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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9일 한글날 수요집회에서 이화나비 콘서트 수익금 130만 331원을 정대협 측에 전달하는 이화여대 이화나비들
10월9일 한글날 수요집회에서 이화나비 콘서트 수익금 130만 331원을 정대협 측에 전달하는 이화여대 이화나비들 ⓒ 이화나비

2013년 일본 정부의 역사 왜곡,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들에 대한 망언, 군사 재무장 움직임 등 한일 관계에 파고가 높다. 일본의 반성 없는 역사의식이 불편함으로 다가오는 시기에 한국 청춘들이 올바른 역사를 위해 나섰다.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나비기금 마련을 위한 '이화나비 콘서트'는 그 대표적 사례 중 하나다. 밤을 잊은 이화여대 학생들의 열정은 지난 10월 2일 저녁 '이화나비 콘서트'에서 꽃을 피웠고, 10월 9일 수요집회에서 결실을 맺었다.

2013년 10월 9일 한글날.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 집회에서 이화여대 이화나비의 기부금 전달식이 있었다. 이화나비 콘서트(10월 2일)를 통해 얻은 수익금 130만331원이었다. 23일간 땀흘린 열정의 대가, 정대협(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 손수 모은 수익금을 전달하는 이화나비의 표정에서는 뿌듯함이 묻어났다.

어느덧 21년째 미해결 상태인 일본군 성노예 문제, 우리 정부(외교부)의 무관심 속, 청춘들은 먼저 나서 '역사 문제 해결'을 위해 발로 뛰고 있다. 청춘들의 열정은 시사하는 바가 컸다. 11월, 이제 정부와 사회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본격적으로 나설 때다. - 기자 말

이화나비의 외침 '생존 할머니 56명.... 이제는 우리가 나서야 할 때'

 수요집회 후, 소녀상 옆을 힘없이 떠나는 일본군 피해자 할머니의 모습. 일본 정부의 모르쇠 속,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어느덧 21년째를 맞고 있다.
수요집회 후, 소녀상 옆을 힘없이 떠나는 일본군 피해자 할머니의 모습. 일본 정부의 모르쇠 속,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어느덧 21년째를 맞고 있다. ⓒ 곽진성

'이화나비 콘서트'의 시작은 지금부터 약 1년 전인 2012년 10월 30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이화나비 콘서트'를 처음 기획한 봉우리(23·이화여대 총학생회장)씨는 이화나비의 결성 과정과 콘서트 개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2012년 여름, 학교 후배와 함께 수요집회에 참여했었습니다. 당시 일본군 성노예 피해 할머니들이, 일본 대사관 앞에서 무려 20년 세월동안 수요집회를 계속하신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당시 저는 이 문제에 대해 처음 알고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 이후, 수요집회에 꾸준히 참여했습니다. 그러다 다른 학생들과 함께 집회에 나가고 싶다는 마음에 이화나비를 결성했고 일본군 성노예 피해 할머니들을 도울 방법을 찾다가 '이화나비 콘서트'를 열게 됐습니다."

지난해 10월 열린 '이화나비 첫 번째 콘서트'는 의미있는 결실을 맺었다.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를 비롯해 안해룡 영화감독(<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 윤미향 정대협 대표가 참여했다. 또한 콘서트장에는 300여 명의 관객이 모여 성황을 이뤘다. 당시 콘서트는 젊은 세대에게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문제를 상기시키는 계기가 됐다.

 이화나비 콘서트 안내 문구
이화나비 콘서트 안내 문구 ⓒ 곽진성
더욱이 당시 이화나비 콘서트 수익금 전액은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 건립 기금'과 '나비 기금'에 기부돼 그 의미를 더했다.

첫 '이화나비 콘서트' 이후 1년, 이화여대 대학생들은 두 번째 '이화나비 콘서트'를 위해 발 벗고 나섰다. 하지만 2013년,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문제의 해결은 더욱 요원해진 상황이었다.

일본은 아베정권 출범 이후,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들에 대한 망언을 서슴지 않았다. 문제해결 의지도 엿보이지 않는다. 그러는 사이 237명에 달하던 일본군 성노예 피해 할머니들은 이제 단 56명만이 생존해 있는 상황이다.

어두운 현실, 하지만 두 번째 콘서트를 준비했던 이화나비의 문제의식은 더욱 선명해졌다.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문제 해결에 작은 힘이 되자는 것. 역사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참여한다는 것이었다.

콘서트 단장을 맡은 김민경씨는 "첫 번째 콘서트에서 메시지를 전했다면, 두 번째 콘서트에서는 (우리 대학생들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해 보는 콘서트가 되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준비 과정을 전했다.

청춘들의 이화나비 콘서트 준비는 9월 9일 첫 시작을 알렸다. 9일 오후 8시, 캠퍼스의 밤이 깊었지만 이화나비들은 이화여대 포스코관 한 강의실 안에서 역사 세미나를 열었다. 이날 이화나비는 역사 문제에 대한 세미나와 함께 콘서트 준비에 관한 회의를 진행했다.

 9월 9일 이화나비 콘서트 준비의 첫 시작
9월 9일 이화나비 콘서트 준비의 첫 시작 ⓒ 곽진성

개강 후 수업 적응에 바쁜 시기였지만, 대학생들의 '이화나비 콘서트' 참여 열기는 뜨거웠다. 평소 수요 집회에 참석하며 이화나비 정규 활동을 하는 11명 이화나비 대학생에, 자원봉사 대학생 30여 명이 콘서트 준비를 위해 도우미를 자처했다.

연단에 선 김민경(23·이화나비 콘서트 단장)씨의 설명을 듣는 이화여대 대학생(아래 나비)들의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이날,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문제 해결을 위한 콘서트 준비는 늦은 시각까지 이어졌다. 는 늦은 시각까지 이어갔다. 학생들은 콘서트 티켓과 '위안부' 관련 물품을 팔고 주변 상점 후원 및 외교부 지원을 받아 수익금을 마련 계획을 세웠다.

여러 무관심에도 발로 뛰는 청춘들

9월 9일부터 10월 2일까지, '이화나비 콘서트' 성공 개최를 위한 23일간의 여정은 치열했다. 준비과정에서 위기도 있었다. 외교부의 무관심과 후원을 기대했던 주변 상점의 후원 부족으로 콘서트 개최에 재정적 어려움을 겪은 것이다. 이화나비 강서영(20)씨가 말한다.

 바쁜 개강시기, 이화나비 콘서트 수익금을 위해 치즈케익과 관련 물품을 판매하는 이화나비들.
바쁜 개강시기, 이화나비 콘서트 수익금을 위해 치즈케익과 관련 물품을 판매하는 이화나비들. ⓒ 곽진성

"신촌 일대 상점에서 후원을 받을 생각이었는데 많은 상점에서 연고전 후원을 해서 여유가 없다고 하더라고요. 외교부에도 메일로 이화나비 콘서트의 취지에 대해 알리고 답변을 기다렸는데, 메일 수신확인만 뜨고 답변이 없어서 아쉬웠어요."

도움을 줄 것이라 믿은 정부와 사회는 무관심했다. 이는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문제를 소홀히히 다루는 우리사회의 바로미터였다. 자연히 이화나비의 고민은 컸다. 사회의 후원이 많지 않고, 콘서트 티켓 판매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지 않아 자체적인 수익금도 거의 없었다. 또 콘서트 참가 가수 섭외도 생각만큼 쉽게 진행되지 않았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이화나비들은 대학교 내에서 콘서트 홍보와 치즈 케이크, 기념 물품 등을 팔며 차곡차곡 수익금을 모아갔다. 학교 축제 때 사용했던 방식을 차용해 슬기롭게 어려움을 극복해 나갔다.  콘서트 개최가 5일 남았었던 9월 27일, 이화여대 곳곳에서는 노랑 후드티를 입고 팔찌, 케익을 파는 이화나비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화나비 학생들은 수업 시간이 없는 빈 시간에 자리를 지키며, 콘서트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뛰었다. 그런 열정이 통한 것일까. 이화나비 콘서트에 대한 이화여대 내 반향은 컸다. 좋은 뜻에, 많은 학생들이 동참했다. 학교 내에서 이화나비 콘서트 관련 물품을 판매한 윤서원(21) 진수현(20), 이지민(20)씨는 학내 참여 열기에 대해 말했다.

"밖에서는 사람들이 (후원 계획을) 잘 듣지도 않고, 섭외과정도 어려웠지만 다행히 학내 학우들이 적극적으로 참여를 해줬습니다. 콘서트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직접 찾아와 좋은데 써달라며 기부를 하고 가는 학생들도 있었습니다."

9월 27일 오후 3시, 이화여대 학생회관 지하 벽면에는 이대생들이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게 전하는 응원의 메시지가 쌓였다. '일본은 반성하라', '과거는 지켜드리지 못했지만 할머니 분들의 미래는 지켜드릴 수 있도록 저희도 힘을 모으겠습니다.' '위안부 할머님들 마음에 날개를 꼭 달아드리고 싶습니다. 힘내주세요.'라는 응원 문구는 보는 이의 눈길을 끌었다.

 9월 27일, 이화나비 이성은, 김성은, 이해지(20)씨가 이화여대 정문에서 콘서트 홍보활동을 하고 있다.
9월 27일, 이화나비 이성은, 김성은, 이해지(20)씨가 이화여대 정문에서 콘서트 홍보활동을 하고 있다. ⓒ 곽진성

 거리홍보에 나선 이화나비들.
거리홍보에 나선 이화나비들. ⓒ 곽진성

9월 27일 오후, 이화나비 스텝 김성은, 이해지, 손민희(20)씨는 이화여대 콘서트를 홍보하기 위해 콘서트 안내 전단지를 들고 이화여대 정문으로 향했다.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할머니들을 위해 나선, 이화나비입니다. 이화인들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이화나비 3인의 소리 높인 구호 속, 정문을 오가는 대학생들의 시선이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문제를 다룬 피켓으로 향했다. 먼저 다가와 전단지를 받아가는 대학생, '힘내라' 응원의 메시지를 건네는 대학생등, 청춘 한명 한명의 관심은 작은 희망을 쏘고 있었다. 봉우리(23·이화여대총학생회장)씨가 말했다.

"많은 학생들이 콘서트를 돕고 싶다는 연락을 했어요. 한 학생은 자신이 팔찌를 잘 만들 줄 아는데 도움을 주고 싶다고 하며, 자신이 만든 팔찌 수십개를 전하더라고요. 그런데 팔찌가 학내에서 유명세를 타며 금방 동이 났죠.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관련 물품과 티켓도 대부분 판매돼 수익금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웃음)"

 10월2일, 이화나비 콘서트를 준비하는 학생들
10월2일, 이화나비 콘서트를 준비하는 학생들 ⓒ 곽진성

이화여대 학우들의 참여 속, 이화나비 2번째 콘서트의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사회에서 뜻 있는 참여도 있었다. 탤런트 권해효씨와 가수 라온제나, 5DSound등이 콘서트에 함께 하고 싶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그런 참여와 열기 속, <이화나비 콘서트>(이화여대 생활관 소극장)는 10월 2일 6시 30분, 그 시작을 알렸다.


#이화나비 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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