무덤은 언뜻 보면 고철 쓰레기장을 연상 시키며, 이제는 도마뱀들의 안식처가 된 느낌이지만 파란 하늘과 어울려 유독 멋들어진 광경을 연출한다.

더 이상 달리지 않는 선로에는 간밤에 대체 어디에 있었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많은 여행자들이 저마다의 자세로 사진을 찍어댄다. 그리고 드디어 시작된 새하얀 땅. 무심결에 차 문을 열고 내려섰다가 눈을 단검에 찔린듯한 통증을 느끼고는 얼른 눈을 감았다. 새하얀 소금으로만 이루어진 이곳에서 선글라스 없이 눈을 떴다가는 두 번 다시 눈을 뜨지 못할 지도 모른다.

수십 대의 지프차가 동시에 도착해 저마다의 길로 흩어지는 장면도 장관이다. 가도가도 끝없는 그저 새하얀 풍경. 지표로 삼을 것도 없고, 그렇다고 길에 변화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끝도 없이 평평한 소금 위를 달리다 보면 어느새 방향도 속도도 잃고 그저 정지해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다. 공기 중에 떠도는 미묘한 소금 냄새에 취해 잠깐 졸았다 싶었는데 깨어 보니 갑작스럽게 선인장이 고개를 내밀었다.

거대한 선인장들이 자라는 물고기 섬. 섬에서 자라는 선인장은 오래전 고대 잉카인들이 심은 것이라고 한다.
 거대한 선인장들이 자라는 물고기 섬. 섬에서 자라는 선인장은 오래전 고대 잉카인들이 심은 것이라고 한다.
ⓒ 김동주

관련사진보기


소금 사막 한가운데 마치 섬처럼 떠 있는 '물고기 섬'(Isla Incahuasi) 은 그 모양이 물고기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하지만 정작 이곳의 명물은 온 섬을 빽빽하게 뒤덮은 선인장이다. 어린 시절 만화에서나 보던 그 모습 그대로 간직한 선인장들은 비현실적인 풍경을 더욱더 기이하게 만든다.

알려진 면적만 1만 2000㎢(길이로는 110km), 깊이는 최대 120m 에 달하는 순도 높은 소금 덩어리는 세상의 모든 빛깔을 집어 삼켰다. 어쩌면 세상은 처음에는 온통 하얀색이 아니었을까. 푸른 바다도, 우거진 녹음도, 모든 빛을 집어삼켜야만 만들어지는 이 시린 하얀색을 질투해서 뛰쳐나온 것이 아닐까.

지금까지 한번도 나를 실망시킨 적 없던 카메라도 이 태초의 빛깔을 담아내기에는 역부족이다. 우리는 어쩌면 봐서는 안 되는 것을 본 것이 아닐까. 더 이상 파헤쳐지기를 바라지 않는, 이 행성이 숨기고 싶었던 단 하나의 비밀장소일지도 모른다. 소금 매장량이 약 100억 톤이라고 하니 우리 세대에 없어질 일은 없다는 것이 유일한 위안이다.

평평한 소금 평원 위에서 찍는 착시사진 놀이는 오로지 우유니 소금사막에서만 할 수 있는 재밌는 놀이다.
 평평한 소금 평원 위에서 찍는 착시사진 놀이는 오로지 우유니 소금사막에서만 할 수 있는 재밌는 놀이다.
ⓒ 김동주

관련사진보기


언덕을 내려오니 사람들은 이미 뿔뿔이 흩어져 약속이나 한 듯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다. 대자연이 주는 감동에 너도나도 감탄사를 내뱉으면서. 대충 카메라를 들고 찍으면 죄다 작품이 되는 우유니 소금 사막에서 꼭 해야 할 것은 착시사진 놀이.

끝없이 펼쳐진 평평한 땅 위에 카메라를 버려둔 채 보는 이를 갸우뚱하게 만들 만한 사진을 찍어댄다. 뛰고, 눕고, 달리고, 해발 3500m의 공기에 지쳐갈 즈음 어디선가 나타난 야마 두 마리가 나타났다. 행여 소리라도 내면 그 모습과 함께 이 풍경이 통째로 사라질까, 신기루처럼 흐릿하게 시야에서 없어질 때까지 숨 죽인 채 가만히 바라만 본다.

세상에서 제일 특별한 하룻밤을 맞고 싶다면, 소금으로만 만들어진 루나 살라다에서 묵는게 어떨까.
 세상에서 제일 특별한 하룻밤을 맞고 싶다면, 소금으로만 만들어진 루나 살라다에서 묵는게 어떨까.
ⓒ 김동주

관련사진보기


도대체 어떻게 길을 찾는지 알 수 없는 소금 사막의 어딘가에는 '루나 살라다'(Luna Salada)라고 불리는 호텔이 있다. 이 호텔이 특별한 것은 내부가 죄다 소금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겉에서 보면 그저 허름한 건물에 불과하지만 내부는 물론 테이블과 식탁까지 죄다 소금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살짝 테이블을 짚어보니 찌릿한 짠맛이 혀를 자극한다.

한쪽에는 소금을 긁어 만든 각종 모형이 눈에 들어오고, 호텔의 맞은 편에는 이미 다녀간 여행자들이 남긴 세계 각국의 국기가 펄럭이고 있다. 그리고 눈에 띄게 한가운데에 위치한 태극기. 누군가가 최근에 갈아 끼운 듯, 이런 칼바람 속에서도 깨끗한 형태를 유지 하고 있는 그 모습에 가슴 한 켠이 찡하다.

다시 소금 사막사막 밖으로 나오는 순간까지도 새하얀 풍경과 파란 하늘은 결코 흔들리는 법이 없다. 차에서 바라보고 있노라면 또 다시 시공간이 사라지는 몽롱한 상태가 된다. 행여 내 나이만큼의 첫눈이 내려 쌓인다고 한들 이토록 눈부실까.

우기가 찾아와 소금 사막에 물이 고이면 하늘이 내려와 땅과 뒤섞여 세계에서 가장 큰 거울이 된다고 하는데 나는 언제나 그 풍경을 볼 수 있을까. 아쉬움을 남긴 채 떠나는 여행자의 발걸음은 무겁기만 하다.

끝이 없는 육각형의 연속으로 이루어진 우유니 소금 사막의 지표면
 끝이 없는 육각형의 연속으로 이루어진 우유니 소금 사막의 지표면
ⓒ 김동주

관련사진보기


간략여행정보
먼 옛날 지각변동으로 솟아 오른 바다가 빙하기를 거쳐 녹기 시작하면서 거대한 호수가 생겨났다. 길고 긴 세월이 흐르는 동안 비가 잘 내리지 않는 건조한 기후는 호수의 물을 증발시켰고 그 자리에 바다의 소금 결정이 남아 만들어진 것이 우유니 소금 사막이다.

우유니 소금 사막을 둘러보는 투어는 반나절부터 3박 4일까지 다양하다. 모두 사륜 구동 지프차를 타고 달린다는 점은 동일하나 칠레나 볼리비아, 어디에서 출발하는지에 따라 코스가 나뉜다. 우유니 소금 사막의 규모를 생각한다면 반나절 투어는 지양하는 것이 좋다. 생애 가장 특별한 밤을 맞고 싶다면 사막 내에 있는 루나 살라다 호텔의 소금으로 만든 침대에서 1박을 하는 상품을 고르는 것도 방법이다.

어디에서 가도 멀고 험한 길을 거쳐야 되는 우유니 사막의 시각적 황홀치가 최대가 되는 때는 우기인 12~3월이다. 우기에 내린 비가 지표면에 고인 뒤 맑은 날이 되면 얕은 호수로 변한 대지 위에 푸른 하늘과 뭉게구름이 그대로 뒤섞여 세상에서 가장 큰 거울이 된다. 우기에 비가 온 다음날 맑아야만 하기에 어지간히 운이 좋지 않고는 보기 힘든 풍경이지만 오로지 이를 위해서 남미를 여행하는 시기를 조절하는 여행자도 많을 정도.

좀 더 자세한 우유니 소금사막 투어 정보는 아래 링크를 참고하자.

http://saladinx.blog.me/30153013656



태그:#우유니 소금사막, #우유니사막, #바위의계곡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