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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2012 총대선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지난 2010년 4월 15일 오후 백령도 인근에서 인양된 해군 초계함 '천안함' 함미가 바지선에 올려져 있는 가운데, 절단면에는 그물이 설치되어 있다.
 지난 2010년 4월 15일 오후 백령도 인근에서 인양된 해군 초계함 '천안함' 함미가 바지선에 올려져 있는 가운데, 절단면에는 그물이 설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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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이 침몰한 지도 벌써 2년이 지났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었던 장병 46명의 목숨을 앗아갔고 남북관계와 동북아 전체에 심상치 않은 후폭풍을 몰고 온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천안함 사건의 실체적 진실에 대해서는 여전히 적지 않은 의혹들이 남아 있다.

선체와 '1번 어뢰'의 흡착물, 어뢰의 손상 정도, 물기둥 여부, 시신상태, 사고지점 주변의 열흔이나 생물 사체 부재 등 언뜻 생각나는 의혹만도 10가지가 넘는다. 현직 물리학자로서 내가 가장 솔깃했던 대목은 천안함 우현 스크류였다.

이미 알려졌다시피 천안함의 우현 스크류는 좌현 스크류에 비해 함수쪽으로 심하게 휘어져 있다. 정부의 합동조사단(합조단)은 이에 대해 스크류가 피격으로 갑자기 멈추면서 그 회전관성력으로 휘어졌다고 발표했다. 버스가 갑자기 멈추면 승객들이 일제히 앞쪽으로 쏠리는 힘을 받는 것처럼, 고속으로 회전하던 스크류가 폭발로 갑자기 멈추면서 생긴 관성력이 그 원인이라는 것이다.

관성력은 대학교 1학년 과정의 일반물리학에 나오는 내용이다. 나는 처음 합조단의 발표를 들었을 때 나와 주변 동료들이 굉장히 황당하고 어이없어했던 장면이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정상적으로 순항하던(엔진회전수 100rpm) 천안함이 갑자기 멈추었다고 스크류가 휠 정도면 그 스크류는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군함의 스크류로서의 자격이 없다.

게다가 물의 저항력이 만만치 않아서 회전관성력 때문에 스크류가 그렇게 급격한 각도로 꺾인다는 것은 물리적 직관에 맞지 않는다. 결정적으로, 회전관성력에 의해 스크류가 휘는 방향이 실제 스크류가 휘어진 방향과 정반대임은 합조단이 스스로 증명해 보이지 않았던가(그것도 대단히 극단적인 조건에서 재현된 것이었다).

천안함 사건에서 아직도 이해하기 어려운 한 가지

2010년 6월 29일 오후 최상재 당시 전국언론노조위원장이 경기도 평택 해군 제2함대 사령부에서 열린 천안함 조사결과 설명회에서 침몰한 천안함의 우현쪽에 있는 오그라든 스크류를 살펴보고 있다.
 2010년 6월 29일 오후 최상재 당시 전국언론노조위원장이 경기도 평택 해군 제2함대 사령부에서 열린 천안함 조사결과 설명회에서 침몰한 천안함의 우현쪽에 있는 오그라든 스크류를 살펴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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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이 증폭되자 합조단은 피격의 충격으로 추진축이 함미로 밀리면서 발생한 관성력을 들고 나왔다. 만약 그 때문에 스크류가 그 정도로 휘었다면 스크류와 연결된 추진축이나 기어박스 등에도 그에 상응하는 충격의 흔적이 남아 있어야 한다. 게다가 그런 충격으로는 스크류가 90이상 휘고 끝부분이 다시 반대로 약간 휘어나간 실제 천안함의 상황을 설명하기 어렵다. 폭발은 좌현에서 있었음에도 좌현 스크류가 멀쩡한 것과 비교하면 더욱 그러하다.

천안함 사건에서 무엇보다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그리고 가장 중요한 부분)은 함미의 위치를 확인하는 데에 왜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나 하는 점이다. 사고가 발생한 시각은 2010년 3월 26일 오후 9시22분께인데 함미의 위치를 최종 확인한 것은 만 이틀이 지난 3월28일 오후 10시 30분께였다. 그 과정을 보면 괴이쩍은 생각을 감추기 어렵다.

2010년 3월 30일자 언론 보도에 의하면 백령도의 어부 장씨가 28일 오전 해병대로부터 수색작업에 참여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자신의 고기잡이배를 끌고 바다로 나가 군이 찍어 준 예상지역을 뒤지다가 자기 어선의 어군탐지기로 함미 위치를 포착했다.

최초폭발지점에서 그리 멀지도 않은 곳이었는데, 4년 전 구매한 250만 원짜리 어군탐지기를 장착한 17년 된 어선이 불과 3시간여 만에 찾은 함미를 왜 군 당국은 이틀이 지나도록 찾지 못했을까. 사고 당시 인근 해역에는 해군 함정들이 적지 않았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사고 이튿날인 3월 27일 해경이 함미로 의심되는 물체를 발견했다고 해군에 알렸음에도 해군은 무대응이었다(4월4일자 KBS 보도). 해경이 지목한 지점은 다음 날 어부 장씨가 지목한 지점과 똑같았다. 그동안 해군은 무엇을 한 것일까.

세간의 관심은 온통 천안함 침몰의 원인에 쏠려 있지만 천안함이 버블제트 어뢰에 피격되었든 다른 여타의 이유로 침몰했든 함미의 위치를 확인하는 데에 왜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국군장병이 무려 46명이나 수장되었다면 사고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수색이 그토록 늦어진 이유가 철저하게 규명이 돼야 하고, 누군가는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지 않을까?

사상검증의 리트머스지로 변해버린 천안함 사건

정부와 군 당국은 다국적의 합동조사단을 꾸려 진상을 조사하고 북한의 '1번 어뢰'를 천안함 침몰의 범인으로 지목하는 보고서를 냈지만 핵심 의혹들은 2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해명되지 못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합조단의 발표에 의구심을 가지는 국민들이 여전히 적지 않다. 그런데 정부와 보수언론은 언제부터인가 합조단의 발표를 믿지 못하는 사람들을 친북좌파로 몰기 시작했다. 천안함 사건이 마침내 사상검증의 리트머스지로 변해 버린 것이다.

가장 단적인 예가 최근 헌법재판관 후보로 올랐던 조용환 법관의 경우다. 헌법재판관의 야당 몫으로 추천된 조용환 후보자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천안함 사건이 북한 소행이라는 정부의 발표를 믿는다, 그러나 직접 보지 않았기 때문에 확신이라는 표현을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취지로 발언한 것이 문제가 돼 결국 국회인준을 받지 못했다.

참여정부시절 내내 노무현 정권을 일러 "국민을 편 가르기 하는 나쁜 정권"이라고 비난해 왔던 새누리당(당시 한나라당)이 이런 식의 편 가르기로 야당추천 헌법재판관 인준을 거부한 것은 전형적인 '마녀사냥'이다.

가장 과학적인 방법으로 천안함 사건의 진상을 규명했다면서 거기에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은 왜 빨갱이로 몰아붙이는 것일까? 과학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 정부나 여당이나 혹은 일부 언론의 이런 태도는 무척 납득하기 어려운, 대단히 비과학적인 처사다. 과학적 행위에서 중요한 것은 그 결과라기보다는 결과에 이르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합조단에 과학자나 전문가가 참가했다는 사실만으로는 그 결과가 과학적인 방법으로 도출되었다고 말하기 어렵다.

과학 발전, 권위에 도전해 온 이단아들 있었기 때문

지난 22일 오후 서울 광화문 원표공원에서 열린 천안함 전사자 추모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지난 22일 오후 서울 광화문 원표공원에서 열린 천안함 전사자 추모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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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나는 합조단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방법으로 자신들의 결과를 도출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한편으로 과학은 애프터서비스가 확실해야 한다. 한 번 결과가 나왔다고 해서 그 결과가 영원불멸의 지위를 획득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과학적인 결과가 나왔는데 더 이상 왈가왈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하는 것은 전혀 과학적이지 않다.

과학자들의 주된 임무 중 하나는 이미 확립된 결론조차도 의혹의 눈초리로 끊임없이 검증하는 것이다. 훌륭한 과학이론이란 이런 끝없는 검증과 도전을 계속해서 이겨낸 산물이다. 과학이 혁명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이처럼 권위에 도전하는 이단아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마디로 과학발전의 역사는 기존의 권위와 질서를 끊임없이 전복해 온 역사였다.

최근의 예를 들자면 작년 9월 전 세계 과학계를 뒤흔들었던 초광속 중성미자(superluminal neutrino) 실험이 있다. 100여 년 전에 발견된 상대성이론에 의하면 우리 우주의 모든 물체는 광속을 초과할 수 없다. 만약 실험 결과가 사실이라면 현대 물리학의 근간이 뒤흔들릴 만한 놀라운 일이라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그 결과에 굉장히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실제로 실험팀의 몇몇 일원은 자신들의 결과를 인터넷에 예비논문으로 공개하는 것을 반대하기까지도 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이 실험팀을 일러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부정하는 빨갱이"라거나 "현대과학을 부정하는 미치광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이 모든 과정은 자연스러운 과학 활동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나는 조용환 사건을 보면서 지금 한국이 갈릴레이가 종교재판을 받았던 17세기 중세시대를 살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착각에 빠졌었다.

빨갱이 논란, 과학적 결론 신빙성 좀먹는다

마침 4·11 총선이 다가오면서 정치권도 언론도 여러 패로 나뉘어 대격돌로 치닫고 있다. 야당의 정권심판론에 맞서 여당은 고전적인 좌우 편 가르기로 재미를 보고 있다. 한미FTA와 제주해군기지에 이어 2주기를 맞은 천안함이나 핵안보정상회의, 그리고 북한의 광명성 발사예고 등 이념공세의 소재는 무궁무진하다. 제주해군기지 사건이 불거지자 보수언론에서 천안함 유족들을 인터뷰한 기사를 쏟아내는 걸 보면 이런 이슈들은 총선을 앞두고 서로가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는 셈이다.

그러나 부탁하건대, 국군장병 46명의 목숨이 희생된 천안함 문제만큼은 적어도 이념문제로 다루지 말아야 한다. 나름의 근거로 합리적인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들을 무조건 친북이니 빨갱이니 하고 몰아세우는 것은 오히려 합조단의 '과학적인 결론'에 대한 신빙성을 좀먹을 뿐이다. 이런 저급한 논란을 지켜봐야 하는 유족들의 심정은 또 어떻겠는가.

진실이 국가에 우선한다는 고 리영희 교수의 가르침이 새삼 떠오른다. 과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정부와 합조단이 각종 의혹들을(사고원인이 어뢰폭침이든 아니든) 말끔하게 해소할 애프터서비스를 확실하게 해 주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천안함 사건은 이번 4·11총선으로 새로이 구성되는 19대 국회가 꼭 해결해야 할 문제 중 하나가 될 것이다. 나와 비슷한 의혹과 궁금증을 가진 국민들이 의외로 많기 때문이다. 진실규명의 주체가 누가 되었든, 나는 천안함의 진실을 알고 싶을 뿐이다.


태그:#천안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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