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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영화 <천안함 프로젝트>(감독 백승우)는 다큐멘터리다. 분량도 75분이라 극장보다는 TV 탐사보도 프로그램으로 방송되는 것이 더 어울려 보이는 그런 작품이다. 이런 시사적인 다큐멘터리를 공중파 TV가 아니라 영화관에서, 그것도 극히 일부의 제한된 상영관에서만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지금 우리 현실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아 무척 씁쓸하다.

천안함 사건은 21세기 들어서 대한민국이 겪은 가장 충격적인 비극 가운데 하나임에도 그 진상을 둘러싼 논란이 첨예하게 지속되고 있다. 정부의 합동조사단(합조단)은 북한의 버블제트 어뢰가 천안함을 폭침시켰다고 공식 발표했으나 여전히 많은 사람들을 납득시키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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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조단 결과 발표, 왜 신뢰받지 못하나

영화 <천안함 프로젝트> 포스터.
 영화 <천안함 프로젝트> 포스터.
ⓒ 아우라픽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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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사건에 대한 의혹은 사실 전방위적이어서 합조단이 발표한 공식 결과 가운데 천안함이 2010년 3월26일에 침몰했다는 사실 말고는 거의 모든 대목에 걸쳐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 주도의 공식 조사단의 결과가 이렇게 신뢰받지 못하는 일도 매우 드문 경우가 아닐까 싶다.

영화 <천안함 프로젝트>는 그러한 의혹들을 요약정리한 다큐멘터리다. '요약정리'이기 떄문에 제기된 모든 의혹을 다루지는 않는다. 아마도 그 모든 의혹을 다 다루었다면 상영시간은 두 시간을 훌쩍 넘겼을 것이다. 예를 들면 숨진 장병들의 시신 상태, 생존자들의 외상 정도, 물기둥, 어뢰파편, 물고기 사체 등과 관련된 의혹들은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

<천안함 프로젝트>에서 주로 다룬 내용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어뢰 폭발이 아닌 좌초나 잠수함과의 충돌에 의해서도 천안함의 침몰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주로 천안함 함정과 사고 해역에 남겨진 사고의 흔적들, 사건 초기 이른바 '제3의 부표' 및 TOD(열영상관측장비) 영상을 토대로 재구성한 결과이다.

달군 쇠몽둥이를 바닷물에 넣고 TOD로 촬영한 실험도 흥미로웠다. 이에 따르면 300여 도씨 정도로 가열한 쇠몽둥이를 바닷물에 넣고 TOD로 촬영했더니 그 주변의 바닷물 온도가 조금 올라간 것을 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내용이었다. 문제는 두 동강난 직후의 천안함을 찍은 TOD 영상에서는 그런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는 점이다. 만약 천안함이 어뢰폭발로 침몰했다면 왜 TOD 영상에 그 열흔이 보이지 않느냐는 주장은 사건 초기부터 꾸준히 제기된 의혹이었다.

<천안함 프로젝트>의 다른 한 축은 현재 진행 중인 천안함 관련 재판 내용이다. 초기 천안함 진상조사 합동조사위원이기도 했던 신상철은 군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고발당해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명예훼손 여부를 가리려면 그와 관련된 내용의 진실성을 우선 따져야 하기 때문에, 이 사건이 천안함 침몰의 실체적 진실에 대한 사법부의 일차적인 판단이 될 것으로 보인다. <천안함 프로젝트>에서는 이 재판 과정의 일부를 재연 형식으로 보여준다.

일부 재연이기 때문에 실제 재판이 전체적으로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감독의 편집에 의한 왜곡은 없는지 등을 판단할 길은 없다. (아마 그런 대목이 있다면 이후 군 당국 등이 문제제기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 가능성을 염두에 두더라도, <천안함 프로젝트>에서 보여 준 재판 내용은 상당히 충격적이다.

무엇보다 천안함의 함수가 사건 다음날인 2010년 3월27일 오후까지 완전 침몰하지 않고 수면 위로 조금이긴 하지만 계속 떠 있었음에도 군에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군은 해당 위치의 좌표를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육안으로도 그 위치를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 오랜 시간 동안 함수를 수색하거나 인양을 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게다가 왜 아무런 조치가 없었는지를 증언대에 선 군 관계자들로부터 전혀 들을 수 없었다.

천안함의 함수는 사고 다음날인 3월27일 오후 1시30여 분까지 완전히 가라앉지 않았다.
▲ 침몰 전의 천안함 함수 천안함의 함수는 사고 다음날인 3월27일 오후 1시30여 분까지 완전히 가라앉지 않았다.
ⓒ 옹진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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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재연방식이긴 했지만, 나는 그 재판과정을 보면서 왜 군 당국이 사전에 <천안함 프로젝트>에 대해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는지 이해할 만했다. 아마도 그 장면을 본 사람들이라면, 대한민국 군대가 정말 저런 식으로 굴러가고 있는 것인가 하는 자괴감이 들 것이기 때문이다. 국방비에 들어가는 돈은 연간 30조원이 넘는다. 그렇게 천문학적인 돈을 쓰는 군대에서 눈에 빤히 보이는 함수 하나 제대로 건지지도 못하고 법정에서도 책임회피에만 급급하는 모습이라니, 46명의 장병 목숨을 잃은 사고 책임자들이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다.

이와 관련해, <천안함 프로젝트>에서 아주 자세히 다루지는 않았지만 함미 탐색과 인양에 왜 그렇게 오랜 시간(이틀)이 걸렸는가 하는 점도 천안함 사건에 무척 중요하다. 함미에는 숨진 46명의 장병들이 있었다. 그럼에도 함미의 위치를 처음 확인한 것은 사고 이틀 뒤인 3월28일 오후였고 그나마도 그것을 발견한 주인공은 수색에 협조한 어선의 250만 원짜리 어군탐지기였다. 조그만 어선이 불과 세 시간 정도의 수색으로 찾을 수 있었던 군함의 반쪽을 대한민국 해군이 근 이틀 동안 찾지 못했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게다가 당시 천안함 함미의 위치파악은 전 국민적인 관심사였다. 이 대목은 천안함 침몰의 원인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철저하게 진상을 밝혀야 할 사안이다.

사상검증의 리트머스로 악용된 천안함 사건

천안함 사건은 이 사건 자체의 진상규명도 중요하지만 이것이 그 뒤 한국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해 왔는지를 돌아볼 필요도 있다. 천안함 사건은 한국에서 사실상 사상검증의 리트머스로 악용되고 있다. 지금 한국에서 천안함 침몰이 북한 소행이 아니라고, 또는 아닐 수도 있다고 주장하면 십중팔구는 "너 종북이지?" 하는 붉은 딱지가 발급된다.

천안함과 전혀 상관없는 토론을 하다가도 불쑥 "당신은 천안함이 북한 소행임을 인정합니까?"라는 질문이 나오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이 리트머스는 이성적인 판단과 합리적인 토론을 무력화시키는 마력을 갖고 있다. '나는 단지 합조단의 결과발표를 신뢰하지 않을 뿐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나름의 상당한 이유가 있다'라는 식의 주장은 사실 우리 일상생활에서 너무나 흔하게 접할 수 있고 또 받아들여지지만 천안함 사건에서만큼은 예외이다.

내 개인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오히려 합조단의 주장은 거의 모두가 의심스럽다. 이것이 잘못된 것인가? 내가 의식적으로도 억누를 수 없는 의혹, 그것이 사실일 리가 없잖아 하는 인간 본원의 의혹과 호기심이 그렇게 큰 죄란 말인가?

이런 항변이 국가에 무슨 큰 죄를 짓는 듯한 인상을 심어주는 것은 정신적인 테러행위에 다름 아니다. 실제 현실에서는 야당이 추천한 헌법재판관 후보를 바로 이 문제 때문에 낙마시켰고 영화 <천안함 프로젝트>를 개봉관에서 상영중지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까지 야기했다. 천안함에 대해 이렇게까지 과민하게 반응하는 걸 보면, 혹시 누군가가 일방적으로 자기 입맛에 맞는 결론을 미리 내려놓고 거기에 모든 것을 끼워 맞춰 억지로 강요하려 드는 건 아닐까 하는 의혹마저 생긴다.

영화 <천안함 프로젝트>의 경우 앞서 그 내용을 소개했던 바,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내용이 거의 없다. 그럼에도 왜 우리 사회가 이 정도의 내용도 포용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까 개탄하는 마음이 앞선다. 오히려 천안함 관련 재판에서 새로 나오는 내용들은 크게 보도되지도 않았다. 사안의 중요성에 비하면 참 이상하지 않은가?

'일부단체'의 협박 때문에 영화를 내렸다는 메가박스의 변명도 구차해 보인다. 관람객의 안전이 위험하다고 판단될 정도의 협박을 받았다면, 경찰에 신고해서 그 협박범을 잡는 것이 상식 아닌가? 언제부터 우리나라가 영화 한 편 보기 위해 자신의 안전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치안과 질서가 엉망이 되어 버렸나? 혹시 천안함에 대해 의혹을 가진 국민은 '일부 단체'의 위협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도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메가박스 상영중단이 의미하는 것

<천안함 프로젝트>를 보기 위해 7일 광화문 인디스페이스를 찾은 관객들
 <천안함 프로젝트>를 보기 위해 7일 광화문 인디스페이스를 찾은 관객들
ⓒ 성하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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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즘은 이미 시작되었다."

메가박스의 상영중단 소식이 전해지던 날 어느 누리꾼은 이렇게 말했다. 진실을 알고 싶다는 욕심이 종북으로 몰리고, 영화 한 편을 보기 위해 신변의 위협을 감수해야 할지도 모르는 세상이라면, 그래, 파시즘이라는 말이 전혀 어색하지가 않다.

천안함의 진실이 알고 싶은가? 그렇다면 다큐영화 <천안함 프로젝트>를 보면 된다. 이왕이면 주변의 많은 사람들과 함께 가는 것이 더 좋겠다. 다만, 천안함 사건의 실체적 진실은 이 75분짜리 필름 속에 있지 않다. 사고 원인도 사건처리 과정도 뭐 하나 속 시원하게 새로이 드러난 것이 없다. 이것은 일차적으로 자신들에게 불리한 자료를 공개하지 않는 군 당국 때문이고, 여타의 합리적인 문제제기조차 종북이라는 이름으로 마녀사냥에 여념이 없는 정권과 언론 때문이다.

대신 <천안함 프로젝트>는 또 다른 진실, 즉 우리가 알고 있는 천안함 사건에서 "진실이 빠져 있다는 진실"과 "진실을 갈구하는 것이 죄가 되는 진실"을 고발한다. 이 또 다른 진실은 필름 속에 있기도 하지만 필름밖에서도 볼 수가 있다. 갑자기 줄어든 상영관 때문에 예매에 곤란을 겪는 순간부터 혹시나 '일부단체'가 해코지 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엄습하는 순간, 천안함의 또 다른 진실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여러분이 이 영화를 본 뒤 그 취지에 동조하는 듯한 발언을 하거나 글을 남길 때, 조용환 헌법재판관 후보의 경우가 떠올라 자신도 모르게 멈칫거리게 되는 스스로를 발견하는 순간에도 천안함의 숨겨진 진실을 온몸으로 느끼게 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약간의 수고로움과 약간의 용기를 발휘하지 않는다면 '이미 시작된 파시즘'은 머지않아 수많은 목숨을 내걸어도 막지 못하는 괴물이 되어 버릴지도 모른다. 그 불행했던 경험이 우리에겐 이미 있지 않은가. 다행히 아직까지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이 꽤 있는 듯하다. 75분짜리 영화 한 편 보러 가는 것도 그 중 하나가 될 수 있겠다.


태그:#천안함, #천안함 프로젝트, #메가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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